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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노우

에드거 앨런 포는 작가로 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제이스노우
작품등록일 :
2023.07.02 10:33
최근연재일 :
2023.09.26 22:2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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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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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4,242

작성
23.07.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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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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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 만남 (1)

DUMMY

나는 죽고 난 뒤 비로소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


...


“이제 정신이 듭니까? 천천히 눈을 떠봐요.”


희뿌연 빛.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검은 그림자.


사람.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렸다.


혼미한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감각이 천천히 되살아나니 지금 내가 어딘가에 누워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체처럼. 정말로 죽은 듯이 누워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여기는···?”

“병실입니다. 죽은 줄 알았어요.”

“분명 나는······.”

“이제 괜찮으니 안정을 취해요. 자, 숨을 깊이 들이마셔요.”


나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여전히 눈앞이 흐렸지만 정신은 점차 맑아졌다.


이윽고 무언가 다가와 내 뺨과 턱을 만졌다. 그건 사람 손길이었다. 손길은 내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마치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말이다.


환상이 아니다. 정신착란도 아니다.


이건 분명한 현실이다.


“아프지 않죠?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어요. 이제 이름을 말해 봐요.”

“에드거 앨런 포.”

“포? 작가 말이오? 당신이?”


나는 목소리가 무슨 의도로 묻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의도와 다른 대답을 했다. 아직 제정신이 아닌 탓이리라.


“거짓은 아니에요.”


에드거 앨런 포. 지난 40여 년 동안 세상 사람들이 나를 그 이름으로 불렀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나를 증오했던 사람 모두가.


하지만 내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자 이 몸으로 태어날 때부터 지닌 원죄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제 에디도 이 세상에 없을 테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안정을 취해요. 치료를 시작해야 하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허망함에 웃고 말았다. 과연 나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내 업보를 청산해줄 존재가 과연 있을까.


“치료는 됐어요. 소용없어요. 나 스스로 잘 알아요. 잠깐 시간을 허락해줬을 뿐이에요.”

“허락이요? 누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숨을 쉬고 있지만,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본능이자 직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알 수 없는 뜨거운 감각이 내 가슴을 휘저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을 느끼며 나는 목소리에게 부탁했다.


“혹시 이 불운한 사내의 삶을 들어주겠어요?”

“지금요?”

“내 목숨은 곧 끝나요.”

“······좋아요. 원하는 대로 해주죠. 글도 같이 적을게요.”


아마 그는 내가 유언을 남긴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내가 남길 말은 유언이 아니다. 그래도 글로 적어준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워있는 내 옆으로 기척이 느껴졌다. 종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목소리가 차분하게 시작을 알렸다.


“자,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나는 여전히 흐릿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숨을 깊이 들이쉬다 내뱉었다. 몇 번을 그러다가 결심하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불운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이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


* * *


불운을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이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목숨만 연명했지만 말이다.


나는 에드거 앨런 포지만, 그 이전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건 내 부모님이 지어진 이름도 아니요, 필명도 아니다.


김창민. 1990년부터 2023년까지 그게 내 이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태어나서, 아니 회귀하여 1809년부터 지금까지 에드거 앨런 포로 살았다.


나는 김창민이었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결실을 맺지 못했고, 결국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던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내 삶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얄궂게도 운명은 나를 19세기 미국에 내던졌다. 이제 영국에게서 독립한 신생 국가는 그들의 역사를 스스로 찬양하기 바빴다. 또 누구랄 것도 없이 다가올 희망을 꿈꾸었다.


그러나 내 삶은 국가 발전과 상관없이 처음부터 가혹했다. 나를 낳아준 친모는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친부라는 작자는 진작 가족을 버려 기억조차 없다.


졸지에 고아가 된 나와 내 형제를 거두어진 사람은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존 앨런이다. 비록 그가 나를 정식으로 입양한 건 아니지만, 덕분에 나는 그의 이름을 받아 에드거 ‘앨런’ 포가 되었다.


그 이름을 얻은 날,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어떻게 그 이름을 모를 수 있겠나! 현대 미국 문학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인물이자, 세계적인 작가들이 치켜세우는 작가이지 않는가!


말하자면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는 내가 아는 대로 작가가 되기 위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작가가 되기에는 힘든 환경이었다. 나를 괴롭히는 어려움이 배를 앓는 굶주림이나 몸을 짓이기는 고통이라면 차라리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로 나를 괴롭히는 건 바로 수양아버지 존 앨런이었다.


“좀 활발한 줄 알았는데 저런 성격으로 나중에 커서 무슨 사업을 하겠다는 거야?!”


존 앨런은 내가 성장하면 자기처럼 사업을 하길 바랐다. 그는 여러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서 수단이 꽤 좋다는 평가를 주변에서 얻었다.


정말이지 수단만 좋았다. 전형적인 남부 사람인 존 앨런은 고집불통에 되먹지 못한 인간이었다. 그는 내가 조금이라도 신경에 거슬리면 폭언부터 내뱉었다.


“사내자식이 방에 틀어박혀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이나 읽어? 젠장, 차라리 동전을 가지고 놀면 내 이해라도 하지!”

“듣겠어요, 존.”

“들으면 어쩌겠어? 이 집을 나가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나가면 퍽이나 잘 살겠네! 어쩌다 저런 놈을 거두었는지 나도 참 억세게 운이 없군! 제기랄!”


그런 존 앨런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집에서는 그의 아내이자 내 수양어머니 프란시스 앨런이 유일했다.


“사업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저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렴, 에디.”


프란시스 앨런은 나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그녀는 존 앨런의 폭언이 있는 날이면 방에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는 나를 항상 다독여주었다. 프란시스의 보살핌은 아늑한 빛과 같았고 나는 지금도 그에 대해 감사함을 갖고 있다.


또 작가가 되겠다는 내 뜻을 지지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친형 윌리엄 헨리 포였다. 우리 형제는 비록 사정이 있어서 서로 떨어져 지냈지만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에디, 너와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구나. 나는 비록 너와 함께할 수 없지만 언제나 널 응원하고 있어. 힘들어도 언제나 꿈을 놓치지 마.”


형이 내 마음을 이해했던 이유는 그 또한 시인을 꿈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누구보다 돈독했고 문학에 대한 열정을 항상 공유했다.


프란시스 앨런의 보살핌과 형 윌리엄 헨리 포의 지지가 있었기에 나는 존 앨런의 핍박을 10년 넘게 견딜 수 있었다. 무려 10년 넘게! 핍박이라는 말로도 내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 하리라.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은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일에 비하면 사소한 수준이다. 고작 그런 일로 내 삶이 순탄치 않았다며 스스로 연민에 빠지고 싶지 않다.


내 삶은 1826년부터 급격히 바뀌었다. 당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놓지 않은 덕분에 버지니아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돈 많고 명망 높은 집안이라면 아들이 버지니아 대학교로 입학하길 바랄 정도로 수준 높은 대학교였다.


사실 대학 입학도 프란시스 앨런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가겠다고 존 앨런에게 말하자 그는 단번에 펄쩍 뛰었다. 그런 존 앨런을 진정시키고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설득한 사람도 바로 프란시스였다.


프란시스 앨런 덕분에 나는 대학에서 입학하였고, 그곳에서 문학적 열망을 여과 없이 발휘했다. 수많은 시를 써서 주변에 보여주는가 하면 학교 신문에도 정기적으로 투고했다. 덕분에 친구들은 물론 교수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내 열정을 지지해주는 여자를 만났다. 사라 엘마리아 로이스터! 그녀는 내 첫사랑이자 내 문학의 원천이었다.


대학 입학 전부터 알고 지냈던 로이스터였지만 우리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비록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그녀는 레이몬드주에 머물고 있어서 서로를 볼 시간은 없었지만, 나는 자주 그녀를 위한 시를 써서 보내 내 마음을 전달했다.


이 시절만큼 평화와 안식, 사랑이 넘쳤던 시기는 없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그 시간이 계속 이어지길 바랐다.


악마를 만나면서 모든 게 틀어졌지만 말이다.


“내가 꿈에서 지켜보았던 나무 그늘

가장 화려하게 노래하는 새들이 있었던 그곳은

그대의 입술, 그곳에서 흐르는 가락 모두는

그저 입술에서 잉태된 말들이니.”


달빛이 유달리 밝았던 어느 봄날의 늦은 밤, 나는 학교 밖에서 로이스터에게 보낼 시를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저녁 이후 학교 밖으로 나가는 건 규정상 금지였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규정을 무시하고 학교 밖으로 몰래 빠져나갔다. 비록 나는 시를 쓰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은 유흥을 즐기기 위해서였지만 말이다.


계속해서 시 쓰기에 골몰하고 있던 나는 술에 취한 채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거기, 에디 맞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놀란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 서 있는 사람은 함께 기숙사 방을 쓰는 페리였다. 그는 갈색 수염이 붉게 보일 정도로 취한 상태로 내게 비틀거리다 인사했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더니 또 술독에 빠졌었어?”

“이 봄날을 학교에서만 보내기에는 너무 따분하지 않아, 에디? 그러는 너도 지금 학교를 몰래 빠져나왔으면서.”

“난 술에 잔뜩 취해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난 할 일이 있다고.”

“그래, 이 시간까지 시를 쓰는 모습이 너답지. 술 한 모금 안 모셔본 너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 안 그래?”


페리가 빈정거렸지만 나는 거기에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시에 더 열중하고 싶었다. 그리고 페리 말고도 학교 주변을 유령처럼 떠도는 학생들의 흥얼거림이 계속 들렸기 때문이다.


내 모교 버지니아 대학교는 미합중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설립했다. 평생 인권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 활동했던 제퍼슨이었기에 대학에서는 그의 사상과 철학이 교칙에 담겨 있다는 걸 항상 강조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 학교는 학생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했다. 음주, 흡연은 물론이고 사격이나 승마와 같이 모든 오락거리를 교내에서 금지했다. 제퍼슨의 인권과 자유는 허상에 불과했다!


교칙을 철저히 지키는 수도승 같은 학생이 얼마나 있겠나. 당장 페리처럼 학교 밖에서 음주를 즐기는 학생이 매일 밤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 거기다 큰돈이 오가는 카드 게임이 성행했다.


나는 학생으로서 마땅히 교칙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술과 도박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글을 쓰는 게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술주정뱅이 페리가 얼른 다가와 어깨동무했다. 입에서 술 냄새가 고약하게 진동했다.


“에디. 너도 좀 즐기라고. 지금 때 지난 아파테이아(스토아학파에서 지향하는 금욕주의의 경지)라도 추구하는 거야?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저 서부 땅에 들어가 은둔해서 신께 기도만 드릴 거야?”


페리가 서쪽을 가리켰다. 서부 개척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서부 개척이 과연 도움이 되는지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는데, 페리를 그걸 비꼬았다.


그러다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멀지 않은 언덕에 불빛 하나가 보였다. 나는 그 불빛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몰래 학교 밖으로 나와서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도 말이다.


“저긴 뭐야?”

“숨겨진 왕국이지! 우리들이 학교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통로 말이야!”

“저기서 술 마시고 논다는 거지? 누가 그런 장소를 마련한 거야?”

“아주 멋진 신사야. 영국의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이지. 여기서 큰돈을 벌었다고 하더라고. 백작을 직접 보면 너도 좋아할걸?”

“백작? 우리 학교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손님일 뿐이야. 백작이 주인이지.”


나는 몇몇 학생들이 학교 몰래 숨어서 술 마시고 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아지트를 만들 줄 알았다. 그런데 백작이니 뭐니 페리가 수상쩍은 말을 내뱉으니 말문이 막혔다.


곧 페리가 불빛을 향해 나를 억지로 끌고 갔다. 여전히 어깨동무를 한 채. 내가 벗어나려고 했지만 잔뜩 술에 취한 페리는 흥분해서 날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페리, 그만둬. 난 가고 싶지 않다고!”

“에디, 순진한 척하지 마. 너도 진정한 대학생활을 즐기라고.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을 보라고! 새로운 눈을 뜰 기회야!”

“세상이니 기회니 이상한 소리 지껄이지 마!”

“자, 가자고! 저기는 언제나 새로운 곳이야! 밤을 새워서라도 즐기고 싶은 곳이지!”

“망할! 나는 가고 싶지 않아. 왜 날 끌고 가려는 거야?!”

“가자고! 가보면 안다고, 에디!”


고릴라 같은 손아귀를 지닌 페리에게 얼마간 끌려가니 환한 불빛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마당과 잘 지어진 2층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말 그대로 광란의 장소였다. 마당에는 모닥불 주변으로 사람들이 술에 취한 채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나무상자를 두들기며 원주민처럼 무어라 지껄이기까지 했다.


그 바로 옆에서 말에 올라타 몸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말이 귀찮다는 듯 연신 뒷발을 들어 위협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말발굽이 바로 옆에서 날아오건 말건 사람들은 낄낄거리며 웃기 바빴다.


저택으로 올라가는 간이계단에는 술병과 사람이 같이 나뒹굴었다. 몇몇은 사람들이 오가는데도 완전히 잠에 빠져 몸도 뒤척이지 않았다. 그들을 지나쳐 계단을 오가는 사람들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환한 저택 안에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계속해서 오갔다. 시끄럽고, 또 시끄러웠다. 불빛에 모인 나방들처럼 정신없이 움직였다!


나는 단순히 술 마시고 즐기는 곳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이 광란의 저택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페리의 손아귀를 간신히 뿌리쳤다. 그러자 페리가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날 도발했다.


“에디, 지금 와서 빼려고? 나약한 자식 같으니.”

“무슨 소리를 해도 듣지 않겠어. 대체 뭐 이딴 곳이 있어? 단체로 미쳤잖아!”

“당신이 희망이라고 부르는 불 속의 불. 그건 그저 욕망이 만든 고통에 불과하지.”


그때, 바로 등 뒤에서 웬 목소리가 돌려 고개를 돌리니 한 남자가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6피트가 넘는 큰 키에 당당한 체격의 그가 나는 백작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번쩍이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그는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전설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아도니스와 비견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의 정체가 아니었다. 방금 그는 분명 내가 쓴 시를 읊었기 때문이다! 그 시는 불과 얼마 전에 내 친구들에게 보여줬는데 말이다!


백작이 얼굴만큼이나 멋진 목소리로 말했다.


“시 제목이 테멀레인(티무르의 영미식 이름)이라지? 그가 죽기 전에 내뱉은 독백을 시적으로 잘 표현했어.”


나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 백작이었지만 강압적이거나 근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한 모습으로 내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내 저택에 온 걸 환영하네. 자네가 에드거 앨런 포 맞지?”

“절 만난 적이 있나요?”

“당연히 없지.”

“그럼 제 시를 어떻게 알죠?”

“여기 찾아오는 학생들이 자네의 시를 높이 평가하더군. 그래서 알게 됐지. 나도 자네의 글에 흥미가 많고 말이야.”


난장판인 저택과 달리 백작은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이 신사다운 태도로 날 대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백작이 정말 저택의 주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백작과 저택의 모습은 너무 달랐으니 말이다!


그때까지도 나는 백작과 악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작이 먼저 손을 거두지도 않았다. 그는 여전히 나와 악수하길 바라는 모습이었다. 그 환한 미소를 본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백작은 고급스러운 장갑을 꼈는데도 손바닥에서 차가운 기운이 올라왔다. 놀란 내가 손을 빼려고 했지만 백작은 놔주지 않았다.


“정말 반갑군. 드디어 만나게 됐어.”


백작이 내 삶을 바꾸었다. 평화로운 시간에 빠져있던 나를 끄집어내어 어둠으로 떠민 그의 손짓에 모든 게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내 숙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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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후기 +4 23.09.26 172 14 3쪽
60 60. 몰락은 없다 (완결) 23.09.26 110 6 13쪽
59 59. 검은 고양이와 갈까마귀 (2) 23.09.25 66 4 13쪽
58 58. 검은 고양이와 갈까마귀 (1) +1 23.09.22 56 4 13쪽
57 57. 붉은 죽음의 가면 (2) +1 23.09.21 72 4 13쪽
56 56. 붉은 죽음의 가면 (1) +1 23.09.20 48 3 13쪽
55 55. 백작의 성 (2) +1 23.09.19 57 4 13쪽
54 54. 백작의 성 (1) +1 23.09.18 45 4 13쪽
53 53. 윌리엄 윌슨 (3) +1 23.09.17 47 4 15쪽
52 52. 윌리엄 윌슨 (2) +2 23.09.15 53 5 14쪽
51 51. 윌리엄 윌슨 (1) +2 23.09.14 64 3 13쪽
50 50. 생매장 (2) 23.09.13 46 4 12쪽
49 49. 생매장 (1) 23.09.12 46 4 13쪽
48 48. 어셔 가의 몰락 (3) +2 23.09.08 53 4 13쪽
47 47. 어셔 가의 몰락 (2) +1 23.09.06 48 3 14쪽
46 46. 어셔 가의 몰락 (1) +1 23.09.05 48 4 12쪽
45 45. 절름발이 개구리 (3) +2 23.09.04 51 4 13쪽
44 44. 절름발이 개구리 (2) +1 23.09.01 58 4 16쪽
43 43. 절름발이 개구리 (1) +1 23.08.31 42 4 14쪽
42 42. 아몬티야도 술통 (4) +1 23.08.29 53 5 16쪽
41 41. 아몬티야도 술통 (3) +1 23.08.28 57 4 14쪽
40 40. 아몬티야도 술통 (2) +1 23.08.25 48 5 14쪽
39 39. 아몬티야도 술통 (1) +1 23.08.24 73 4 13쪽
38 38. 볼티모어에서 (3) +1 23.08.23 66 4 13쪽
37 37. 볼티모어에서 (2) +1 23.08.22 64 4 13쪽
36 36. 볼티모어에서 (1) +1 23.08.21 74 4 13쪽
35 35.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10) +2 23.08.20 72 6 17쪽
34 34.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9) +1 23.08.18 60 4 15쪽
33 33.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8) +1 23.08.17 66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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