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08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10.11 14:20
조회
1,892
추천
62
글자
9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DUMMY

"류, 네 나이가 몇이나 되지?"


"서른다섯입니다."


"음. 너희는 늙지를 않는구나."


"제가 보기엔 프랑크인 들이 빨리 늙는 겁니다."


류가 돌아오자 뜬금없이 리처드의 질문이 시작됐다. 류의 수하들은 필리프의 깃발과 직인 등을 날라다 왕의 앞에다 옮겨다 놓기 시작했다.


"뭐야?"


"필리프가 거처하던 오두막에서 가져왔습니다. 코앞에서 놓쳤습니다."


로저가 코가 주저앉은 베르트랑을 끌고 왔다. 리처드의 앞이라 밧줄은 풀었지만, 주변의 병사들은 검을 든 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오, 저건 뭐야? 베르트랑이란 사내가 아니잖아. 내가 알기로는 미남자였었는데······. 그래, 오래전에 봤었으니 그동안 얼굴이 상했을 수도 있지."


일부러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베르트랑은 입안에서 침을 모아 땅에 뱉었다. 피가 가득해 검붉었다.


"맞아. 베르트랑이 아니구먼. 그 녀석은 생긴 것도 계집애 같았지만. 몸가짐도 계집애 같았어. 이런 선술집의 망나니가 아니야. 끌어내서 가둬라."


기분이 한껏 좋아진 리처드는 필리프는 놓쳤지만 다가와 류의 어깨를 두들겨줬다.


"잘했어. 사실, 필리프를 잡아 와도 귀찮기 그지없지."


"네?"


"죽이기도 그렇고. 또 얘기를 나눠봤자 그 녀석 언변은 에덴의 뱀 같은 녀석이고. 귀찮아. 어쨌든 잘했다."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는 리처드의 손이 신경 쓰였다. 필리프의 말대로 이 사람과 싸울 수는 있을까? 가볍게 두들기는 힘에도 보통사람은 휘청거릴 것이다. 아니 형이 얘기했던 대로 창과 창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일순간. 집중력이 힘을 이길 수도 있다.


"어, 이거 재미있는데요."


가져왔던 지도와 서한을 뒤적이던 랜포트가 하나를 집어 들더니 웃으며 말했다.


"뭔데?"


"하인리히에게 애걸하는 편지입니다. 이거, 우리가 너무 몰상식하게 밀어붙였나 봅니다. 제발 병사를 보내주세요. 야. 이거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데요."


"하하하, 그 염소수염에 불이라도 붙었나 보구나!"


리처드는 기분 좋은 듯이 껄껄대며 웃었다. 환한 분위기. 모두 기분 좋다고 웃는다. 어떻게 하면 가슴이 채워질까? 아니, 이렇게 좋은 이들 사이에 섞여 또 싸움을 원하는 거냐? 이걸 박차고 배반자라는 낙인을 원하는 거냐?


류는 피식거리며 웃었지만, 도무지 끼어들 수가 없었다.


"이건 좀 그런데요."


한참을 웃던 랜포트가 다른 서한을 들며 주변을 살폈다. 리처드에게 서한을 내밀며 엿들을 사람이 없는 걸 재차 확인하기까지 했다.


"뭐야? 으······. 음. 필리프의 특기 아니더냐? 한창 밀릴 때 뒤편을 좀 어지럽혀달라. 이젠 국경이 아니라, 내 땅 가운데에 있을 테니 더 힘들지 않겠냐? 뭐 맞는 얘기지. 내가 리모주 자작이라도 넘어갔을 거야."


"내용을 보면 리모주 자작에게 처음 보내는 서한이 아닙니다. 이미 어느 정도 교감이 있습니다."


"그렇군. 이번 전투에서 병력을 내지 않고 웅크린 것도 그건가? 쯧, 배반자가 뒷덜미를 노리는 것도 기분 좋지는 않지. 이번에 정리하자."


전쟁 전에 필리프와 리처드 사이의 영지를 가진 리모주 자작의 내통이 드러났다. 접경이라고는 해도 리모주 자작의 영주는 리처드다. 배반자이다. 그도 필리프의 꼬임에 넘어갔을까? 류는 모든 게 혼란스럽다. 리모주 자작도 목숨을 걸고 리처드와 싸우고 싶었을까?


"전하, 저에게 병사 오백만 주십시오."


구석에서 조용히 생각을 거듭하던 윌리엄이 뜬금없이 말을 뱉었다.


"왜?"


"아, 잘 될지는 모르지만 좀 주십시오. 뭐 하나 해보겠습니다."


"또, 쓸데없는 일 벌이려고. 알아서 해라."


리처드의 허락이 떨어지자 윌리엄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종이를 가져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필리프의 직인을 찍어 서류를 만들었다.


윌리엄은 가짜 서한을 통해 필리프의 요새를 지키던 기사들을 꼬여냈다.


'모든 병사를 이끌고 퐁텐블로 숲의 집결지로 모여라. 시급하다.'


왕의 패전 소식에 이어 느닷없는 전갈이 도착하자 요새를 지키던 기사들은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을 모아 왕을 구원하기 위해 달렸다. 하지만 모여든 병사들은 필리프를 찾지 못했고 돌아온 요새는 영국 깃발이 매달렸다.


이렇게 재미를 붙였던 윌리엄은 네 번째 요새에서 화살 세례를 받고는 혼비백산해 도망쳤다.


그래도 이번 전쟁에서 가장 수훈을 세운 것은 윌리엄이였다.



***



영국 국왕과 그를 따르는 영주들의 군대는 해산하기로 했다. 곧 겨울이 닥쳐오는 이때 전쟁을 이어가기에는 무리였다.


필리프는 이곳저곳에서 병사를 끌어모아 최후의 방어에 몰두하고 있을 뿐. 공세로 나오기에는 힘들었다. 그걸 끝장내기에는 영국군도 보급이나 준비가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일부 영토에 한해서는 프랑스의 신하인 리처드였다. 리처드는 사실 필리프의 목줄을 끊어낼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았다.


다시 봄이 오기 시작하면 배반을 꿈꾸던 리모주 자작령을 정리하려 다시 모일 것이다. 그때 필리프가 구원을 나선다면 다시 두들겨줄 것이고, 구원치 않는다면 다른 영주들은 프랑스 편에 서기를 거부할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리처드에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면 봄이 되면 다시 모이자. 류, 이번 전공에 대해 내가 상을 내리고 싶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내 사양했지. 또 사양하면 모른 척할 거다. 생각했던 게 있으면 얘기해봐."


그의 입이 움직이며 류에게 말을 건네지만 들리지 않았다. 진을 거두면서 류는 계속 고민에 빠졌었다. 한 번만. 한 번만 제대로 붙어보고 싶다.


"전하······."


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참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저지르고 말았다.


"저에게 상을 내리시려면 창을 드시고 말에 오르소서. 한 번만 겨루고 싶습니다."


"왜?"


사자가 울부짖는다.


리처드와 비슷한 나이의 근위 기사들은 친구였다. 웃으며 농을 주고받으며 사창가의 여자를 술안주로 시시덕거리는 친구다. 류도 친구로 받아들여 진 지 몇 년이나 지났다.


그런 류에게 지금은 친구가 아니라 사나운 사자가 울부짖었다.


"해보고 싶습니다. 이길 것 같습니다. 그냥 이겨보고 싶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다만 리처드만이 류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정신 차린 랜포트가 류를 힐난했다.


"류, 기고만장하구나. 감히 왕에게 겨뤄보자니. 기사들 칼놀음에 나설 왕이 아니시다. 전하! 제발!"


"됐다. 해보고 싶다잖아."


리처드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천막 밖으로 나섰다. 천막을 거두며 짐을 챙겨 마차에 싣던 병사들이 왕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훑어보던 리처드는 적당한 길이의 막대 두 개를 집어 들더니 뒤따라 나온 류에게 하나를 던졌다.


"이 정도면 사나이 대 사나이로 해볼 만하지 않겠어? 잘못 맞으면 뼈 몇 군데는 부러질 거다. 랜포트! 말 가져와라!"


병사들은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랜포트의 얼굴은 벌게졌다. 다급해져 랜포트가 다시 만류했다.


"전하, 병사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겨도 져도 득이 될 게···."


"에이, 사람이 어떻게 득 되는 것만 따지고 살아? 류! 그렇지 않아? 너도 고민했겠지. 그래, 힘들었겠지. 그런데 참지 못하겠지? 그러면 해보는 거야. 어서, 랜포트! 말을 가져와라."


마지못해 랜포트가 말을 가져오자 리처드는 말에 올라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길을 열자 공터 한가운데로 나갔다.


"자아, 나의 사랑스러운 잉글랜드의 용사들아.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 너희에게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주려고 한다."


-와 아아!-


병사들의 환호성 사이로 류도 윌리엄이 가져온 말에 올라 공터를 향해 나서기 시작했다.


"너희들이 아는 최고의 기사는 누구냐? 물론 나 말고 우리 쪽에서 말이야."


병사들은 검은 기사 아니면 랜포트를 외쳤다. 간혹 제임스의 이름도 나왔지만 몇 안 되었고 윌리엄은 들리지 않았다. 윌리엄은 관심 없다는 듯이 먼 산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랜포트 녀석은 겁이 많아서 나랑 붙기 싫다고 했다. 류는 용감하게도 너희를 위해 희생하겠다고 했다."


다시 병사들은 미친 듯이 환호했다. 어느새 공터를 둘러싼 병사들은 서로 돈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 못된 녀석들이 왕의 경기를 두고 내기를 시작한 것이다. 랜포트의 얼굴은 참담한 마음에 무너져 내렸다.


경기를 보고자 뒤편에서 밀고 나오는 이들 때문에 여기저기서 악다구니가 펼쳐졌다.


황공하게도 리처드가 공터의 끄트머리로 말을 몰아가더니 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류도 반대편 끝으로 말을 몰았다.


심장이 터질 거 같아 얼굴이 벌게졌다. 랜포트가 적당히 하라며 목에 손을 대고 긋는 시늉을 했지만, 류의 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류야. 말을 타고 달릴 때는······.'


형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형의 말이···. 곧이어 검을 가르쳐준 노인의 말이. 류의 곁에서 전장을 누볐던 이름 모를 맘루크의 농담이······.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모두 마지막에 이르러 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사, 기사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0/9~12 휴재 알립니다. +2 18.10.09 616 0 -
공지 (연재시간 공지) 22시 25분에 찾아뵙겠습니다. 18.07.20 880 0 -
공지 일독 부탁드립니다. 연재주기 조정과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10 18.05.30 2,233 0 -
공지 도움주신 분들을 기억하며 (10/13 업데이트) +8 18.04.11 10,728 0 -
210 완결에 대한 소고 +60 18.10.11 3,524 48 3쪽
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32 99 9쪽
20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80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3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5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8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5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3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3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8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7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7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188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8 67 9쪽
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1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4 69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