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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12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9.1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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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3
추천
68
글자
11쪽

< #16. 야파를 향해서 4-1 >

DUMMY

"기분 나빠."


언덕 위에서 행군하는 적이 빤히 보인다. 녀석들은 보란 듯이 해안가에 최대한 붙어서 병력을 움직이고 있었다. 기다란 행렬이 십자군보다 두 배는 길어 보였다. 그걸 본 제임스가 쉬지 않고 투덜거렸다.


언제든지 언덕을 치고 내려와, 한 번에 감쌀만한 병력이었다.


"괜찮아. 언덕이 가파르다. 녀석들이 멋모르고 내려오면 오히려 대열을 갖추기 전에 밀어붙일 수 있다."


리처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살짝 졸면서 말고삐를 잡고 있었다. 곁의 누구는 심장이 터질 듯이 놀랄 일이지만 이 담대한 사나이에겐 그냥 햇볕이 따뜻한 날의 산책 정도이리라.


"그렇습니다. 전하. 게다가 거리가 그리 가깝지도 않습니다. 기습의 이점은 하나도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랜포트도 리처드의 중얼거림에 맞장구를 쳤으나 리처드는 좀 더 깊은 잠에 빠져드는지 대꾸가 없었다. 랜포트는 말을 몰아 살며시 말고삐를 쥐었다.



***


언제나 전장에서는 힘이 들어도 버티던 살라흐앗딘이었다.


병사들과 같이 걷고 기병들과 같이 말을 타고 전투가 끝날 때까지 버티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사라센군의 중앙에는 하얀 천이 휘날리는 가마가 하나 있었고 그곳에 살짝 누운 살라흐앗딘이 있었다. 바람에 차양이 휘날렸고 그의 희끗희끗한 수염도 흔들렸다.


그동안 하지즈가 생각하기에도 살라흐앗딘은 철인처럼 살았다. 그래서 모두 잊어버리고 있었다. 살라흐앗딘도 사람이란 걸 말이다. 오늘따라 피로가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니 하지즈는 찔끔 눈물이 솟아나고 말았다.


"날씨는 더우나 바닷바람이 좋지 않습니다. 차양을 모두 치는 게 어떨는지요?"


"아니다. 그깟 열병이나 걸렸다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하지즈는 몸을 살며시 떠는 살라흐앗딘을 걱정스레 바라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즈의 만류에도 살라흐앗딘의 눈은 십자군의 진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적의 행렬 어디에서 누가 어느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지 가늠하고 있으리라. 살라흐앗딘의 머리에선 매섭게 생각들이 돌고 있을 것이다. 전략의 천재. 신께서 가녀린 무슬림들을 위해 내려준 영웅. 그의 매서운 눈빛이 적을 갈기갈기 나눠 찢고 있었다.


하지즈는 그런 그를 방해할 수 없어 가마 위에 앉은 시동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열병이 아니고 분명 말라리아다. 몸이 으슬으슬하실 테니 따뜻하게 천으로 덥혀드리고 여차하면 네가 껴안도록 해라. 머리에는 차가운 물로 수건을 적셔 덮어드리고."


시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반짝거렸다. 이 어린 소년에게도 살라흐앗딘은 영웅이었다. 다만 전투를 앞둔 지금 술탄의 병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의 판단력이 흐려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좋은 징조는 아닌것이다.


하지즈는 말을 몰아 선두로 나섰다. 선두에는 타키 앗딘이 그의 기병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하지즈, 술탄께서는 어떤 신가?"


"쉬지를 않으십니다. 걱정이네요."


"삼촌께서는 언제나 그런 식이지. 그러시다가는 오래 살지 못하실 거야."


하지즈는 타키 앗딘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노려봤다. 하지만 타키 앗딘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신께서도 그리 훌륭한 피조물을 더러운 땅에 오래 놔두시겠나. 난 그리 생각한다네. 신께서 자비로우시다면 말이야."


하지즈는 눈빛을 거뒀다. 타키 앗딘은 씁쓸한 말투로 말을 마무리했다.


"이제는 좀 쉬셔야지. 평생을 전쟁터에서만 보내실 수는 없잖은가?"


그때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본진으로 돌린 눈에는 푸른색 깃발이 흔들리고 있었다. 경기병으로 견제하라는 얘기였다.


"그래, 너무 편히들 가고 있었지. 그럼 괴롭혀줄까나!"


타키 앗딘은 주변의 아미르 몇을 불러 경기병들을 모아 기습을 하라 명했다. 기왕 견제에 나섰으니 잔뜩 괴롭혀줄 생각이었나보다.


"각각 오백 정도로 네 무리로 나눠서 말이야. 모래시계가 뒤집힐 때까지 공격하도록 한다. 그리고 절대 틈이 보여도 밀고 들어가지는 말고 말이야."


"만약에 쫓아오면요?"


한 험상궂은 아미르가 궁금하다는 듯이, 아니 몸이 달았다는 듯이 물었다.


"내가 나서야지. 나와 타와시들이 맞이할 테니 빠져."


타키 앗딘의 말에 주변의 중기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틴에서도 승리를 거두는데 중추였다. 아크레에서는 결국 결판을 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치를 떨던 템플 기사단장을 잡아낸 것도 그들이었다. 필리프의 목젖까지 창을 들이밀었던 것도 그들이었다. 그들은 아크레에서 빠져나온 십자군들이 그물에만 걸린다면 이 지긋지긋한 악연이 끝날 것이라고 환호했다.



***



"시끄럽네."


눈을 뜬 리처드는 언덕 위 무슬림들의 환호성에 살포시 짜증을 부렸다. 하지만 뱉은 말과는 달리 행군하는 진형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그냥 그대로 전진이다."


그때, 언덕 위에서 먼지를 뿜으며 적의 기병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황한 십자군 전열 이곳저곳에서 깃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들 한판 붙자는데요. 얼마 되지도 않습니다."


들뜬 표정의 제임스가 살며시 리처드의 마음을 움직여보려 애쓰기 시작했다. 적이 해안가의 자갈을 박살 내며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저, 대열이 무너지지 않게 한 삼백 명만 주시면······."


"절대 쫓아가지 않겠습니다. 그냥 귀찮은 파리에 손짓 한번 한다고 생각하시고."


"전하, 절 못 믿으시는 거죠?"


제임스의 말은 점점 애원에 가까워졌지만, 리처드는 꿈쩍하지 않았다. 다가온 적들이 세차게 휘파람을 불며 화살을 날렸다. 오백의 기병이 십자군의 행렬을 반원형으로 스쳐 지나가며 화살을 날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은 가공할만한 위력이었다.


방패를 움켜쥔 병사들이 촘촘히 간격을 좁히고 방패를 치켜들었고, 기병들은 내려서 말의 몸 뒤로 숨은 채 고삐를 잡았다.


화살이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떨어졌다. 후드득거리는 소리에 일파가 지나갔다. 한 병사가 방패에 꽂힌 일곱 개의 화살을 보며 놀라워하다가 뒤늦은 화살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곁의 동료가 달려와 방패로 막아주려다 병사의 몸에 다시금 화살이 꽂혀버리자 포기했다.


"절대 방패를 놓지 마! 간격을 좁혀라!"


병사들은 커다란 카이트 실드 뒤에 몸을 숨기고 적을 바라봤다. 적들은 거칠 게 없다는 표정으로 좀 더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



"튜턴 기사단이 더 버티지 못하겠다고 반격하겠답니다."


제임스가 행렬의 중간에 솟아오른 깃발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손짓해 검은색 깃발을 들어 올리라고 명했다.


'대열을 움직이는 것은 금지지만 화살로 대응하는 것은 허락한다.'


그러자, 튜턴 병사들 사이에서도 적의 경기병을 향해 화살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경기병들은 방어만 하던 십자군 쪽에서 화살이 날아오자 당혹감과 더불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타키 앗딘의 엄명을 잊은 몇이 활을 안장에 꽂고는 창을 들어 달려가 던졌다. 묵직한 창이 날아가 방패를 지나치자 비명이 들려왔다. 방패를 피해 위로 쏘아 올린 화살보다는 역시 위력이 컸다.


그걸 본 경기병들이 활을 집어넣고는 창을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활보다 창은 좀 더 가까이 다가와 던져넣어야 힘을 발휘했다. 그래서 서로 수십 보밖에 되지 않은 거리에서 창과 화살이 서로 넘나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십자군은 튼튼하게 전열을 유지한 채 느리디느린 걸음이지만 멈 추지 않고 진군하고 있었다.


적은 두들겨도 두들겨도 묵묵히 전진하는 십자군의 대열에 질렸는지 슬그머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위력을 발휘하던 창도 몇 개 남지 않았다. 때마침 타키 앗딘의 뿔피리 소리에 교대할 병력이 언덕 위에서 내려오기 시작하자, 모두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리처드가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제임스, 애들 어깨 힘이나 보자."


그 말에 제임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돌려 진의 중앙 쪽으로 달려가 외쳤다.


"궁수들 준비하라. 목표는 퇴각하는 적들이다."


리처드의 병사 중 적지 않은 수가 등 뒤에 커다란 활을 매고 있었다. 그들은 방패를 땅에 꽂아 세우고는 등 뒤의 활을 돌려 손에 쥐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병사들이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땅에 꽂아 주었다.


궁기병들이나 일반 병사들이 쓰는 화살보다 한 배 반은 길었다. 그걸 본 류는 조금 의아하게 여겼지만, 곧 이해했다. 커다란 활이 휘어지라 당기던 그들의 모습에 화살이 작았다면 힘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했을 것을 말이다.


"쏴라!"


류는 아버지에게 들었던 얘기가 기억났다.


'얘네들은 활이 영 아니다. 커다래도 멀리 가지를 못 해. 우리처럼 뿔을 접어 만들던가 해야 하는데. 기껏 나무를 휘어서 뭐에 쓰겠니."


하지만 크기가 보통보다 크니 좀 더 가기는 하겠지. 그리 생각하던 류는 시위를 당기는 병사의 팔뚝을 보고는 놀랐다. 가득 근육이 돋아나 부들거리는 모습에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가는지를 알아채고는 말이다.


병사가 씨익 웃으며 시위를 놓았다. 순식간에 검은 화살이 하늘을 수놓았다. 쇠뇌가 아니면 닿지 않을 거리까지 벗어난 적들이 숨을 돌리려는 찰나에 화살이 쏟아졌다.


얄밉게도 괴롭히던 적들이 우스스 쓰러졌고 그 광경을 보고 교대하러 오던 적들이 멈춰섰다.


"전진!"


리처드의 말에 대열은 다시 행진을 시작했고 적들은 거리를 꽤나 두고는 다가서지 못했다.



***



순조롭게 진군하던 십자군의 눈에는 커다랗게 땅이 꺼진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건너편에는 돌이 깔린 지형이 보였으나 갑자기 쑤욱 땅이 꺼져있는 것이었다.


"강인가?"


"맞는 거 같습니다. 원래는 나무다리가 걸쳐져 있었겠지요. 유실된 후 강이 말라버린 거 같습니다."


리처드의 질문에 류가 대답했다. 이런 지형을 지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분명 대열이 흐트러질 테고 적들은 마른 강바닥을 타고 상류 쪽에서, 그리고 반대편 기슭에서 공격할 것이다.


"지나자. 어쩔 수 없잖아."


"견제가 아니라 분명 치고 들어올 겁니다."


류의 말에 리처드는 손가락을 들어 주변의 기병들을 가리켰다. 수십 명을 가리키더니 마지막은 류를 가리켰다.


"너희들은 내 곁으로 모여라."


류는 리처드의 손짓에 감사했지만 좋은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리처드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잔혹한 표정으로 웃는 걸 보자 확신이 들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시간보다 일찍 올렸습니다.

걱정해주신 독자님들 덕분에 몸살도 이제는 견딜만하네요.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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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4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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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4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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