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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나락 일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snownun
그림/삽화
원one
작품등록일 :
2020.07.17 19:55
최근연재일 :
2020.12.07 19:5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482
추천수 :
228
글자수 :
196,698

작성
20.10.16 17:23
조회
28
추천
5
글자
13쪽

하나의 육체, 두 명의 영혼, 동일한 운명.

DUMMY

걸었다.


나의 시작까지.


내가 일어난 곳.


내 이야기가 시작된 곳.


내 모든 일대기가 시작된 곳.


그 곳까지 걸었다.


내가 무엇을 걸어가고 있는 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강한 눈보라가 내 눈 앞의 모든 것을 가렸으니까. 반면 저주받은 대지는 마치 환영한다는 듯이 맑게 개어있었다.


그렇게 바랬는데, 이제서야 갈 수 있게 되었군...때는 이미 늦었지만.


이상한 기척과 감에 쫓겨 어느새 내가 첫번째로 일어난 산을 타게 되었다.


검을 꽂고, 튀어나온 얼음을 잡는다. 그리고 올라간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과거의 어느 날, 멀리서 보았던 오로라와도 같은 산을, 지금 내 손으로 직접 올라가고 있다. 분명 이 위에는 아무도 살지 않겠지.


산의 꼭대기는 별 볼일 없었다. 내가 한 말처럼 그 누구도 없었으며, 그저 좁고 딱딱했다.


발 밑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빛의 흔적.


거기엔 '신비의 결정' 하나가 존재감을 풍기고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 다가가와주라는 듯이.


그것에 손을 갖다 대자, 수많은 빛의 끈이 내 팔을 휘감았다.


동시에 들려오는 하늘의 목소리. 정확히 누구의 것인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라는 것. 본능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대단한 존재의 목소리라는 걸.


"소원을 말하거라."


잠시의 망설임. 난 어떻게든 닫힌 입을 열어 말을 하려 했다.


소원...그래, 물어보자. 어째서 나에게 이런 운명을 하사한 것인가. 이 답을 알고 싶다. 그 어떤 궁금증보다도 강렬히.


"신과 대화하고 싶네."


말이 끝나자마자 내게 휘감긴 빛의 끈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애초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이 몸과, 대화하고 싶다고?"


아까와 똑같은 신의 목소리다.


"그래, 자네와 대화하고 싶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웃음.


"신과 대화하는 걸 영광으로 여기거라. 나약한 '비반신'이여."


맞는 말이다. 난 나약하다. 그렇기에 직접 이룬 것도 별로 없다. 비반신이라는 건 반신이 아닌 존재를 말하는 거겠지. 이것도, 맞다. 난 반신이 아니니까.


나의 대답을 들으려 하지도 않은 채 신이 말을 이어갔다.


"신은 본래 세상의 기둥, 즉, 네가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그런 존재를 부른다 한들, 쉽게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지. 난 신의 대리인이다. 정확히는 '최고신'의 열화된 분신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특별한 존재에게 말을 전하는 것밖에 없다. 내가 뭘 말하든, 위대한 신과 관련된 건 없으니 그렇게 받아들이거라."


신의 대리인, 이라. 뭐, 상관 없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내 운명, 그 자체니까.


"내 운명은...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건가."


금방이라도 머리가 깨질 듯한 기억이 계속해서 떠올랐지만, 난 그럼에도 굳은 입을 어떻게든 움직여 말을 계속해갔다.


"내 운명은...도대체 어떻게 되어 있길래, 이런 고통으로밖에 채워지지 않는 건가!!"


이에 대한 대답은 꽤나 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네 운명은 고통으로밖에 채워진 게 아니다. 네게 행복과 행운을 내어 주고 몇 배로 되돌려받는 것일 뿐이지. 네 운명은, 애초에 처음부터 뒤틀려 있었다. 영혼 자체가 평범하지 않은 뒤틀림으로 채워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정신적, 심상적으로 무너져버리는 것. 그게 바로 뒤틀림이다. 즉, 무너지는 걸 상정하고 만들어진 운명이란 말이다. 알겠나?"


그런가...그래서, 내 행복은 계속해서 빼앗기는 것이었군...그럼 도대체 왜? 왜 뒤틀려있는 거지?


"뒤틀린 이유를 말해달라? 뭐, 해주지. 이것도 네 운명에 속하니. 넌 본래, '칼린 스콧'이라는 이름의 사내였다."


칼린 스콧이라고...? 내가 아는 그 칼린을 말하는 건가? 칼리트 마을의...? 잠깐, 칼린이라 생각한다면 위치적으로 맞긴 하다. 그가 죽은 걸로 추정되는 장소는 저주받은 대지. 내가 일어난 곳도 저주받은 대지다.


"그래, 넌 그 자가 되살아난 존재. 왜 되살아났냐고? 먼저 그의 인생을 이야기해주지."


신의 대리인이 말해준 칼린의 인생은 이러했다.


옛날에, 칼린 스콧이라는 여행자가 있었다.


그는 강한 힘을 지녔는 데다가 마을도 세운 위인이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마법에 심히 몰두해 있었다는 것.


그가 세상에서 마법을 발견한 건 3번째이다. 다른 두 대륙 중 트리아라는 대륙에서 첫번째 마법사가 나타났고, 아우트라는 대륙에선 두 번째 마법사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마법사가 된 게, 그였다.


그 역시 이 곳을 온 적이 있다. 그는 이 산의 꼭대기에서 신비의 결정을 통해 신과 대화했으며, 마법 또한 얻었다. 하지만 그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는 마법이란 것에 엄청난 흥미를 느끼고, 그걸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 과정에서 자신의 눈 한 쪽의 시력을 잃기도 했다. 평범하다곤 할 수 없는,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그가 미래란 걸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지금의 지식욕만을 채워나가며, 신체의 한계 따윈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실험을 위해 자신의 심장에 저주를 걸기도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그의 정신은 막대한 양의 지식을 버티지 못한 채 미쳐버리고, 이를 알게 된 동생 탈린 스콧은 이 산이 어떻게든 해줄 거라며 결국 그를 이 산의 정상에 바친 뒤, 잠적했다.


미쳐버린 그의 영혼은 뒤틀림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신의 대리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다시 한 번 신비의 결정을 빛내는 것으로 칼린을 되살렸다. 심지어 신비의 결정도 누군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지는 못하기에 영혼의 일부만 재구축하여 그를 만들어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말 안해도 알 것이다. 골격을 제외한 모든 신체를 대가로 만들었으니, 분명 인간이라 할 수는 없으리라.


그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나(스켈레톤)다. 이런 뼈다귀를 인간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이렇게 육체를 버리고 영혼이 안정된 그였지만, 운명이 뒤틀려버린 건 바뀌지 않았기에 다시 한 번 미쳐버렸다. 그리고 뒤틀린 그를 보며 가여움을 느낀 신의 대리인은 이 산의 밑에 칼린을 묻어주었다. 물론 신비의 결정을 이용해서 말이다. 그리고 칼린은 신비의 결정에 영향을 받아 점점 새로운 영혼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즉, 그와 난 동일한 운명을 지녔으면서도 다른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모든 말을 끝마친 그(신의 대리인)의 마지막 한 마디는 조금 잔혹했다.


"이렇게, 너와 내가 대화하는 것도 그 뒤틀린 운명의 일종이다. 뒤틀린 운명은 나조차도 거를 수 없는, 최고신만의 권능이지. 미안하지만, 따라주거라."


갑자기 나의 정신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 기억들이, 칼린의 기억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하나하나 새겨져왔다.


"크아아아아악!!!!!!!!!!!!!"

"드디어 이 산에 묶인 영혼(칼린)이 육체를 찾을 수 있게 되었구나."


마치, 저주에 당한 느낌이다. 설마, 그가 스스로에게 걸었다고 하는 저주인 건가.


그 저주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그 어떤 고통보다도 강력했다. 확실히, 수없이 많은 저주가 섞이고 섞인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뼈밖에 없는 나에게도 살점이 하나하나 찢어지고 터져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난 검을 쥐어잡았다. 검을 쥐어잡으며 정신을 다잡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이다. 그건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이젠 지나간 일들이 머리 속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동굴에서 깨어나고, 마을에 정착하고, 마을의 모두가 학살당하고, 웨어울프에게 거둬지고, 승리를 쟁취하며, 또 거인들을 만났다. 거인에게서 힘을 얻고, 거인들을 도와줬다. 결과는 패배였다. 복수를 하려 했지만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무의미한 학살을 자행하다 불멸의 존재와 조우했다. 그에게서부터 얻은 다짐조차,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


과거의 난 있는 지도 모를 정도의 희미한 희노애락을 느끼고, 그 희노애락에 수없이 고통받았다.


이젠 그 고통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정도로.


이제는 그 고통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당장이라도 내 머리를 쳐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지금에서야 경미한 고통이라 할 지라도, 그 모든 현장을 생생하게 다시 느낀 난 도저히 말로는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온 몸에 새겨넣었다.


나에게 안식이란 없다.


나에게 죽음이란 없다.


나에게 행복이란 없다.


나의 운명은, 오직 고통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잠깐, '나'가 누구지?


머릿속이 어지럽다. 마치 누군가가 들어와서 마구잡이로 헤집어놓듯이.


계속해서 되뇌이던 나에 대한 말들은...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져버렸다.


난 누구인가? 칼린인가? 아인즈인가?


나의 영혼은 두 개이다. 그렇다면 이 육체는 누구의 육체라 할 수 있겠는가?


난...난.......


"[커스 컨트롤(저주 조작)]."


난, 칼린이다. 최강의 인간이자, 세 번째 마법사. 그 힘은 아인즈의 영혼을 밀쳐내, 육체를 지배할 정도였다.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검에 담아 사용하는 스킬 [커스 컨트롤], 심장을 점점 잠식해나가 이윽고 파괴하는 저주(마법) [심장 잠식], 심장을 조용히 불태워나가는 저주(마법) [저주의 불꽃], 온 몸을 천천히 부패하게 만드는 저주(마법) [부패의 저주] 등등.


칼린의 모든 스킬과 마법이 들려왔다.


그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미쳐있었다. 새로운 몸의 스킬을 시험해 보겠다며 학살을 자행하려는 정도로.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그에게 있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는 나지만, 조금이나마 넘어서는 건 있다.


얼어붙은 팔을 조작하는 능력. 이것만은 그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몸을 움직이려고 하기도 전에, 난 내 최대한의 힘으로 내 육체를 완전히 얼려버렸다.


이 왼팔은, 오직 이 일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운명이 그렇게 외치는 듯했다.


이로써 또다시 생길 무차별적인 학살은 막았다. 문제는 그의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관한 것 뿐. 이대로라면 난 영원히 육체를 빼앗기게 된다.


내 몸이 얼어붙음과 동시에 어딘지 모를 세상이 펼쳐졌다. 칼린은 이게 뭔 지 아는 듯했다. 기억에 따르면...'내면 세계'인가. 특정한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생겨나는 '심안'을 통해 볼 수 있는 영혼 속의 세상이라, 이 세상의 기본은 모두 같지만 구체적인 모습은 전부 다르다고 한다.


나의 내면 세계는 칠흑빛과 차가운 얼음의 색만을 띄었다. 반면 칼린의 내면 세계는 오직 칠흑 뿐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의 세계. 그 두 세계가 서로 맞물려 기이하게 뒤틀린 경관을 이루어내고 있었다.


내면 세계의 안에 있던 건 나, 그리고 칼린이었다.


'그만 둬라. 칼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갸우뚱거리는 목. 금방이라도 꺽여버릴 듯한 동작이다.


말 그대로, 미쳤다.


그는 그대로 날 공격해왔다. 그리고 홀린 듯이 소리를 질렀다.


'아직...아직...이 마법으론 부족하다!...저주는? 저주는?...아케인 문자...뒤틀림이!!!!...아아아아!!!! 저주가 심장을 침식해온다!! 신이시여!! 나의 말을 들어주소서!!! 저주를...저주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말. 이 내면 세계와도 같이 뒤틀려 문장끼리 서로 뒤섞여 있었다.


간신히 그를 제압한 난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


'아아아아!!!! 신은...연구!!...선사하셨다!!!...마법을!!...심장이!!! 심장이!!! 아케인 문자!!! 여긴 어디지? 드디어 찾아냈다!! 어디인가!! 이 마법의 해답을!! 입구는?'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더욱 더 막연한 공포가 몰려왔다.


'닥쳐라!!'


그는 잠시 말을 멈추는가 하더니, 목을 기괴하게 비틀며 날 내던진 뒤, 또다시 공격해왔다.


적어도, 칼린과 싸워서 이겨내야만 내 육체를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 이곳은 검도, 무기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즉, 맨몸으로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작가의말

오늘은 쓸 말이 별로 없네요....이번 화는 하루만에 완성이 됐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버려 다음 날에 올리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쓴 건 처음이네요!


예전에 저주를 마법과 다르게 설명했는 데, 사실 저주는 저주 마법, 즉, 마법에 속한 것입니다. 부족한 설정으로 제대로 된 설명을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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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얽히고 얽힌 이야기 +2 20.11.28 15 1 11쪽
40 수수께끼 +2 20.11.25 14 1 15쪽
39 습격 +2 20.11.20 16 1 14쪽
38 지식 쟁탈전 +2 20.11.17 19 2 16쪽
37 두 개의 동굴 +2 20.10.30 30 3 13쪽
36 드래곤 +4 20.10.25 24 5 14쪽
35 마법의 검사 +2 20.10.22 31 4 10쪽
34 신비의 결정, 푸른 세상 +6 20.10.20 33 6 11쪽
33 2부-창백의 일대기 +2 20.10.17 44 4 9쪽
» 하나의 육체, 두 명의 영혼, 동일한 운명. +6 20.10.16 29 5 13쪽
31 불멸자와 필멸자(삽화) +4 20.10.14 29 5 14쪽
30 반복되는 하루의 끝 +4 20.10.12 18 5 11쪽
29 복수의 여정 +8 20.09.23 40 7 13쪽
28 허무함(삽화) +4 20.09.19 37 4 12쪽
27 되돌아가다 +8 20.09.13 33 6 15쪽
26 되돌아오다 +6 20.09.08 31 5 15쪽
25 불사의 존재(삽화) +2 20.08.31 50 3 13쪽
24 결전의 날(삽화) +8 20.08.17 57 7 19쪽
23 다시 만난 웨어울프들 +6 20.08.16 39 6 10쪽
22 지하실 +4 20.08.14 32 5 12쪽
21 괴뢰와 마녀 +6 20.08.12 39 6 9쪽
20 잠시의 휴식 +2 20.08.10 35 6 12쪽
19 베어내지 못했던 것 20.08.08 28 4 9쪽
18 베어내지 못하는 것 +2 20.08.02 36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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