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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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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00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9.25 23:15
조회
2,242
추천
65
글자
10쪽

< #16. 야파를 향해서 5-2 >

DUMMY

서로 마주 보는 행군이 다시 시작됐다. 서로 알고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서로 피를 흘리기 위해 몸을 덥히고 있었다.


“영주들이 묻습니다. 적이 공격을 해오면 어떻게 하나요?”


“말 안 했나? 그냥 버티기만 한다고. 닷새나 그랬으면 이제는 잘할 때도 됐잖아.”


못마땅한 표정의 윌리엄은 급히 말을 달려나갔다. 다시 왕의 말을 전하러 가는 것이다. 류는 제임스와 더불어 왕의 곁을 지켰다. 사실 적이 달려들면 가장 버티기 힘든 게 리처드의 중군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냉정하게 말을 뱉지만 가장 끓어오르는 게 그라는데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기병이 운신하기 힘든 해안가의 돌밭을 지나쳐 이제는 도로가 끝났다. 워낙 평지인 데다가 걸리는 것이 없어 도로를 깔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 말로 십여 분 달릴 정도의 거리에 숲이 우거져 노려보고 있다. 숲속에서 적들이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긴장하지 마라.”


리처드는 조용히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주문처럼 읊조렸다. 그제야 앞발을 치켜들며 달려나가려던 말이 조용해졌다.


“잘했다. 사람보다 네가 낫구나.”


한참을 전진하고 있었지만, 물결처럼 늘어서는 적군의 앞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숲을 빠져나온 적들은 중앙에 기병, 좌우에는 이집트 병사들이 늘어섰다. 그들은 무거운 갑주를 입은 채 발걸음을 재게 움직이는 십자군들을 바라보며 줄을 섰다.


그들의 이맘이 이리저리 전열에서 나와 병사들을 바라보며 축복을 하기 시작했다. 류도 몇 번이나 들었던 내용일 것이다.


‘죽으면 신의 곁으로 간다. 참으로 편한 속임수다. 죽으면 그냥 죽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던 류는 주변의 어린 병사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덧없음을 느꼈다. 저 어린 징집병 녀석이 무엇을 알까? 창을 꼭 쥐는 손힘이 가득하다. 저 창으로 한 명을 신께 보내면 다음번에는 자신도 신으로 가는 것인가? 양쪽에서 말하는 신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부처인가? 류도 몇 번을 자신에게 되물었지만, 답은 알지 못한다.


‘그냥 살면 된다. 오늘도 살아남자.’


그렇게 생각을 하던 중에 소란스럽던 이맘의 읊조림이 끝나가는 걸 알아챘다.


“자, 기사들도 어디 어깨를 맞대고 싸워볼까나.”


왕이 송구스럽게도 말에서 내려 병사들 사이에 섰다. 류도 몇 명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섰다. 어느새 달려온 윌리엄이 급히 류의 곁에 섰다. 제임스는 왕의 등 뒤를 지킨다.


기병들도 모두 말에서 내려 방패 병들의 뒤에 서기 시작했다. 십자군의 선두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리처드의 중군부터는 조금씩 사이를 벌리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럽게 유혹하기 시작했다.


적은 결심을 내렸는지 공격을 시작했다. 앞선 중기병들이 이제는 얇아진 십자군의 중앙을 토막 내려 달려온다. 미친 듯이 힘을 가득 실은 채 말들이 뛰쳐 나왔다. 수가 만만치 않다. 타키 앗딘이 자랑하는 중기병들이 수백이 중앙에 모였다. 그들 뒤로 창과 칼을 휘두르며 기병들이 달려왔다. 중간중간 낙타들도 보였다.


저 거대한 물결에 밀려버리면 바닷가로 빠져들 것이다. 도망갈 곳도 없다. 류는 살짝 고개를 돌려 리처드를 쳐다봤다. 리처드는 살며시 눈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미친 왕 같으니라고.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류는 가까운 곳에 들려진 창날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너도 미쳤구나. 류야. 무어가 좋다고 웃고 있느냐?’




***


병사들은 겁이 나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방패를 바싹 어깨에 붙이고는 달려오는 적의 기병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땅의 울림과 괴성에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럴 때 곁의 병사가 창을 꼬나쥐고 덜덜 떠는 병사의 허벅지에 자신의 허벅지를 붙였다. 동료의 떨림. 동료의 살 냄새. 따뜻함.


한 명이 고함을 지르자, 여기저기서 호응하듯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창을 길게 내밀며 다가오는 타와시 들도 특유의 노랫소리를 외치며 달려든다. 귀가 먹듯이 터져 나오는 고함이 점점 커져만 간다.


-콰아아앙-


두꺼운 카이트 실드를 땅에 꽂고 버텨봤지만, 적의 기세는 순간 곳곳의 전열을 무너뜨리며 아비규환을 만들어냈다. 고함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수호성인을 찾는 병사들의 비명과 쿠란의 구절을 미친 듯이 외우는 무슬림의 광기다.


의기양양하게 곡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다가 목에 꽂힌 긴 창날에 머리가 날아가는 젊은 사라센 병사와 말발굽에 터져버린 창자를 움켜쥐며 비명을 지르다가 내장 사이로 부서진 자신의 척추뼈를 본 어린 병사. 대열을 뚫고 들어와 환호성을 지르다가 주변에 동료가 없는 걸 본 타와시. 그의 얼굴은 좌절로 바뀌었다가 사방에서 내려찍는 창날에 곤죽이 돼버렸다.


“버텨라! 이제 적의 돌격은 다 받아냈다. 조금만 더 버텨라!”


리처드가 양손에 데인 도끼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병사들은 그 흉포한 모습에 조금씩 거리를 두고 왕이 마음껏 날뛰도록 놔뒀다.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말이다.


창을 잃은 타와시가 곡도를 뽑아 들고 리처드의 머리를 노리며 달려왔다. 내려치는 칼날을 피한 리처드는 말의 다리를 도끼로 잘라내며 떨어진 타와시의 목에 다른 도끼날을 박아넣었다. 순간 왕의 주변으로 달려들던 타와시와 기병들이 주춤거렸다. 양손으로 도끼를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점점 빨라졌고 토막 나 바닥에 떨어지는 적의 시체가 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적의 돌격은 끝났고 이제는 힘과 힘으로 맞부딪치는 싸움이 돼버렸다. 류는 언제나 사용하던 극을 땅 깊숙이 박아넣고, 양손으로 검을 들었다. 보두엥이 하사했던 보검과 선예가 주었던 검. 류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예가 보였던 검무는 우아했었다. 지금 류의 검무는 투박하고 날카롭다. 그리고 강했다.


방패를 검으로 누르며 허리를 굽혀 상대의 발목을 가른다. 고통에 주저앉은 적의 머리를 날린다. 도와주려 창을 양손으로 밀어붙이는 적을 우습게 보며 창대를 토막 낸다. 한 조각, 한 조각. 그리고 마지막에는 갑옷 밖으로 드러난 손목을 자른다.


한참 동안 피에 젖어 미친 듯이 웃다가 정신을 차렸다. 주변의 십자군 병사들이 괴물 보듯이 보며 뒤로 물러섰다. 순간 겸연쩍어 눈을 리처드에게 돌렸다. 이제는 도망치는 적을 뒤쫓기에 바빴다. 류와 리처드의 주변에는 사라센군이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무슬림은 없었다.



***



계속 이어지는 공세 중에 조금이라도 밀리면 리처드와 류가 달려가 전열을 다시 유지했다. 적의 네 번에 걸친 공격을 막아낼 때 후미에서 구호기사단장이 달려왔다.


“전하! 역습하게 허락해주십시오.”


“안된다.”


단호하게 말하는 리처드의 말에 가르니에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자신의 기사단을 향해 달려갔다. 이후로 두 번이나 더 가르니에는 부탁하려 달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반나절이나 전투가 이어졌다. 모두 지쳐가는 와중에 적들은 전열을 밀어붙이며 미친 듯이 화살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뒤로 물려놓은 기사들의 말이 쓰러지기 일쑤다. 이러다가 역습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세 번째, 가르니에는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나의 왕이시여, 죽어라 하면 죽겠습니다. 다만, 전쟁터에서 적진을 가르다 죽겠나이다. 아무 명예도 없이 말에서 떨어져 난도질당해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리처드는 아예 대꾸하지 않았다. 적의 증원이 다시 능선을 넘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리처드도 적을 모두 끌어내 한 번에 결판을 내려는 것이다. 조금만 더 끌어달라는 판단이었다. 가르니에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다시 일어서 말을 타고 달려나갔다. 입술을 앙다문 그는 달려가며 분풀이하듯 사라센 보병들을 도륙하며 달려갔다.



***



가르니에가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후미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성 제오르지오를 위하여!-


말을 탄 기사들의 수호성인, 성 제오르지오를 외친 기사 몇이 말을 달려 돌격을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구호기사단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아······. 조금만 더 끌어들이면 되는데······. 내 말을 가져와라. 기병들 모두 모여라.”


리처드는 자신의 커다란 키프로스 군마에 오르더니 주변을 살폈다. 류도 그의 검은색 군마와 함께 왕의 곁으로 말을 몰았다. 지나치다가 아까 땅에 꽂았던 극을 빼 들어 휘둘러 흙덩이를 떨궜다. 제임스도 말을 타고 왔다. 윌리엄은 자신의 말이 화살에 죽어 다른 말을 찾느라 분주했다.


“윌리엄, 또 늦겠구나. 어서 따라오너라. 재미있을 거야.”


“아이···. 조금만 기다려주소서. 어이, 너 그 말 내려.”


한 견습 기사와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며 씨익 웃던 리처드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전군에 신호를 보내라 했다. 뿔피리가 울며 뒤편에서 붉은색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보병, 전열을 열어라!”


전면의 방패 병들과 창병이 길을 열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모여 말을 가다듬는 모습을 본 사라센 병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가자! 신과 성모께서 우리를 보우하사!”


남은 병력의 기병을 오십여 개의 중대로 나누어놨던 리처드는 자신의 중대를 이끌고 나섰다. 랜포트를 제외한 근위 기사들과 앙주의 기사들과 창을 든 견습기사들. 모두 오십여 명이다.


이런 중대 오십여 개, 이천여 명. 모든 힘을 쏟아낸 공격이다. 각 중대를 맡은 영주들은 미친 듯이 살라흐앗딘의 본진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들을 막을 사라센군은 없다. 모두 죽으리라.


“우오오옷”


류는 박차를 가하며 극을 휘둘렀다. 앞서나가는 리처드의 손에서 대검이 번쩍인다. 적들은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즐거운 추석 되셨나요?

이제는 돌아왔습니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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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2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7 66 9쪽
»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7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6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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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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