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화 공항에서 생긴 일 (1)
정신을 차리신 어머니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오늘 탑승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공항으로 달렸다. 부드럽게 노면을 주행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많아졌나 봐요?”
같이 동행하던 이하루가 옆에서 물었다.
그 질문에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요. 제가 너무 생각 없이 살아왔나 봐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뭘 모르겠어요. 그냥 현성 씨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죠. 너무 미안한 마음 갖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그런 건.”
“정말 그럴까요? 혹시 절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요?”
“어머니란 존재가 어떻게 자기 자식을 원망하겠어요. 무사히 잘 돌아온 것만으로도 좋아하실 거예요, 분명!”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정말 고마우면 말로만 하는 거 아니죠?”
이하루가 장난 끼 많은 아이처럼 웃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밥이라도 살 게요.”
“그거 좋죠!”
인천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어째서 인지 마음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다.
인천 공항의 모습이 보였다. 바깥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폭발이 보였다.
불꽃이 올라오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무, 무슨 일이!”
운전석에서도 그걸 보았고, 짧은 탄식이 나왔다.
“잠시 차를 멈춰 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인천공항을 잇는 육교 위에서 어떻게 멈추냐고 할 수 있지만, 공항으로 가는 차는 우리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시려구요?”
이하루가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뛰어서 갈 겁니다.”
“아? 뛰어서요?”
“그게 더 빠릅니다.”
저 폭발로 인해 어머니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한 시가 급하다.
두 다리에 힘을 불끈 주었다. 한 발자국 도약했을 때 이미 가속도는 최대였다. 그 속도를 일정하게 쭉 유지하면서 공항과 가까워졌다.
공항에 사람도 없었다. 그저 오고 가는 인원 몇 명이 전부일뿐이다. 내가 알던 공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이질감이 들기도 했다.
폭발이 일어난 근원지를 바로 찾게 되었고 거기에는 검은 가면을 쓴 사들이 손님을 겁박하면서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느껴졌다.
“······.”
일단 존재감을 감추고 그들이 원하는 걸 찾는 걸 한 번 지켜보았다.
아직 어머니는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방금 전의 폭발은 다른 능력자와 그 검은 가면과 전투에서 일어난 폭발인 것 같았다.
결국 저항한 남자는 목숨을 잃고 공항 구석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그들은 손님들의 얼굴을 아주 꼼꼼하게 살피며 신중하게 행동했다.
그러면서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었는데, 조금 정신을 집중해서 들으니 저 말이 중국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중국이 한국에서 왜···?’
라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원하는 걸 찾은 그들이 거칠게 어린 여자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낚아챘다.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낚아챈 가면의 남자가 그녀를 아주 거칠게 다뤘다.
그리고 그 아이 또한 강하게 저항하려 해 봐도 성인 남성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하아···.”
어쩔 수 없이 가면의 남자들이 의식할 수 있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가 뒤에서 등장하자 깜짝 놀란 그들이 단숨에 거리를 벌리고 나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뭐라 말을 꺼내긴 했지만, 피차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지, 지켜만 보지 말고 좀 도와줘!”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이의 입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좀 어눌한 한국말이 저 아이 역시 중국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곧 검은 가면의 사내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를 둘러싼 그들은 내가 위험 요소인 듯 천천히 옭아맸다.
“너희들 나라에서나 그러지 왜 우리나라까지 기어 들어와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냐···”
그 말이 시작이 되었다. 나를 천천히 옭아매던 그들은 교묘하게 진을 짜 나와 싸웠다.
앞에서 공격을 막으면 뒤에서 공격이 날아오고 그걸 피해내면, 이제 또 옆 아니면 앞에서 교묘한 순간에 공격을 강행한다.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서로 합격에 대한 이해가 높았고, 자신의 손발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사람들이 왜 저 어린 여자 아이를 겁박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현성 씨!”
뒤늦게 공항을 들어온 이하루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왔다.
그녀 또한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잠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곧 상황을 이해한 듯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거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중국인인 것 같은데, 저들이 저 여자 아이를 잡아가려는 것 같더라구요.”
그때 중국인이 뭐라 하였다. 물론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녀는 다른 것 같다.
“뭐라 하는지 알겠나요?”
“우리들의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데요?”
“한국에서 여자 아이를 납치하는 건 아주 흉악한 범죄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중국어로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답변이 들려왔다.
“지금은 뭐라 하나요?”
“우리는 그저 맡은 과업에 충실할 뿐이다라고 하는데요?”
“맡은 과업? 그걸 조금 더 자세히 물어봐 줄 수 있을까요?”
이번 에도 답변이 돌아왔다.
“깊게 알려고 하지 말라 하는 데요? 그런데 현성 씨 이 말을 듣고 물러날 생각은 아니었겠죠?”
“물론 아니죠. 시간을 벌기만 하면 될 뿐입니다.”
그 순간, 바람이 슥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머리 채를 잡고 있던 검은 가면의 남자가 몸이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아이를 업고 우리가 있는 쪽에 섰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래?”
윤지혜였다.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그녀의 힘을 빌렸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았고, 나는 잠시 시간을 벌어주었다.
“어머니는? 지금 오는 비행기. 한 30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그렇구나. 어머니 심장 놀라시지 않게 정리해야 되는 이유도 생겼구나.”
“어이가 없네···”
윤지혜가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자, 그럼 얼른 마무리나 해볼까? 30분 이면 충분하잖아.”
자신들을 업신여기는 걸 눈치챈 그들이 분개하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진을 아무리 잘 짠다고 하여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곧바로 힘을 개방했다. 넘쳐흐르는 힘을 그대로 방사하였다. 순간적으로 휘몰아친 힘에 의해 몸이 굳은 그들의 순간을 빼앗았다.
그 시간을 빼앗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선이 깊게 그어졌다.
순식간에 무기가 사라진 그들은 어리둥절하며 반이 잘린 무기를 멍한 표정으로 봤다.
“돌아가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멍하니 그걸 바라보던 이하루가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곧이어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왕위파와 정말 척을 질 생각인가?’라고 말하는데요?”
“척을 질 생각이었다면, 진작 네놈들 목숨은 이 세상 것이 아니라고 전해주세요.”
그녀의 말을 전달받은 그들은 곧 화를 낼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내 말의 뜻을 알아들었으니, 화를 내진 못하였다.
거짓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지금은 우리가 물러나 주겠다고 합니다. 다만 그 아이의 신변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데요?”
“놓고 가라고 하세요.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그녀는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으로 내 말을 전달해 주었다.
그들의 모습에 주먹을 불끈 쥐고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억울할 것 없다. 이미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시대다. 법이란 것도 없으니 힘의 척도가 곧 법인 세상이다.
주먹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만약 내가 이들 보다 힘이 약했더라면, 이런 상황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역시 주먹을 꽉 쥔 채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볼 뿐 그다음 행동을 이어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그녀를 놓고 자신이 타고 왔던 비행기로 돌아갔다.
“원래 저런 건 침입 아닙니까?”
“세상이 세상인데요 뭐···”
아직 정상적인 세상이 아니니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앞으로 있을 일도 있는 터라 더는 생각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았다.
“···고, 고맙다.”
그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일어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조금 건방진 말투였지만, 몸에서 귀티가 흐르는 걸 보아 그쪽에서 꽤나 잘 나가는 딸 같아 보였다.
“이름은?”
“류용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해서 다행이었다.
“하루 씨 저는 여기서 어머니를 봬야 하니까 여명으로 돌아가서 저 아이를 쉬게 해 줄 수 있나요?”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괜찮아요.”
이하루는 그녀를 데리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뭔가 저항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고분고분 그녀의 말을 잘 따라주는 것 같았다.
“이제 곧이지?”
“그렇지. 그보다 저 녀석들은 누구야?”
오래만의 동생 얼굴이다.
동생은 그전보다 더 날카롭게 날이 벼려 있는 모습이었다.
완벽한 암살자에 가까워진 정도다.
“모르지.”
“그냥 어머니 오시면 거슬릴 것 같아서 치운 게 전부야.”
“왕위파라··· 조금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차차 하자고. 너는 어차피 신성 길드 소속이라 신경 쓸 일이나 있나?”
동생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나를 찔렀다. 애써 그 눈빛을 무시하고 다음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내리고 그 먼 거리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전보다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눈빛만큼은 건강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동생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뭐 하고 있어? 엄마 무거워하는 거 안 보이냐?”
동생이 눈치를 주었다. 그 뜻을 알아듣고 어머니가 있는 곁으로 달려갔다.
빠르게 거리가 좁혀지고 어머니도 나를 알아볼 수 있는 거리가 되자 감격에 젖으셨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힘껏 안아주었다.
“저 왔어요 어머니.”
“······.”
어머니는 말없이 나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고맙다···”
“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 고마워···”
“고맙긴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 고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고생은 무슨···”
어머니의 희고 흰 머리카락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20대의 몸 그대로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의 힘은 무서울 만큼 크게 다가왔다.
“이거 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고맙구나. 아들은 그 전이나 변한 게 없네. 엄마는 좀 많이 늙었지···?”
“그럴 리가요? 그 모습 그대로인데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제가 가서 혼내줘야겠네요.”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을 보이자 어머니가 작게 웃으시면서 내 주먹 쥔 팔을 내려놓았다.
“아들, 그렇게 힘만 사용하면 안 돼.”
“알겠어요. 빨리 돌아가요. 지혜도 기다리고 있고, 오늘 저녁은 셋이서 맛있는 걸 먹도록 해요.”
“그거 좋겠구나. 뭐가 좋으려나? 아무튼 엄마가 좀 고민해 보고! 맛있는 걸 만들어 주도록 할게!”
“오랜만에 집밥인데요? 정말 기대 돼요.”
저 앞에서 윤지혜가 팔짱을 끼며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옅은 웃음과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얼른 오라고! 해지게 생겼어!”
“어이쿠! 동생이 얼른 오라네, 어머니 얼른 가요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이 세상만 이렇지 않았더라면,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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