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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일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snownun
그림/삽화
원one
작품등록일 :
2020.07.17 19:55
최근연재일 :
2020.12.07 19:5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485
추천수 :
228
글자수 :
196,698

작성
20.08.12 21:51
조회
39
추천
6
글자
9쪽

괴뢰와 마녀

DUMMY

나는 기억에 남아있는 대로 미네르바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집 주변은 모두 하나같이 어둡고, 사람도 적어서 은근 찾기 어려웠다.


기묘한 느낌과 특유의 신비한 분위기 때문에 찾기 쉬울 거라 생각한 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다.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한참을 헤매던 도중 갑자기 무언가가 나의 움직임을 속박했다. 나를 속박한 무언가의 정체는 바닥의 흙과 조약돌이었다. 내가 당황하며 발을 빼기 위해 발버둥치려던 찰나, 누군가가 걸어왔다.


"내 검이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있었네. 이 좀도둑 같으니라고."


골목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건 한 명의 노파였다. 다만, 미네르바는 아니었다. 비슷한 분위기를 띄고는 있어도, 완전히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고선 조용히 걸어와 내가 등에 매고 있는 검을 꺼내들었다.


"흐음, 여전히 아름다운 검이로세."


노파는 검신을 한 번 훑어보고는 코등이에 달린 해골 모양 장식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괘씸한 놈. [괴뢰화]."


갑자기 발 밑의 구속이 없어졌다. 하지만 난 아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설마, 아까 전에도 그렇고, 마법사였던 건가...! 내 양쪽 손등에 자주빛의 실 같은 게 하늘 위로 이어져 있었다. 자주빛인 걸 보니 저주 같기도 한데...모르겠다.


난 저항할 수조차도 없이 그 마법사를 따라 걸어갔다. 어떻게든 도망가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꼭두각시처럼....


마법사가 걸어간 곳은 그가 나왔던 골목의 깊숙한 안쪽이었다. 그는 벽을 보고선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이상한 문자를 써갔다. 그리고 잠시 뒤로 물러나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나세차 사체, 사네하 하페 아헤 하체(문아, 열리거라)."


마법사의 말이 끝나자 골목의 바닥은 기다렸다는 듯이 위로 솟아올랐고, 그 안에는 하나의 작은 지하실이 있었다. 어떻게 한 거지...? 알 수 없는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내가 고뇌하고 있을 때도 내 몸을 계속 마법사를 따라 움직였다. 고개를 돌릴 수조차도 없으니 너무 답답하다.


지하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누군가의 흑백 초상화 두 점과 그 밑에 적혀 있는...칼린 스콧, 탈린 스콧...이었다...잠깐, 뭐지? 저 두 초상화는 스콧 형제의 초상화라는 건가? 그 밑에 있는 관은 또 무엇인가? 아직 지하실 안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내 머릿속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뼈로만 이루어진 인간에, 팔 한 쪽이 얼어붙어 있어도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니. 흥미로워, 흥미로워."


내 마스크를 벗긴 그녀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이 말했다. 혼란스러운 나의 머릿속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고 더 혼란스러워지기만 했다.


"이런, 내 소개를 잊었구나. 할린 스콧, 이게 내 이름이란다. 탈린 스콧의 손녀지. 어때? 믿기 힘들지? 저기 있는 관도 할아버지의 관이란다."


내가 혼란스러워한다는 걸 알아채린 듯한 그녀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탈린 스콧이라면 분명 칼린 스콧의 동생이자 형을 따라갔다가 같이 조난당해 죽은 걸로 알려진 사람이다. 근데 이렇게 멀쩡히 시체가 남아있다니, 말도 안된다. 설마 살아있었던 건가?


"자, 말하거라. 넌 어디서 왔지? 네 정체가 뭐냐? 누구와 친분이 있지?"


친분? 갑자기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말하라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입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극한의 대지에서 왔고, 정체에 대해서는 저도 모릅니다. 이 마을의 아문센과 극한의 대지의 서리 거인 프로메테우스, 화이트 부족의 온건파 웨어울프 족장 발레리우스, 온건파 웨어울프에 속하는 인간 피어리와 친분이 있습니다."

"오호라...꽤나 넓은 인맥이로구나."


잠만, 뭔가 불안하다. 뭐지? 그녀의 비웃는 얼굴을 볼수록 내 불안은 점점 더 고조되어갔다.


"만약, 네가 네 손으로 네 친구를 죽인다면, 그것 만큼 재밌는 일도 없겠지?"


뭐...뭔 말을 하는 건가. 내 불안에 대답해주듯, 그녀는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묻겠다. 네 동료 아문센은 지금 어디에 있지?"


대답하기 싫다. 대답해선 안된다. 하지만 내 입은 그녀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고, 아무리 노력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마을 입구 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있어선 안되는 일이다. 내가 내 손으로 내 동료를 죽인다니,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에 대한 내 예상이 맞다면...생각하기도 싫다.


그녀는 다시 밖으로 나와 후드를 쓰고 자연스럽게 마을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난 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만개한 미소를, 사악하게 웃는 미소를. 제발 내 예상이 맞지 않길 바란다.


아문센을 발견한 그녀는 어딘가에 숨었고, 뒤에서 날 조종했다.


"...아문센. 지금 당장 좀 만날 수 있나? 중요한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내 말을 아문센이 무시하길 빌었지만, 아문센은 평소와 같이 웃으며 답했다.


"지금 말인가? 뭐 곧 있으면 교대니까 괜찮다네."


내 말에 아문센이 거절하길 빌었지만, 아문센은 평소와 같이 웃으며 답했다.


평소와 같은 일상이 내게 독이 되는, 그런 고통이 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내 영혼은 필사적으로 고통을 거부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고통이 흘러들어오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난 아문센과 같이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난 내 허리춤에 찬 아밍 소드를 꺼내들었다.


내가 검을 꺼내들자 아문센의 뒤에서 그녀가 튀어나왔고, 그녀는 나에게 한 가지, 아주 짧지만서도 아주 고통스러운,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의 사지를 찢어갈겨 불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녀의 입이 열리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항상 적중해버린다.


"죽이거라"


단 네 글자 뿐인 말, 그 말 하나에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리다니,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그녀는 오직 재미만을 느끼는지, 흥미롭게 지켜보며 입에 웃음기를 담았다.


난 어떻게든 저항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였지만 떨림이 그칠 줄 모르는 손에도, 버티고자하는 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은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미...안...하네...."

"크...헉...."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 절망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아 죄악감 담긴 말들을 내뱉었다. 숨이 필요없는 몸임에도 숨이 가팔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로 어지러웠다. 반복되며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어지러움이 내 사고를 방해했다.


잠깐, 뭔가 이상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무언가 해낸 듯한 웃음이었다.


어지러움 때문에 잘 못 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어지러움은 이내 깨져버렸다.


그는 팔꿈치로 뒤에 서있는 그녀의 턱을 강타했고, 내 손을 잡아 복부의 칼을 더 깊숙히 꽂어넣었다. 난 이게 도대체 뭔 상황인지, 그가 뭘 하려는 건지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아문센이 깊숙히 꽂아넣은 검은 뒤에서 정신을 잃고 휘청거리는 그녀의 복부도 같이 찔렀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고 나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자네는 이런 거에 쉽게 당하는 멍청이가 아니라네!!!!"


그의 말 때문인지, 그녀가 정신을 잃었기 때문인지, 내 손 위의 실이 끊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정신을 차리며 짜증나는 표정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망할 자식들! [다가오는 죽음]!!"


난 아직 몸을 제대로 겨누지 못한 나머지 그녀의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크윽!!!"


기묘하게도 고통은 잠시뿐이었다. 고통의 자주빛 오라는 내 팔을 타고 내가 들어 올린 검에 흘려들어가, 이내 사라져버렸다. 뭐지...? 모두 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이었고, 이 자리에 서 있는 세 명 모두가 의아해했다. 의아함이 곧 고요함이 되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고요함을 깬 건 그녀의 한 마디였다.


"서...설마...두개골 브로치 때문에...?"


뭔 말을 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두개골 브로치라는 건 아마도 이 붉은 검의 코등이에 달린 해골 장식을 말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저주를 면했고, 이제 남은 건 그녀를 죽이는 것 뿐이었다.


"젠장! 젠장! 저주해주마! 저주해버리겠어!"


이게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난 달려가 그녀의 목과 몸을 양단했다.


작가의말

중간에 나온 ’나세차 사체, 사네하 하페 아헤 하체‘의 경우 제가 만들어본 언어인데, 제 세계관에서는 ’마력어‘라고 칭합니다. 마력어는 총 세 개로 각각 룬 문자와 아케인 문자, 그리고 아직 자세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만들 예정인 노드 문자가 있습니다. 앞의 말은 아케인 문자로, 원을 그리고 그 안에 마법진처럼 문자를 써넣으면 문자 안에 공기중의 마력이 갇혀 마력을 쓰지 않아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줍니다. 반면 룬 문자는 원을 그리지 않아도 소량의 마력이 갇히고, 금과 닿아야만 마법이 발동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드 문자는 앞의 두 문자와 완전히 다른 데, 그냥 말하는 것만으로 소리에 마력을 가둬 마법을 시전할 수 있지만 노드 문자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사실상 없는 문자나 다름없습니다.


‘나세차 사체, 사네하 하페 아헤 하체’는 마법을 썼다기다는 그냥 비밀번호로 설정해놓은 말 같은 겁니다. 아케인 문자 마법은 [(마법 이름)]의 구조로 만들어져 발동됩니다.


마법과 저주는 살짝 다릅니다. 둘 다 마력을 사용하는 건 똑같지만 거의 대부분의 일이 가능한 마법에 비해 저주는 상대를 점점 잠식해가고 천천히 고통을 주는 것들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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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습격 +2 20.11.20 16 1 14쪽
38 지식 쟁탈전 +2 20.11.17 19 2 16쪽
37 두 개의 동굴 +2 20.10.30 30 3 13쪽
36 드래곤 +4 20.10.25 24 5 14쪽
35 마법의 검사 +2 20.10.22 31 4 10쪽
34 신비의 결정, 푸른 세상 +6 20.10.20 33 6 11쪽
33 2부-창백의 일대기 +2 20.10.17 44 4 9쪽
32 하나의 육체, 두 명의 영혼, 동일한 운명. +6 20.10.16 29 5 13쪽
31 불멸자와 필멸자(삽화) +4 20.10.14 29 5 14쪽
30 반복되는 하루의 끝 +4 20.10.12 18 5 11쪽
29 복수의 여정 +8 20.09.23 40 7 13쪽
28 허무함(삽화) +4 20.09.19 37 4 12쪽
27 되돌아가다 +8 20.09.13 33 6 15쪽
26 되돌아오다 +6 20.09.08 32 5 15쪽
25 불사의 존재(삽화) +2 20.08.31 50 3 13쪽
24 결전의 날(삽화) +8 20.08.17 57 7 19쪽
23 다시 만난 웨어울프들 +6 20.08.16 40 6 10쪽
22 지하실 +4 20.08.14 32 5 12쪽
» 괴뢰와 마녀 +6 20.08.12 40 6 9쪽
20 잠시의 휴식 +2 20.08.10 35 6 12쪽
19 베어내지 못했던 것 20.08.08 28 4 9쪽
18 베어내지 못하는 것 +2 20.08.02 36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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