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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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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17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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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10.01 22:25
조회
2,144
추천
67
글자
10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DUMMY

돌아간다는 결정은 내려졌다. 하지만 이제 디테일이 필요한 시점이 돼버렸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은데 적에게 얕보이지 않고 물러날 방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전투가 없이 대치만 이어지는 와중에 그럴 기회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돌아갈 준비를 몰래 하고는 있지만 다른 영주들이 눈치를 채는 것은 순식간이리라. 그렇게 되면 입단속이 어려워질 것은 뻔했고 첩자들이 그 사실을 살라흐앗딘에게 전하다면 사라센군은 더욱 나서지 않고 버티기만 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만 가고 있을 때였다.


"알 아밀이 다시 협상하자고 합니다."


소득 없이 전의 협상을 날려 먹었던 리처드로서는 반색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지금 살라흐앗딘도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예루살렘에 모인 군대 대부분이 살라흐앗딘이 끌어온 군대였고, 아미르들의 이탈이 심해진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것도 있지만 사실 리처드의 용맹스러운 힘을 마주 본 아미르들은 핑계를 대고 영지로 사라지기 일쑤였었다.


살라흐앗딘도 자신의 병력으로만 십자군을 맞상대하기에는 껄끄러운 것이었다. 만약 이집트나 다마스쿠스에서 반란이라도 일어난다면 진압할 병력이 없었다. 그리고 실제 반란이 일어날 기미도 조금씩 보였다.


그러니 양쪽의 이해가 맞는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



"그냥 돌아가시죠. 저희도 아스칼론만 돌려받으면 더이상 쫓지 않겠습니다."


"쫓는다니? 벽 뒤에 웅크리고 있는 건 당신네가 아니오?"


의례적인 표현에 리처드가 날 서게 반응했다. 알 아밀의 등 뒤에 우두커니 선 랜포트가 제발 자제하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우리가 보기엔 몇 개 되지 않는 해안가 도시들. 거기에 웅크리고 있는 건 프랑크인 들입니다."


둘의 대화는 이렇듯 평행선을 달리는 듯했지만, 옆의 천막에서는 좀 더 진전이 있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블루스는 안됩니다. 살라흐앗딘께서도 발리앙 경의 공로를 아시지 않습니까? 거기에다가 새로 축성한 요새도 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나사렛의 중간까지는 우리 병력이 주둔할 겁니다."


이렇게 진행되는 이유는 리처드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었다. 솔직히 훼방꾼들을 놓고 협상을 하기는 껄끄러웠으니 말이다. 바로 알 아밀과의 협상에 동석한 다른 영주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리처드의 양옆에는 예루살렘 왕 앙리와 부르고뉴 공작이 함께하고 있었다.


앙리로서는 언제나 리처드에 푹 빠진 인물이었기에 무조건 따르겠지만, 부르고뉴 공작은 강경파였다. 무조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무슬림들을 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저번 예루살렘 공략도 부르고뉴 공작을 수장으로 한 강경파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협상이 이중으로 진행되는 걸 모르는 부르고뉴 공작으로서는 콧수염을 꼬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머리 안에는 눈앞의 사악한 무슬림을 어서 전쟁터에서 베어 버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도 이견이 좁혀지지는 않는군요. 그래도 귀한 시간을 내주셨으니 조그만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알 아밀이 말을 꺼내고 손을 들자, 호위들이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윌리엄이였다. 갑옷을 입지 않고 사라센 귀족들이 즐겨 입는 비단옷을 걸친 모습이 껑충해 보였지만 그래도 고생한 모습은 아니었다. 리처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저도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밖에 마차로 준비해놓았지요."


"무엇인가요? 왕이시여."


"술탄께서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기독교의 성물을 최대한 놔두라 하셨다지요. 전 감명받았습니다. 아크레와 야파, 그리고 다른 점령지들의 무슬림 성물을 잘 보관했다가 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돌아가는 상황이 다시 부드러워지자, 부르고뉴 공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지만, 양쪽 다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자들이었으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윌리엄이 돌아오게 된 것도 물밑에서 사전에 의논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리처드는 놀라는 기색 없이 그냥 눈웃음만으로 윌리엄을 맞았다.



***


협상이 갈무리돼가자, 뜬금없이 리처드가 알 아밀에게 개인사를 물었다.


"혹시 결혼은 하셨겠지요?"


"물론입니다만, 아내가 작년에 병사했습니다. 몹쓸 전염병이었지요."


그렇게 말하는 알 아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이도 리처드보다 많으니 결혼을 하지 않았을 리 없는데 갑자기 질문이 나오자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이 엉뚱한 왕은 무슨 얘기를 하려고 말을 꺼낸 것인가? 랜포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전에 들은 적이 있었는지 두손을 들고 휘저으며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처드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싸우는 것보다 좋은 해결책이 갑자기 생각이 났구려. 한번 들어보시겠소?"


약간 당황한 알 아밀이 고개를 끄덕이자, 리처드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듣는 주변의 영주들과 근위 기사들의 얼굴은 참담해졌다.


"나에게 과년한 여동생이 있소. 박복한 외모는 아닌데 이상하게 혼처가 없더이다. 아무래도 나의 위명에 맞는 이들이 별로 없나 보오. 하하하."


"아···. 예."


설마 하는 알 아밀의 얼굴은 다음 얘기로 무너져 내렸다.


"알 아밀, 당신과 내 여동생이 결혼하는 건 어쩌오? 그리고 술탄에게서 이 시끄러운 땅덩어리를 결혼선물로 받는 거지. 그러면 기독교도와 무슬림간의 화해가······."


참다못한 부르고뉴 공작이 실례를 무릅쓰고 참견했다.


"하지만 전하, 무슬림에게서 성지를 되찾는다는 목적에는 부합하지가······."


눈꼬리를 찌푸린 리처드가 알 아밀의 얼굴을 빤히 보며 한마디를 던졌다.


"개종해주시오. 당신의 희생으로 이 땅을 피로 적시는 전쟁은 끝날 것이오. 당신네도 천국을 믿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서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것도 고귀한 일일 것이지요."


리처드의 눈이 그렇게 초롱초롱할 수 있는지 류는 처음 알았다. 굳게 믿고 있는 이에게 곤란하다는 말은 쉽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휩싸이고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자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리처드의 말이 이어졌다.


"곤란하오? 그러면 혹시 술탄에게 딸이 있으시오? 앙리!"


우물쭈물하는 앙리에게 이혼하라며 강권하기 시작하자, 협상장은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류는 아직도 귀에 선했다.


"네 녀석만 지옥에 떨어지면 모두 행복하다. 희생해라."


"그럼 형···. 형님이! 전 파문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리처드는 돌아오는 길에 계속 구시렁거렸다.


"얼마나 좋은 생각인데······."


윌리엄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로 뒤를 따르다가 분위기를 바꾸고자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없어도 잘들 살았나 봐."


제임스가 새초롬한 눈초리로 쏘아보며 투덜거렸다. 그동안의 걱정이 날카로운 말투로 윌리엄의 고막을 찢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멋지게 죽지······. 살아 돌아오고서 입만 살았어? 결국 네 녀석이 한 일이란 게 잘 끌려가서 뒤룩뒤룩 살만 찌고 돌아온 거잖아."


"난 나름대로 십자군으로서 애썼다고···."


윌리엄이 투덜대는 제임스에게 오히려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뭐? 뭐냐? 누굴 개종이라도 시켰냐? 아니면?"


그러자, 윌리엄의 모험담이 슬그머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과장이 섞였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녀석이었다. 한참동안이나 모두의 귀는 윌리엄의 입에 놀아나기 시작했다.


"결국, 널 붙잡아 가둔 아미르의 두 딸을 모두 네 침대로 끌어들였다?"


"당연하지. 종교와 인종을 초월한 사랑이었다."


그 말에 제임스는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고만장해진 윌리엄은 거기까지만 할 것이지. 조금 더 나아가버렸다.


"하지만 역시 속살이 제일 좋은 건 그 어머니였어."


순간, 분위기가 급랭했다. 랜포트는 경멸스럽다는 듯이 눈꼬리를 치켜뜨고 노려보다가는 먼 산을 쳐다봤다. 흡사 더러운 것을 본 눈을 파버리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난봉꾼 제임스는 조금 흥미를 느낀 듯 들뜬 얼굴이다가 이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쓰레기 녀석."


심란한 리처드마저 웅얼거리며 오랜만에 돌아온 근위 기사를 꾸짖었다.


"아···. 아니요. 그 어머니는 재혼한 어머니였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요. 그 딸들하고 나이 차이도 몇 살 나지 않았다고요."


"더러운 녀석. 그래도 부모와 자식 아니냐?"


제임스마저 욕하기 시작하자 윌리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뭘 해도 욕을 먹을 일이었으니 말이다. 잠시 편을 들어달라 류를 쳐다봤지만, 류도 입 끝을 오므리며 눈을 작게 떠버리니 포기했다. 결국 윌리엄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조용히 말을 몰았다.


"전하, 알 아밀의 마지막 말이 찜찜합니다."


랜포트가 갑자기 꺼낸 말은 류가 생각해도 찜찜했다.


'결국, 아스칼론의 주인만 정해지면 평화가 온다는 얘기군요. 알겠습니다.'


분위기 좋게 큰 얼개만 그려놨을 뿐 회담은 결국 결렬됐다. 아스칼론에 대한 생각이 서로 엇갈렸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예루살렘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리처드나 예루살렘을 지키겠다는 걸 알리고 싶은 살라흐앗딘, 모두 아스칼론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알 아밀의 말은 결국 다시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말 아니겠는가?


"그래, 곧 바빠지겠구나."


리처드는 돌아가는 와중에도 랜포트에게 아스칼론의 수비보강에 대해 이런저런 지시를 던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이제 또 리처드의 역사가 시작되겠군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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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완결에 대한 소고 +60 18.10.11 3,524 48 3쪽
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33 99 9쪽
20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81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3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5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8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6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3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5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3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4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8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8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7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4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188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9 67 9쪽
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1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5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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