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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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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10.02 12:00
조회
2,223
추천
69
글자
10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DUMMY

어떻게 회담장의 내용이 흘러나왔는지 몰랐지만, 리처드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가 여동생의 공격에 쩔쩔매고 말았다.


아스칼론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려, 아내와 여동생까지 데려온 것이 사기에는 도움이 됐으나 지금의 곤욕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만 것이다.


"오라버니, 어떻게 저에게 무슬림과 결혼하라는 얘기를? 게다가 나이도 많다는데. 저를 그리 업신여기십니까?"


정략결혼이 횡횡하는 유럽 왕가의 일원이지만 이런 정략결혼은 처음이었으리라. 여동생의 비난은 계속 이어졌고, 나이 차 많던 동생의 애교 섞인 원망을 상대하지 못한 리처드는 그냥 '농이었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건 오히려 불을 붙여버리고 말았다. 리처드의 말은 더욱 심한 원망으로 돌아왔고 아내인 베렝게리아까지 여동생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한동안 여동생의 투덜거림에 시달리던 리처드는 결국 여동생을 아내와 함께 키프로스로 보내버렸다.


다시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번 전쟁터는 아스칼론이 될 것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아스칼론이 아니었다.


"전하! 야파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야파가 포위되기 전 운 좋게 나올 수 있었던 기병이 있었다. 그들은 아스칼론으로 구원군을 요청하려 쉬지 않고 달려왔다. 매서운 추격에 도착한 것은 겨우 두기였다.


"그래, 삼십의 기병 중에 너희만 살아남았다?"


"바람이 역풍인 상황이라서 배로는 늦을 거 같았습니다. 쉬지 않고 달렸고 따라잡히면 한둘이 남아 계속 시간을 벌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보고하는 기병의 얼굴은 먼지투성이였다.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붙어 지저분했다. 동료들의 희생을 보면서 울었을 게 분명했다.


"몇이나 되더냐?"


"족히 만오천은 됩니다. 공성 병기가 많았습니다. 저희가 떠날 때부터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병의 말을 들은 모두는 이미 야파는 함락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파의 수비병은 천명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아스칼론으로 병력을 모은 패착이었다.


"배를 띄워라. 랜포트. 가자."


"병사들이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적어도 내일 오후까지는······."


"되는대로 오라고 해. 준비된 병력만 배에 타고 가자. 지금 이쪽에서는 순풍이잖아."


결국 준비된 건 배 쉰 척에 병사는 이천 명이었다. 순풍을 맞은 배들은 사흘 만에 야파의 앞바다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리처드와 선봉을 맡은 이들은 갤리선에 올라 밤낮없이 노를 저으며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



야파는 십자군에게 함락되기 전, 살라흐앗딘의 명령으로 파괴되었었다. 성벽의 골조는 크게 훼손되지 않아서 곧 돌을 쌓아 방비를 시작했지만 제대로 다듬을 시간까지는 없었다.


그런 곳에 사라센군의 투석기 공격이 집중되자 곧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수많은 병사의 공격이 시작됐다. 남은 성벽에서 석궁으로 대처하던 십자군은 자신들보다 서너 배는 많은 궁수의 견제를 받느라 고개를 들지도 못했고 곧 해자는 메꿔져 버렸다.


이틀간 성벽의 틈을 지키며 버티던 십자군은 거의 몰살당하다시피 하며 밀려버렸다. 더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에 이르자, 한 기사가 예루살렘의 일을 거론했고, 항복에 대해 협상하려고 살라흐앗딘에게 사자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예루살렘처럼 항복할 테니 보내 달라. 그것인가?"


"그렇습니다. 도시를 넘기겠으니 무기를 든 채 퇴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도시를 포기하고 요새로 퇴각해라. 여기서 나의 군대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목숨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할 수는 없다. 분노한 무슬림들의 칼을 피해 우선 숨으라는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 분노가 가라앉으면 살려줄 방도를 찾아보려 한 것이었다.


이 말에 살아남은 십자군들은 성문을 열고는 항구 가까이 있는 요새에 틀어박혀 문을 잠갔다. 깃발도 없이 쥐죽은 듯이 있었다. 약탈이 끝나고 다시 항복을 받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살아남은 십자군은 이백여 명이었다.



***



밤새 약탈이 벌어지던 야파의 시내는 혼란스러웠다. 승리의 기쁨에 들뜬 무슬림들의 환호가 멈추지 않고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다녔다. 그 소리에 요새에 숨은 십자군들은 더욱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패배자의 모습으로 숨은 것은 아니었다. 일단의 사라센군이 요새의 문을 열려 했을 때 격렬하게 저항해 물리치기도 한 것이다. 작은 부대를 이끌고 왔던 아미르는 별 소득 없이 병사를 물렸고 싸움보다는 약탈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해가 떠오르면서 이들은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사라센군이 약탈에 정신이 팔려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 해가 떠오르고 그들의 아침 기도가 이어지면 이내 사리판단을 할 것이다. 그때 살라흐앗딘이 관용을 베풀고 병사들이 이해한다면 그들은 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할까? 다들 정신을 놓고 있을 때 항구로 나가서 배라도 한 척 낚아채 볼까?”


“가는 길에 병력이 줄줄이 있어. 뚫고 갈 수 있을까? 게다가 다친 사람들은 죽게 놔두자는 얘기인가?”


서로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 나이 든 수사가 요새의 총안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여나 구원병이 올까 하는 애탄 마음으로 쳐다봤을 뿐이지만 기대감은 거의 없었다.


“으···. 음?”


수사는 나이가 들어 흐릿한 눈을 손으로 비비며 게슴츠레 수평선을 노려보았다. 검은 점이 커지고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이 보게들! 구원병이 오나 봐.”


수사의 말에 병사들은 총안으로 달려와 모두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한참을 쳐다봤다.


“영국 배들이야. 리처드 왕이 구원병을 보낸 거야.”


“요새의 문에 나무를 더 가져다 덧대! 왕께서 오실 때까지 버텨야 한다. 화살은 얼마나 남았어?”


“기름단지를 불에 달궈. 배틀램이 올 때 부어버리자.”


병사들은 모두 기대감에 젖어 분주히 움직였다. 하지만 항구 가까이 다가온 배들은 멈춰 서버렸다. 한 병사가 요새의 망루로 올라 깃발을 휘둘렀지만, 곧 화살을 맞고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래도 분명 보았을 텐데 배는 다가오지 않았다. 병사들의 기대는 당혹감을 넘어 좌절로 바뀌었다.



***



“야파는 함락된 거 같습니다. 아까 깃발은 아무래도 함정이겠지요.”


랜포트의 말에 리처드의 눈이 항구부터 해안가를 훑어 지나쳤다. 보이는 건 사라센군뿐이었다. 갑작스레 다가온 영국 함대에 놀라 당황해하던 적들이 이제는 곳곳에 방책을 세우며 방어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가? 역시 야파는 함락된 건가?”


씁쓸한 목소리의 리처드는 고개를 돌려 따라온 함대를 바라봤다. 적은 수의 배들이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좀 더 증원되겠지만 무턱대고 아스칼론의 병력을 뽑아낼 수는 없다. 오히려 야파를 미끼로 아스칼론을 치려는 살라흐앗딘의 술수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돌아가고자 마음먹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항구에 가까웠던 요새의 작은 문이 열리더니 일단의 병사들이 항구까지 길을 여는 것이 아니었는가? 얼마 되지 않은 병력이어서 곧 난도질당하며 죽임을 당했지만 한 청년이 바다에 뛰어드는 데는 성공했다.


사제복을 입은 젊은 사내는 힘겹게 리처드의 배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려 왕을 찾았다. 다가온 왕에게 사제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왕이시여. 당신이 맡긴 성을 지키느라 병사들이 죽어갑니다. 이제는 도살자의 칼을 기다리는 양처럼 목을 늘어뜨리고 죽을 시간만을 기다립니다. 만약 전하께서, 아니 전하를 통한 신의 권능이 없다면 우리는 한 자리에서 죽습니다.”


콜록대며 입에서 물을 토하던 사제는 힘주어 말했다. 리처드는 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랜포트에게 명령했다.


“노를 힘껏 저어라. 해안가에 가까이 다가가라. 좌초시켜라. 내 발이 땅에 닿게만 해라.”


랜포트는 선원들에게 고함을 질러 속도를 올리라 명했고 곧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제임스도 윌리엄도 긴장한 표정으로 검과 방패를 들었다. 류도 어깨에 보두엥의 장검을 비스듬히 묶고 선예의 검과 두꺼운 방패를 들었다. 배에는 붉은 사자기가 올랐다. 다른 배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병사가 들고 온 데인 도끼를 쥐고는 가볍게 휘둘러보았다. 있는 힘껏 저어진 노의 힘에 배가 미끄러지듯 해안에 다가갔다. 더이상 노를 저을 필요가 없자, 선창에 있던 노잡이들도 갑판으로 올라왔다. 작은 방패와 검을 든 그들은 밤새 노를 저었던 그들이 아니었다. 땀에 젖은 어깨가 드러난 북방의 야만인들이었다.


모래사장 위를 스르르륵 미끄러지며 올라타던 배가 기우뚱거리며 멈추기 시작했다. 어느새 리처드와 그 병사들은 배에서 뛰어내려 적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모두 죽여라! 나를 가로막는 녀석은 모두 죽여라. 잘라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짖밟아 죽여라!”


리처드가 괴성을 지르자 방책 뒤의 사라센군이 화들짝 놀라 당황해 했다. 빠르게 방책을 밟고 넘어선 류의 검이 상대의 가슴에 꽂혔다. 리처드가 휘두른 도끼날에 방책이 부스러지며 날아가 버렸다.


랜포트의 검은 여전히 아름답게 적의 손목을 베어내며 왕의 곁을 지켰다. 요새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작가의말

전설의 극치, 야파전투입니다.

덧1) 와아~~~저도 이제 작가연재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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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완결에 대한 소고 +60 18.10.11 3,523 48 3쪽
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32 99 9쪽
20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80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2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4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7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5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2 64 10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2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3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7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2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7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6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188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8 67 9쪽
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1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0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4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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