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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노우

에드거 앨런 포는 작가로 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제이스노우
작품등록일 :
2023.07.02 10:33
최근연재일 :
2023.09.2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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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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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3.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8)

DUMMY

늦은 시간까지 환영식이 이어졌지만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더는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추운 날씨에도 야만인들은 짧은 바지를 입은 게 고작이었다.


“이 깜둥이들은 춥지도 않은 모양이군. 그러니까 여기서 살겠지만.”


가이 선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트윗에게 이제 가겠다고 손짓했다. 진심은 통했는지 트윗이 야만인들에게 소리치자 그들은 빠르게 자리를 정리했다.


“토퉁가! 우짜!”


트윗이 한 손을 번쩍 들며 ‘우짜’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야만인들도 가이 선장과 선원들에게 ‘우짜’라고 소리쳤다.


가이 선장이 당황해서 얼른 내게 눈치를 줬다. 저 말이 무슨 뜻이냐는 듯이. 나는 그들의 행동을 눈치껏 살친 뒤 선장에게 알려줬다.


“아무래도 저들 방식의 인사법인가 봐요. 똑같이 따라 해도 나쁘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우짜.”


선장이 어설프게 야민인 언어를 흉내 내니 트윗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곧 트윗이 야만인들에게 손을 휘이 젓자 그들이 길을 텄다.


우리는 처음 야만인의 터전에 들어왔을 때처럼 그들에게 둘러싸여 떠났다. 그때까지도 피터스는 허리춤에 찬 짧은 도끼를 쥐고 야만인들을 노려봤다.


다행히 피터스가 걱정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트윗과 수십 명의 야만인들은 그들의 천막 앞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따라오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가이 선장이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인사한 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선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똑똑히 봤겠지? 남극의 야만인들과 대화를 나눈 제인 가이 호의 사람들! 당장 선장실로 가서 이 일을 기록하겠어!”

“선장, 저들이 정말 남극의 야만족이에요?”

“당연하지. 엄연히 이 군도도 남극의 일부야. 그러니 저들도 남극의 야만족이라고. 저들을 찰랄 족이라고 부르겠네! 우리가 최초로 목격한 남극의 원주민으로 기록하겠어!”


아직 남극에 도달하지 않았는데도 선장이나 선원들은 이 군도도 남극으로 여겼다. 남극에 사는 검은 야만인. 나는 그런 말을 여기서 처음 들었다.


어쨌든 선장이나 선원들은 자신들이 최초로 남극의 원주민을 만났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했다. 분명 그들의 이름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선장이 흡족한 말투로 선원들에게 명령했다.


“우리는 며칠 여기서 더 머문다. 여기서 바다거북을 더 잡은 뒤에 출발해도 되잖아?”

“나쁘지는 않겠네요. 며칠 더 있지요.”


선장의 제안에 선원들도 동의했다. 처음부터 군도에 가지 말자고 주장했던 선원들도 이제 야만인들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내일 적당히 챙기면 떠나지요. 저 껌둥이들과 놀려고 여기 온 건 아니잖아요.”


피터스가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처음부터 야만인들을 신뢰하지 않았고, 환영식이 끝날 때까지도 그 마음은 변치 않았다.


피터스는 비록 구조된 처지지만 강인한 힘과 성실함 덕분에 선원들이 무척이나 좋아했다. 식민지 항구에서도 유일하게 선원들이 챙긴 사람이었다.


만약 피터스가 호감을 얻지 못했으면 헨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들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선원들은 그의 기분을 적당히 풀어주려고 했다.


“에이, 피터스. 겨우 며칠만 여기 있는 거잖아. 고기만 충분히 얻고 가면 되지.”

“맞아. 저 깜둥이들도 우리한테 잘해주잖아.”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말라고. 아프리카 깜둥이보다 더 낫던데.”


선원들의 말에 피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입술을 씰룩이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분명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어느새 핌이 내 곁으로 다가와 슬쩍 물었다.


“어때요, 에디? 당신도 여길 빨리 떠나는 게 좋겠어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야만족의 터전을 살폈다. 그들 천막 주변으로 여전히 모닥불이 피고 있었다. 그러나 야만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보이지 않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어두움 밤하늘보다도 시꺼먼 자들이었으니까.


다만 모닥불 주변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저들끼리 낄낄거렸던 야만인들의 모습은 선명했다. 그 기분 나쁨 또한 여전히 남아 있었고.


“남극으로 빨리 가는 게 좋겠지. 핌, 너는?”

“나는 여기가 마음에 들어요. 이런 경험은 제 인생에 처음이니까요.”


핌은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소년은 진심으로 이 섬을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 지금껏 겪었던 경험에 비하면 훨씬 좋은 경험이니까.



* *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야만인, 곧 찰랄 족이 배를 찾아왔다. 이번에도 트윗과 수십 명의 야만인들이 왔는데, 바다거북 고기 외에 다른 걸 가져왔다.


그들이 가져온 건 질긴 나무줄기로 만든 그물과 나뭇잎을 넓게 펼쳐 만든 그릇 같은 것이었다. 트윗이 그것들을 가리키며 무어라 외쳤다.


“디다! 디다! 드위차!”


트윗이 동쪽 반달 섬을 가리키며 ‘디다’라고 말하더니 손을 둥글게 말아 가져온 것들을 넣는 시늉을 하며 ‘드위차’라고 말했다.


나는 ‘디다’가 바다거북을, ‘드위차’가 일종의 사냥방식이라는 걸 간신히 이해했다. 야만인들은 우리의 바다거북 사냥을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다.


내가 선장에게 설명하니 그는 허허 웃었다.


“굳이 이럴 필요 없는데. 이 깜둥이들이 정말 우리를 좋아하는 모양이군.”


굳이 찰랄 족의 도움을 받으면서 바다거북 사냥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찰랄 족을 따라나섰다.


이번에는 나와 헨리, 핌, 피터스를 포함해 12명이 선장과 함께 동쪽 반달 섬으로 향했다. 물론 우리도 사냥에 사용할 물건들을 잔뜩 챙겼다.


중앙 섬과 동쪽 섬은 얕은 바다가 가로질렀는데, 수면이 매우 얇아서 걸어서도 이동할 수 있었다. 우리는 찰랄 족의 안내를 받으며 섬을 옮겼다.


동쪽 섬에 다다르니 거기에는 수십 마리의 바다거북이 한가롭게 엎드려 있었다. 주변에는 녀석들이 먹고 남긴 생선들이 아무렇게 놓여 있었다.


“저기 바다거북에 물고기까지 잡으면 남극까지 걱정 없이 가겠어.”


곧 트윗이 야만인들에게 소리치자 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찰랄 족은 가져온 그물과 그릇을 중앙 섬 해안가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고기를 거기에 말리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걸 알아보고는 선장에게 말했다.


“바다거북을 잡아 와서 저기다 말리라고 하는 것 같아요. 저들이 우리에게 준 고기처럼요.”

“사냥에 고기 보관까지 알려주다니. 정말 친절한 깜둥이들이군. 좋아. 다들 빨리 움직여. 가서 바다거북을 잡아 오자고.”


그렇게 가이 선장과 선원들이 야만족과 함께 바다거북 사냥에 나섰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 때문에 거북들이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엉금엉금 바다로 향하던 바다거북들은 이내 사람들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거칠게 움직이며 저항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잡은 바다거북이 열 마리가 넘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야만족은 바다에 널린 해삼과 물고기를 잡는 법도 알려줬다.


수십 명의 사람이 분주하게 움직이니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제법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나와 헨리, 핌이 그물에 널었다.


사실 그물에 고기를 너는 건 별일이 아니었다. 그저 바다거북이나 해삼이 머금고 있는 피와 바닷물을 뺀 뒤 햇볕에 말리는 게 고작이었다.


쿵! 쿵!


나와 헨리, 핌이 분주히 고기를 옮기고 있을 때,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나는 고기를 널다 말고 주변을 둘러봤다.


“저 소리 들려? 쿵쿵거리는 소리 말이야.”

“네, 들려요. 배에서 들리는 소린가요?”

“그건 아냐. 대체 어디서 들리지?”


헨리는 내 말을 무시했다. 대신 핌도 그 소리를 분명 들었는지 나처럼 주변을 둘러봤다. 기분 나쁜 쿵쿵거림은 계속해서 들렸다.


나는 그 소리가 중앙 섬의 산 근처에서 들린다는 걸 알았다. 자세히 보니 산에서 찰랄 족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다.


찰랄 족은 산비탈에 길쭉한 나무 기둥을 열심히 박고 있었다. 그들이 돌로 만든 망치와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나무 기둥이 천천히 땅에 박혔다.


찰랄 족이 나무를 박는 산비탈은 고기를 널고 있는 자리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와 핌은 그게 무슨 행동인지 몰라 쳐다보기만 봤다.


곧 가이 선장이 내 옆으로 와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산비탈을 바라봤다.


“저 녀석들 아침부터 대체 뭐 하는 거야? 무슨 의식을 치르나?”

“선장님. 어제 저희가 산에 올라갔을 때는 찰랄 족이 박아놓은 나무 기둥을 본 적 없잖아요?”

“그랬지. 뭘 하는지 트윗한테 물어볼까?”


가이 선장이 트윗에게 다가가 산에 있는 야만인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트윗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선장이 재차 물었는데도 트윗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와 핌이 근처에 있던 야만인들을 봤는데도 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가이 선장이 포기하고는 우리 곁에 다가와 어깨만 으쓱였다.


“저들끼리 무슨 일을 하나 보지. 우리한테 알려주지 못하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어. 우리는 우리 일에만 집중하자고.”


그물에 쌓인 고기는 제법 많았다. 적어도 며칠 동안은 배에서 먹을 양이었다. 이제 사냥이 끝낸 선원들도 그물 곁에서 고기가 마르길 기다렸다.


쿵! 쿵! 쿵!


그 사이, 산에서 나무 기둥을 박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거기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았던 야만인들이 이제는 수백에 달하였다.


그들 모두 나무 기둥을 땅에 박는 일에 열중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선원들이 에서 툴툴거렸다.


“젠장.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시끄러워서 말도 못 할 정도잖아.”

“그냥 둬. 그래도 저 깜둥이들 덕분에 이렇게 고기를 얻었으니까 일단 넘어가자고.”

“계속 저러면 골치 아프다고. 아니지, 지금도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아.”


고기를 말리느라 사람들은 그물 곁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바쁜 건 야만들이었다. 이제 그물 곁에 있던 야만인들까지 하나둘씩 산으로 올라갔다.


트윗이 가이 선장에게 무어라 말했다. 대충 알아듣기로는 그물 곁에서 기다리는 뜻 같았다. 그러더니 트윗도 다른 야만인들과 함께 산으로 향했다.


쿵! 쿵! 쿵!


이제 그물 곁에 있는 건 우리들과 야만인 두어 명이었다. 그런데 야만인들은 저들끼리 무어라 말하며 낄낄거렸다.


아예 야만인 한 명이 나와 핌을 가리켰다.


“누누. 누누.”


트윗이 어제 그랬듯이 우리를 가리키며‘누누’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어제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이었다.


동시에 어젯밤 야만인의 터전에서 보았던 그들의 기분 나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산에 있는 찰랄 족을 자세히 살폈다. 여전히 수백 명의 야만인들이 나무 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산에 박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무 기둥만 박는 게 아니었다. 어느새 그들은 활과 창을 들고 있었다. 나는 트윗이 묵직한 돌도끼를 들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수상함을 느껴 즉시 그물에 있던 바다거북과 해삼을 들었다. 그러고는 야만인들에게 그걸 보여주며 외쳤다.


“누누! 누누!”


처음에 야만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끼리 낄낄거리던 야만인들은 금세 표정이 변하더니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우리와 고기를 번갈아 가리켰다.


“누누! 누누!”


이제 야만인들은 짐승처럼 소리치기 시작했다. 원숭이처럼 꺅꺅거리던 놈들이 이내 그물에서 도망쳐 산에 올라갔다.


“뭐야, 저 깜둥이들 왜 저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찰랄 족을 쳐다봤다. 마지막까지 그물을 지키고 있던 야만인들이 트윗에게 다가가 무어라 말하는 게 내 눈에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곧 트윗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산비탈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게 보였다.


나는 이제 ‘누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뜻은 이방인이나 손님 따위가 아니었다. 당연히 환영의 뜻도 아니었다.


분명 먹잇감, 아니면 식량을 뜻하는 단어였다.


“선장님.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 저 야만인들이 우릴 공격할 거예요.”

“공격하다니? 갑자기 왜?”

“저 야만인들이 우리를 사냥한다고요!”


사냥이라는 말에 가이 선장은 물론 사람들이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특히 피터스는 내 말을 듣자마자 허리춤에 찬 짧은 도끼를 꺼내 으르렁거렸다.


“저 망할 깜둥이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이럴 줄 알았어!”

“당장 여기서 벗어나! 모두 배로 간다!”


쿠우웅!


선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치 지진이 난 듯 무시무시한 소리가 산비탈에서 울렸다. 그리고 이내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흙먼지만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흙과 나무가 성난 파도처럼 우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찰랄 족이 일부러 산사태를 일으킨 것이었다.


놀랍게도 찰랄 족은 산을 거대한 덫처럼 사용했다. 우리의 환심을 사서 한곳에 모아둔 뒤, 산사태를 이용해 우리를 모두 매장할 작정이었다.


그들은 우리처럼 총이나 거대한 배 같은 문명화된 물건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들이 지내는 섬의 지질을 이용할 정도로 약은 놈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생존이었다.


“뛰어! 여기서 죽고 싶지 않으면 뛰라고!”


선장이 외치지 않아도 모두가 죽기 살기로 뛰었다. 가장 빨리 뛴 나와 헨리, 핌, 피터스, 선장은 간신히 산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뒤처진 4명은 그대로 나무와 흙에 처박히고 말았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흙더미에 파묻힌 그들을 남은 사람들이 구할 수 없었다.


이제 야만족들이 맹수처럼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쫓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말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도끼와 창을 휘둘렀다.


놀랍게도 가장 먼저 달려온 건 트윗이었다. 그 육중한 덩치에도 어찌나 빨리 뛰는지 마치 검은 멧돼지를 보는 것 같았다.


놈이 돌도끼를 허공에 휘두르며 가이 선장을 노렸다. 그러나 누구도 무기를 가져오지 않아서 무방비 상태였다.


퍼억!


“망할 자식! 저리 꺼져!”


유일하게 무기를 가져온 건 피터스였다. 그는 단숨에 트윗의 돌도끼를 박살 낸 뒤, 그대로 야만인 우두머리의 목을 노렸다.


피터스의 도끼가 허공에서 살벌한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트윗의 목에 박혔다.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트윗이 피를 뿜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가이 선장이 그 모습을 보고는 소리쳤다.


“피터스! 그놈들 상대하지 말고 빨리 배로 뛰어! 가자마자 이 섬을 떠날 거니까!”


피 묻은 도끼를 챙긴 피터스가 야만족을 보고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입술을 씰룩였다. 그러나 수백에 달하는 야만인을 혼자 상대하기에는 벅찼다.


탕! 탕!


거기다 중앙 섬에서 총성이 들렸다. 이제 모두가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동쪽 섬에서 중앙 섬으로 내달리는 동안, 수풀에서 검은 파도처럼 야만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누구랄 것도 없이 당장 우리를 죽일 듯이 쫓아왔다.


퍼엉!


아예 배에서 대포를 쏘았다. 나는 지금껏 제인 가이 호가 대포를 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불을 붙는 대포와 함께 수풀에 포탄이 떨어지자 야만인 수십 명이 쓰러졌다. 그런데도 야만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뒤쫓았다.


“망할! 어딜 가는 거야! 이 망할 자식들아!”


중앙 섬 해안가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제인 가이 호가 이미 바다로 나가는 걸 목격했다. 나를 비롯해 사람들이 허망한 눈으로 배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었다. 여전히 등 뒤에서는 수백 명의 야만족이 쫓아오고 있었다. 당장은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움직여!”


퍼억!


서쪽으로 도망치려고 할 때, 해안가로 화살들이 쏟아졌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선원 2명이 화살을 맞고 그대로 바닷물에 처박혔다.


그 모습에 나와 헨리, 핌, 피터스는 더 속도를 냈다. 이미 온몸이 바닷물에 젖었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퍼억!


“젠장! 이 망할!”


가장 끝에서 뛰어오던 가이 선장이 어깨에 화살을 맞고는 더 속도가 느려졌다. 나와 헨리가 즉시 그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빨리 와요, 선장님! 이러다 죽어요!”

“이, 이미 끝났어. 날 버려. 얼른 버리고 도망치라고.”


핌과 피터스는 이미 우리와 멀어졌다. 이대로 있다간 나와 헨리도 죽을 게 분명했다. 그 사실을 가이 선장도 알았고, 그는 즉시 품에 손을 넣었다.


“이걸 가져가. 갖고 남극으로 떠나. 어떻게든.”


가이 선장은 자신의 수첩을 내게 건넸다. 그리고 나는 그걸 받자마자 선장에게서 멀어졌다. 헨리도 내 뒤를 따랐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날아와 가이 선장의 등에 꽂혔다. 고슴도치처럼 등에 화살들이 꽂힌 선장은 그대로 해안가에 쓰러졌다.


나는 그가 쓰러지는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야만인들이 그를 둘러싸는 모습을, 그 끔찍한 모습을 보기만 해야 했다.


“누누! 누누!”


그리고 가이 선장을 번쩍 들고는 야만인들이 지껄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나와 헨리, 핌, 피터스뿐이었다. 우리는 서쪽 반달 섬에 간신히 도착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일렀다.


이제 섬 전체에 찰랄 족의 아우성이 들렸다. 그 소리는 제법 가까이서 들렸고, 나는 아직 그들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이제 어떡하죠? 어디로 가요?”


불안한 핌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나는 서쪽 섬 해안가에 있는 카누를 발견했다. 모두 찰랄 족이 사용하는 카누들이 분명했다.


나는 그걸 가리켰다.


“저걸 타고 섬에서 벗어나요.”

“미쳤어?! 저걸로 어디까지 갈 수 있겠어?!”


헨리가 소리쳤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피터스도 내 생각과 똑같았는지 먼저 카누로 다가갔다.


“여기서 개죽음 당하느니 바다에서 죽겠어.”


피터스가 먼저 카누에 타자 나를 비롯해 남은 사람들도 곧장 그를 뒤따랐다. 대충 만든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바닷물을 견딜 만큼 단단했다.


나와 헨리가, 그리고 핌과 피터스가 각각 카누에 올라타 바다로 나갔다.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따라 열심히 노를 저었다.


곧 서쪽 섬에 야만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꺅꺅거리며 소리쳤다. 그러다 빠르게 섬과 멀어지면서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램퍼스 호에서의 마지막처럼 남은 사람은 우리 넷뿐이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그저 노를 젓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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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5. 백작의 성 (2) +1 23.09.19 57 4 13쪽
54 54. 백작의 성 (1) +1 23.09.18 46 4 13쪽
53 53. 윌리엄 윌슨 (3) +1 23.09.17 48 4 15쪽
52 52. 윌리엄 윌슨 (2) +2 23.09.15 54 5 14쪽
51 51. 윌리엄 윌슨 (1) +2 23.09.14 64 3 13쪽
50 50. 생매장 (2) 23.09.13 47 4 12쪽
49 49. 생매장 (1) 23.09.12 47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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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 어셔 가의 몰락 (2) +1 23.09.06 48 3 14쪽
46 46. 어셔 가의 몰락 (1) +1 23.09.05 49 4 12쪽
45 45. 절름발이 개구리 (3) +2 23.09.04 52 4 13쪽
44 44. 절름발이 개구리 (2) +1 23.09.01 59 4 16쪽
43 43. 절름발이 개구리 (1) +1 23.08.31 43 4 14쪽
42 42. 아몬티야도 술통 (4) +1 23.08.29 53 5 16쪽
41 41. 아몬티야도 술통 (3) +1 23.08.28 57 4 14쪽
40 40. 아몬티야도 술통 (2) +1 23.08.25 48 5 14쪽
39 39. 아몬티야도 술통 (1) +1 23.08.24 74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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