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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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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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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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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9.1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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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8
추천
67
글자
9쪽

< #16. 야파를 향해서 2-2 >

DUMMY

마차가 멈추고 류가 눈을 떴다. 문을 연 병사가 조심스레 부축을 해줬다.


터벅터벅 부축받았던 류는 힘을 내서 문을 열었다. 병사의 어깨는 더이상 빌리지 않기로 했다. 가족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병사는 아직도 존경의 눈빛으로 류를 바라보다가 문 옆에 서서 경비를 서기 시작했다. 따랐던 다른 병사들도 집 주변으로 흩어져 경비를 섰다.


문을 들어서자, 아늑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여인네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기분마저 좋은 지저귐이다. 일렌느의 경쾌하고 높은 목소리. 그걸 받는 연이의 다소곳한 목소리.


기분이 좋았다.


들어서는 류의 소리에 새들의 지저귐은 멈췄다. 일렌느의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고, 연이의 눈에는 공포가 스며들었다.


"괜찮아. 다치지는 않았어."


허벅지를 베인 상처는 이제 피를 머금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온몸에 피를 뒤집어썼으니 애써 거짓말을 한 것이다. 류의 눈에 연이의 떨림이 느껴졌다. 잘했다고 생각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누군가가 달려 들어왔다. 병사들이 통과를 시킨 걸 보니 위험한 자는 아니겠지.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알폰소였다.


"괜찮은 거냐? 시내가 난리가 났는데. 그리 암살자들을 쫓다니."


알폰소의 말에 연이가 조금은 화가 난 듯 인상을 썼다. 앙다문 입술이 예뻤고, 볼은 조금 부풀었다. 류는 알폰소의 말에 대답하기보다는 연이에게 말을 이었다.


"덕윤이와 샤아를 그렇게 만든 놈을 만났어. 그래서 쫓았지."


연이는 그 말에 잠시 샤아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조금은 투덕거리기는 했으나 좋은 아이였고, 말동무였고 친구였다.


"그러면 이제 샤아의 명복을 빌어줄 수는 있나요?"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직한 한숨을 쉰 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빛으로는 잘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연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테이블 건너편의 일렌느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마주 잡았다.


"일렌느,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남편을 좀 씻겨야겠어요."


그 말에 일렌느는 일어서서 알폰소의 곁으로 다가갔다. 조용한 축객령에 둘은 인사를 하며 집 밖으로 나섰다. 연이는 류를 방으로 올라가라 말하고는 하녀들에게 목욕준비를 시켰다.


"연아, 아버지는?"


"즐겁다면서 술을 많이 드시더군요. 지금은 곯아떨어지셨을 겁니다."


계단을 올라 신방으로 차려진 방으로 들어섰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정갈하고 깨끗한 방이었다. 얇은 천이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털썩하고 눕고 싶었지만, 피투성이 몸으로는 힘들다.


그때 연이가 들어섰다. 뒤로 따뜻하게 데워진 물을 담은 커다란 동이를 하녀들과 하인이 나르느라 분주했다.


"됐으니 나가보세요."


연이의 말에 하녀들은 키득거리며 방을 나섰고, 문은 조심스레 닫혔다.



***



연이는 깨끗한 천을 뭉쳐 따뜻한 물에 담가 적셨다. 그걸 들어 류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검게 눌어붙은 핏물이 따뜻해지자 다시 붉어졌다. 그러나 다시 닦아내자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잘 생기셨구나. 우리 낭군님."


눈을 들어 마주치는 연이의 표정에 류는 얼굴이 붉어졌다. 연이는 천천히 부드럽고 따뜻하게 얼굴을 다 닦아내었다.


"벗으세요."


연이의 말에 류는 당황했다. 생각은 조금 하고 있었으나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우물쭈물하는 류의 손길을 마주 잡았던 연이는 천천히 윗옷을 들어 벗겼다.


류의 탄탄한 가슴을 한번 스쳐 지나간 손은 다시 천을 들어 닦기 시작했다. 부드럽다. 따뜻하다. 잠시 실랑이를 벌이다 연이가 결국 바지를 벗겨내었다. 핏물이 번진 허벅지에 물이 닿자 류의 입에서 자그마한 고통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앞으로는 거짓말하지 마세요."


미안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더 조심스레 상처를 닦아내던 연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다치지 마세요."


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가 말끔한 모습이 되자, 연이는 류를 바라보다가 얇은 천으로 된 옷을 벗었다. 발목에 걸렸던 옷을 빠져나오자 새하얀 나신이 빛났다.


류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지만, 연이의 손이 류의 얼굴을 살며시 붙잡았다. 보라고 얘기했다. 한번 쳐다본 눈길이 이제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저도 닦아주세요."


류는 마법에 홀린 사람처럼 움직였다. 시간이 흘러 침대에 연이를 누이자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심장 뛰는 소리가 움켜쥔 손을 통해 들려왔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좋은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연이의 작은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연이가 눈을 감았고, 류가 올라섰다.


맞잡은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갔고, 밤새 풀리지 않았다.



***



다음날 곤한 잠에서 깨어난 둘은 작은 방에 놓인 덕윤과 샤아의 유골 앞에 향을 올렸다.


향이란 것이 이곳에는 없어, 좋은 냄새가 나는 약초를 뭉친 것이지만 그래도 둘은 정성 들여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더이상 구천을 떠돌지 말고 하늘에서 내려보려무나. 너희를 그리 만든 자는 지옥 불에서 뒹굴 것이다."


류의 담담한 말에 연이는 눈물을 흘렸다. 잠시 류가 보듬어주자 진정을 하였고 연이도 둘을 향해 한마디를 남겼다.


"이제는 행복하게 둘이 웃으며 살 거라."


식사를 위해 홀로 내려온 둘을 하녀들이 보더니 눈치를 살피다 주방으로 사라졌다. 주방에서는 하녀들의 우스개소리가 들려왔다. 보나마나 주인 내외의 첫날밤 얘기였다. 잠시 후 머리를 긁적이며 아버지가 내려와 식탁에 앉자 식사가 날라져 오기 시작했다.


"그래, 별일 없었지? 난 너무나 즐거워서 혼자 술을 퍼마시다가 그냥 곯아떨어졌다. 어쨌든 이제 여한이 없는구나."


"아버지도 참, 하녀들한테 시끄러울 것 같아서 잠을 못 잘 테니 술이나 마시겠다고 계속 얘기하셨다면서요.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에이, 농이다. 농. 그 어떤 년이 그리 나불대더냐? 에···. 에험? 그러면 어디 아이는 좀 있으면 볼 수 있으려나?"


연이는 얼굴이 새빨개졌고, 류는 타박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아버지는 연신 음식을 입에 넣으며 계속 아이 타령에 바빴다. 그렇게 어색하고 난감한 식사가 끝나고 시간이 흘렀다. 이른 오후에 온 가족이 항구로 가게 됐다.


리처드 왕이 준비한 커다란 배가 그들을 맞으며 출항준비를 하고 있었다. 류 일행만이 아니라, 티레에 있는 십자군 영주들의 가족이 대부분 키프로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남정네들이 전쟁에 나서기 전에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겠다는 생각인 것이었다.


일렌느도 있었고, 수많은 귀부인과 어린 자제들, 그리고 그들을 보살필 하녀와 하인들. 많은 수가 배에 올라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키프로스로 출항했다.


배로는 겨우 이틀 거리였고, 류는 연이와 이주간 즐겁게 지내기 시작했다.



***



티레에서 아크레로 돌아온 리처드는 다시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딴지를 걸만한 사람도 없었고 모두 리처드의 말에 성심을 다해 따르기 시작했다. 오합지졸이던 십자군의 명령계통이 제대로 확립된 것이다.


그들 중에 몇은 전쟁터에서 보여준 리처드의 무용에 반해버려 칭송을 멈추지 않았다. 사촌 동생인 상퍄뉴 백작 앙리와 구호기사단장 가르니에가 특히 심했다.


심지어 가르니에는 리처드를 '나의 왕'이라 부르곤 했다. 어쨌든 이렇게 단합된 지휘부는 리처드의 앞에 모여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진격로에 대한 검토. 보급에 대한 준비사항. 무기들의 수요와 비축분 등. 회의는 끊이지 않았고 언제나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러면 후방을 맡길 왕이 있어야 원정을 나서겠지요. 리처드 전하. 누구를 앉히실 건가요? 키프로스로 보낸 기를 다시 불러들일까요?"


갑작스러운 앙리의 말에 다른 영주들의 눈이 빛났다. 지금 리처드가 말하는 사람이 왕이 될 테니 말이다.


"기는 안 된다. 티레에서는 기를 앉히려고 암살자를 고용한 게 나라는 소문도 있더구나."


"그게, 무슨 말이죠? 전하도 습격을 받았는데. 어떤 우매한 녀석들이······."


"요컨대 의심을 피하려 한 자작극이다. 그렇게 생각하겠지. 의심하려고 마음먹으면 끝도 없지 않으냐?"


리처드의 말에 앙리는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진 것처럼 분노했다. 움켜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리처드가 머리를 쓰다듬자 그제야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많단다. 그러니 어느 정도 무뎌지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안 그러니? 예루살렘의 왕이여."


이 말에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명쾌하고 빠른 선택이었고 적절했다.


필리프의 반대도 없을 것이다. 앙리는 필리프 자신의 봉신이자, 사촌 동생이니 말이다. 게다가 앙리는 리처드를 믿고 따른다. 그러니 리처드를 돕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것이다. 게다가 기가 아니라, 제 삼의 인물이며, 두 국왕의 사촌 동생이라면 티레의 시민들도 인정할 것이다.


"자아, 모두 불만 없지? 블루아 가문의 앙리가 새 국왕이다."


이렇게 새로운 예루살렘의 왕이 등극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재미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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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3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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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6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3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3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4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8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8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7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4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9 6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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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5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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