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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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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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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10.0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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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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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글자
11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DUMMY

에브뢰는 좋은 곳이었다. 리처드가 말했던 대로 따뜻하고 맑은 공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백성들도 적지 않았고, 왕가에 대한 충성도 강했다. 리처드가 노르망디 공작으로 지내온지 오래되었고 중요한 기반 중 하나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좋은 곳이다. 백성들도 모두 반겨주고.”


아버지는 감개무량한지 웃으며 말했다. 영주의 거처가 될 성은 해자가 두 겹으로 되어 있었고 튼튼한 성벽과 망루가 있었다. 포위되었어도 버틸 수 있도록 지하에는 돌로 다져진 저수고가 있었고, 안뜰은 넓어 갇혔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곳이었다.


아버지는 망루 중에 가장 높은 곳을 좋아했다. 아직도 각혈을 하면서 힘겨워했지만, 하루에 한 번은 올라서서 주변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식사도 그곳에서 하면서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는 게 낙이었으니 말이다.


류도 종종 아버지의 곁에 서서 주변을 바라봤다. 막혔던 가슴이 '뻥' 하고 뚫리니 류도 즐거웠다. 곁에는 연이가 함께 하고는 했는데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조심스러워졌다.


모든 게 순조로웠고 모든 게 감사했다.


하지만 왕의 신하로서, 한 땅의 영주로서 쉴 수만은 없었다. 어느 날, 기병이 달려와 왕의 소집을 알렸다. 아버지는 다시 글썽이는 눈매로 걱정스레 배웅했고 연이는 작은 천 조각에 수를 놓아 팔에 감아주었다.


“제 생각을 잊지 마소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돌아오세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웃으며 끄덕거릴 뿐이었다. 약속할 수 없는 일이니 쉬이 말을 꺼내지 않을 뿐. 류의 눈빛을 보면 연이는 알 것이다. 어떻게든 이 사내가 돌아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류는 기병을 이끌고 왕을 맞으러 달려갔다. 기사 셋에 견습 기사 일곱에 잘 훈련된 기병도 서른이었다. 오백여 보병은 나이든 고참이 인솔해 오기로 했다. 기병은 이틀, 보병은 일주일이면 집합지로 모일 것이다.


다시 전쟁이었다.



***



리처드가 군대를 이끌고 도버를 넘어오자, 필리프는 잠시 군대를 물렸다. 하지만 점령지에는 병력을 남겨놓아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필리프, 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이후 리처드는 첫 번째로 맞붙었다. 기사의 수는 프랑스 쪽이 많았지만 장궁병을 이용해 기사들을 떨구는 방법으로 적의 돌파력을 약하게 한 후 측면을 들이쳤다. 이 년을 넘게 사선을 넘나들던 십자군 출신의 실력은 무지막지했다. 화려하게 장식한 갑옷이 무색하게 적들은 휘청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쉽지 않은가? 크크크”


윌리엄이 특유의 웃음을 뱉으며 고개를 돌려 동료들에게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병사들은 흩어져 도망치고 있었고 기병들은 돌파 후에 다시 모여들고 있었다. 적의 기사 중에 버둥거리는 이들은 달려든 보병의 몽둥이에 갑옷이 우그러지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화려한 녀석들은 사로잡아라. 다 돈이다.”


제임스마저 웃으며 외쳤다. 랜포트는 여전히 별 표정 없이 주변을 살폈다. 혹여라도 적의 증원이 나타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지만 류의 생각으로는 필리프가 축차 투입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결국 필리프는 노력했지만 무너져버린 것이다.


“너무 쉽군.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은 못 했어.”


“쳇, 류. 자네는 우리 영국의 전사들을 얕보는 기질이 있어. 이래 봬도 꽤나 싸움에 능한 이들이라고.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정복자의 피가 흐르고 있나 봐.”


윌리엄은 소곤거리며 우쭐댔다. 리처드는 자신이 달려나가기 전에 끝나가는 전투에 아쉬워하며 말을 몰아 천천히 전장을 오갔다.


며칠 뒤, 두 번째로 절치부심한 필리프가 군대를 모아 다시 나섰다. 이번에는 비기는 정도로 끝났을 전투였다. 하지만 지지부진하게 밀고 밀리는 전투가 이어지자 리처드가 몸소 나서버렸다.


리처드와 근위 기사들이 한 덩어리가 되자 적의 중앙은 그대로 토막 나버렸다. 그렇게 적을 갈라버리자 우측을 지휘하던 적의 지휘관들이 도망쳐버렸다. 그렇게 우측이 무너지자 좌측도 결국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필리프는 포로가 될 위기에 빠졌지만, 자신의 근위 기사들이 몸을 던져 막는 바람에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섯의 기사를 리처드의 도끼에 잃어버렸다.


그 이후로는 계속 퇴각을 거듭해 도망치기에 바빴다. 국경선은 필리프의 침공 전으로 거의 돌아가 버렸다.



***



세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퇴각하는 필리프의 뒤를 몰아치는 리처드의 공격이 시작이었다. 야전에서 다시 승리하자 적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기 위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모두 필리프를 잡아다 내 앞에 끌어오도록 하게. 얘기를 좀 나눠야겠어.”


그 말에 기사들은 수하들을 데리고 사냥을 떠나듯 흩어졌다. 중간에 만나는 프랑스군은 도망치기에 급급했으니 위협이 되지 못했다. 류도 자신의 병사를 이끌어 사냥에 동참했다.



***



말을 몰아 병사를 이끌던 류는 잠시 전장을 훑어봤다. 곳곳에서 연기는 치솟아 오르고 병사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사라져갔다. 혼란 속에 무언가 보이는 게 있는가 살펴봤다.


적들은 혼란 속에서도 왕을 지키려 할 것이다. 분명 많은 수로 몰려 도망치며 왕인 척 속이고는 진짜는 정예의 소수로 지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류는 고민을 거듭하며 살펴봤다.


“이러다가 공은 커녕 허탕만 칠 것 같습니다.”


견습 기사들을 이끄는 기사장, 로저 드 레이시가 슬며시 물었다. 류의 수하 중에 가장 위였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이로 많은 도움을 주는 이였다.


“로저, 아무래도 난 저쪽인 거 같아요.”


로저는 류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몇 안 되는 기병들이 남루한 거적때기를 걸치고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로저는 자신이 찍었던 방향을 살폈다. 화려한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었다. 가문의 문장을 뽐내는 서코트를 걸치고는 말에도 사슬갑옷을 걸친 중기병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아······. 저쪽이라고요.”


로저는 류에 대해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뜬소문이라고 판단해버렸다. 아마 목숨을 걸고 싸우기 싫어 편한 곳을 선택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뭐, 그것도 괜찮지요. 목숨을 거는 것보다는 낫지요. 말도 안 되는 싸움터로 끌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로저는 씨익 웃으며 류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그건 조그만 오해였다는걸 아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



숲속을 지나칠 때 주변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무 길을 따라 돌았을 때 곁에서 말을 탄 적들이 밀려왔다. 몇 되지는 않았지만 받아내는 방패가 움푹 패이는 것이 상대는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었다.


적어도 기사가 되기 위해 몇 년간 수련을 쌓은 녀석들이다. 류는 말을 돌리며 검을 받아내고 적의 견갑을 후려갈겼다. 로저는 놀라지 않고 수하들을 다독였지만 벌써 둘이나 말에서 쓰러져 비틀거렸다.


“젠장, 돌아가면 네 녀석들은 다시 훈련이다. 창 쥐는 법부터 다시 가르쳐주마.”


그리 말하던 로저도 철퇴를 휘두르는 기사 한 명과 맞닥뜨려 쉽지 않은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다. 분명. 여기야.’


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로 우거진 나무 너머로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오두막의 바깥에는 병사들이 창을 들고 긴장한 채 이쪽의 싸움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적때기를 걸치고 도망쳤던 녀석들이 오두막을 열고 나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둘러싸고 호위하듯 나서는 그들의 모습에 필리프가 있음을 느꼈다. 날카로운 눈매가 그들 사이에서 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어서, 말에 오르시지요.”


머리 위에 쓰고 있던 거적을 벗어내 버린 사내가 필리프를 향해 재촉했다. 금발에 멋졌던 사내, 베르트랑. 얼굴에는 검댕과 진흙이 묻은 채 몇 번을 땅에서 굴렀는지 크고 작은 상처가 얼룩져있었다.


“류! 오랜만이다.”


“오랜만입니다. 전하!”


류는 대답하며 앞에 섰던 기사의 어깨를 갈라버렸다. 녀석은 고통 속에서도 한 손을 뻗어 류의 말고삐를 움켜쥐어 당겼다. 말이 놀라 움찔거렸다. 뒤에서 달려드는 동료에게 기회를 주려 한 것이었다. 등을 노리고 날아오는 검을 느낀 류는 고삐를 놓고 뒤로 누워 검을 피해버렸다.


지나친 검은 말을 잡던 동료의 다른 어깨마저 쪼개버렸다. 지나치던 기사는 류가 던져버린 검에 등이 꿰뚫린 채 쓰러졌다.


“여전하구나. 류. 나에게 와라. 리처드보다 더 중하게 쓰겠다.”


“글쎄요. 말만 번드르르한 사람은 싫어합니다.”


“음. 나에게 오면 좋은 일 하나는 약속해줄 수 있는데······.”


“그게 뭐지요?”


류는 시간을 끌려 했다. 눈여겨본 필리프의 호위와 자신의 부하들은 엇비슷했다. 이길 수 있다. 지금 공격해온 녀석들은 거의 정리 중이다. 분명 이길 수 있다. 잡으면 된다.


그러면 앞으로는 전쟁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앞······. 앞으로는?


그때 필리프는 류를 꿰뚫어 본다는 듯이 한마디를 던졌다.


“내 편이 되면 리처드와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어. 안 그런가?”


말을 던진 필리프는 수하가 끌고 온 말에 올라타 돌아서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베르트랑은 숨을 고르더니 말에 올라타 류의 앞을 가로막으려 했다.


류는 필리프의 말에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처럼 멍했다. 재미있겠다.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로드! 로드!”


로저의 외침에 정신 차린 류는 달려드는 베르트랑의 공격을 막아서다 쓰러지는 로저가 보였다. 베르트랑은 기세를 몰아 류를 쓰러뜨리려 했다.


역시, 베르트랑은 류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검 한 번에 쓰러진 베르트랑을 내려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로저는 반색하며 쓰러진 베르트랑의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필리프는 호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벌써 멀리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왕의 모습을 보고는 모이는 병사들이 많았다.


이제는 류의 병사들만으로는 힘들어 보였다.


한참 동안, 베르트랑의 반반한 얼굴에 주먹을 날리던 로저는 분풀이가 끝나자 병사들에게 묶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류를 빤히 쳐다봤다.


“영주님, 아까는 무슨 생각을 하신다고 넋을 놓았습니까?”


“잠시 한눈이었다.”


“잠시라니요. 한참이었습니다.”


류는 대답하지 못하고 필리프가 있던 오두막으로 들어섰다.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필리프는 지도와 깃발, 그리고 자신의 직인마저 남기고 도망쳤다.


큰 전리품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재미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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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32 99 9쪽
20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80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2 62 9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4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7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5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2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3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2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3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7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2 6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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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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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0 7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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