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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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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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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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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09.30 22:25
조회
2,232
추천
75
글자
10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DUMMY

"이게 뭡니까? 전하!"


랜포트는 눈앞에 선 왕을 매섭게 힐난했다. 호위도 없이 단둘이 나가서 포로가 될뻔한 리처드는 할 말이 없어 전전긍긍했다. 한참을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던 랜포트가 주저앉으며 울었다.


"전하······. 제발, 옥체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제발······."


이리저리 기병을 내보내어 윌리엄을 되찾으려 애써봤지만, 녀석들은 흔적을 찾기도 힘들게 사라져버렸다. 아마 윌리엄을 데려다가 살라흐앗딘에게 선물로 내밀 것이다.


모두 왕을 사칭했다는 이유로 분노한 살라흐앗딘이 참수할 것이라 생각했다. 류는 그날 리처드가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 날 이후로, 리처드는 호위 없이 점령지를 나서지 않았다.



***



윌리엄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다마스쿠스까지 오게 되었다. 왕이라는 얘기에 나름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나 갈수록 좌불안석이 되었다.


심지어 적의 영지를 지날 때마다 영지의 아미르들이 윌리엄의 얼굴을 보러 찾아오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점점 거짓말이 커지고만 있었다.


윌리엄의 얼굴은 거짓말이 커지면 커질수록 어두워져만 갔다. 절정은 술탄이 거주한다는 왕궁으로 걸어 들어갈 때였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치며 훑어보니 회랑들 뒤편으로 무언가 보였다. 검은 옷을 입은 병사들이었다. 얼굴을 가득 가린 복면 사이로 보이는 푸르스름한 눈동자는 한껏 증오를 품고 있었다.


살라흐앗딘의 친위대였다. 술탄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윌리엄의 목을 베려할 것이다.


‘젠장, 진짜 왕이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왕은 왕끼리 죽이지 않는다고 하니, 목숨을 부지할 유일한 방법 아니겠는가? 이렇게 원치 않은 역심이 생겨날 때 윌리엄은 술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온화한듯한 표정을 가진 검은 얼굴의 사내였다. 그동안 삶이 순탄치 않았는지 깊게 파인 주름이 얼굴을 이곳저곳 가로지르고 있었다. 날카로운 매부리코가 그의 의기를 보여준다. 입가에 맺힌 미소는 거짓으로 꾸며낸 웃음이 아니었다. 그는 소탈하고 영민하며 무서웠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유창한 라틴어가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윌리엄은 움찔거렸다. 주저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술탄은 다시 말했다.


“거짓은 거두고, 진솔하게 얘기합시다.”


알고 있는구나. 윌리엄은 그 말을 듣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며 의연해졌다. 죽더라도 구차하게 보이기는 싫었다. 모시던 리처드에게 누를 끼치기는 싫었다.


“전, 윌리엄 드 프레오. 체스터 백작의 삼남입니다.”


“그렇군요. 이름있는 기사분이군요.”


“아닙니다. 그냥 모시는 분의 위명에 누만 끼치는 모자란 기사죠.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일을 했습니다. 왕께서 무사히 돌아가실 수 있게 했으니 말입니다.”


“왕이라 말하면 예루살렘 왕인 앙리를 말하는가요? 아니면 키프로스의 기? 설마?”


“물론 그분들도 훌륭하십니다만 저에게 왕이라 할 분은 한 분이지요.”


“아깝군. 지금 봤으면 좋았을 텐데······.”


살라흐앗딘은 몹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윌리엄은 정색했다.


“그런 상황이 벌어졌으면 전 죽음으로 막았을 겁니다. 그러니 술탄께서는 저란 인물을 보지 못 하는 일이 벌어지죠. 그것도 나름 안타까운 일 아닐까요?”


윌리엄의 말에 술탄은 오랜만의 즐거움이었다는 듯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윌리엄이 병사들에게 이끌려져 나가자 하지즈를 불러 당부했다.


“괜찮은 사내구먼.”


“그래도, 왕을 잡을 기회를 놓쳤다니 너무 아깝습니다. 플랜태저넷의 리처드만 잡았다면 이번 전쟁의 승기를 잡았을 텐데요.”


“뭐, 지난 일을 어쩌겠나?”


“그러면 저 녀석은 목을 벨까요?”


백작가의 삼남 정도면 몸값을 받기에도 모호한 위치였고, 아크레에서 서로 포로를 죽인 이후에는 교환도 거의 없어진 상황이었다.


“그냥, 리처드라고 생각하고 좋은 곳에 가두게나. 나중에 돌려 보내주는 것도 꽤 괜찮은 선물일 거야.”


“알겠습니다.”


하지즈는 술탄의 명령대로 다마스쿠스의 명망가에 신병을 맡겼다. 밤낮으로 무장한 병사가 감시했지만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도록 말이다.



***



여러 영주의 반발로 인해 리처드는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급이 늘어지며 중간중간 습격을 받기 시작하자, 예전처럼 전투가 쉽지 않았다. 적들은 보급을 위한 마차들을 우선해서 공격하고는 사라지기 일쑤였다. 삼 일째 지지부진한 전진이 이어지다가 리처드는 군대를 갑자기 돌려 아스칼론으로 이동했다.


영주들도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고 모두 준비가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아스칼론을 점령했다. 쉬운 일이었다. 살라흐앗딘의 군대는 예루살렘에 틀어박혔다. 야전이 특기였던 사라센군은 거대한 성벽안에 십자군보다 두 배는 더 되는 병력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아스칼론이 무너지며 예루살렘으로의 보급이 쉽지 않았지만, 살라흐앗딘이 모아놓은 군량은 이 년 치에 달한다고 했다. 그리고 성벽은 덧대어져 보강되고 있었다.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십자군이 매수해놓은 예루살렘의 첩자들에게서 들어온 정보로는 알 아밀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보나 마나 다시 이집트에서 병력을 이끌고 오려고 돌아간 상태일 것이다.


이기고 있으나 더이상 나가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리처드는 협상하자고 살라흐앗딘에게 기별을 넣었다.


평소 살라흐앗딘을 대신해 모습을 드러냈던 알 아밀을 대신해 다른 중신이 나타났다. 그 사실만으로도 역시 적이 증원 중이란 게 분명했다. 리처드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협상을 위한 장소로 향했다.


“용맹하신 사자의 화신이시여. 현재 병중이신 술탄을 대신하여 오게 된 이마드앗딘입니다. 이 사람은 절 도울 이븐 야쿠브입니다.”


와병을 핑계로 격이 낮은 자신이 오게 된 것을 사과하는 말이었지만 표정은 그리 비굴하지 않았다.


“당신들이 내 얘길 들어서 결정을 내릴만한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소. 그렇지 않다면 얘기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라고 하겠소.”


“영민하신 술탄께서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은 나누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선 그분의 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중하게 대답하는 그의 말에 리처드도 굳은 얼굴을 펴고는 조건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요구하는 것은 간단하오. 예루살렘 왕령을 하틴 이전으로 돌립시다. 그러면 물러나겠소이다.”


모든 점령지에서 물러나라는 얘기다. 얼토당토않은 조건을 던지면 어찌 사라센인들도 승낙하겠는가? 하지만 이건 영주들이 원하는 협상 조건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리처드이기는 했지만 모든 불만을 무마하고 독단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성이 나는 협상 자리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먹히지 않을 조건이니 말이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스칼론을 되돌려주면 현재의 영역을 인정하고 삼 년간 휴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휴전을 파기하는 것은 그 해가 가기 전에 서한으로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프랑크 인들의 신앙심을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군. 후회는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려주시게나.”


리처드는 강하게 맞받아쳤지만, 사라센의 조건을 들어보니 조금만 더 협상을 진전시키면 아스칼론을 먹은 상태로 휴전으로 들어갈 가능성을 보았다.


이 정도면 됐다. 리처드는 몇 번 더 승리한 후에 조금 유리한 조건으로 마무리할 생각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협상이란 우격다짐은 이렇게 간단히 끝나버렸다.


“사자왕이시여. 술탄을 마주 보시고 얘기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다마스쿠스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오소서. 이틀 전에 삼만의 증원군을 이끌고 입성하셨습니다.”


삼만이라는 숫자를 힘주어 말하던 이마드앗딘은 씨익 웃으며 천막을 나섰다.


“곧 뵈리라고 전해드리게.”


리처드는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어주었다. 하지만 눈에선 불이 번쩍거렸다. 그 모습에 이마드앗딘은 질렸다는 표정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



예루살렘을 다시 공략하기 위해 병력을 모으던 리처드에게 서한이 한 통 도착했다.


읽어보던 리처드는 난처한 표정으로 수하들을 급히 불러모았다. 보급 준비와 병사들의 훈련에 여념이 없던 근위 기사들과 영국령의 영주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였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리처드가 입을 열었다.


“필리프가 군대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정적에 휩싸였다. 모든 이들에게서 뒤통수를 맞은듯한 표정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서···. 설마요?”


한 영주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교황도 금한 일인데 지금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것인가? 그것도 성지를 탈환하겠다고 이역만리에서 고생하는 기독교도의 땅을?


“혹시 십자군을 다시 모으는게 아닐까요? 이곳에 오려고?”


한 영주가 희망적인 말을 내뱉다가 입을 다무었다. 그의 생각으로도 필리프는 그럴 인물이 아니었던것이다.


“랜포트가 첩자를 붙여놨었다. 필리프가 돌아가는 길에 교황령을 들른다는 얘기에 미심쩍긴 했지. 한 달 동안이나 교황 곁에서 있으면서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잘 구워삶았겠지. 부르고뉴 백작에게 군대를 맡기면서 남은 전비는 모두 긁어갔잖아. 교황령에서 여기저기 뿌렸겠지. ”


영주들은 당황해서 웅성거렸다. 브리튼에 영지가 있는 이들은 나았지만, 아키텐이나 노르망디같이 대륙에 위치한 영주들은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우리들의 성전은 여기까지 하자.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리처드가 쉬어버린 목소리로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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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32 99 9쪽
20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80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2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5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7 60 11쪽
202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5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2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3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8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7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7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188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8 67 9쪽
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1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4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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