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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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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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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09.1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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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10쪽

< #16. 야파를 향해서 3-1 >

DUMMY

류와 연이는 마지막으로 메사오리아 평원을 거닐기 시작했다. 남서부의 파보스로 향하는 여행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달리면 반나절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느릿느릿 풍광을 구경하며 천천히 말을 몰았다. 아니 말을 타고 지나치는 건 다리가 아플 때였다. 향기로운 꽃내음을 맡으며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마을에서 식사하며 술을 마셨다.


그렇게 반나절 거리를 이틀에 걸려 지나쳤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짧은 여행이었다.


파보스는 항구도시. 멀리 도시가 보이자, 류는 숨이 턱 막혀오는 걸 느꼈다. 저곳에서 배를 타면 다시 전쟁터로 향하게 된다.


"기다릴 겁니다. 언제나 당신이 돌아올 자리가 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류의 마음을 알아챈 연이가 힘주어 말했다. 류는 다시 말에서 내려 주변에 널린 꽃들을 한 올 한 올 따내어 모았다. 어렸을 때는 꽤나 연이와 놀던 것인데 지금은 손가락이 두터워져 있다. 그래도 애써 꼬아보니 조그만 꽃 관이 되었다.


"나의 공주님, 그러면 기다려주시오."


연이의 이마 위에 살며시 올려놓자 그제야 기분이 좀 풀리는 듯했다.


"이번에 가셨다 오시면 계속 같이 있어요."


"약속하리다."


두 남녀를 위해 한 발짝 뒤에 서 있기만 하던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아무래도 아들이 전쟁터로 향하니 말이다.


"그래, 네 뜻은 알겠다만. 그냥 여기서 눌러앉는 건 어떻겠니? 그동안 내가 조금씩 모은 돈이 있으니. 그 장사치라도 하면 굶지는 않지 않겠니?"


"말씀은 고맙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뜻한 바가 있습니다. 이번에 모시는 분은 괜찮은 분 같아요."


그 말에 장 씨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옛 생각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세상이란 게 뜻대로 되지 않지 않았느냐? 하마드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앗산 같은 녀석이 주변에 있는 바람에······. 그 리처드라는 왕이 괜찮아도 주변 사람들이 걱정이구나."


그렇다. 서로 마주하는 진영에 흑백은 없다. 무조건 한쪽이 악이라 할 수 없으며 한쪽은 선하다 할 수 없다. 모든 게 섞인 두 것이 다시 섞여 더 어두워질 뿐이다. 하지만 리처드에게서는 아직 어둠이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 측근들도.


리처드의 주변 사람을 생각해보자. 랜포트, 윌리엄, 제임스.


"그냥 바보들이에요."


"뭐···. 뭐라고?"


당황한 아버지의 말에 류는 살을 덧붙였다. 혹여나 누가 들을까 조용한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본 후에 말이다.


"솔직히 리처드 왕도 장난꾸러기에 바보 같을 때도 있습니다. 멍청이들의 우두머리죠."


"그······. 그렇다면?"


"전 즐거울 거예요. 무거운 짐을 놓고 말썽이나 부리죠. 재미있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갸우뚱거리다가 훈계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말하는 류의 표정이 너무나 즐거워 보였으니까 말이다.


항구에서 배에 오르자 드디어 연이와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배는 매정하게도 돛을 펴더니 힘있게 바다로 미끄러져 나갔다. 류는 눈에 가득 연이를 담으려 시선을 떼지 않고 하염없이 바라봤다. 연이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윤곽을 분간하기조차 힘든 거리여도 류의 눈은 계속 항구를 바라봤다.


눈을 떼는 건 섬이 저 멀리 작아져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다. 그제야 류도 결국 선창으로 내려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시끌벅적한 병사들과 조금 떨어져 종자의 보살핌을 받는 기사들. 성직자. 순례자.


선창 안에는 가득 사람이 차 있었고, 그들의 온기는 악취가 되어 코를 찔렀다. 그걸 못 견딘 몇은 술로 냄새를 가시게 하고 있었고, 곧 자신의 입에서 술 냄새를 뿜어내 주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번엔 예루살렘이다. 되찾자."


어느 젊은 기사가 배에 힘을 주어 외치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함성이 들려왔다. 이들은 유럽에서 새로 몰려오는 십자군의 지원자들. 전쟁의 참혹함을 잘 모른다. 그저 귀족이라면, 아니 신분은 미천하더라도 독실한 기독교도라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할 뿐이다. 그냥 무료한 이들에겐 축제일 뿐이었다.


'얼마나 죽어 나갈까?'


류는 그냥 혀를 찼다. 그리고 그냥 눈을 감았다.



***



배에서 내린 류는 아크레의 도심을 지나 한적한 영빈관에 도착했다. 길을 안내하던 제임스는 계속 결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해대며 속을 긁으려 했지만, 류는 그냥 웃을 뿐이었다.


"쳇, 너도 랜포트와 같은 종자다. 얼굴에 미소만 띠고 우월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녀석 말이야. 마음에 안 들어."


"아니야. 그렇게 얘기하지 마. 그리고 제임스 자네도 결혼을 해보면 내 미소를 알게 될 거야."


류의 말에 당황한 제임스는 한걸음 떨어져 부들거렸다. 흡사 패스트라도 걸린 병자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제···. 젠장. 랜포트보다 네 녀석이 더 문제군. 그런 식으로 우리를 꼬드기지 마. 윌리엄과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살 거다."


'역시······. 바보들이야.'


류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홀을 지나쳐 회의실로 들어섰다.



***



조용히 회의실로 들어선 류는 리처드의 뒤편에 자리했다. 랜포트와 윌리엄이 오른편에, 류와 제임스가 왼편에 섰다. 회의는 한창 진행이 되어 열기가 후끈했다.


"그러면 최대한 긁어모아도 이만 오천 명이군. 삼천은 여기 남아서 아크레를 수비해야 하고 말이야."


리처드의 말에 앙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받았다.


"무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매일 항구에 들어오는 배에 수백 명씩 지원자들이 타고 있지만, 병력으로 돌릴만한 이들은 별로 없어요. 괜히 숫자만 늘려도 소용없을 겁니다."


샹파뉴 백작, 아니 예루살렘 국왕이 된 앙리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최대한 정예로 움직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대략 수를 가늠해보니 이만 명 정도로 숫자는 줄어들 것 같았다.


"그러면 보급을 위한 치중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금 있는 마차들을 긁어모은다고 해도 꽤나 모자랄 것입니다. 이전부터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충분한 마차를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말입니다."


남은 문제는 두 가지였다. 진격로와 치중.


현재 논의되던 진격로의 경우는 아크레에서 넓게 퍼지며 점령지를 넓혀가는 것이었다. 적진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남아 버티고 있는 구호기사단의 크락 데 슈발리에를 고려한 작전이다. 그리고 그것에 맞게 보급을 유지하는 것.


그때 기지개를 켜며 뒤로 젖히던 리처드의 눈이 류와 마주쳤다.


"류, 자네는 사라센군의 지휘관이기도 했지. 어떤가? 자네가 적이라면 말이야."


주변의 이목이 쏠리자 류는 잠시 조심스러웠다. 이 년간 십자군의 일원으로 전열에 섰지만 아직도 출신에 대해 뒷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걸 끄집어낸 리처드가 조금은 얄미웠다. 하지만 류는 생각을 바꿨다.


'충성을 다한다면 출신도 신분도 묻지 않는다. 그러면 형제다.'


리처드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말을 꺼냈다.


"우선, 제 미천한 머리로 살라흐앗딘이나 그 주변의 영민한 자들에게 비할 바가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에이···. 어서 얘기해. 서론이 길다."


어서 얘기하라며 손을 흔들며 재촉하는 리처드였다. 역시 허례허식 같은 것은 싫어하는 성격. 류도 그리 말을 꺼내며 입이 근질거리기는 했었다. 류는 원하는 대로 아는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먼저 사라센군의 공격은 단순합니다. 다수로 적은 적을 상대한다. 절대 자신들보다 다수인 적을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대열을 끊는 것을 좋아합니다. 주로 대승을 거뒀던 것은 기병과 보병을 나누고 각개격파하거나 아니면 궁기병의 견제에 각자 방진을 둘렀을 때 중기병의 돌파를 이용합니다."


"단순하나 꼭 지키기 힘든 원칙이지. 자제력이 대단하군. 내 술탄님은 말이야."


"싫어하는 것은 좁은 지역에서 서로 전열을 맞대는 것입니다. 무장을 충실히 준비하기 시작했지만, 병사 개개인은 아직도 십자군보다 경무장입니다. 잘못 붙으면 순식간에 병력이 무너져 내리죠."


방안의 영주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니 말이다.


"그러니 적은 평원에서 넓게 펼쳐 공격을 시작하다가 약한 틈을 노릴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리처드가 일어서 테이블의의 지도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아크레에서 뻗어 나갔다. 야파로 통하는 길에 기병이 운신이 좋은 평원이 한군데 나왔다. 숲이 우거진 지역에 넓은 평원. 병력을 숨기기에도 좋고 결국 지나쳐야 할 곳이었다.


"여기군. 우리가 성공하느냐 마느냐가 결정 나건 말이야."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생각이 맹렬히 돌아가던 리처드는 작전을 결정 내렸다.


"로마인이 만든 해안도로는 바닷가에 가깝다. 공간이 많지 않지. 그걸 따라 이동한다. 우리 행렬의 한쪽 면은 바다에 붙으니 녀석들은 우리 병력을 가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치중 부대? 버려버려라. 함대가 행군하는 부대를 따라 이동할 것이다. 부상자의 후송이나 식량문제는 함대로 해결한다."


모두 결정에 찬성했다. 영주들은 부하들의 가장 큰 걱정을 알고 있었다. 성전에 참여하여 천국행을 원하는 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상처를 입어 짐이 되면 결국 버림을 받을 것이다. 차라리 잔혹한 무슬림의 검에 죽음이라도 당하면 순교자가 될 것이지만 잡혀가 노예로 살게 된다면 그것은 천국행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리처드는 부상자를 안전하게 챙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것으로 병사들은 더욱 겁 없이 싸울 것이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결정할 것이 하나 더 있어요. 무슬림 포로들은 어쩌죠?"


발리앙이 구석에서 물었다. 아직 남은 아크레의 삼천 명의 포로들. 다시 회의는 이어졌다.


작가의말
후원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쪽지수신이 막혀있는 분들이 계시네요.)
모두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오늘도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이제 곧 카이사레아와 아르수프 전투가 벌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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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5 6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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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3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2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3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7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2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7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6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7 67 11쪽
»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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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1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0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4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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