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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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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46
추천수 :
217
글자수 :
432,617

작성
23.04.1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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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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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066화 파이로스 (4)

DUMMY

드래곤은 죽었다.

불게 물든 하늘도 이젠 더는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끝난 거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오로지 긴장감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수명을 버리면서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현성 씨···!”


저 멀리서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하루의 표정은 가까워지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분노로 물들었던 주도진 또한 죄책감을 가득 안은 눈빛으로 발걸음을 무겁게 떼고 있는 중이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줘야겠다.


“괜찮아요?”

“보시다시피 너무 멀쩡합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걸 빼면 말이죠,”

“너무 무모하잖아요··· 드래곤이랑 싸우는 거.”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저는 드래곤 슬레이어니까요.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저뿐일 겁니다.”

“그것도 그렇네요···”


한숨 쉬며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이하루는 못 말리겠다는 미소로 나를 보았다.

사람들 틈 사이로 세리아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도 얼핏 보였다.

역시 보통 사람들과 다르긴 다르다.


“괜찮나요? 현성?”


그녀가 다 도착하고 나서 물었다.


“보시다시피 괜찮습니다.”

“드래곤의 권능은 일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대가를 치러야 하죠.”

“그냥 소소하게 대가를 치렀습니다.”


세리아가 궁금한 듯 물었지만, 그들에게 내가 건넨 조건을 말해주기 싫었다.

말해주면 화낼 것이 분명했고, 또한 이하루가 어떤 표정으로 날 볼지 그게 가장 두려웠다.

숨길 수 있다면 최대한 숨기고 싶다.


“어쨌든 다 끝난 일 아닌가요? 드래곤은 죽었고··· 그다음 드래곤을 또 잡아야죠.”

“그거에 관해 좋은 소식이 있어요. 한동안은 잠잠할 거예요. 현성 씨가 파이로스를 잡은 덕분에 그들도 뭔가 잘못 됐다는 걸 느낀 거겠죠.”


뭔가 잘못 됐다는 걸 느꼈다라···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시간을 번 것이다. 능력을 가다듬는다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돌아가도록 하죠···”


드래곤과 싸운 흔적뿐 아니라 그의 권능에 꾀하여 싸운 자들의 자리는 상당히 처참했다.

코를 찌르는 짙은 피 냄새와 살이 익으면서 나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이곳에 처참한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었다.


“···도사는?”

“저곳에서 죽은 척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비위도 좋았다.

시체들 틈 사이로 저렇게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그에게 다가가 발로 그의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가까이서 보니 살아있다는 걸 숨소리로 알 수 있었다.


“안 죽은 거 다 아니까. 얼른 일어나는 게 좋을 거야.”

“넵···!”


그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드래곤을 직접 상대했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는 악마 계약자, 자기 처지를 알면 더욱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갑시다.”

“볼 일은 다 끝난 건가요?”

“보시다시피. 그보다 도사, 당신은 왜 정신 공격에 아무렇지 않았습니까?”

“아, 그게··· 악마의 권능에 힘을 업은 덕분이죠. 하하···”

“그렇습니까? 죽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죠?”


도사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는 이만 한국으로 돌아갈 배를 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사는 우리의 시야 밖으로 후다닥 사라졌다.


“저···”


주동진은 우물쭈물하며 뭔가 말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주 팀장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니잖아요.”

“마음이 뭐랄까··· 제 본능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행동하고 움직일수록 제 가슴은 마구 뛰었고··· 흥분으로 가득 찼습니다. 제가 제가 아닌 것 같은 게 아니라··· 그 모습이 제 본모습···”

“주 팀장님.”


자책하는 주동진의 말을 끊었다.


“그게 바로 이 녀석이 노리는 겁니다. 사람에게 분노라는 감정이 없나요? 모두 숨 죽이며 살아가는 거죠. 이 녀석은 그 분노라는 감정을 폭주시킨 겁니다. 마음속에 갖고 있는 분노 또한 주 팀장님 것인데, 당연히 본모습이 그럴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죠.”


주동진은 내 말에 뭔가 느낀 것이 있는지 한결 가벼워진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어려운 싸움이 계속될 건데, 그렇게 의기소침하면 안 되죠.”


파이로스 하나 잡았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들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고, 한 계단 올라선 것이다.


“여깁니다! 여기에 배가 있습니다!”


그때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도사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배를 찾았다고 소리쳤다.


“지체할 것도 없으니 바로 가볼까요?”


한인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이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행 모두 배에 태우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잠시 배에서 내려 파이로스의 마력을 손 끝에 모았다.

내 손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어나며, 이곳에 남아있는 시체들을 모조리 태워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일본에서 부산으로 또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험난하진 않았지만, 일행 모두 피곤에 지친 얼굴이었다.

당장 들어가서 쉬고 싶었지만, 세리아가 내가 필요하다며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곳에는 세리아를 구할 때 함께 있었던 메이드도 같이 있었다.


“이름이···”

“이리스 입니다.”


그녀가 차갑게 대답했다. 내게 불만이 있는 표정이었는데, 말을 꺼내진 않았다.

나도 뭐가 불만이냐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와 세리아를 번갈아 가면서 보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녀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저를 여기까지 왜 부른 겁니까?”

“대 드래곤 병기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현성의 마력이 필요해요.”

“제 마력이요?”

“발락스의 시간을 되돌리는 권능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렇군요.”


완성된 대 드래곤 병기는 완벽할 정도로 매끈한 자태를 뽐냈다.

에너지를 축약시킨 얇은 탄으로 쏘아 보내는 것으로 이동에도 용이했다. 포신이 긴 것으로 보아 명중률에 관해 신경을 더욱 쓴 것으로 보였다.


“발락스의 권능을 담아 그 권능의 힘이 담긴 탄은 필히 드래곤에게 치명적인 공격이 될 거예요.”

“좋은 무기네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네 발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을 거예요···”

“어째서죠?”


권능의 대가를 잘 모르는 세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웬만하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다짐을 바로 깨버릴 줄은 몰랐다.


“발락스의 권능을 사용하는 대가는 제 수명입니다.”

“수명···”


세리아는 늘 그랬던 대로 무표정이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놀란 것 같아 보였다.


“네, 제 수명을 깎아서 만들 수밖에 없어요. 이번에 파이로스와 싸울 때 20년을 깎았으니 앞으로 남은 것 정도는 60년 정도··· 그리고 남은 것은 네 마리니 15년씩 나눠서 사용해야겠네요.”

“이 이야기는 없는 걸로 해요.”


세리아는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세리아 저는 괜찮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을 이 나라에 열쇠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사실을 변함없어요.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수명을 깎으면서 이곳을 지킬 이유가 있나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소중한 것들이 이곳에 남아있으니까요. 별 다른 이유는 없어요. 가족이 있고 소중한 친구가 있고··· 또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차피 드래곤과 싸우다 죽을 거라면··· 최소한의 수명만 남겨 둘 겁니다. 그게 옳은 방법이에요··· 괜히 기껏 만든 무기만 아깝잖아요.”


세리아는 나를 보며 답답한 눈치였다.


“세상을 구한 다음에··· 당신이 없는 세상에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까···? 이곳에 남겨진 사람들이···”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죠.”


웃으면서 넘어가 달라고 속으로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쉬운 마음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니까. 더는 내 마음을 흔들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요···”


다행히 내 바람대로 그녀는 더 이상 내 마음을 흔들지 않았다.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차분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기계 장치에 콩알만 한 탄환이 하나 있었다. 세리아는 어쩔 수 없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듯한 모습이었다.


“손바닥을 저 기계 장치에 대주세요. 그리고 권능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으로 손 끝에 힘을 모아줘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딱 손바닥 모양의 홈이 파진 곳에 손을 갖다 댔다. 그 홈은 내 손보다 살짝 컸는데, 장치가 스스로 움직여 내 손의 크기에 알맞게 맞추었다.

아무래도 범용성을 위해서 이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입니다···”


앞으로 세 번···

수명이 사라지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

노화가 빨리 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정해진 수명을 다 사용하면 심장이 멈추는 것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전자는 아닌 것 같았다. 흰머리도 없었고 관절도 아프지 않았다.

그냥 내 수명이 다하는 것으로 심장이 멈추는 게 아닐까 싶었다.


“됐습니다.”

“15년 치 넣었습니다.”


발락스의 힘은 탄환을 동그랗게 둘러싸 감싸 보는 이들로 하여금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그 이후로 세 번의 작업을 거쳐, 모든 작업이 끝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홈이 조금 벌어지며 끝났다는 것을 알렸다.

손을 빼는데, 순간 어지러워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윤현성 씨···”


세리아가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그리고 이 사실은 일행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제 가족들 까지요.”

“알겠습니다···”


무표정한 세리아의 낯비에도 그늘이 진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남은 수명은···”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앞으로 3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3년 정도면 싸움을 마무리 질 수 있지 않을까요?”


세이라는 마무리되는 싸움 보다도 내 남은 수명에 대해 집중했다.

그녀의 얼굴 가까이 손가락을 튕기며 자기 만의 세상에 빠진 그녀를 빼왔다.


“세리아 저는 괜찮아요. 이길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할 겁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주 팀장님도 하루 씨도. 모두 저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미안해요··· 너무 가혹한 짐을 맡긴 것 같아서···”


지금까지 표정 변화가 없던 세리아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가만히 손을 올려두었다.


“괜찮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지 구상해 보도록 하죠. 이제 저한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어요. 계획을 짜야합니다.”


울 것 같은 그녀에게서 뒤돌았다.

나 또한 역시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녀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내 마음 역시 그렇다. 마음먹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다.

가족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시간을 혼동해 착각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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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063화 파이로스 (1) 23.04.09 36 2 12쪽
62 062화 일본으로 (3) 23.04.08 39 2 12쪽
61 061화 일본으로 (2) 23.04.07 45 2 11쪽
60 060화 일본으로 (1) 23.04.06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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