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02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9.20 22:21
조회
2,366
추천
73
글자
12쪽

< #16. 야파를 향해서 4-2 >

DUMMY

리처드는 주변에서 긁어모은 병력을 멈추게 했다. 제자리에서 말이 발을 구르며 몸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오겠지?"


"네. 그럴 겁니다."


류는 후미를 맡은 부대를 기억해냈다. 부르고뉴 백작의 프랑스군. 행군을 시작할 때부터 식량을 실은 마차들을 가득 가지고 나타나 한소리를 들었던 부대다. 물론 함대만으로 모든 보급이 해결되지는 않으니 적당한 보급품은 손수 지니고 가기는 해야 했다.


하지만, 다른 부대보다 두 배는 더 되는 마차를 들고 나타났으니 문제였다. 게다가 느릿느릿한 행군으로 점점 처지고 있었다.


그때 랜포트가 다시 돌아와 묻기 시작했다.


"후미가 계속 처집니다. 좀 속도를 줄일까요?"


"아니야. 야습이 걱정되니 적어도 하이파까지는 가야지. 폐허라지만 지붕은 있는 곳에서 쉬어야 한다."


만을 사이에 두고 아크레와 마주 보고 있는 하이파. 조그만 어촌에 방비를 위한 자그만 성채가 있는 곳이지만 살라흐앗딘은 이곳을 파괴해버렸다. 십자군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아크레에서 행군하여 하루 만에 너끈히 도착할만한 곳이니, 이곳을 기점으로 삼을 게 뻔했으니까 말이다.


리처드는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움직이는 성채처럼 천천히 진격해나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샐틈없이 단단한 돌덩이처럼 말이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살라흐앗딘의 수를 막아내는 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적들이 언덕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흩어지는 병력이 보입니다."


"상류로 돌아가 대열을 맞추겠지. 부르고뉴 백작의 병력이 절반 정도 마른 강에 걸쳐질 때 내려올 것이다. 랜포트. 난 녀석들과 몸 좀 풀 테니. 행군을 늦추지는 말아라. 당황하지 말고 대열을 유지한 채 그냥 전진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랜포트는 간결히 대답하고는 행군 틈에 끼어 앞으로 사라져갔다.


"전하, 프랑스군에게 대비하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류는 여전히 몸을 풀며 달려나갈 준비에만 여념이 없는 리처드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리처드는 씨익 웃었다.


"혼 좀 나야지. 힘들 때 도와줘야 더 고맙게 생각하지 않겠어?"


"그러다가 한순간에 밀려버리면 뒤집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란 건 기세가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류의 말에 리처드는 갸우뚱거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밀려버린다? 내가 가는데······. 설마 그럴 리가?"


류는 리처드의 자신감에 당황해버렸다. 순간 굳은 얼굴을 알아챈 리처드가 짓궂게도 계속 물었다.


"왜? 못 믿는 거냐?"


"아···. 아닙니다. 전하. 다만, 용력이 뛰어나고 검술에 능해도 전쟁터에서는 그리 쉽지 않은 게 아닌가 합니다. 혹시나 다치실까 걱정입니다."


"하하하."


리처드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러다가 후미에서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느끼고는 말머리를 돌렸다.


"손님이 오셨으니 맞으러 가자."



***



마른 강바닥에는 마차들이 뒤엉켜있었고 병사들은 위로 밀어내려 애쓰고 있었다. 그때 류의 예상대로 사라센군이 밀고 들어왔다.


병력은 약 천여 명의 기병. 화살을 준비한 경기병도 있었지만 제대로 피해를 주려 마음먹었는지 횃불과 곡도를 든 기병들이 더욱 많았다.


"모두 마차 뒤로 모여라. 방패 병들은 무릎을 꿇고 창을 들어라!"


횃불이 날아들어 마차 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마차를 중심으로 모여든 병사가 이리저리 창을 찔러댔지만 지나치는 기병들의 칼 놀림은 매서웠다.


병사들이 대열을 유지하지 못하고 적들과 섞여버리자, 위그는 당황했다. 병사 중 일부는 대열을 버리고 강 위로 올라가려 뛰쳐나갔다.


"모두 모여라! 아니면 죽임을 당한다."


마차 위에 올라서서 커다란 대검을 좌우로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자 기사들 몇이 병사들을 데리고 백작을 지키려 다가왔다. 고성을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하는 모습을 본 사라센 기병이 다가와 활을 날렸다.


바로 곁에 있던 병사가 몸으로 화살을 대신 맞고 쓰러지자 위그의 눈에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주변 모두 자기를 노리는 적 같았다. 한순간 공포에 빠져든 그가 눈을 돌리지 못하자 날아들듯이 다가온 사라센 기병이 창을 들어 노리기 시작했다.


"백작님!"


기사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리던 위그의 눈에는 커다란 창이 가득했다. 찔끔 눈을 감은 그는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 보이자 용기를 내어 눈을 떴다.


달려든 누군가가 창을 토막 내더니 적의 머리를 날렸다. 검은 머리의 레반트 기사. 용맹하게 전선을 누비던 그다.


그만이 아니다.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기다란 창으로 적을 꿰뚫어 공중에 띄우더니 한참을 달려나가다가 도망치려던 다른 적의 등에 남김없이 꽂아 넣어버렸다.


창을 버린 리처드가 검을 뽑아 좌우로 휘두르니 사라센 기병들이 추풍낙엽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느 용감한 아미르가 달려와 검을 맞댔지만, 리처드는 방패로 밀어붙이며 거리를 띄우더니 검으로 난도질해버렸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적들은 혼란에 빠졌다.


레반트 기사가 리처드의 등을 노리고 시위를 당기던 기병을 보더니 다가가 어깻죽지를 갈라버렸다. 애처로운 비명과 함께 낙마한 그는 도망치던 동료의 말발굽에 곤죽이 돼버렸다.


혼란. 혼란. 그 자체다.


리처드가 환하게 웃으며 다시 화려한 갑옷을 걸친 아미르를 쫓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려 말을 돌려 달아나던 그가 돌부리에 걸려 쓰러지자 말을 몰아 잔인하게 짓밟았다.


"모두 도망치지 마라. 여기 영국의 왕이 있으니 목을 가져가 보아라"


리처드의 괴성이 전장에 울려 퍼지자 검은 머리의 기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곁으로 다가와 리처드를 지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들은 도발에도 불구하고 혼비백산한 채 말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리처드와 그 수하들은 그 뒤를 한참이나 쫓으며 적들을 쓰러뜨렸다.


위그는 폭풍 같았던 전투가 마무리되어가자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천천히 주저앉아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




"여덟이군. 별로야. 녀석들은 왜 겁쟁이처럼 도망가지?"


리처드가 본진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류는 의아하게 생각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하, 저만해도 열둘이었는데. 전하께서는 훨씬 많이 쓰러뜨리셨습니다."


"아미르던가? 그 귀족인 녀석들. 그런 놈들만 세야지. 보병이나 이름 없는 녀석들은 기억할 필요도 없다. 이놈이 밟아 죽인 것만 해도 스물은 될 거다."


리처드는 키프로스에서 데려온 커다란 군마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갈기를 쓰다듬었다. 그 말에 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전 넷입니다."


"그럭저럭 이구나. 어디서 창 좀 다룬다는 얘기는 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류는 자그맣게 웃음을 짓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껄껄 웃어버렸다. 잠시 후 리처드도 즐겁다는 듯이 같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웃음은 전염성이 강해서 그런지. 주변의 기병들도 키득거리다가 참지 못하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멀리서 적의 이맘들이 구슬피 쿠란을 외우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역시 즐겁구나. 내 생각이 맞았다.'



***



이기기는 하였으나 모두 지쳐있었다.


볼썽사나운 전투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황해 도망치는 양 떼들이었다.리처드가 기병을 몰고 달려오지 않았으면 큰 패배를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부르고뉴 백작 위그는 나름대로 전쟁을 경험해본 장수이기는 했지만, 이곳 무슬림과의 전쟁은 거의 못 해봤다. 정해진 지역에서 정해진 병력으로 힘으로 붙는 것만 익숙했다. 막아줄 방책이 없는 탁 트인 곳에서의 습격은 무서웠다. 순간 당황해 쇳소리만 질러대던 그는 순간 병력의 지휘를 놓치고 말았다.


'리처드가 오지 않았다면 분명 절반 이상 죽어 나갔을 것이다. 살라흐앗딘의 군대도 상황을 보다가 증원되었겠지. 오늘은 우리가 발목을 잡은 게 틀림없다.'


씁쓸한 표정으로 병사들을 살피러 돌아다니던 위그의 귀에 소곤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거봐. 말로는 그랬지만 우리는 찬밥 신세라고.'


'왕은 도망가버렸지. 게다가 조금씩 병력은 돌아가서 몇 되지도 않고 말이야. 우리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그거 알아? 필리프 왕이 전비도 주지 않고 가서 백작이 리처드에게 손을 벌린다는 거 말이야.'


병사들은 위그가 지나칠 때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지만 들리더라도 별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위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사기도 엉망이다. 그리고 듣다 보니 마음속에서 스멀거리며 의혹이 치솟았다. 병사들은 결국 위그의 마음속에 있던 얘기를 입 밖으로 뱉었을 뿐이다.


'돌아갈까······. 필리프는 난리를 치겠지. 명분이 있어야 한다.'


슬며시 돌아간 필리프의 동정에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교황이 십자군 영주들간의 전쟁을 금했으니 설마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미덥지 못한 왕이였다.


그때, 깃발을 든 기병들을 대동하고 누군가가 진을 향해 달려왔다. 사자 깃발을 힘차게 흔드는 기병의 얼굴이 보였고, 머리에 금으로 장식된 관을 쓴 이가 옆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류가 있었다.


리처드였다.


처져있는 병사들은 부스스하며 일어서 고개를 숙였다. 맥빠진 모습에 위그는 성질이 나다가도 참기로 마음먹고 다가가 예를 올렸다.


'놀리러 왔는가?'


아랫입술을 질끈 물은 위그는 그래도 뭐라 대들 건더기가 없다는 마음에 침울해졌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리처드의 말투는 다정하고 따뜻했다.


"플랑드르에서 온 자는 누구인가?"


갑작스러운 물음에 병사들이 쭈뼛거리다가 하나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낭트에서 온 자는? 부르고뉴의 용사는? 파리에서 온 이도 있는가?"


출신을 물어보는 말이 이어지자 하나둘 병사들은 무릎을 꿇었다. 위그도 무릎을 꿇고 말았다.


"부럽구나. 풍요로운 대지에서 태어난 너희들이. 용맹하게 싸우는 너희들이 말이다."


병사들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승전은 모두 너희들의 것이다. 즐겁게 떠들고 오늘의 승리를 자축해라. 야파의 술집에서. 아니면 돌아가 가족들을 모아놓고. 오늘 케이사레아에서 무슬림 광신도들을 벤 것은 너희들이라 자랑해라."


병사들이 조금씩 들끓고 있었다. 위그도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걸 느꼈다. 사실 눈물이 새 나올 정도로 고마웠다. 열 살이나 어린 영국 왕의 씀씀이에 감동하고 말았다.


"오늘, 너희들이 버텨준 덕에 적의 뒤를 칠 수 있었다. 늦었고 적기까지 한 병력으로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너희들 하나하나의 힘이다. 고맙다. 너희들의 노고를 칭찬한다."


리처드는 말을 돌려 돌아가려 하다가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더 남겼다.


"오늘의 용사들아. 아키텐을 지날 일이 있다면 내 성으로 와라. 따뜻한 잠자리와 부족하지만, 정성 들인 음식을 대접하겠다. 그리고, 위그 백작. 내일은 중앙에서 행군하시오."


리처드의 말에 병사들은 환호했다. 위그 백작도 나이를 잊은 채 울먹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하. 저희는 내일도 후미를 지키겠나이다. 내일은 더 멋지게 싸우겠습니다. 병사들아. 마차 따위는 버려라. 먹을 것을 모두 풀어라. 오늘은 잔치를 벌이자."


위그의 대답에 리처드는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말을 돌렸다. 류는 병사들을 부추기는 말솜씨에 놀라며 왕을 따랐다.


'멋지다. 이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류는 앞서 달리는 왕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재미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오늘부터 추석연휴가 끝날때까지 좀 비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될거 같습니다.

친척들과 시간도 좀 보내야해서요.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사, 기사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0/9~12 휴재 알립니다. +2 18.10.09 615 0 -
공지 (연재시간 공지) 22시 25분에 찾아뵙겠습니다. 18.07.20 880 0 -
공지 일독 부탁드립니다. 연재주기 조정과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10 18.05.30 2,233 0 -
공지 도움주신 분들을 기억하며 (10/13 업데이트) +8 18.04.11 10,728 0 -
210 완결에 대한 소고 +60 18.10.11 3,524 48 3쪽
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32 99 9쪽
20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80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2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5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7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5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2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2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8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7 64 10쪽
»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7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188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8 67 9쪽
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1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4 69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