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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나락 일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snownun
그림/삽화
원one
작품등록일 :
2020.07.17 19:55
최근연재일 :
2020.12.07 19:5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497
추천수 :
228
글자수 :
196,698

작성
20.12.02 19:40
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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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풀려가는 이야기

DUMMY

방해석을 보듯 방패의 눈동자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나흘이 지나고, 우린 어딘지 모를 얼어붙은 대지 한가운데의 한 평원에 서 있었다.


평소처럼 얉은 눈보라와 스쳐가는 눈덩이들이 시선을 메웠고, 그 너머에는 한 마리의 스켈레톤이 나지막하게 서 있었다. 누가 봐도 나즈다. 복장부터 시작해서 키까지 다 동일하다. 그는 마치 길을 가다 멈춘 듯해 보였다. 날아다니지 않는 걸 봐서 부유같은 마법이 없는 거겠지. 물론 상대가 저런 마법이 없다는 거에 이점은 없다. 나도 없는 마법이니까.


가만히, 또, 고요히, 우리가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 것처럼, 혹은 우리의 인기척을 아직 느끼지 못한 것처럼, 지평선 끝의 하늘과 구름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 인기척을 못느낀 건 아니리라. 그럼 멀리서 공격하는 수밖에 없는 데...왠지 불안하다. 아니,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잖아. 먼저 제압이라도 해보자.


막연한 백색의 화살을 떠올리고, 날카롭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혈관을 따라 가는 혈액처럼 빠르게 순환되는 영혼 내의 마력을 읽어 나즈를 향한 손 끝에 집중한다.


"[마법 강화: 마법 화살]."


손등과 손가락을 타며 생성되고 방출된 마력의 화살이 내려치는 눈들을 스쳐 지나가며, 꿰뚫고, 이내 그 목표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허나, 그의 발밑에서부터 수많은 시체의 손발이 솟아나며 날아온 마법 화살을 간단히 막아 없애버렸다.


다행히 그걸 구성한 뼈들은 변변치 못한 것이었는 지 그 충격을 흡수하고 무마함과 동시에 부서지며 튕겨져나갔다. 하지만, 부서져버린 뼛조각조차 진창이 된 눈밭 깊이 빠져들어가며 다시 방패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젠 방패에 이어 그것들까지...!!!"


그는 이 말과 함께 뛰쳐나와 그 뾰족한 손가락 끝마디로 내 이마를 매만지며 자국이 나도록 긁었다. 단순히 건드리는 것만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뒷걸음질 치지 않았었다면 그 손톱은 내 미간에 구멍을 뚫어버렸으리라. 꽤 따끔하다. 지금까지 고통을 느껴본 적은 없었을 텐데.


마법사가 근접해 오다니, 나와 똑같은 마법 검사인 걸까? 그런 생각을 채 마무리 짓기도 전에 내 시야는 그 시체의 무더기로 가득찼고, 빠르게 날아와 날 강타하려 했다.


"[불사자의 불꽃]...!"


처음엔 [불사자의 불꽃]을 터트려 어느정도 막을 수 있었지만, 터져나가도 되돌아오는 회복력과 막강한 물량에 밀려 던져졌다.


난 그대로 눈밭에 길을 만들어내며 굴러떨어졌다.


내가 날아간 그 즉시 간느의 입에서 푸르른 결정빛의 냉기가 쏟아져나왔고, 시체의 기둥을 얼려내며 정지시켰다. 어느 새 브레스를...그보다 얼려버리면 쉽게 무력화할 수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실험해볼 게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무기를 철퇴로 바꿔야 한다. 소검으로 공격하려 해봤자 의미없다. 스틸레토도 마찬가지다. 허점을 만들어봤자 막힐 가능성이 높다.


먼저 달려가며 마법 하나를 영창했다. 아직 써본 적도 없는 마법이지만, 어차피 신비의 결정이 준 거라 상관없다.


"[프로스트 랜스]."


왼손에서부터 생성된 결정의 끝부분을 다가오는 시체의 기둥에 때려박고, 냉기를 퍼트리며 뒤이어 아직 생성되지 않은 결정도 박아넣는다. 이를 통해 기둥의 심지는 거의 다 얼어붙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몸을 돌리며 옆으로 빠져나온 뒤......일이 꼬여버렸다. 원래라면 옆으로 튀어나온 시체의 기둥을 철퇴로 후려쳐야 했겠지만, 지금은 기둥이 한 발 더 빨리 튀어나와 버렸다.


또다시 날아갈 걸 대비해 낙법을 준비하던 도중, 나를 향한 시체의 손들이 전부 얼어있단 걸 깨달았다. 간느구나. 난 이걸 기회삼아 무게중심을 모두 손에 쏟아부으며, 넘어짐과 동시에 날아오고 있던 시체들을 내려쳐 그 속을 이루고 있는 단단한 얼음마저 깨트렸다.


원래라면 최소한 얼어붙지 않은 겉부분만이라도 나에게 덤벼들 테지만, 널부러진 시체들은 내 예상대로 꿈쩍도 안한 채 멈춰 있었다. 역시 이건 마법을 통한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이 철퇴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난 넘어진 몸을 재빠르게 일으켜세우며 나즈에게 달려갔다. 중간에 계속해서 방패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여나 환각에 걸리기라도 했다간 일이 크게 어긋나버린다. 방패의 능력을 아는 나즈가 바보같이 세 번이나 환각을 걸어줄 리도 없으니. 하지만 걸린다 하더라도 내가 나한테 환각을 걸면 된다. 즉, 그의 특기라고 추정되는 환영은 이제 무쓸모해졌다. 그도 이걸 잘 알고 있겠지.


솟구쳐 올라오는 기둥들을 회피하고, 간느의 브레스로 얼려버리며 한 발자국씩 전진해나간 끝에 나의 끝발자국은 나즈의 발옆을 딛고 있었다. 그리고, 나브에게 배운 마법 [구속]을 시전한.......


"[속삭임]."


내 말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그의 입이 먼저 움직여왔다. 그리고, 텅 빈 두개골 사이를 메아리치듯 강렬한 울림이 튕기고 튕겨져나갔다. 진동 때문에 시야도 흐려져서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그 사이에, 그는 내 허리춤에서 스틸레토를 꺼내들어 내 늑골에 꽂아넣었다. 옷에 가려져서 척추가 찔리질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옷 사이로 단검이 박힌 채 쓰러지려 하는 나의 뒤에서 불길한 감이 퍼트려와졌다. 진창이 된 눈밭 밑에 묻힌 시체들이 쇠꼬챙이 마냥 날 꿰뚫으려 하는 것이었다.


"[영체화]...!"


이것도 처음 써보는 마법이지만, 지금 상황에 가장 적합하다 판단해 시전했다. 내 몸은 그 즉시 영혼뿐인 상태가 되어 모든 물체들을 투과할 수 있었고, 육체와 무기는 마력으로 변환돼 영혼 속에 보관되고 있었다. 문제점은, 내가 마법을 못쓴다는 점이었다. 이런 상태로 마법을 쓴다는 건 내 팔다리를 날려버린다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난 비교적 안전해보이는 간느의 곁으로 도망쳐 [영체화]를 해제했다. 하지만 그는 순식간에 내 위치를 파악하고선 마법을 날려왔다. 그는 두 눈의 불길을 부릅뜬 채 날 노려보았고, 송곳같은 손마디 끝에서 비치는 빛은 그 살의가 명확히 느껴지게 했다.


"[4회 연속시전: 마법 강화: 체인 라이트닝]. [마법 최강화: 마법 강화: 마법 강화: 충격파]."


하나같이 단순한 마법들이었지만 온갖 수식어들이 덧붙여지며 그 위력을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강대해져 있었다. 저기에 들어간 마력만 해도 어느정도인지...하지만 이걸로 알았다. 그는 기본 위력이 약한 마법밖에 못쓴다.


퍼져나온 4방향의 번개는 잔상이 길을 이루듯 한순간에 내 전신을 덮쳐왔고, 거대한 울림을 자아내며 날려진 충격파는 내 눈 앞의 모든 걸 압도했다.


피할 수가 없다. 지금 영체화를 썼다간 간느가 피해를 입는다. 그렇다고 맞고 버틸 만큼 내 몸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마법 방패]를 쓰면 마력을 다 써버리게 되리라. 저 정도급의 마법은 마력으로 변환하는 데만 내 모든 마력을 쏟아부워야 한다. 맞고 [생명 변환]으로 재생할까? 이것도 무모한 선택이다. 자칫하단 마법을 채 쓰기도 전에 박살이 날 수도 있다.


과연 이 스틸레토와 철퇴가 버틸 수 있을까...아니, 지체할 시간 따윈 없다.


왼손에 든 철퇴를 올려쳐 충격파와 전격을 모두 멈춰낸 뒤, 스틸레토를 투창 잡듯이 뒤로 당겨 찰나의 순간에 밀어넣었다. 역시나 완벽하게 막아낼 수는 없었는지 손목과 팔을 따라 얇은 실금들이 넓게 새겨져가고 있었다. 무기도 마찬가지였다. 철퇴는 이미 부딫힌 날이 완전히 닳아버렸고, 스틸레토는 날 끝이 완전히 마모되어 단검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걸로 우리 둘 다 보호받을 수 있었다.


우린 스틸레토가 만든 충격파의 중간 구멍 사이로 빠져나왔고, 동시에 전격들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난 미처 제대로 피하질 못한 탓에 오른쪽 어깨에 전격을 맞아버리고 말았다. 번개가 내려치듯 찢어진 로브엔 탄자국만이 잔불을 삼켜가는 채 남아 있었고, 이는 내 어깨 또한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오른팔이 부서질 것만 같다. [생명변환]을 쓸까? 아니다, 아직 그런 마법을 쓰기엔 이르다.


반쯤 망가진 스틸레토와 철퇴는 잠시 허리춤에 걸어두고선 오른손엔 소검을, 왼손엔 붉은 검, 여명을 들었다.


막상 나즈에게 달려가려는 참에, 그는 이미 내 한 걸음 앞에서 날 내려다보며 눈동자의 불길을 폭발시키듯 강렬한 분노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조차 없는 경멸을 내비쳤다.


"사프즈자하즈카, 나즈카아흐, 사크나크타, 나즈타나크가. 각각 네 방패와 소검, 단검, 그리고 철퇴의 이름이다. 스승님께서 평생에 가까이 소지하고 계셨던 귀중한 물건이지. 감히......감히...감히감히감히!!!! 너같은 애송이가 쓴다니!!!!"


[속삭임]의 여파인지, 그 목소리는 아직도 울려 시야를 흐러뜨렸다.


초점을 맞추고, 직시한 그의 손엔 투박한 생김새를 한 한 자루의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모양새를 봐서 나브가 건네준 스틸레토는 아닌 것 같은 데, 어디서 난 건지.


내리꽂히는 그의 단검을 소검으로 흘려내고, 여명으로 반격을 가하려 했으나 똑같이 얇은 시체의 기둥이 내 검을 막아섰다.


"[충격파]."


그의 반대쪽 손에서부터 작은 충격파가 날아왔지만 소검으로 꿰뚫어 무마시켰다.


이래선 도저히 마법을 걸 수가 없다. 간느는 마법도 못쓰고, 나 대신 나머지 시체의 기둥들과 맞붙고 있으니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작은 마법은 소검으로 베어내고 조금 큰 마법은 시전하려는 손 자체를 코등이로 밀어내며, 다양한 각도에서 스며들어오는 단검을 흘려내는 걸 계속해서 반복했다. 하지만 내 쪽이 훨씬 더 많은 무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상황은 나즈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이 때다. 양손의 무기를 바꾼 뒤, 오른손에 들린 여명을 강하게 내려친다. 당연하게도 시체들에 들이막힌 검은 그대로 손을 빠져나와 허공을 돌았고, 내 오른팔의 팔뚝은 마침내 반으로 쪼개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생명 변환]."


동시에 [생명 변환]을 쓰며 공중에 뜬 검의 칼날을 쥐어잡아, 온 힘을 다해 손잡이 끝의 무게추로 내려친다.


당연하게도 이 공격은 시체들의 손에 의해 궤도가 약간 빗나갔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내 노림수다. 무게추는 애매하게 휘어진 궤적을 짊어맨 채 나즈의 광대뼈를 스쳐지나갔고, 이는 나즈의 시선을 옆으로 돌려 한 순간의 공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공백동안 멈춰선 시체의 손들을 소검으로 치워내고선 머리 위에 왼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구속]. [환영 세계]. [회상]."


이건 전부 다 나브에게 배운 마법이다. [구속]으로는 그가 움직이지 못하게 막고 [환영 세계]와 [회상]으로 그를 과거의 추억이라는 환상 속에 담궈놓았으니 우린 이제 나브에게 끌고가기만 하면 된다. 그나저나 더 이상 남은 마력이 없다. 뭐, 괜찮겠지.


무너져내린 시체들을 피해 날아온 간느에게 말했다.


"드디어 끝났네...그럼 나즈가 깨기 전에 빨리 이동하자. 간느."


그러자 간느가 자신의 몸에 묻은 먼지와 시체 조각을 털어내며 말했다.


"그래. 최대한 빨리 날아갈 테니 놓치지 않게 꽉 잡고 있어."


작가의말

죄송합니다......이런 식으로 늦은 게 몇 번인지......언제나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다음엔 조금 더 빨리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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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2부-창백의 일대기 +2 20.10.17 44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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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되돌아오다 +6 20.09.08 32 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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