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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힘법사의 서재입니다

내 몸 안의 블랙기업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올힘법사
작품등록일 :
2021.05.05 08:35
최근연재일 :
2022.02.05 18:40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13,216
추천수 :
327
글자수 :
1,661,802

작성
22.01.26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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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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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공범들 (4)

DUMMY

피니시는 망각의 호수에 있었다.


"고요하구만."


그의 말대로, 망가의 호수는 고요하고 또 조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놀라울 건 없다. 망각의 호수는 늘 이랬으니까.

망각은 늘 조용히, 우리를 덮쳤으니까.


저벅저벅-


피니시는 호수의 물가 가까이 걸어갔다.

다만 발은 담그지 않았다. 발가락 하나라도 잘못 담갔다가는, 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리콜?"


조용히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감상하던 피니시는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호수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에 리콜이 있었던 것이다.


"리콜!"


피니시는 호수가까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리콜이 소리쳤다.


"멈춰요!"


리콜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그리고 단호했다.

평소대로라면 리콜이 소리친다고 해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을 피니시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피니시는 리콜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피니시팀장님. 호수에 빠지면 끝장이에요. 그런 건 잘 알고 계시잖아요?"


물론 피니시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리콜."

"말씀하세요."

"두 번째 기억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피니시는 두 번째 기억이 무엇인지 몰랐다. 헨리가 그것에 대해 알려준 적이 없으니까.


"....."


피니시가 재차 물었지만, 리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답답함을 참지 못한 피니시가 그를 설득했다.

물론, 설득력 있는 설득은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상당히 급해보였다.


"리콜. 나는 지금 급해. 13년 전의 범인도 나타났고, 지금 상황이 정말 이상하다고."

"팀장님."

"진심이야. 너무 급하단 말이야."

"팀장님!"


리콜이 소리치자, 횡설수설하던 피니시는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본 리콜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 기억, 알고 있어요. 여기 망각의 호수에는 그런 기억들이 대다수니까."

"그런 기억들?"

"인간들이 잊고자 하는 기억이나, 자신의 의지가 아닌 무언가에 잊혀진 기억들이 모두 호수 밑바닥에 있어요. 그리고 저는 한동안 이 호수를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죠."


순간, 피니시는 의문이 들었다.


"잠깐만 리콜. 그런데 너는 왜 날 기억하고 있는 거야?"


망각의 호수에 빠졌다면 기억을 잃어야 정상이다. 헌데 리콜은 멀쩡했다.


"피니시팀장님."


리콜이 재미있다는 듯 살며시 웃음을 띄었다.


"제 이름이 뭐였죠?"

"....뭐?"

"어서요. 제 이름이 뭐죠?"

".....리콜(recall)?"

"그래요, 리콜. 망각과 회상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이에요. 저는 망각의 호수에 휘말리지 않아요."


바로 그 때, 피니시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리콜.... 저 녀석이라면 13년 전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쉐도우도...'


피니시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모른 채, 리콜이 말했다.


"그럼 알려드릴게요. 두 번째 기억에 관한 것 말씀이시죠?"


그러자 피니시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두 번째 기억은 바로, 공범이 있는데 그 공범은....."


리콜이 말을 다 마치기 전이었다.


웅웅웅—


호수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잔잔했던 호수의 표면은 사나운 표범처럼 그만 리콜을 잡아먹고 말았다.


"리콜!!"


리콜이 호수 밑바닥으로 끌려가고, 무언가 호수 위로 올라왔다.

그것들은 바로 나무들이었다. 이 나무들은 황대근이 얼마 전 무의식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나무들인데, 피니시는 나무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허나, 피니시는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무들은 보통 나무들이 아니라는 것을.


'방어기제 같은 건가?'


피니시의 생각은 절반만 맞은 것이다.

현재 인간 황대근의 무의식 중의 일부인 망각의 호수는, 범인의 그림자인 쉐도우가 차지한 상태다.

그러니, 방어기제는 맞지만 이 방어기제는 쉐도우의 방어기제인 것이다.


"젠자아앙!"


나뭇가지들의 횡포가 점차 격해졌고, 결국 피니시는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망각의 호수를 겨우 빠져나온 피니시는 즉시 메모리아부서로 달려갔다.

마침 컨트롤 부장은 사무실에 없었고, 그곳에는 오직 4인방 뿐이었다.


"이렇게 된 겁니다."


피니시가 망각의 호수에서 있었던 일을 4인방에 모두 설명하자, 4인방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니시가 마지막에 보았던 그 나무들은 분명, 인간 황대근이 무의식에서 보았던 그 나무들일 거야.'


황대근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지금 현재, 인간 황대근의 몸 속은 범인에게 점점 지배당하고 있는 거야. 마치 독처럼, 몸 곳곳에 퍼지고 있는 거지...'


이러다가는 대근건설의 범인의 손아귀에 완전히 넘어가게 될 것이다.

물론 쉐도우가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기는 하지만, 대근건설을 완전히 손에 넣지는 않았다.


"13년 전 범인을 얼른 잡자구요!"


메모리가 패기있게 소리쳤으나, 사무실에 있던 황대근을 포함한 다른 직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범인을 잡는 것은 좋다. 헌데, 무슨 수로 잡는가?

증거가 없지 않는가? 이미 사건은 종결되었는데!







(경기도 평택시 - H고등학교)


10월 3일 월요일. 수능이 50일도 남지 않은 지금, 황대근은 바빴다. 긴장도 됐다.

아직 여름인 줄로만 알았는데 벌써 10월이고, 중간고사도 금방 지나갈 터였다.


"중간고사 지나면 금방 수능인데."


황대근은 헷갈리는 개념을 정리하고, 부족한 과목을 메꾸고, 아는 건 다시 한 번 더 보며 수능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나 봤는지, 낡다 못해 찢어진 문제집들이 그의 책상에 잔뜩 올려져 있었다.

풀고 또 풀고, 지웠다가 다시 풀고, 헷갈리면 열 번, 스무 번, 백 번도 다시 보았다.


딩동댕동—


그때, 점심시간 종이 울렸다.


황대근은 낡아빠진 문제집들을 책상과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


보려고 본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그의 눈에 안익준이 들어왔다.

그는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책상 위에 축 늘어져 잠을 자고 있었다.

어쩌면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자는 척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여간 이상한 놈이야.'


안익준은 저번에 황대근에 대한 살인 미수를 저지를 그 후부터 행동이 영 이상했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항상 겁먹은 모습이었다.

어제였나, 그제였나. 황대근은 안익준에게 한 번 말을 건 적이 있었다.


그때, 안익준의 반응은 제법 이상했다.


'ㅁ, 뭐?! 난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안익준이 저렇든 이렇든 그가 굳이 상관할 바는 아니다.

지금은 배고픈 자신의 배를 배부르게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니까.


"오늘 반찬은 제육이구만. 아주 좋군."


약 10분 뒤, 황대근은 천강우와 함께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백경민과 이시연은 각자 대회 준비로 너무 바빴기에 학교에 없었다.


"그게 말이 되나?"


밥을 먹으면서, 황대근은 천강우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꾸었던 꿈을 들려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천강우는 믿기 어렵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아니, 여자가 범인일 수도 있다고? 그게 말이 되냐?"







(경기도 평택시 - 구영원)



그날 저녁, 영부는 영부실에 있었다. 그는 종이 하나를 나무책상에 펼쳐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우선은... 이렇게 하고, 또 저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종류의 고민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에는 나 혼자 해야 하는 건가? 이러면 곤란한데."


왜 곤란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러다 잘못되어서 들키기라도 하면... 내가 다 뒤집어쓰는 거잖아? 억울하게. 누군가 나를 도와줄 놈이 필요한데."


영부가 무엇을 준비하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 좋지 않은 일인 것이 분명하다.


"사람이 요즘 없으니.... 죄다 경찰서로 끌려가서는. 쯧!"


끼이익—


그때, 영부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깜짝 놀란 영부는 들고 있던 종이를 재빨리 치워버렸다.


"오늘은 날이 좀 쓸쓸하군."


영부실에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검은 복면의 남자였다.

그런 남자의 얼굴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노려보며, 영부가 소리쳤다.


"또 어딜 갔다 와?!"


남자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늘 가는 곳이지 뭐, 새삼스럽게."

"이래서 네가 안 되는 거야."


영부가 말했다.


"너는 내가 너에게 지파장의 자리를 줬으면 감사하면서 구영원에 충실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남자가 되물었다.


"나 정도면 충실한 거 아니냐?"

"아니, 한참 부족해."

"재밌군, 내가 너에게 했던 건 모두 잊었나? 누가 영부의 자리에 널 앉혔지?"

"네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안광윤하고 조작해준 건 나였잖아!"

"아~ 정체를 숨기고 사는 것도 쉬운 건 아냐. 늘 피곤하지."

"닥쳐, 너는 지금까지 편하게 살았잖아. 솔직히 네가 하는 그 일이 뭐가 힘들어? 제 시간에 잠도 잘 수 있잖아. 하지만 나는 아냐. 영부의 자리가 얼마나 고달픈지 넌 몰라."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내가 과거에 누구였는지 모르는가 보군."

"......"

"나 역시 영부였다."


남자의 반격에 영부의 표정은 오그라들고 말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그...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걸 잊지 말라고."


말을 마친 남자는 영부실을 나가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그러다 그는 손님용 소파 앞에 있는 탁자 위에 놓여진 사탕 바구니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딸기맛 사탕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준비한 거지? 나를 위한 건가?"


남자가 딸기맛 막대사탕 하나를 입에 물며 영부에게 말했다.


"아주 고마워. 요즘 담배 끊으려고 노력 중인데, 사탕이라도 먹어야겠어."


쾅-


입에 사탕을 문 남자가 영부실을 나가자마자 영부는 굳게 닫힌 문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씨발!'


혹시라도 문 바로 뒤에 남자가 있을까 걱정된 영부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쌍욕을 애써 도로 집어넣어야 했다.


"으음...."


그래도 불안했는지, 영부는 문에 귀를 가까이 대어보았다.


"아무래도 간 것 같지?"


남자가 정말로 떠난 것 같다.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다.


"하아, 저 새끼만 왔다가면 내 가슴이 철렁한다니까."


털썩-


영부가 손님용 소파에 털썩 앉으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사람이 없어, 사람이...."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이번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해 희생할 놈이 필요하다.

헌데 문제는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저 싸가지 없는 남자는 당연히 날 돕지 않을 것이다. 외려 비웃을 것이다.


'어떻게 하지? 잘못하면 내가 위험해지는데....'


벌떡-


다급한 표정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 생각, 생각... 생각을 해 보자! 분명히 좋은 방법이... 아!"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숙인 채 영부실을 빙빙 돌던 영부는 좋은 생각이라도 났는지 고개를 쳐들었다.


"바로 그거야! 난 역시 똑똑한 놈이라니까!"


영부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축 처진 엉덩이를 이뻐죽겠다는 듯이 톡톡 치며 소리쳤다.


"그 놈이면 충분해! 그 놈이면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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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외전(完) 22.02.05 53 0 14쪽
299 수능전야 22.02.05 37 1 14쪽
298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3) 22.02.05 22 1 12쪽
297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2) 22.02.04 17 1 12쪽
296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1) 22.02.04 18 1 11쪽
295 등잔 밑이 어둡다 (2) 22.02.03 16 1 12쪽
294 등잔 밑이 어둡다 (1) 22.02.03 15 1 12쪽
293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3) 22.02.02 16 1 12쪽
292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2) 22.02.02 14 1 12쪽
291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1) 22.02.01 17 1 12쪽
290 뒷조사 (3) 22.02.01 16 1 11쪽
289 뒷조사 (2) 22.01.31 17 1 11쪽
288 뒷조사 (1) 22.01.31 15 1 11쪽
287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8) 22.01.30 14 1 11쪽
286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7) 22.01.30 19 1 11쪽
285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6) 22.01.29 16 1 11쪽
284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5) 22.01.29 14 1 11쪽
283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4) 22.01.28 16 1 13쪽
282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3) 22.01.28 14 1 11쪽
281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2) 22.01.27 17 1 10쪽
280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1) 22.01.27 16 1 12쪽
» 공범들 (4) 22.01.26 18 1 11쪽
278 공범들 (3) 22.01.26 15 1 12쪽
277 공범들 (2) 22.01.25 14 1 12쪽
276 공범들 (1) 22.01.25 16 1 12쪽
275 카인과 아벨 (3) 22.01.24 15 1 10쪽
274 카인과 아벨 (2) 22.01.24 14 1 12쪽
273 카인과 아벨 (1) 22.01.23 14 1 12쪽
272 J아파트 살인사건의 전말 22.01.23 18 1 10쪽
271 점점 부서지는 왕국의 벽 22.01.22 17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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