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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話者) 님의 서재입니다.

무사, 기사 되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대체역사

완결

화자(話者)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1
최근연재일 :
2018.10.11 15:10
연재수 :
210 회
조회수 :
1,084,510
추천수 :
23,051
글자수 :
904,559

작성
18.10.05 17:50
조회
2,105
추천
69
글자
10쪽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DUMMY

쿠르드 친위대가 거의 죽임을 당하자 남은 적들은 슬그머니 뒷걸음질 쳐 도망쳤다. 고함을 지르는 지휘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랜포트가 후방을 정리하고 다가왔다. 손에는 적에게서 뺏은 군마의 목줄이 잡혀있었다. 랜포트의 손에 이끌려 검은색과 하얀색 말이 따라왔다.


"왕께서 뛰어다니시기에는 좀 체면이 안 섭니다."


하얀색 말을 건네받은 리처드는 훌쩍 안장에 걸터앉았다. 이리저리 갈기를 쓰다듬으며 놀란 말을 진정시키자 말은 곧 리처드를 받아들였다.


"좋은 말이로구나. 이 녀석이면 오늘 제대로 놀아볼 수 있겠어."


환한 웃음이었다. 티끌 하나 없이 하얀 말에 갈기도 잘 정리된 것이 분명 귀족들이 타는 말이 분명했다. 류도 말을 건네받으러 손을 내밀었다.


"내 것인데? 너는 저쪽에 뒹굴고 있는 녀석 중에서 찾아봐."


혹여나 뺏길까 싶어 말에 어서 오르는 모습이 그리 밉지는 않았다. 랜포트의 적절한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쯤 이 돌바닥 위에서 뒹굴었을지 모르니 말이다.


'한번 마상시합이라도 해줘야겠군. 그렇게 소원이라면 말이야.'


소심한 복수를 꿈꾸며 류는 혼란스러운 난장판을 뒤져 엉덩이에 화살을 맞은 녀석을 골라내었다. 상처 입은 말이 성질을 내며 앞발을 들어 위협했지만, 류는 개의치 않고 뺨을 쓰다듬어줬다.


"네놈도 이게 무슨 고생이냐? 주인이 못났으니 활을 맞은 게 아니냐?"


말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커다란 눈망울을 류와 마주치며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깊숙이 박힌 활을 조심스레 빼내기 시작하자 고통스러울 텐데도 차분히 참기 시작했다.


"잘 부탁한다. 전 주인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 내 주인도 그리 잘 만난 것 같지는 않으니 동병상련 아니더냐?"


류는 적들을 도륙 내며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리처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히이잉-


말이 구슬프게 울면서 고개를 까닥거렸다. 갈기를 쓰다듬어주던 류도 말을 몰아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



볼썽사나운 졸전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우세를 점하던 타키 앗딘의 병력도 곧 도망치는 병력에 섞여 성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전투를 계속 독려하던 한 아미르가 말에 탄 채 리처드를 만나버렸다. 버텨보려던 그의 허리가 반 토막이 나 날아가 버리자,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들 뒤에는 주인 잃은 말만이 놀라 날뛸 뿐이었다. 주인의 반 토막 남은 몸만 안장에 얹은 채 말이다.


다시 타키 앗딘이 직접 병력을 인솔해 성으로 밀어 붙여봤지만 무너진 성벽 틈에는 해안가에서 가져온 방책들이 쌓여 어느새 방어선이 되어있었다.


자신들이 만들었던 나무방책이 이리 단단했다는 걸 몸소 깨달으며 사라센군은 소득 없이 공격과 후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병력의 옆구리에 류가 이끄는 기병들이 돌격해 들어가자 다시 애처로운 퇴각이 시작됐다.


"죄송합니다."


허망한 표정으로 타키 앗딘이 살라흐앗딘의 앞에 무릎 꿇었다. 살라흐앗딘의 눈에는 수많은 병사 사이에서 날뛰는 리처드가 눈부시게 보였다. 한 궁수의 활에 말이 쓰러졌지만, 곧 일어선 리처드는 도끼를 휘두르며 퇴각하는 병사들의 등을 내려찍고 있었다.


"하지즈, 좋은 말을 두 마리 가져다가 사자왕에게 전해주게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버티던 하지즈는 어쩔 수 없이 술탄의 말 중에 아름다운 두 마리를 골랐다. 차마 자신이 가기는 싫어 병사들을 시켜 리처드에게 보냈다. 돌아온 병사는 리처드의 말을 공손히 술탄에게 전했다.


"감사하다고 합니다."


말과는 달리 리처드는 날개를 달았다는 듯이 사라센 병력을 휘저어버리고는 살라흐앗딘의 진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먼 거리에서 술탄을 바라보며 리처드는 살짝 눈인사로 고마움을 표했다.


마주 보던 살라흐앗딘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는 리처드의 등을 향해 활을 겨누던 병사들이 있었지만 차마 시위를 당기지 못했다. 어서 쏘게 해달라고 술탄의 눈을 바라봤지만, 살라흐앗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항구에 들어왔던 배들이 떠났고 다시 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증원인가? 빠르군."


하지즈의 말에 살라흐앗딘은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오늘 피해도 컸지만 사기도 많이 가라앉았습니다."


"알았네. 진을 뒤로 물리고 협상에 들어가게."


살라흐앗딘은 이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섰다. 천막 앞을 지키던 초병은 살라흐앗딘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신께서 주신 사명을 지키지 못했나이다. 불충한 저를 벌하소서.'


병사들은 천막 주변에 아무도 오지 못하도록 하고는 창대를 힘껏 움켜쥐었다.




***




"어떻게 된 거지? 적이 물러간다."


리처드는 물러서는 적을 보며 당황했다. 적이 몇 번 더 밀어붙이면 곧 무너질 상황이었다. 솔직히 힘든 싸움이었기에 밀려버리면 성안의 요새에서 농성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던 차였다.


"우리 증원 병 때문에 그랬겠지요."


다가온 랜포트가 리처드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랜포트는 손으로 항구에 입항하는 배들을 가리켰다.


"어라? 며칠 걸릴 줄 알았는데 꽤나 빨리 따라잡았구나."


"느림보 녀석들한테 무슨 기대를 하십니까? 병력을 내린 배들을 바다로 내보냈다가 깃발을 바꿔 달고 다시 들어온 겁니다. 빈 배들이지요."


랜포트의 속임수에 사라센군은 거리를 벌리며 진을 물렸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부터 다른 십자군들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이런 일이 있었는지 적은 알아채지 못했다.



***



다시 알 아밀이 리처드와 협상을 하러 왔다. 야파와 살라흐앗딘의 진 가운데에 하얀 천막이 펼쳐졌다.


"술탄께서는 더이상 무의미한 전투는 그만두자 하십니다. 현재 영토를 인정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우리도 예루살렘으로의 진격은 미뤄두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삼 년 동안은 휴전에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시죠."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전의 알 아밀과의 협상에서 바뀐 것은 아스칼론의 지배자로 십자군을 인정한 것 외에는 거의 없었다.


지쳤던 양쪽 모두 이제는 쉴 때가 되었다고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였으니 토를 다는 사람도 없었다. 평소 성지탈환을 목놓아 불렀던 부르고뉴 공작도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 없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술탄께서 예루살렘의 성지순례를 허가했습니다. 십자군들도 무기만 맡기고 들어선다면 순례할 수 있을 것이며 오가는 여행길은 술탄의 이름으로 보호받을 겁니다."


살라흐앗딘이 통 크게 양보한 것이다. 리처드도 그 말에 술탄을 찬양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리고는 잠시 알 아밀과의 대화를 멈추고는 주변의 영주들에게 순번을 정하게 하느라 바빴다. 그만큼 십자군에게는 성지순례가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리처드는 자신의 순번을 정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알 아밀이 궁금해 물었다.


"사자왕께서는 순례하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난, 삼 년 뒤에 순례하겠소이다."


"......."


좋았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서로 마주한 무슬림과 기독교 간에 정적이 흘렀다. 그걸 깬 것은 알 아밀이었다.


"술탄, 아니 형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더이다.“


모두 알 아밀의 입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몇 명은 침을 꿀꺽했을 것이다. 다시 전쟁을 부르짖으면 어찌 될것인가?


”만약에 예루살렘을 잃는다면 당신에게 잃는 게 나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무슬림도 이해할 것이라고. 술탄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형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얘기를 이으셨지요. 그래도 쓰러질 때까지 당신을 막아낼 것이다. 그렇게 말입니다.“


”나도 술탄을 존경하오. 서로 다른 편이 아니었다면 속내를 터놓을 친구가 됐을 것이오.“


류는 리처드의 그런 진중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왕의 품격이었다. 그는 활기차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사내였지만, 지금 그의 뒤로는 커다란 대성당이 보이는듯했고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협상이 끝나고 살라흐앗딘의 군대는 물러나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지평선을 넘어 사라지는 사라센군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쓰러져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의연한척했지만, 그도 사람이 아닌가? 게다가 일원화된 명령계통이 전투에는 큰 힘을 발휘했지만 모든 영주가 리처드의 입만 바라보게 했다. 그것도 큰 부담이었다.


어느 날, 그런 그에게 살라흐앗딘의 직인이 찍힌 서한이 도착했다. 알 아밀과 사전에 조율한 내용이 아랍어와 라틴어로 적혀 있는 양피지였고 네 모서리는 금 조각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하나는 리처드가 가질 것이고, 하나는 직인을 찍어 살라흐앗딘에 돌려보낼 것이었다.


아직 침대에서 일어서지 못한 리처드는 영주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난 지금 글을 읽을 몸이 아니다. 솔직히 내가 어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당신들의 명예를 걸어라.“


둘러선 영주들은 리처드의 말에 귀 기울이며 기다렸다. 목이 잔뜩 쉬어 갈라지는 목소리로 힘겹게 리처드는 말을 마무리했다.


”모두 서한에 적힌 대로 지킬 것을 맹세해라.“


곧이어 영주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맹세하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힘겹게 침대에 기대어있던 리처드는 모든 영주의 맹세가 끝나자 선언했다.


”이제는 평화다. 그동안 수고했다.“


그날 이후로 이틀을 더 사경을 헤매던 리처드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싱싱한 과일과 높은 산에서 거둬들인 눈과 얼음이 담긴 상자가 도착했다. 살라흐앗딘의 선물이었다.


최대한 비밀을 유지하던 리처드의 와병이었다. 그런데 선물꾸러미에는 리처드를 걱정하며 쾌차를 바라는 편지도 함께 있었다. 그걸 본 리처드는 씁쓸하게 웃었다.


”쳇, 겁나는군. 살라흐앗딘.“


조금 녹아 시원해진 얼음물이었다. 물끄러미 손에 쥔 잔을 바라보던 리처드는 한 번에 들이켰다.


작가의말

오늘도 재미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하니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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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 #18. Epilogue > +53 18.10.11 3,332 99 9쪽
20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2 > +12 18.10.11 2,580 65 9쪽
20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6-1 > +12 18.10.11 1,929 67 10쪽
206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2 > +10 18.10.11 1,893 62 9쪽
205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5-1 > +16 18.10.08 2,075 67 11쪽
204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2 > +21 18.10.07 2,105 69 10쪽
203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4-1 > +9 18.10.06 2,088 60 11쪽
»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2> +10 18.10.05 2,106 69 10쪽
201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3-1> +8 18.10.04 2,083 64 10쪽
200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2> +20 18.10.02 2,224 69 10쪽
199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2-1> +8 18.10.01 2,144 67 10쪽
198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2> +14 18.09.30 2,233 75 10쪽
197 < #17. 성전은 이제 끝났다. 1-1 > +10 18.09.29 2,253 64 9쪽
196 < #16. 야파를 향해서 6-2 > +14 18.09.28 2,164 66 11쪽
195 < #16. 야파를 향해서 6-1 > +6 18.09.27 2,168 66 9쪽
194 < #16. 야파를 향해서 5-2 > +16 18.09.25 2,243 65 10쪽
193 < #16. 야파를 향해서 5-1 > +6 18.09.24 2,218 64 10쪽
192 < #16. 야파를 향해서 4-2 > +15 18.09.20 2,367 73 12쪽
191 < #16. 야파를 향해서 4-1 > +8 18.09.18 2,293 68 11쪽
190 < #16. 야파를 향해서 3-2 > +4 18.09.17 2,298 67 11쪽
189 < #16. 야파를 향해서 3-1 > +12 18.09.15 2,480 72 10쪽
188 < #16. 야파를 향해서 2-2 > +17 18.09.14 2,458 67 9쪽
187 < #16. 야파를 향해서 2-1 > +12 18.09.13 2,371 74 11쪽
186 < #16. 야파를 향해서 1-2 > +12 18.09.11 2,391 71 11쪽
185 < #16. 야파를 향해서 1-1 > +21 18.09.10 2,484 6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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