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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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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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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04,559

작성
18.10.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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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7
추천
60
글자
11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DUMMY

뒤른슈타인 성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첨탑이 있다. 영지 한가운데에 있는 이 성에 무슨 방어를 하겠다고 이런 높다란 첨탑이 있겠는가? 이건 영주를 위한 감상용이었다.


그러니 첨탑에서 바라보는 주변 정경은 아름다웠다. 리처드는 첨탑의 작은 창을 통해 주변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름답지 않은가?"


"아름답지요. 이리 아름다운데. 상황이 좋지 않은 게 문제네요."


류는 리처드의 곁에 서서 눈을 같이 했다. 빌어먹을 모래바람 부는 곳을 떠나 바다를 건널 때는 기뻤다. 더이상 목숨을 걸고 배를 곯을 필요가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키프로스에 기항할 때 리처드의 근위 기사들은 모두 기함으로 모이라는 얘기에 어쩔 수 없이 배를 갈아탔었다. 돌아가자마자 병사를 일으켜 필리프와 전쟁을 하려니 작전을 짤 일이 많았던 것이다.


함대는 조심스레 바다를 건넜지만, 폭풍우를 만나버렸다. 몇 척은 침몰했고 몇 척은 함대에서 쓸려나가 표류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목적지를 향해서 잘 나갔다. 다행인 것은 연이와 아버지가 탄 배는 난파되지 않고 영국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한 것은 난파된 배중에 하나가 기함이었다는 것. 그리고 왕과 몇 안 되는 병사들만이 표류하다가 땅을 밟았다는 것. 영국을 향해 육로로 몰래 이동하려던 그들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는 것. 그리고 그가 리처드에게 앙심을 품은 레오폴트 공작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리처드의 옆에 류가 있다는 것이다.


"왜?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말이 좋아 손님이지 지금은 포로일 뿐이었다. 자유를 구속당한 그런 상황에서도 리처드는 별걱정이 없어 보였다.


"전하야. 괜찮겠죠. 하지만 저나 병사들의 안전까지 보장하지는 않을 겁니다."


"에이, 그게 무슨 걱정이야? 적어도 나 정도는 돼야지."


"네?"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류에게 리처드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탱 백작이 내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린다더라. 영주들이 막고는 있지만 결국 내 자리에 올라서려는 계략이겠지. 바보 같은 녀석이 필리프가 부추긴다고 홀라당 넘어갔나 봐."


"모르탱 백작이요? 그 동생분 말씀입니까?"


"존이라고 좀 모자란 녀석 하나가 있어. 어릴 때는 잘 따랐는데······. 이 왕가의 피란 게 말이야. 가만히 있지 못하나 봐. 서로를 잡아먹어야 사는 그런 존재들이라고 할까?"


시간도 남아돌겠다. 리처드는 가슴에 담아뒀던 얘기를 한참이나 꺼냈다. 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며 가족도 서로 견제해야 하는 그가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랜포트나 제임스는 잡히지 않았으니 뭔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전하의 곁은 저와 윌리엄이 지키죠.”


윌리엄은 구석에 웅크린 채 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심지어 그 녀석은 입을 벌리고 졸고 있었다. 넉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무슬림에게 잡혀가 반년 가까이 포로 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겁이 별로 없어 보였다.


“하···. 그래, 뭐 어떻게 되겠지.”



***



거의 한 달이나 억류된 후 하인리히 6세의 앞으로 끌려갔다. 근위 기사로서 리처드의 등 뒤에는 류와 윌리엄만이 따랐다.


“플랜태저넷의 리처드, 내 영토를 지나면서 인사라도 하고 가는 게 옳은 일이었을 텐데 좀 섭섭했네.”


붉은 수염이라 불리던 프리드리히를 본 적은 없다. 영웅이라고 했다. 어이없게 비명횡사했지만 수많은 전쟁에서 담금질 된 영웅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폐하, 예의를 벗어난 일이라 송구합니다. 아시다시피 제 영토를 승냥이 한 마리가 뒤집어 놓고 있어서요. 좀 급하다 보니 무례를 범했네요.”


꼿꼿이 선 리처드는 비아냥거리듯 말을 던졌다. 일부러 한 단위에 놓은 의자에 걸터앉은 하인리히도 씨익 웃으며 받아쳤다.


“그냥 이리저리 돌려 말해봤자 시간만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필리프가 나에게 서한을 보내왔네. 자네를 넘겨달라고 말이야. 그쪽으로 넘길까?”


“하인리히, 당신은 교황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황제 아닌가요? 교황이 십자군을 내보내면서 서약을 시킨 적이 있죠. 십자군 영주간의 다툼을 금한 것 말입니다. 그런데 필리프는 전쟁터에서 도망쳤고 지금은 도둑놈처럼 빈 땅을 노립니다. 그런 그를 도와주겠습니까? 당신은 공명정대하지 않나요?”


“그렇지. 세상의 이목이 여기로 쏠려있지. 나도 난처하기는 해. 하지만 말이야. 자넬 풀어주기는 풀어주되. 시간을 최대한 끌어볼까? 그때쯤이면 필리프가 자네의 영토를 집어삼킬 수 있겠지. 한 이년? 자네 동생조차도 필리프와 붙어먹고는 앙주 땅을 조금씩 삼키고 있다던데? 그러면 일 년이면 자네 땅은 반 토막 나겠지.”


하인리히의 말이 이어지자, 어느새 레오폴드가 다가와 그의 곁에 섰다. 입가에는 흡족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은 채 말이다.


부들거리는 리처드가 주먹을 꽉 쥐었다. 달려들어 황제의 목이라도 꺾어버리지 않을까 겁이 났다. 류는 리처드의 근위 기사들도 모두 동행하게 배려한 것과 그들에게 검도 돌려준 것이 무슨 음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분한 왕이 황제에게 뛰어들고 어쩔 수 없이 검을 뽑는다면 주변의 기사들이 달려들 것이다.


결국 리처드 왕이 미쳐 황제를 죽이려 했고 그걸 기사들이 막았다. 이런 식으로 소문을 내겠지. 구석에는 주교 복장을 한 사람도 있다. 분명 이름있는 종교계 인물일 것이다. 저런 이의 입을 빌리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절대 검을 뽑지 마.”


류가 나직이 윌리엄에게 속삭였다. 윌리엄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당연하지. 난 오기 전부터 검 손잡이를 끈으로 묶어놨어.”


류는 그리 말하면서도 주변을 몰래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인리히와 레오폴드의 곁에는 중무장한 병사들과 기사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류는 튜턴 기사와 검을 맞대본 적이 몇 번 있었다. 비록 연습이었지만 그들은 힘이 강했고 거칠었고 전사였다. 다섯 정도는 해볼 만했다. 그런 후, 황제의 목에 검을 대고 도망칠까? 이런 생각을 할 때 홀의 문이 열리며 한 나이든 여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머리는 희끗거렸지만, 기력이 넘쳤고 꼿꼿한 허리에는 기백마저 담겨있었다. 뒤를 따르는 시녀들은 둘이었고 그 뒤로 랜포트와 제임스가 뒤따르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주변의 영주들과 기사들이 모두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황제 폐하.”


그녀는 고개를 둘러 주변의 영주들과 기사를 훑어보더니 리처드의 눈과 마주쳤다. 잠시 따뜻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황제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리처드를 풀어주시죠. 황제께서는 단도직입적인 걸 좋아하시니 당장 풀어주신다면 저도 내놓을 게 있습니다.”


“뭔가요? 몸값이라면 저도 그리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15만 마르크, 그 금액을 마련하려 거의 모든 국고를 털었습니다. 영국은 가난한 나라이니 그 정도로 만족해주시죠.”


순간 탐욕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르크라는 단위가 어쩐지 모르겠지만 큰돈임은 틀림없으리라. 순간 울대를 넘어 침이 꿀꺽 넘어가는 게 보였다. 황제는 받아들이리라.


“하지만 레오폴드 공작이 당했던 수모가 남았네요. 저도 삼촌을 배려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말입니다.”


“리처드, 너의 영지를 모두 황제께 봉토로 바치겠다고 맹세해라. 황제 폐하, 리처드 왕이 당신의 봉신이 될 겁니다. 봉토를 돌려주시고 명예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되겠나이까? 레오폴드, 당신을 겁박했던 왕이 같은 어깨를 지닌 자가 되리다. 그거면 당신의 분도 풀어지겠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오노르란 여인의 제안에 모두 만족한 것 같았다. 뚱한 표정이던 리처드는 못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꿇더니 자신의 영지를 하인리히에게 바치겠다고 읊조렸다.


한참이나 내려보던 하인리히가 흡족한 표정으로 일어서더니 리처드에게 영지를 다시 내리겠다고 선언했다.


“가자, 리처드.”


여인은 앞장서 나섰다. 리처드는 그녀를 따랐고 다시 모인 근위 기사들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밖에는 든든하게 무장된 마차가 들어서 있었다. 여인과 리처드는 같은 마차를 탔고 기사들은 준비된 말에 올라 마차를 경호했다.


“도대체 누구신지?”


류가 떨떠름하게 묻자, 랜포트가 대답했다.


“사자를 낳은 암사자지. 사나운 짐승도 원래 어미 앞에서는 유순한 아이일 뿐이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류에게 랜포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가장 커다란 영지를 가진 여 공작. 두 왕의 아내. 두 번 십자군을 만들어낸 여인이지.”



***



“솔직히 어머니가 달려오실 줄 몰랐습니다. 심려를 끼쳤네요.”


“됐다. 어서 돌아가자. 지금 영지가 엉망이구나.”


“연락을 못 들은지 꽤 됐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앙주는 거의 절반이 넘어갔고, 노르망디는 다 뺏겼다. 존 녀석은 네가 없을 때 영지를 지키라고 했더니 지금은 필리프와 손을 잡고 다른 영지를 집어삼키고 있어. 영주들도 당황해서 대처를 못 하고 있다.”


“쳇. 필리프 녀석이 전쟁을 잘하는지 몰랐는데. 꽤 소질이 있나 봅니다.”


“나중에 빛을 발하는 녀석들도 있지. 하지만 네가 왔으니 걱정은 없다.”


“그래도 15만 마르크는 너무 많이 썼어요. 십 년 동안 전비로 써도 될 돈입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조금은 걱정된다는 듯이 묻는 리처드에게 엘레오노르는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어느새 손이 아들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다시 찾으면 되잖니. 필리프에게서 되찾아오자. 오늘 수모를 겪은 일은 하인리히에게 돌려받자. 그러면 되잖니?”


리처드는 그리 말하지 않아도 그리 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도 리처드는 위험합니다. 황제 폐하의 결정이고 많은 돈이 탐나기는 했지만, 막상 이리되니 걱정도 됩니다.”


레오폴드의 말에 하인리히는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였다.


“어차피 필리프가 커져도 걱정입니다. 리처드와 다퉈줘야 우리가 편안하지요. 군대는 준비를 시키세요. 어느 쪽에 서서 이득을 가져올지는 전쟁이 심해지면 결정하도록 하지요.”


결국 하인리히도 욕심이 많은 이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다툼에 신성로마도 끼어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레오폴드는 중동에서 리처드의 전투를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황제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살며시 들기 시작했다.


그날 밤, 자신의 영지로 돌아온 레오폴드는 조용히 펜을 들어 편지를 써 내려갔다.


“필리프, 악마가 풀려났네. 어쩔 수 없는······.”


작가의말

오늘은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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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2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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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3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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