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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범 님의 서재입니다.

대환장의 아포칼립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조르범
작품등록일 :
2023.02.05 23:42
최근연재일 :
2023.04.28 19:00
연재수 :
82 회
조회수 :
11,115
추천수 :
217
글자수 :
432,617

작성
23.04.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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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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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74화 위기는 곧 기회로 (4)

DUMMY

“이곳에 너무 자주 오게 되는데···”


이번에도 발락스가 나를 부른 줄 알았다. 아무것도 없는 심상 공간에서 정처 없이 떠돌면서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은 적이 없었다. 걸으면서 바락스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사실 이렇게 심상 공간에 떨어지는 일이 있을 때마다 뭔가 특별한 사건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떠한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니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렸다. 뭐라도 생기겠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아···”


그때 주변을 울리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에 바짝 긴장했다. 원래 이런 차분하고 정중한 목소리가 나중엔 더 위험해지는 법이다.


“드디어 만날 수 있었네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나와 만나길 기대했다는 듯이 말했다.


“정체를 드러내세요. 그렇게 혼자 숨어서 이야기하기 있습니까?”


그 순간, 에메랄드 빛의 초록빛깔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 뒤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날카롭게 째진 눈과 그 크기를 보고 누구인지 유추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드래곤···”

“맞습니다. 저는 자유와 바람의 드래곤 위스프넨··· 당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 땅의 드래곤 슬레이어.”


기분이 이상하다.

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야 정상이다.

만나왔던 드래곤들은 모두 하나같이 불쾌하고 불길한 눈을 갖고 있었다. 세로로 째진 눈동자와 마음을 투시할 것 같은 눈동자는 굉장히 기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만난 이 눈은 다르다. 지금까지 만났던 드래곤과 반대로 생각하면 되었다. 하지만 상대는 드래곤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 찾아왔으니까요.”

“저와 대화하기 위해서요?”

“그래요. 왜 이 땅이 잘못됐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드래곤과 왜 싸워야 하는지 모든 걸 알려드릴 때가 된 것 같군요.”


순간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 짧은 전율이 느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저는 거짓말 하지 않아요. 아니 모든 드래곤 들은 거짓말 하지 않아요.”

“그게···”

“정말이에요. 드래곤의 말은 이 세계에 대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죠. 그래서 드래곤들은 과묵한 편인데··· 이번 상황은 좀 특수해서요. 그래서 직접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심상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해가 됐다.

용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저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겁니까?”

“저는 이 세계가 멸망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무의미한 싸움을 지속하는 것도 원하지 않죠.”

“······.”


나는 계속 이야기를 듣겠다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이 세계는 신의 버림을 받은 차원이에요. 그래서 차원의 재앙이 계속해서 찾아오게 됐죠. 수많은 몬스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질 같은 것들 말이에요.”

“제가 알던 것과는 다른데요. 신이 이 땅을 지켜주기 위해서 사람을 파견하고 힘을 나눠 준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것일까···

솔직히 이제 뭐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야기를 듣는다고 의미가 있는 일일까.


“그건 틀렸습니다. 그건 신이 마지막으로 자기의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만든 공작일 뿐이니까요.”

“스스로 꾸민 일이라는 겁니까?”

“그렇죠. 그렇게 된다면 신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고 그 믿음은 곧 신의 힘으로 직속되는 것이니··· 이런 자작극을 펼치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 말인즉슨, 저희는 놀아난 것이다. 그런 말씀인 건가요?”

“그렇죠. 놀아난 겁니다. 그리고 가장 큰 위협이 생각나지 않나요?”


가장 큰 위협···

머리를 굴리고 결론에 다다르자 방금 전 느꼈던 전율보다 더한 전율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한성우···”

“그렇습니다. 신의 힘을 직접적으로 받은, 즉 신성을 가진 자는 한성우 그 자뿐입니다.”

“어떻게 된 다는 소리인가요.”

“어떻게 된다··· 정신을 지배당할 겁니다. 또한 포슬란의 마력을 고스란히 받게 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수도 있죠. 하지만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따스함이 담겨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제 잘못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애초에 일어날 운명 같은 일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용을 쓰고 운명을 뒤집어 보려 해도 어차피 운명은 순리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요. 운명을 거스르고 싶겠죠. 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도와드리겠다는 겁니다.”


드래곤이 내 말을 끊으면서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어째서 저희를 도와주는 겁니까?”

“말했지 않습니까? 적은 따로 있다고 우리들의 적은 우리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들이지. 왜 발락스가 당신에게 힘을 나눠주었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발락스는 당신을 차원 단위로 조각내어 아예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게 모두 발락스의 계획이다··· 그런 말입니까?”

“계획은 아니지만, 그는 여기까지 생가해 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발락스가 나와 뭐라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의 존재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크크크··· 이젠 들켜버렸나. 위스프넨 쓸 때 없는 짓을 하는 군.]


발락스 인가?

아니 이건 발락스의 느낌이 아니다. 그보다 더 한 차원 높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채는 게 너무 늦는 것 아닙니까?”


[눈치? 웃기는 군 너희들의 계획을 순전히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는가? 우린 그저 더 나은 재미를 위해 너희들을 남겨둔 것이지.]


“우리 동족들은 당신의 그 욕심과 말도 안 되는 허영심 때문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용서?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군, 용서와 심판은 신의 권능이다. 자격조차 안 되는 버러지 같은 것이!]


그 순간 내 심상 세계였지만, 중력에 의해 몸이 짓눌렸다.


“신이라는 작자가 다른 사람의 심상 세계까지 와서 그래도 되는 건가요?”


위스프넨 역시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기세에 눌리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뱉는 중이었다.


[웃기지 마라! 그런 불결한 생각을 갖고 있는 자의 새싹을 쳐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그 순간 압력이 더욱 거세졌다.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순간···


‘이곳은 너의 세계다. 이곳의 주인이 너임을 잊지 말아라!’


발락스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가 내 마음에서 울려 퍼졌다.

그래, 이곳은 내 세계다. 순간 머릿속에서 그렇게 인식되자, 색을 잃었던 배경들이 내가 추억하는 것들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눈치챈 신은 내게 더 압력을 가했으나, 이젠 헛수고였다.


[이 놈! 감히 나와 대적하려는 것이냐! 어차피 멸망을 막을 순 없다!]


시끄럽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의 입이 다물어졌다. 읍읍-하는 소리와 함께 어떻게든 입을 열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나는 그를 이곳에서 내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순간 이곳과 정신을 끊기려 하였지만, 신은 신이다.


[크크크··· 대단하군 정말 인간 주제에 어떻게 이런 정신력을 가질 수 있는지··· 좋다 이곳을 어떻게 할 생각은 하지 않겠다. 대신 이곳에 남아 몇 가지 대화를 진행하도록 하지.]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그를 추방하려고 하여도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내 힘이 닿지 않았다.


[소용없다. 내 신격으로 이곳과 합당한 거래를 한 것이니. 네놈 덕분에 쓸 때 없이 힘을 낭비하고 말았지. 그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하고 싶은 걸까.”


[네놈은 낄 자리가 아니다.]


그 뒤로 그 의지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닌 위스프넨으로 향했다.


[정말 나를 거절하려는 것이냐.]


“제게 당신과 함께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유감이군.]


그 쓸쓸한 마음이 내 피부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지금 이곳이라면 너에 대한 내 마음이 전달 됐을 거라고 본다. 나는 진심이다.]


“저 또한 진심입니다.”


이 역시 단호한 마음이 내 피부 아니, 마음 끝까지 전달되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날은 최후의 최후의 날이겠군. 기대하지. 위스프넨 난 그러고 싶지 않았어.]


“······.”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 신의 의지는 사라지고 이곳에 고요함 많이 자리 잡았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닙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설마 저 신이 당신을 좋아하는 겁니까?”

“글세요··· 왜 저를 원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하는 이유가 분명 존재할 겁니다. 신은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거짓말쟁이 이기도 하죠.”

“그렇군요··· 마지막 말이 와닿습니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에요. 우리는 최후의 전쟁을 하기 위해 가야 합니다. 저도 당신이 사는 세계에 강림할 것입니다. 거기서 뵙죠.”


말을 마친 위스프넨의 초록빛깔 눈동자가 사라졌다.

뭔가 머리가 복잡하지만, 이제 걸어갈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 의식을 이곳과 끊어냈다. 곧 수면 위로 올라오는 의식에서 이제 눈만 뜨면 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

“······.”


서로 가만히 눈을 지그시 맞췄다. 초록빛깔의 눈동자와 내 코 끝에 닿을 정도로 길게 뻗은 머리카락까지.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어디론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였다.


“위스프넨···?”

“의외로 깜짝 놀라지 않으시네요.”

“언제부터 여기 있던 건가요?”

“글쎄요. 아마 한참 전부터 일 거예요.”


이제야 잠이 깨어 그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 그게··· 음··· 그러니까···”

“드래곤은 성별이 없지만, 태어났을 때 익숙한 모습이 있습니다. 저는 이게 편하죠. 즉,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렇군···

저 드래곤은 여자인 것인가. 또한 상당히 아름답다.

내가 여태껏 만나본 여성 중에 가장 아름 다운 모습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가까이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그 인기척이 내 방문을 열려는 순간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걸 들킨 다면··· 아니 잠깐 내가 왜···


“오호··· 신기하네요 발락스의 권능을 이렇게까지 사용할 수 있다니··· 정말 발락스의 말대로 당신은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시간을 멈춰버렸다. 손가락의 감각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보다 제가 당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드래곤이라 하면 분명 반발이 심할 겁니다. 아무리 적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건 제가 고민할 게 아니라. 당신이 고민할 문제 같군요.”


그 순간 시간을 멈춘 권능이 한계에 다다랐다. 시간의 흐름이 이어지고 필연적으로 내가 있는 방문이 열리며 어둠 속에서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그 눈은 우리를 쓱 지켜보다가 깜짝 놀란 눈으로 다급하게 방문을 닫았다.


“음··· 망했네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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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076화 갈등 (2) 23.04.22 42 2 12쪽
75 075화 갈등 (1) 23.04.21 3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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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073화 위기는 곧 기회로 (3) 23.04.19 29 2 12쪽
72 072화 위기는 곧 기회로 (2) 23.04.18 3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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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063화 파이로스 (1) 23.04.09 40 2 12쪽
62 062화 일본으로 (3) 23.04.08 43 2 12쪽
61 061화 일본으로 (2) 23.04.07 5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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