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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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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220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2.02 07:15
조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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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2)

DUMMY

"아니... 말도 안 돼...."


양부모의 대화가 모두 끝이나자마자, 아니, 대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인간 황대근은 즉시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있던 그의 무의식의 밑바닥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건.... 아니잖아...."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으로 떨어지는 인간 황대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단순히 좋지 않은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으니까.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얼굴은 그저, 절망을 품고 있었을 뿐이니까.







(대근건설 - 뇌부서)



와장창—


인간 황대근이 무의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동안, 뇌부서는 난리가 났다.


"어떡해!"

"누구 다친 놈 없어?!"

"유리 조각 빨리 치워! 밟으면 큰일 나!"

"나 몸에 유리 조각 박혔어! 도와줘!"

"WBC를 불러!"

"이뮤니티를 불러!"


뇌부서에 고이 모셔두었던 유리멘탈(glass-mental)의 일부가 나버린 것이다.


"뭐하고 있어! 미생물들! 얼른 치우지 못해?!"

"쟤들이 저걸 어떻게 치워?!"

"그럼 저대로 그냥 내버려 둬?! 그럴 수는 없잖아!"


유리멘탈은 모든 인간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멘탈은 말 그대로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멘탈이 강한 인간들은 보통 강화유리로 만들어져 어지간한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허나 멘탈이 약한 인간들은 강화유리가 아닌 약한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인간들은 제아무리 강화유리로 만든다고 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가시 돋힌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작은 눈빛, 작은 손짓에도 쉽게 부서지곤 하니까, 오히려 강화유리로 만드는 것이 낭비일 수도 있다.


"WBC대장 케어입니다! 누가 다치신 겁니까?!"

"미생물들하고 직원 몇 명 다쳤어요!"

"알겠습니다! 플루, 키! 여기 주위에 있는 유리조각 모두 치워! 장비는 모두 챙겼지?!"


인간 황대근의 유리멘탈은 강화유리로 만들어져있다.

황대근 자체의 정신력이 강하다 보니, 지금까지는 몇 번 금이 가기만 했을 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가 5살이었을 때,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잠깐 금이 간 후로는 10년이 지나고 19살이 될 때까지 그의 정신상태는 멀쩡했다.


아니, 어쩌면 그랬다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쩌면 괜찮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렇지 않다고, 나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착각한 나머지 자신의 유리멘탈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지도 모르는 것이다.

유리멘탈 위에 먼지가 쌓이고, 생활기스가 나고, 녹이 슬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지금까지 잘 견뎌왔으니까, 별 것 아니니까 괜찮겠지.

원래 다들 이런 상처에는 무덤덤하니까, 다들 울고불고 안 하니까, 내가 굳이 아픈 걸 티낼 필요는 없잖아.


"여기, 여기에요 브레인 부장님!"


그런데 알고 보면 괜찮지 않았나봐. 나는 아팠었나봐.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닌가봐.


"브레인 부장님! 여깁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요!"


뇌부서 직원들은 뇌부장 브레인을 불러와 상황을 알렸다.


"이거, 상황이 좋지 않군."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환장할 상황을 보며 브레인은 어딘가로 즉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대근건설 -제1건물 브레인 - 사장실)



"......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합니다만."


브레인은 쉐도우에게 조금 전 뇌부서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렸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유리멘탈의 절반이 모두 부서진 건 물론이고 인간 황대근의 맷돌도 멈추었다고 한다.

맷돌팀의 미생물들과 돌쇠, 그리고 광배가 힘을 합쳐 맷돌을 굴리기 위해 애를 썼으나 소용없었다.


마님의 응원도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금방 황대근 녀석 수능날이 될 텐데.... 맷돌이 멈춰버렸으니 어쩌지요?"


브레인의 말에 쉐도우가 대답했다.


"...다른 부서들은 멀쩡합니까?"


물론, 상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브레인은 쉐도우에게 계속해서 보고를 했다.


"아뇨, 안구팀도 난리가 났습니다. 일단 인간 황대근이 앞을 본다고는 하는데, 눈에 초점이 없다고 합니다."

"이비인후팀도 마찬가지입니다. 팀장엔트에 의하면,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평택에 미군기지 있어서 종종 비행기가 뜨지 않습니까? 그 소리를 못 들을 정도면 대단한거죠."

"감정팀은 사무실의 전원이 모두 나가버렸습니다."


"감정팀녀석들, 지금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앵거가 별 짓을 다 해봤습니다만..... 소용이 없더군요. 인간 황대근의 감정상태는 지금 0에 가까워요."

"유일하게 뇌부서에서 멀쩡한 팀은 중추팀 뿐입니다."

"다른 부서들도 난리가 났습니다. 리비도팀장 지그문트가 보낸 것에 의하면, 그 부위도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군요. 그래서 지그문트가 19금 사진을 몇 장 보내봤다고 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합니다."


"근골격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근골격부서의 모든 팀이 올 스톱 되었어요."

"근육과 운동팀장 프로틴이 말하기를, 현재 근위축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얼른 풀어줘야 하는데,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부서들도 모두 멈췄습니다."

"인간 황대근의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상황은 너무 위험한 상황입니다."



브레인이 보고를 전부 마치자, 쉐도우는 잠시 고민하는 척 하더니 물었다.


"주혁은 어디에 있지?"


그의 물음에 브레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심각한 얘기를 했는데, 대답한다는 게 고작 '주혁이 어디있느냐'라니?


"어.... 글쎄요, 주이사님이 어디 계시는 지는 저도 잘...."


브레인이 쉐도우의 알쏭달쏭한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사장실 문 밖에서는 한 여자가 두 남자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있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야."


그 여자는 바로, 백설하였다.







(대근건설 - 제1건물 브레인 - 사장실)



브레인이 사장실을 빠져나가고, 쉐도우는 홀로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주혁이 어디있는지는 뻔하지. 분명 메모리아 4인방, 그 녀석들 짓일 테니까. 유리멘탈이 박살난 것도 뻔해. 분명히 인간 황대근이 두 번째 기억에 대한 진실을 알아낸 것이겠지.'


슥-


쉐도우는 브레인이 건넨 자료를 훑어보았다.

그 자료는 현재 대근건설이 마비되기 전, 안구팀이나 이비인후팀 등등에게 받은 자료들이었다.

그는 그 자료들을 이용해서, 인간 황대근이 무엇을 들었고 또 무엇을 보았는지 알아내려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알아내는 것은 아주 쉬웠다.


"오, 이런....."


물론, 알아냈다고 해서 유쾌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쉐도우는 알쏭달쏭한 기분을 느꼈다.


'인간 황대근이... 양부모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게 되었구나.'


쉐도우는 생각했다.

인간 황대근이 양부모들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괴로운 표정? 실망한 표정? 배신당한 표정?


'어떤 표정이든 상관 없어. 내가 볼 때 그런 표정을 지어야지, 내가 안 볼 때 지으면 무슨 소용이야?'


그는 인간 황대근이 양부모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고민하는 것은 있었다.


'그 녀석이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어. 하지만 아직 알아서는 곤란해. 때가 아니야. 아직 선물을 주지 못했단 말이야. 벌써부터 이렇게 깜짝 놀라면 어떡하라고? 넌 지금 이래서는 안 돼. 네가 더 깜짝 놀라야 한단 말이야. 벌써 이럼 안 된단 말이다.'

'인간 황대근 이녀석은 은근히 말썽쟁이란 말이야.'

'어디서 어떻게 튈지 모른다고.'

'게다가 이 녀석 친구들.... 정의감은 투철하셔서, 신고 정신도 투철하지.'

'괜히 복잡해 지겠는데, 이거.'


끼익-


쉐도우가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사장실 문이 열리고 주혁이 들어왔다.

사실, 쉐도우는 이미 주혁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페로를 시켜 그의 위치를 알아내도록 시켰으니까.


"주이사님."


쉐도우는 주혁에게 소파에 앉으라는 말도 없이 본론을 이야기했다. 어쩐지, 그의 모습이 영 급해보인다.


"대근건설에는 전원버튼이 있습니다."


주혁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쉐도우가 말했다.


"그 버튼을 누르면, 인간 황대근은 죽습니다."


주혁은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끄덕였는데, 쉐도우의 입에서 '죽는다'는 말이 나오자 어깨를 살짝 떨었다.


"하지만 아직은 죽일 생각이 없어요."


쉐도우가 말했다.


"하지만, 만약 저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 버튼을 누를 계획입니다. 물론 그건 제가 누를 겁니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처절한 눈빛을 보고 싶으니까요."

"저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주혁이 묻자 쉐도우가 대답했다.


"당신은 페로와 함께 그 놈을 처리하십시오."

"누구를 말입니까?"

"피니시, 그리고 황대근."

"피니시....랑 황대근이요? 그 메모리아 황대근?"

"그렇습니다."

"왜 그 둘을 죽이라는 겁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죽이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잠깐, 활동을 못하도록 막으라는 소리입니다."

"그, 그렇군요...!"

"그 둘은 각각 인간 황대근의 이성이자 무의식입니다."

"그렇지요.

"일단 인간 황대근이 수능을 제대로 치를 때까지, 인간 황대근이 다시 행복을 느낄때까지만 활동을 중지시키도록 하세요. 그런 다음, 제가 인간 황대근에게 인형 선물을 줄 때, 그때 다시 활동을 재개토록 하란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저도 역시.... 준비를 슬슬 해야겠지요. 세뇌작업이라고나 할까요? 세간에서는 이 것을 최면술이라고도 부른다지요. 당신과 페로가 이 작업을 완벽히 하리라는 희망은 솔직히 없으니까, 제가 일단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그, 그럼... 왜 저한테 그걸 하라고....?"


쉐도우가 씨익 웃었다.


"밥값은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경기도 평택시 - H아파트)



11월 4일 금요일, 인간 황대근은 식탁에 앉아있었다.


"음.... 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멍했다. 눈을 뜨고 있기는 한데, 감은 것 같기도 했다.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죽은 것 같기도 했다.


"음.... 음...."


그는 아침을 먹고 있었는데, 코로 먹는 것인지, 귀로 먹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학교... 가.... 학ㄱ.... 가야...."


그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조금도 더럽워지지 않은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은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바닥에 있는 통통한 책가방을 한 손으로 들어올렸다.


"음.... 음...."


당연하겠지만, 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멍 때리고, 입은 약간 벌어져 있고, 어딘가 맹해보이고, 기력은 없어 보인다.


"대근아!"


황대근이 책가방을 등에 메고, 흐트러진 교복을 입은 채 현관문을 나서려 할 때였다.


"대근아! 학교 가니?"


황대근의 양아버지가 현관문을 나서려는 그를 불렀다.

양아버지의 목소리에, 황대근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어...."


황대근은 양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하려 입을 벌렸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연기하려 노력했다.

허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대답하려 애를 썼으나, 어쩐지 바람빠지는 소리만 튀어나올 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근아."


양아버지가 황대근에게 다가왔다.


"대근아, 대답해야지."


재차 묻는 양아버지의 말에 황대근의 두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대근아."


양아버지가 다시 말을 걸었고, 그제서야 황대근은 겨우 입 밖으로 말 한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네?"


그가 대답하자, 양아버지가 두 눈을 활처럼 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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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외전(完) 22.02.05 53 0 14쪽
299 수능전야 22.02.05 37 1 14쪽
298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3) 22.02.05 22 1 12쪽
297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 22.02.04 17 1 12쪽
296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1) 22.02.04 19 1 11쪽
295 등잔 밑이 어둡다 (2) 22.02.03 16 1 12쪽
294 등잔 밑이 어둡다 (1) 22.02.03 15 1 12쪽
293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3) 22.02.02 16 1 12쪽
»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2) 22.02.02 15 1 12쪽
291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1) 22.02.01 17 1 12쪽
290 뒷조사 (3) 22.02.01 16 1 11쪽
289 뒷조사 (2) 22.01.31 17 1 11쪽
288 뒷조사 (1) 22.01.31 15 1 11쪽
287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8) 22.01.30 15 1 11쪽
286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7) 22.01.30 19 1 11쪽
285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6) 22.01.29 16 1 11쪽
284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5) 22.01.29 14 1 11쪽
283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4) 22.01.28 16 1 13쪽
282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3) 22.01.28 14 1 11쪽
281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2) 22.01.27 17 1 10쪽
280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1) 22.01.27 16 1 12쪽
279 공범들 (4) 22.01.26 18 1 11쪽
278 공범들 (3) 22.01.26 15 1 12쪽
277 공범들 (2) 22.01.25 14 1 12쪽
276 공범들 (1) 22.01.25 17 1 12쪽
275 카인과 아벨 (3) 22.01.24 15 1 10쪽
274 카인과 아벨 (2) 22.01.24 14 1 12쪽
273 카인과 아벨 (1) 22.01.23 14 1 12쪽
272 J아파트 살인사건의 전말 22.01.23 18 1 10쪽
271 점점 부서지는 왕국의 벽 22.01.22 1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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