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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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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04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10.04 20:40
조회
2,082
추천
64
글자
10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DUMMY

류와 더불어 리처드를 따르는 기사는 오십여 명. 병사들도 허겁지겁 따라붙기는 했지만 다 합쳐도 이백 명이 겨우 넘을 뿐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만오천이라던 살라흐앗딘의 군대는 며칠 사이에 증원되어 육만 명이 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보이는 건 모두 사라센 군인뿐.


정신을 차릴새 없이 그냥 검을 휘두르며 하나하나 벨뿐이었다.


리처드가 두 손으로 꽉 쥔 도끼를 휘두르자 투구째로 쪼개진 아미르 하나가 바닥에 풀썩 쓰러져버렸다. 부들거리는 아미르의 목덜미를 발로 밟더니 좌우로 도끼를 크게 휘둘렀다. 막으려 내미는 방패들이 조각났다. 물러서지 못한 경갑의 보병은 그대로 허리가 토막 나버렸다.


그때 요새의 문이 열리며 살아있던 생존자들도 전투에 합세했다. 그쪽에도 기사 서른 명 가까이 섞여 있었다.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진 이들은 미친 듯이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언가가 있다.'


적은 수로 많은 수를 향해 달려들며 이길 것이라 믿는 표정. 무언가 숨을 수가 있다. 맞닥뜨리는 맨 앞의 병사들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다가 류의 검에 꿰뚫린 병사가 스르르 무너졌다. 눈앞의 적이 달려들까 봐 방패를 들어 방비하는데 조용하다. 달려들어야 할 병사가 엉거주춤하며 뒤로 물러선다. 뒤편에서 밀고 나오려는 병사의 몸짓에 주저앉을 듯이 버티고 선다.


'이겼다.'


류의 머리에는 그 생각이 들었다. 좁은 골목 가득히 몰려있던 적군은 서로 엉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졸전이 이어지자 적의 뒤편에서 나팔소리가 울려 퍼졌고 사라센군은 부리나케 도망쳐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뒤따라 해안에 다가온 배들은 해안가에 좌초한 배를 들이받으며 멈춰서기 시작했다. 서둘러 병사들이 내려서기 시작했고 그보다 훨씬 뒤쪽은 급히 보트를 내려 병사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많습니다. 만 오천 명은커녕, 삼만은 되어 보입니다."


류의 말에 리처드는 헤벌쭉 웃으며 반겼다. 그쯤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그러고서는 도망치는 적을 향해 달려들기 바빴다.


"류! 전하를 부탁해. 난 병사들을 모아 교두보를 확보하겠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광분하던 랜포트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서는 류에게 도움을 구했다. 상륙할 때가 가장 취약한 게 당연하니 녀석들은 해안가에서 역습할 게 분명했다. 랜포트의 말을 이해한 류는 달려가 리처드를 찾았다.


"너희들은 방책을 돌려세우고 창을 들어라!"


일단의 보병대를 수습한 랜포트가 급하게 해안가로 달려가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



'말이 없다.'


좁은 골목에서 적을 이리저리 베며 리처드를 찾던 류는 안타까워했다. 이런 좁은 곳이라면 창을 든 기병이 휩쓸고 지나가기 딱 좋을 텐데 말이다.


골목 뒤편으로 무언가가 후다닥 숨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검을 빼 들고 달려들었다. 적의 멱살을 잡고 검을 목젖부터 깊게 찔러넣으려던 류는 멈춰버렸다.


너무 어렸다. 겁에 질려 눈물을 쏟는 작은 베두인 소년. 아마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족장이 강제로 끌고 온 아이일 것이다. 소년은 손에 들었던 검을 떨어뜨리고는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가라."


소년은 검은 머리 기사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보나 마나 악명이 높아져 있었을 것이다. 놀리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소년은 주저하며 뒷걸음질 치다가 놓아준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하지만 소년이 골목을 빠져나가 큰길에 들어섰을 때 도망치던 사라센 기병들 무리에 깔려버렸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류는 텅 빈 골목에서 잠시 웅크리고 앉았다. 등에 닿은 흙벽은 그늘져 시원했다.


그러고는 잠시 흐느꼈다.



***



"리처드입니다. 사자왕이 해안에 내려 시내로 진입했습니다."


살라흐앗딘은 막 성문을 들어서다가 달려온 병사의 보고를 들었다. 타키 앗딘은 그 말을 듣고서 병사를 이리저리 모으기 시작했다. 육만의 병력에 기병만 칠천이었다. 게다가 성벽에 의지할 수 없는 적들이 이길 방법은 없을 것이다.


"타키 앗딘, 병력을 이끌고 가서 적들의 수급을 취해라. 리처드는 사로잡도록 하고 힘들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타키 앗딘이 친위대라 할만한 쿠르드 병사들을 이끌고 출발하려 하자 살라흐앗딘은 말을 덧붙였다.


"다만, 최대한 정중하게 시신은 챙기도록."


"네."


살라흐앗딘은 여러 아미르들이 엉켜있는 시내에서 병력을 빼도록 했다. 이어져 들어온 보고를 들어보면 적은 많아야 이천에서 삼천 정도일 것이다. 그러면 잘 훈련된 타키 앗딘의 병력으로만 맞상대하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 생각한 것이다.


잘 훈련된 기병이 앞장서고, 검은 옷을 입은 쿠르드 병사가 뒤를 받쳤다. 거미줄처럼 뻗은 길을 따라 항구를 향해 여러 무리가 나뉘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곧 전투 중이던 십자군 무리를 발견하면 기병이 돌격해 들어가 짓밟아버리고는 지나쳤다. 팔다리가 부서져 부들거리는 십자군은 뒤이은 쿠르드 병사가 목을 끊어내 버렸다.


그렇게 공격을 이어가던 사라센군은 일단의 병력을 학살하는 리처드 일행을 만났다.



***



마지막으로 버티던 아미르 하나가 도끼를 받아내다 쓰러지자 리처드는 귀찮다는 듯이 온몸을 발로 짓밟았다. 비명을 지르던 사내가 검을 놓치고 두 손을 모아 자비를 구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병사들을 시켜 포박하도록 했다.


그때 광장을 지나 사라센 중기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이 깔린 바닥을 이리저리 밟으며 투레질하던 말들이 목청 높이 울음을 내뱉으며 내달려 오기 시작했다.


"오너라!"


리처드는 등 뒤의 병사를 지키겠다는 듯이 도끼를 가다듬으며 소리높여 외쳤다. 하지만 그때 옆의 골목에서 나오던 류도 그 모습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용이었다.


처음의 한둘은 베어버린다 해도 녀석들은 무리 지어 리처드를 밟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류가 몸을 날렸다. 왕의 목을 감싸 안은 류가 그를 끌어안고는 땅에 굴렀다. 옆의 골목으로 피하는 데 성공한 류와 리처드는 미친 듯이 지나치는 중기병의 괴성과 비명을 지르는 병사들의 탄식에 귀가 얼얼했다.


"잡아라! 영국 왕을 잡아라!"


쿠르드 병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털며 일어서는 리처드는 괜한 짓을 했다는 듯 류를 한번 노려봤지만, 다시 먹잇감이 온다니 즐겁게 도끼를 챙겨 들었다.


"피하셔야 합니다. 기병이 지나쳐서 원군이 못 옵니다. 전하와 저 둘만 이 거리에 남았습니다."


"괜찮아."


리처드가 골목을 나서 다시 길로 나섰다. 검은 옷의 병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숨을 쉰 류도 그 옆에 어깨를 마주했다. 도망갈 곳도 보이지 않았다.


"전하."


"왜?"


류는 자기가 죽더라도 가족을 챙겨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소용없는 일이라 깨달았다. 어차피 자신이 죽는다면 왕이라고 무사할까? 자기는 죽고 혹시 리처드가 살아남는다면 말하지 않아도 잘 챙겨줄 것 같았다.


“아닙니다. 그냥 몸이 괜찮으신가 확인한 겁니다.”


별 쓸데없는 소리를 해댄다는 듯 류를 빤히 쳐다보던 리처드가 씨익 환하게 웃었다.


“겁먹었냐?”


능청스러운 모습에 조금 부아가 치밀어올라 류는 성질을 부리고 말았다.


“네······. 네. 아주 많이 겁먹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한 겁니다.”


그때 뒤로 지나쳤던 사라센 기병들도 멈추더니 말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쿠르드 병사들은 살라흐앗딘에 대한 충성이 높은 이들이니 죽기 살기로 덤벼들 것이다.


그때 바닥에서 피를 흘리던 병사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러진 한 병사는 어떻게 싸우려는지 창대를 부목 삼아 겨우 일어섰다. 모두 아홉 명. 일어서지 못한 병사 하나는 단도를 손에 쥐고는 달려오는 녀석들의 허벅지라도 찌르려고 준비했다.


"왕을 위하여!"


어느 병사 하나가 꽉 막힌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겨우 고함을 외친 병사는 피가 차올라 콜록대며 핏덩이를 뱉었다. 내장이 터졌을 것이다. 얼굴이 파래지던 그는 다시 쓰러지면서도 계속 외쳤다.


"전하, 차라리 깔려 죽는 것보다는 달려드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류는 말을 마치고는 앞서 달려나갔다. 그 말을 들은 리처드도 달리기 시작했다. 용맹스러운 쿠르드 병사의 눈에 잠시 당황한 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들은 달랐다. 고쳐먹은 눈빛이 다시 매서워졌다.


그때 뒤쪽의 골목에서 병사들이 뛰쳐 나왔다. 등뒤로 달려드는 기병과 리처드 일행사이로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창병! 창을 내밀어! 궁수는 활을 쏴라!"


골목 양쪽에서 병사들이 뛰어나오며 창을 길게 늘였다. 창병과 어깨를 가지런히 한 쇠뇌 병이 기병의 선두를 향해 화살을 쏘아붙였다. 가까운 거리에서 직사로 쏟아진 화살은 말과 사람을 꿰뚫고 지나쳤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말은 다리가 꺾이며 바닥에 뒹굴었다.


선두가 쓰러지자 뒤이은 기병들이 엉켜 혼란스러워졌다. 랜포트였다. 병사들을 수습해 창병과 궁수를 섞어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는 걱정할 필요 없이 류와 리처드는 쿠르드 병사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산돈님, 미스타고님, josimha4님 소중한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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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2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5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7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5 69 10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3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3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8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7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7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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