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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노우

에드거 앨런 포는 작가로 살고 싶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제이스노우
작품등록일 :
2023.07.02 10:33
최근연재일 :
2023.09.26 22:25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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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10
추천수 :
361
글자수 :
39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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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4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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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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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 만남 (2)

DUMMY

저택 안은 내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당장 내 눈에만 방이 일곱 개였고, 모두 사람들 때문에 시끌벅적했다. 저택 앞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여흥에 지쳐 쓰러진 사람들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든 채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 열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테이블에 한창 도박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은 서너 명이 열심히 카드를 주고받으니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은 시끄럽게 호응했다.


사람들도 사람들이었지만 나는 테이블에 쌓인 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드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각 적어도 50달러는 가지고 있었다.


50달러니! 도시 노동자의 임금이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5달러 정도였다! 그걸 감안하면 지금 저택에서 벌어지는 도박은, 아무리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학생들의 도박이라고 해도 너무 큰돈이 오갔다!


“좋아! 이번에는 내가 한 번 크게 걸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에서 한 남자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담배를 입에 꼬나문 채 카드를 흔들고는 자기 옆에 있던 돈 수십 달러를 그대로 테이블 중앙으로 밀었다. 그 모습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해밀턴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나와 함께 시인이 되겠다고 약속했던 동료였다! 담배와 도박을 전혀 할 줄 몰랐던 그가 바로 내 앞에 있다는 사실에 나는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해밀턴 저 녀석, 학교에서는 그렇게 조용하게 굴더니!”

“포, 고작 그런 일에 흥분하지 말라고. 여기 오는 사람 모두 자기가 원하는 유흥을 즐길 뿐이야.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군.”


백작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사람들이 유흥을 즐긴다고? 내가 보기에 그들의 행동은 광기이자 타락에 불과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꿈이길 바랐다! 사람들, 아니 이 저택 전체가 차라리 헛것이기를!


나는 당장 저택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문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러나 백작이 즉시 나를 막아섰다. 그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제안했다.


“포, 여길 한 번 좋아해보라고. 자네가 원하는 게 분명 있을 거야. 술이랑 담배를 정말 싫어하나? 게임도 흥미가 없어하는 눈치고. 아니면 승마는 어떨까? 그것도 아니라면······.”


“여기 술!”


카드게임이 한창이던 테이블에서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로 여자들이 술잔을 든 채 모습을 드러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남자들이었기에 특히 눈에 띄었다.


가슴을 거의 드러내고 허리가 강조된 옷을 입은 여자들이 테이블에 술잔을 내려놓자 누구랄 것도 없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예 껄떡거리려고 휘파람을 크게 남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만 지었다.


그러다 여자 하나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갈색 머리에 예쁜 얼굴을 한 그녀는 내게 한 쪽을 깜빡였다.


“포. 여자에 관심이 있나? 그렇다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여기 있는 여자들은 내 밑에서 일해. 혹시 원하면······.”

“저는 미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어요.”


내가 정색하며 백작에게 대답했다. 그 사이 여자는 남자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백작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나는 결국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했다.


“백작님. 예의가 없다는 걸 알지만 이 말을 해야겠네요. 이 저택은 칠죄종(그리스도교에서 규정하는 일곱 가지 죄악)으로 가득한 곳이네요. 여기 사람들은 미쳤어요. 지금껏 이 저택이 학교 몰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네요.”


나는 백작이 격노하여 날 내쫓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혼란스러운 저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더 심한 말을 백작에게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백작은 내 말에 어떤 모욕감도 느끼지 않은 얼굴로 서 있었다. 오히려 백작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알고 싶나?”

“네?”

“어떻게 학교 몰래 여기서 학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지 말이야. 이제야 나와 내 저택이 관심을 보이는군.”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제 말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아직까지 학교가 이 저택을 모르는 이유는 우리들의 믿음 때문이야.”


백작의 반응에 기가 찼는데 누군가 나와 백작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름 아닌 페리였다. 그때까지 페리는 나와 백작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나 백작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와 백작이 페리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술 때문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었지만, 처음 나를 이 저택에 데려올 때와 다르게 눈을 반짝였다.


거기다 제법 또렷한 목소리로 이 저택의 비밀을 설명했다.


“여길 찾은 사람들은 학교에서 절대 이 저택에 대해 말하지 않아. 여긴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곳이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게 있으니까. 그걸 해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 모두가 함께하겠다는 믿음을 갖고 이 저택을 찾는 거야.”


나는 페리의 말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 저택의 비밀은 전혀 대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런 믿음으로 이 저택이 잘도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지금 페리의 태도였다. 나와 백작 사이에 끼어든 그는 분명 나에게 말하고 있었는데도, 시선은 백작을 향하고 있었다.


백작은 페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이 맞아, 포. 자네가 보기에 느슨한 보증에 불과하겠지만 여기 오는 사람들의 믿음은 아주 단단한 결속력을 이루지. 그건 학교의 어떤 규칙이나 규정보다도 강력해.”


백작의 말에 나는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움찔거렸지만, 다행히 페리의 행동이 더 눈에 띄었다. 그가 여전히 수상한 태도로 백작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페리는 정말로 왕이나 귀족을 알현하는 사람처럼 백작을 대했다. 거기다 눈에는 욕망이 너무나 노골적으로 담겨 있었다.


“백작님. 저 잭 H. 페리가 에디를 오늘 여기로 데려왔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군.”


백작의 말에 페리는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입맞춤을 할 기세였다. 분명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페리는 개의치 않아 했다.


“백작님. 저는 늘 백작님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백작님께서 에디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전부터 알고 있어서 오늘 이렇게 데려왔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페리는 백작에게 눈도장을 찍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가 날 이용하려고 저택 밖에서 우악스럽게 날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걸 이제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페리의 행동에 백작이 당황한 기색을 보일 법도 한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페리의 노골적인 태도에도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진심은 전혀 없었다.


곧 백작이 손짓하니 여자 둘이 백작 곁으로 다가왔다. 방금 술잔을 운반하던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곧장 페리에게 팔짱을 끼니 그는 깜짝 놀라 어수룩한 모습을 보였다.


백작은 정중한 모습으로, 그러나 귀찮음을 숨기지 않은 채 페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대가 오늘 수고했다는 걸 충분히 이해했네. 그러니 오늘은 내 특별히 자네가 이 저택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해주지. 술이든 돈이든 여자든 모든지 말이야. 내 마음을 마다하지 않길 바라네.”

“아닙니다, 백작님! 제가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에요!”


페리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으나 이미 여자들이 그를 다른 곳으로 빠르게 끌고 갔다. 그는 있는 힘껏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여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 웃으면서 페리를 데려갔다.


그 모습은 마치 유령이 지옥으로 끌고 가는 모습처럼 보여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자, 우리가 어디까지 얘기를 나눴지? 이제 방해꾼도 없으니 차분하게 다시 대화를 이어나가자고.”


백작이 다시 내게 미소를 보였다. 그 모습에 격했던 내 감정이 금세 사그라졌다. 이제 백작이 왜 이렇게까지 내게 관심을 보이는지 이유가 궁금해졌다.


“방금 페리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이죠?”

“누구?”


백작은 짐짓 모르는 척 내게 되묻는 게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페리를 깡그리 잊어 버렸다. 방금 있었던 소동은 그에게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저를 전부터 만나고 싶어 했다면서요. 왜죠? 왜 이렇게 저에게 친절을 베푸는 거죠?”

“그 얘기는 조용한 곳에서 나누지. 나는 그저 자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을 뿐이야.”


백작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앞장섰다.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다. 이 저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그러나 나는 순순히 백작이 날 놔주지 않는다는 걸 직감했다.


이 저택에 들어온 이상 백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곧 백작이 내게 손짓했다. 여전히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경계하는 모습이 꼭 고양이 같군. 얼른 따라오게.”


나는 그를 뒤따랐다. 그러면서 방금 페리가 여자들에게서 끌려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내 모습이 페리의 모습이 비슷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백작이 나를 안내한 방은 집무실이었다. 환한 다른 방과 달리 집무실은 불빛이 은은하게 퍼졌다. 아래층과 달리 상당히 조용했다.


“자, 여기 앉지. 이제 우리를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백작이 방에 있는 원형 책상을 가볍게 두들기고는 의자에 앉았다. 책상이나 의자나 상당히 낡아서 백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책상과 의자만이 아니라 방에 있는 모든 가구들이 낡았다. 그리고 물건도 많지 않아서 휑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도 백작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백작에게 물었다.


“제안이 뭐죠, 백작님?”

“벌써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포, 뭐가 그렇게 급하지?”

“제 심정을 이해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순간 백작의 눈빛이 변했다.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아주 찰나에 보였던 눈빛은 마치 사냥에 나서는 짐승과 같았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내가 착각한 건 아닌지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내가 신경이 곤두섰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러나 백작의 태도가 아래층과 달라졌다는 걸 나는 확신했다.


백작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한꺼번에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날 경계할 수밖에 없겠군. 이제 모두 이해했어. 그럼 어떤 말부터 할까? 먼저 정식으로 날 소개해야겠지? 내 이름은···일단 레이놀즈라고 하지.”


일단? 이상한 말이었지만 백작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포. 나는 영국의 명망 있는 가문의 후예네. 비록 지금은 몰락해서 그 명성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내 가문을 알아봐주는 이들이 적지 않아. 그리고 나는 여기 미국을 비롯해서 여러 국가에서 사업을 하고 있네. 솔직히 내가 수완이 꽤 좋아.”


나는 백작의 말을 들으며 수양아버지 존 앨런을 떠올렸다. 앨런은 백작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수완 좋은 사업가라고 포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백작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백작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사업가지만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나는 가문에서 물려받은 성이 있지. 그 성에 수많은 회화와 조각품이 있어. 하지만 나는 수집가가 아냐. 후원자지. 나는 전도유망한 예술가를 후원하고 있어. 자네처럼.”

“그러니까, 백작님께서는 저를 후원하고 싶다는 뜻인가요?”

“바로 맞았어! 그런데 백작님이라는 호칭은 좀 딱딱하군. 이제는 레이놀즈라고 불러. 나도 자네를 에디라고 부르지. 괜찮지, 에디?”


백작은 아직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벌써부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미 나와의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제안을 바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물어볼 게 많았다.


“레이놀즈 백작님.”

“그냥 레이놀즈라고 부르라고, 에디.”

“그럼, 레이놀즈. 왜 하필 저죠? 저보다 더 유능한 시인과 소설가는 많잖아요?”

“그렇지. 이 버지니아 대학교 말고도 글을 꽤 잘 쓰는 젊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 하지만 모두 내 마음을 흔들지 못했어. 하지만 자네는 달랐어.”

“달랐다고요?”

“표현하자면 내 세계로 들어왔다고 할까? 자네의 글을 보고 나서 말이야. 그리고 지금 자네와 만나면서 그 마음이 더 확실해졌어.”


중세 유럽만큼은 아니더라도 예술가를 후원하는 귀족과 사업가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다. 후원은 예술품을 구매하는 행위와 다르다. 한 사람의 재능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가 온전히 예술행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후원을 마다하겠는가. 백작의 제안은 분명 행운이다. 아주 엄청난 행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백작의 손을 덥석 잡지 않았다. 분명 마음이 흔들렸지만 동시에 나를 차갑게 만드는 무엇이 가슴 아래에 있었다. 그것이 내 마음을 제어했다.


“만약 거절하면요?”

“거절? 거절이라.”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그 대답은 그의 생각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백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아쉽겠지. 하지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해주길 바라네. 우선 차 한 잔 할까?”


백작이 탁자에서 멀어지더니 찻잔과 주전자를 직접 가져왔다. 휑한 집무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이국적인 찻잔 세트였다. 나는 그게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백작은 차를 준비했다. 곧 방금 끓인 것처럼 찻잔에 따뜻한 차가 담겼다. 사늘했던 방 안에 차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조금 나아졌다.


“먼 동양에서 얻은 찻잎이지. 영국 왕실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거야. 마시면서 내 제안을 다시 한 번 고민해주면 좋겠어.”


나는 앞에 놓인 차를 잠시 바라봤다. 맑은 호박색 물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어 찻잔을 잡았다. 따뜻한 느낌이 손에서 맴돌았다.


백작이 먼저 한 모금 마시니 나도 따라서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달짝지근한 맛이 혀에 맴돌았다. 차향도 풍부해서 코끝에서 한참동안 맴돌았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차에 나는 몇 모금 더 마셨다. 백작이 말한 대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방금 전까지 꼿꼿하게 세웠던 허리가 조금씩 풀렸다.


“담배도 한 번 피우겠나?”


어느 새 백작이 물담배를 준비했다.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물병에서 물을 부글부글 끓었다. 그 위로 하얀 연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백작은 물병과 연결된 호스로 연기를 빨고는 입으로 내뱉었다.


담배연기가 원탁 주변으로 퍼졌다. 담배냄새 또한 썩 나쁘지 않았다. 차향과 함께 섞이니 풍부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동시에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뭔가 점점 이상해졌지만,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어 나는 차만 홀짝였다.


그러다 차를 다 마시자 나는 주전자를 바라봤다. 이렇게 금방 찻잔이 비우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주전자를 가리켰다.


“담배 말고 차를 더 마시고 싶은데요.”

“얼마든지. 이 차가 마음에 든 모양이군. 나도 즐겨 마시지.”

“향과 맛이 정말 좋네요.”

“누구라도 이 차의 매력에 빠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지.”


다시 내 찻잔에 차가 가득 찼다. 백작이 내뿜는 뿌연 담배연기는 계속해서 원탁 주변에 맴돌았다. 나는 차를 계속해서 마셨다.


그리고 시끄러웠던 저택 아래층은 이제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시 보니 집무실은 아늑했고, 더 머물고 싶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조심히 백작에게 물었다.


“레이놀즈, 제가 어떤 글을 써야 하죠?”

“그야 당연히 자네 이야기지. 자네의 풍부한 상상과 창의력으로 채워진 글을 원해.”

“저는 지금까지 시를 썼는데요. 당신이 원하는 글은 소설 아닌가요?”

“뭐든 상관없어. 자네의 능력을 충분히 담은 글이라면 아무래도 좋아. 대신 아쉬운 점이 있어.”

“그게 뭐죠?”

“경험이야. 그건 내가 채워줄 수 있어.”


백작이 끌끌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때 백작의 웃음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미소와 다르게 마치 쇠를 긁는 듯 무시무시했다.


백작의 이상한 웃음에도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계속 차만 마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찻잔을 비워지니 백작이 내 잔을 채웠다.


“에디. 나는 자네한테 경험을 전해줄 거야. 이 세상 누구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대단한 경험이지. 마치 이 차처럼. 이제 좀 흥미가 생겼나?”


나는 대답대신 찻잔을 모조리 비웠다. 그리고 찻잔을 원탁에 내려놓는 순간, 내 머리도 빠르게 기울어졌다.


그때, 나는 백작과 눈이 마주쳤다. 번뜩이는 눈빛. 나는 연기 사이로 분명 그 눈빛을 보았다.


백작과의 기억은 그게 끝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건 동이 틀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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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 몰락은 없다 (완결) 23.09.26 117 6 13쪽
59 59. 검은 고양이와 갈까마귀 (2) 23.09.25 66 4 13쪽
58 58. 검은 고양이와 갈까마귀 (1) +1 23.09.22 57 4 13쪽
57 57. 붉은 죽음의 가면 (2) +1 23.09.21 74 4 13쪽
56 56. 붉은 죽음의 가면 (1) +1 23.09.20 48 3 13쪽
55 55. 백작의 성 (2) +1 23.09.19 58 4 13쪽
54 54. 백작의 성 (1) +1 23.09.18 46 4 13쪽
53 53. 윌리엄 윌슨 (3) +1 23.09.17 49 4 15쪽
52 52. 윌리엄 윌슨 (2) +2 23.09.15 56 5 14쪽
51 51. 윌리엄 윌슨 (1) +2 23.09.14 66 3 13쪽
50 50. 생매장 (2) 23.09.13 49 4 12쪽
49 49. 생매장 (1) 23.09.12 47 4 13쪽
48 48. 어셔 가의 몰락 (3) +2 23.09.08 55 4 13쪽
47 47. 어셔 가의 몰락 (2) +1 23.09.06 51 3 14쪽
46 46. 어셔 가의 몰락 (1) +1 23.09.05 49 4 12쪽
45 45. 절름발이 개구리 (3) +2 23.09.04 53 4 13쪽
44 44. 절름발이 개구리 (2) +1 23.09.01 60 4 16쪽
43 43. 절름발이 개구리 (1) +1 23.08.31 43 4 14쪽
42 42. 아몬티야도 술통 (4) +1 23.08.29 55 5 16쪽
41 41. 아몬티야도 술통 (3) +1 23.08.28 57 4 14쪽
40 40. 아몬티야도 술통 (2) +1 23.08.25 50 5 14쪽
39 39. 아몬티야도 술통 (1) +1 23.08.24 74 4 13쪽
38 38. 볼티모어에서 (3) +1 23.08.23 69 4 13쪽
37 37. 볼티모어에서 (2) +1 23.08.22 65 4 13쪽
36 36. 볼티모어에서 (1) +1 23.08.21 75 4 13쪽
35 35.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10) +2 23.08.20 73 6 17쪽
34 34.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9) +1 23.08.18 61 4 15쪽
33 33.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8) +1 23.08.17 67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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