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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서재입니다.

나락 일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snownun
그림/삽화
원one
작품등록일 :
2020.07.17 19:55
최근연재일 :
2020.12.07 19:54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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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3
추천수 :
228
글자수 :
196,698

작성
20.08.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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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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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9쪽

결전의 날(삽화)

DUMMY

난 검을 휘두르고 기를 단련하며 시간을 보냈고, 마침내 화이트윈드를 토벌할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가 계획이 바뀌었다며 말해주었다. 원래라면 여러 명이서 화이트윈드를 토벌할 터였다.


"아무래도 화이트윈드 토벌은 가이아 혼자서 할 것 같다. 자신 혼자의 힘으로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고 싶다더군. 화이트윈드를 사냥하다가 동료들이 죽는 걸 보기 싫다고도 하고. 넌 그냥 다른 드래곤들을 토벌하는 걸 도와줘라."


동굴을 나와 보니 다른 거인보다 훨씬 큰 거인이 서 있었다. 중앙에 장식된 보석의 빛이 사라진 낡은 왕관을 쓰고 자신의 키만한 청록빛 대검을 든 그 거인의 이름은 가이아, 우라노스의 마지막 남은 자식이라고 한다. 왕관의 보석은 신비의 결정이라고 하는 데, 어째서인지 우라노스의 죽음과 동시에 힘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기를 단련하는 도중 쉬는 겸 거인들에게 들은 이야기, 아니 전설이 하나 있다. 그 전설은 우라노스와 관련된 것이었고, 우라노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난 그것을 주의깊게 들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이 땅에 아직 거인이 없을 때, 첫 번째로 태어난 서리 거인이 한 명 있었다.

땅에서부터 태어난 그 거인의 이름은 우라노스, 위대한 거인 우라노스였다.

과묵하게 드래곤들과 거인들의 끝없는 전쟁을 지켜보던 그는 무언가 결심하게 되는 데,

높디 높은 저 역고드름 위에 평화를 가져올 힘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른 거인들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역고드름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그는 신비의 결정과 영빙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신비의 결정으로는 왕관을, 영빙괴로는 한 자루의 대검을 만든 그는 본격적으로 드래곤들과 거인들의 전쟁에 참전했다.

비록 전쟁에 참전했지만 평화를 추구했던 그는 어느 한 쪽도 속하지 않은 채 혼자의 힘으로 두 세력 모두 다 무릎을 꿇게 만들었고, 양쪽 세력을 평화롭게 만들며 서로의 영역을 나누었다.

하지만 강대한 힘으로 드래곤과 거인의 전쟁을 끝낸 그에게도 생명의 한계는 존재했는 지, 자신이 운명할 때가 다가오자 그는 자신의 첫째 아들 가이아에게 왕관과 대검을 물려주고 스스로를 얼려 하나의 산을 만들었다.

그 산이 바로 우리들의 거처인 저 산이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왔지만...지금은 드래곤들 때문에 깨져버렸다.'


확실히 우라노스가 어떤 인물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신비의 결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구축한 평화를! 위대한 아버지께서 이륙한 꿈을! 한낮 욕심으로 깨버린 저 드래곤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가이아의 굵고 묵직한, 공기가 가라앉는 듯한 아주 무거운 목소리였다. 그의 외침에 다른 거인들도 자신의 무기를 들어올리며 함성을 질렀다.


"우오오오오!!!!!!!"


우리들은 가이아를 따라 드래곤들의 영역으로 향했고, 화이트윈드에게 소리쳤다.


"오아켄트 화이트윈드! 네녀석을 토벌하고, 평화를 이륙하러 왔다!! 신비의 결정을 내놓거라!!!"


그의 목소리를 들은 건지, 수많은 드래곤들이 우릴 경계하며 노력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입과 눈에 냉기를 담은,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사악하게 웃으며 네 발로 기어왔다.


아무도 그 드래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본능적으로 저게 화이트윈드라는 것을 느꼈다.


그가 한 발자국 움직이자 먹구름과 눈보라가 더 거세지고, 또다시 그가 한 발자국 움직이자 주변의 공기가 울리며 깨져갔다. 저게 바로 용왕, 드래곤 로드라는 것인가.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신비의 결정을 내놓으라고...? 그래,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봐라...그 나약한 몸뚱이로 잘도 가능하겠구나...."


우릴 하찮게 여기며 조롱하는 화이트윈드의 목소리는 마치 하늘로부터 가라앉는 공포 그 자체였다. 오만하며, 오만함에 걸맞은 자리에 선 자.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힘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거인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꿋꿋하게 서 있었다. 단 하나, 가이아를 믿고 있다는 것 단 하나로, 이 것에 자리한 모든 거인들이 용기를 얻었다. 그것만으로 가이아가 쌓은 힘과 신뢰는 그 무엇보다 두텁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아아아!!!!!!!!"


마침내 가이아가 검을 꺼내들으며 화이트윈드에게 뛰쳐갔고, 이것을 신호로 모두 무시를 휘두르며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비록 가이아의 첫 번째 일격은 그대로 땅에 박혀 빗나갔지만 그의 두 번째 일격은 정확히 화이트윈드의 오른팔 팔뚝을 찍었다. 어찌나 강력한 지, 그 여파로 주변의 공기가 울리며 물방울의 파문을 그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일격에도 화이트윈드는 상처 하나 없이 오히려 그를 비웃으며 조롱했다.


"고작 이 정도 뿐인가...? 고작 이 정도가 너희들의 최대 전력인가...? 한심하군...나약해 빠졌어...."

"아니, 아직 끝이 아니다!!!"


화이트윈드의 도발에도 그는 이성을 놓지 않고 침착하게 공격을 이어나갔다.


잠시 뒤로 물러난 가이아는 화이트윈드의 위로 뛰어올라 그를 내리쳤고, 가이아의 대검과 화이트윈드의 발톱이 서로 부딫히면서 생긴 쇳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대로라면 공중에 떠 있는 가이아가 불리할 터였다. 하지만 가이아의 대검으로부터 강력한 충격파와 거대한 얼음 기둥이 퍼져 나와 화이트윈드를 불리하게 만들었다. 잠시, 아주 잠시동안 화이트윈드의 시야가 가려졌을 때, 가이아는 이걸 노렸다는 듯이 화이트윈드의 다리를 베어가른 뒤 꼬리를 베어내며 검격으로 원을 그렸다.


"꽤 하는 구나...하지만 너와 난 태생부터가 다르지...난 드래곤 로드다. 이정도 상처쯤은 금방 재생한다...."


다리와 꼬리가 잘린 심각한 중상에도 화이트윈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브레스를 뿜었다.


"[프로즌 월]!"


다른 프로스트 드래곤들이 냉기 그 자체를 뿜어낸다면, 화이트윈드의 브레스는 서로 뭉쳐져 얼음 송곳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수많은 송곳이 날아와 박히는 데도 그의 얼음 벽은 깨지지 않고 버텼다. 그래도 화이트윈드의 발톱에는 버틸 수 없었는 지, 그가 얼음 벽을 내려치자 마자 힘없이 부서져버렸다. 가이아는 재빨리 벽 뒤에서 벗어나며 그의 배를 베어냈고, 그는 표정 하나 안바뀌며 가이아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의 공격을 겨우 막아낸 가이아는 그대로 내동댕이 쳐졌다.


"크...윽!"


그럼에도 침착하게 다시 일어난 그는 다음 수를 생각하며 대검을 바로잡았다. 하지만 그 때, 화이트윈드가 날아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가이아를 내려쳤다. 다행히도 빠르게 반응해 대검으로 막긴 했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 힘싸움이 되어버린다. 거인의 힘이 아무리 세다 하더라도 드래곤 로드에게는 이길 수 없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갈 지 빨리 생각해야 한다. 스킬을 쓰려 해도 드래곤 로드들은 냉기와 동상에 완벽히 면역이다. 그렇다고 공격을 흘려내려면 대검을 포기해야 한다. 화이트윈드의 발톱은 점점 더 대검에 금을 가게 만들었고, 가이아의 힘도 버티기 어려워져갔다.


몸이 점점 위기에 달할 때, 그가 생각한 길은 하나였다. 그는 그대로 검의 겉부분만 얼려 가짜 검을 만들었고, 진짜 대검은 숨긴 채 공격을 흘려냈다. 그리고 옆으로 빠져나와 화이트윈드의 날개뼈를 내리쳤다. 비록 베이진 않았지만 강력한 충격의 여파로 인해 날개짓하기가 조금 힘들 것이다.


"한낱 거인이...꽤나 영리한 꾀를 쓰는 구나...지금 항복하면 죽이진 않으마...."


여전히 그를 낮잡아보는 화이트윈드의 말에, 그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아들아, 이 대검과 왕관을 가지고 거인들의 평화를 이어주려무나. 이 아비의 하나뿐인 소원이란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그 무엇보다 존경한 아버지의 신념에 따라 살아왔다. 하지만 고작 목숨 하나 때문에 아버지의 신념을 저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닥쳐라!! 난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난 우리 아버지를 위해, 거인들을 위해 싸우는 거다!!!! 평화를, 신비의 결정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 따윈 그냥 줘버리마!!!!!"


평소와 똑같은 그의 외침이자 그의 신념이었지만, 이번엔 살짝 달랐다. 혼란스런 전장 사이로 흘려들어간 그의 목소리가, 그의 말이 거인들의 사기를 높히고 정신을 다잡게 해주었으며, 그는 여기저기 들리는 거인들의 함성 속에서 힘을 얻어 화이트윈드의 오른팔을 베어냈다.


"우리 거인들을 얕잡아보지 마라...!!!"


선혈을 흩뿌리며 날아가는 팔을 본 화이트윈드는 동요하며 동시에 조금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얕잡아보는 건 여전히 다름없었다. 잘려봤자 회복하면 될 뿐.


지금의 상황에서 화이트윈드가 할 수 있는 공격은 가장 약한 브레스밖에 없었다. 꼬리는 아직 회복이 덜 됐고, 날개는 움직이기 힘들다. 오른팔은 방금 막 잘렸다. 그렇다고 반대쪽 팔로 공격하기엔 위치상 너무 불리하다. 그나마 할 수 있는 브레스조차 시간 벌기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그는 '그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자신이 인정한 최강의 상대에게만 쓰기로 했던 '그 스킬'을 말이다.


"......인정하지...거인 주제에 꽤 하는 구나...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다...[얼어붙은 세계]."


가이아가 그의 오른팔을 자르고, 이번엔 목을 노리려 할 때, 세계가, 시간이, 공간이, 영혼이 얼었다.


화이트윈드 일족이 드래곤 로드가 되면 얻는 스킬 얼어붙은 세계, 8일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오아켄트의 마지막 카드였다.


화이트윈드가 스킬을 시전하자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영역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영역 안에서는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누구도 겉보기엔 얼어붙지 않았지만, 그들의 영혼이 얼어붙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구름마저도 얼어버려 공중에 떠 있었다.


화이트윈드는 대검을 휘두르려다가 얼어버린 가이아를 보며 짜증난다는 듯이 그의 가슴을 강타했고, 그와 동시에 얼어붙어버린 세계가 녹았다.


"커헉!!!!"


영문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충격으로 날아가버린 그는 기절하기 직전까지 몰렸다. 원래라면 가이아의 쪽이 훨씬 유리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전세가 뒤바뀌었다.


화이트윈드의 발톱으로 인해 폐가 뚫려 그는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고, 늑골은 전부 다 가루가 되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가이아는 이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아버지...죄송합니다...저로서는...."


가이아, 그의 힘으로는 위대한 우라노스의 발끝도 닿지 못한다. 하지만 신비의 결정이 있다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일어나거라. 거인들의 평화를 네 손으로 이루어내거라.'


그의 머릿속에 아버지의 말이 울려퍼졌고, 왕관에 박힌 신비의 결정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원래보다 훨씬 약한 빛이었지만 가이아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크아아아아!!!!"


신비의 결정 때문인지 그의 상처와 지구력이 모두 회복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화이트윈드를 향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동시에 돌진해 동시에 부딫힌 둘로 인해 생긴 섬광으로 대지가 갈리고, 공기가 깨져나갔다. 그 진동은 가히 모든 것을 압도하는 존재들의 전투를 이 땅에 새겼다. 최강과 최강의 일격, 둘의 모든 것을 건 단 하나의, 일격. 하지만 이것도 잠시, 그 둘 중 하나가 쓰러지면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


"컥...쿨럭...."


쓰러진 건 가이아였다. 화이트윈드도 그나마 남아 있던 한 쪽 날개와 다리마저 잘려 조금 뒤에 쓰러졌다. 어떻게 보면 무승부이겠지만, 상처로 본다면 가이아의 패배였다. 재생하면 그만인 팔다리와 날개가 잘린 화이트윈드에 비해 가이아는 화이트윈드의 발톱에 심장이 꿰뚫려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 무의미하진 않았다. 적어도 화이트윈드를 무력화하긴 했으니 말이다. 저 정도 상처라면 아무리 드래곤 로드라 해도 완전히 재생하는 데 하루는 걸린다.


"아버지...곧 따라가겠습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 유언이었다. 비록 자신은 아버지의 꿈을 이어나가지 못했지만 다른 거인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게 그의 생각이었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드래곤들이 우릴 향해 날아왔다.


전장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서로의 피가 튀기고 수많은 냉기의 브레스들이 어두운 하늘을 매꾸는, 참혹하다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광경이었다.


나도 가세해 드래곤들을 사냥했지만, 전투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난전이 되어갔다.


벨칸의 최측근들과 싸울 때보다도 더 심했다. 그 땐 적어도 각개전투를 했지만 지금은 그저 눈앞에 있는 모든 드래곤들을 베어낼 뿐이었다.


"야!! 아인즈!! 뒤를 봐라!!"


저 멀리서 프로메테우스가 나에게 소리쳤고, 내 뒤에서는 한 마리의 드래곤이 기습을 가해왔다.


드래곤의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날아오는 그 드래곤의 팔을 베어낸 나는 그 기세로 드래곤의 목을 찔렀다. 그리고 옆에서 뛰어온 한 명의 거인이 거대한 버디슈로 드래곤을 참수했다.


"고맙네!!"


나의 말에 그 거인이 살짝 웃으며 다시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전투가 얼마나 지속되어가는 지도 모른 채, 나는 그저 검을 휘두르며 드래곤들과 맞서 싸웠다.


몇몇이 신비의 결정을 얻기 위해 역고드름을 올라갔지만, 드래곤들에 의해 떨어지거나 얼어붙어버렸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가이아였다.


"닥쳐라!! 난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난 우리 아버지를 위해, 거인들을 위해 싸우는 거다!!!! 평화를, 신비의 결정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 따윈 그냥 줘버리마!!!!!"


그의 말에 모두가 힘을 얻었고, 마음이 꺾여버린 패잔병들조차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다. 그만큼 그의 한 마디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는 알 수 있으리라.


가이아와 화이트윈드의 전투를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눈앞의 드래곤 한 마리라도 더 죽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얼어붙은 세계]."


끝없는 난전의 속에서 화이트윈드의 목소리가 울리듯 퍼져나갔고, 세계가 멈췄다. 어째서인지 생각조차 멈춰버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세계가 멈춰버리고 잠시 뒤, 난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이아 쪽에서 엄청난 충격파과 함께 무언가가 날아가 부딫히는 소리가 났다.


무엇이지...? 난 저 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내 뒤에 드래곤이 날아왔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내가 채 반응도 하기 전에, 프로메테우스가 돌진해와 드래곤을 밀쳐내고는, 한 손에 든 대검을 휘둘러 드래곤의 목을 날렸다. 소리치는 그를 보고 다시 전투에 집중한 나였지만, 또다시 울려퍼진 섬광과 충격파, 그리고 공기가 깨지며 대지가 갈리는 기분 나쁜 소음으로 인해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가이아와 화이트윈드를 직시하였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모두의 이목을 끈 것이다.


가이아가 쓰러졌다...하지만 조금 뒤에 화이트윈드도 같이 쓰러졌다. 화이트윈드는 양 팔과 양 다리, 날개 한 쪽이 잘려 있었고 가이아는 심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주변의 모든 거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허탈해했고, 드래곤들의 사기는 더 높아졌다. 이 전투는 이제 진 거나 마찬가지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신비의 결정을 얻었다!!!"


높은 역고드름 위에서 소리친 건 한 명의 이름 모를 서리 거인이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고, 그의 손 위에는 누가 보아도 신비의 결정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보석이 있었다. 하지만 거인들이 황홀함에 빠져 있을 시간도 없이 그는 어느 드래곤에 의해 낙사했고, 그와 함께 떨어진 신비의 결정을 또다른 거인이 잡았다.


드디어 신비의 결정이 거인들의 손에 들어왔고, 드래곤들은 그것을 빼앗으려 했다. 그렇게 전장의 혼돈이 점점 더 극심해져만 갈 때, 수많은 살육을 넘나들며 아까 전과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던 신비의 결정이 빼앗겼다. 하지만 뭔가 조금 이상했다. 신비의 결정이 아니라...드래곤들을 속이기 위한 평범한 얼음 조각이었다!


"빨리 도망치게!!!"


얼음 조각으로 진짜 신비의 결정을 빼돌린 그 거인은 이 말을 끝으로 드래곤들에게 찢겨졌고, 진짜 신비의 결정은 또다른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멀리 떠나갔다.


그렇게 수많은 거인들의 손을 따라 옮겨진 신비의 결정은 마침내 나의 손에도 들어왔고, 난 작은 체구를 이용해 조용히 도망치려 했다.


피로 인해 붉게 물든 신비의 결정은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띄고 있었다. 이 것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거인들이 희생되었는 지, 이제 남은 거인도 열 명 정도밖에 없었다.


수많은 거인들의 손에 들어가다 보면 언젠가 신비의 결정에 선택받은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터이다. 아쉽게도 난 선택받지 못했는 지, 신비의 결정을 잡자 마자 손을 타고 흐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내가 신비의 결정을 가지고 도망치려는 그 순간, 나를 향해 어떤 드래곤의 꼬리가 날아와 나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 공격을 정통으로 맞은 난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날아갔다. 다행히도 발레리우스가 준 완갑으로부터 펼쳐진 결계 덕분에 완전히 가루가 되진 않았지만...세상의 반이 보이지 않았다.


"아인즈!!!!!!"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아인즈의 손에서부터 떨어진 신비의 결정은 어떤 거인의 희생으로 다시금 거인들의 손에 들어왔고, 이것은 또다시 무의미한 희생이 계속된다는 걸 의미했다.


선택받지 못한 거인들이 드래곤들에게 죽어나가고, 이제 남은 거인은 프로메테우스와 가이아의 막내 아들 아르게스, 그리고 이름 모를 한 명의 거인 뿐이었다. 이 중에서 선택받은 자가 없다면, 거인들의 패배가 확실해진다. 그리고 그 신비의 결정은 프로메테우스의 손에 쥐어졌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도 선택받은 자가 아니었다.


선택받은 위대한 자 우라노스의 손자인 아르게스라면 선택받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 그는 죽기 직전 아르게스에게 신비의 결정을 던졌다. 하지만, 아르게스를 향해 공중으로 날아간 신비의 결정을, 거인들의 희망을, 어느 한 마리의 드래곤이 던져버렸다.


신비의 결정은 인간의 손바닥만한 크기다. 저 멀리로 날아가버린다면 찾을 수도 없다.


남은 두 명의 거인은 절규하며 죽어갔고, 그 절규 속에서 어딘가로 날아간 신비의 결정은 또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되었다.

나락 일대기 삽화1 가이아와 오아켄트.png


작가의말

이번에는 삽화를 그려보았습니다! 비록 잘 그리지도 못했고 빨리 그리느라 퀄리티도 떨어지긴 하지만 지금보다 더 잘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엔터 키로 세 번 띄운 건 시점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아인즈의 시점으로 전개되다가 다른 인물이나 해설자의 시점으로 바뀌어서 전개될 땐 그 사이에 엔터 키를 세 번 눌러서 시점이 바뀌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글자 수가 19쪽(8,609자)이나 되네요! 1만자까지 써 보고 싶기도 하지만...다음 화를 위해 여기서 끊는 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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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습격 +2 20.11.20 16 1 14쪽
38 지식 쟁탈전 +2 20.11.17 19 2 16쪽
37 두 개의 동굴 +2 20.10.30 31 3 13쪽
36 드래곤 +4 20.10.25 24 5 14쪽
35 마법의 검사 +2 20.10.22 31 4 10쪽
34 신비의 결정, 푸른 세상 +6 20.10.20 33 6 11쪽
33 2부-창백의 일대기 +2 20.10.17 44 4 9쪽
32 하나의 육체, 두 명의 영혼, 동일한 운명. +6 20.10.16 29 5 13쪽
31 불멸자와 필멸자(삽화) +4 20.10.14 29 5 14쪽
30 반복되는 하루의 끝 +4 20.10.12 19 5 11쪽
29 복수의 여정 +8 20.09.23 40 7 13쪽
28 허무함(삽화) +4 20.09.19 37 4 12쪽
27 되돌아가다 +8 20.09.13 33 6 15쪽
26 되돌아오다 +6 20.09.08 32 5 15쪽
25 불사의 존재(삽화) +2 20.08.31 50 3 13쪽
» 결전의 날(삽화) +8 20.08.17 58 7 19쪽
23 다시 만난 웨어울프들 +6 20.08.16 40 6 10쪽
22 지하실 +4 20.08.14 33 5 12쪽
21 괴뢰와 마녀 +6 20.08.12 40 6 9쪽
20 잠시의 휴식 +2 20.08.10 35 6 12쪽
19 베어내지 못했던 것 20.08.08 29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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