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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22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1.06 06:00
조회
274
추천
5
글자
9쪽

압박

DUMMY

1.


"그...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갑자기 채무를 갚으라니요!"


"무슨 말이냐니. 오히려 저희가 할 말 아닙니까? 설마 그 많은 돈을 빌려가 놓고서는 입 싹 닦고 모른 채 할 셈이었습니까?"


연방에서 온 수금관들은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알렉시아 제국이 퓨레스트 연방에게 빌린 모든 차관 내역들이 작은 글씨들로 상세하게 적혀져 있었다.


알렉시아 제국의 재정성은 갑자기 들이닥친 연방의 수금관들에 의해 순식간에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종이는 마치 사신이 들고 있는 명부와도 같았다.


"저희 퓨레스트 연방이 귀국에 빌려준 약 1만톤의 금. 어떻게 배상하실 겁니까?"


연방의 수금관이 외친 그 한 마디에 재정관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1만톤이라니! 손가락에 끼우는 작은 반지 하나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인데 1만톤이라니. 대체 돈를 얼마나 쏟아부어야 그 양을 채울 수 있을까.


재정관들이 입만 뻐끔거리자. 연방의 수금관들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분명 미소였지만. 재정관들은 그 미소가 어떤 의미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채....채무 상환 기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무언의 압박 속에서 가까스로 목소리를 낸 것은 재정성의 수석 차관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채무 상환 기간을 물었고. 수금관들은 더더욱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채무 상환 기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하....하하..."


웃음이 제국의 재정관들에게서 터져나왔다. 지금 당장 갚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몇 년을 끌어봤자 이자조차도 갚지 못하는 것이 지금 알렉시아 제국의 현실이라는 공포가 섞인 웃음이었다.


하지만 연방의 수금관들은 그런 웃음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 하나를 더 얘기해주었다.


"물론. 매년 마다 이자는 내야 하겠지요?"


그 말을 들은 재정성은 얼음장을 넘어 영구동토로 변해갔다. 이자라니. 5억톤의 금에서 발생하는 이자의 양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었다.


차관은 애써 떨리는 혀를 진정시키고는.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시간을 끌려 노력했다.


"지금은 대신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번거롭더라도 재정대신님과 한 번 얘기를.."


"아닙니다. 이 서류는 황제 폐하께서 직접 결재하신 서류들입니다. 재정대신께서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화...황제 폐하께서?"


차관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황제가 직접 결재한 서류를 일개 대신이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반역죄나 다름없는 짓.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나이스 알렉스. 알렉시아 제국의 황제 뿐이었다.


2.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황제의 호통이 집무실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 노성을 들은 재정대신과 행정대신은 그저 벌벌 떨며 황제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나라 살림을 꾸렸길래. 당장 이자조차도 갚지 못할 정도가 된 것이냐!"


그렇다. 아나이스 황제도 알렉시아 제국이 1만톤에 달하는 금값을 일시불로 지불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년마다 이자를 상환하고. 형편이 나으면 원금을 갚아나가면서 서서히 빚을 갚아나가려 했다.


그런데 지금 나라 국고에는 당장 이자를 낼 돈도 없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그것이."


재정대신이 부들부들 떨리는 턱을 누르고는 간신히 대답을 시작했다.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참으로 간결하면서도. 가장 그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자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 황제는 터질듯한 분노를 가까스로 참아내고선. 피가 쏠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재정대신에게 물었다.


"왜지?"


"그게... 일단 수령을 한 기록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금들이 운송되는 과정이 보고서마다 다르고. 그 운송하는 것을 감독한 자들도 어째서인지 찾을 수가 없어서..."


한 마디로. 떼어먹혔다는 것이다. 내전으로 인해 엉망이 된 치안. 그나마 연방의 지원으로 인해 어느정도 숨통이 트였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느정도 규모가 되는 마을이나 도시들의 이야기였고. 산간벽지의 시골 마을이나 도로에서는 여전히 탈영병이 만든 도적단이나 마적단이 종횡무진 날뛰고 있었다.


치안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내전으로 인해 신뢰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사실상 말라버렸고. 나라를 어떻게든 굴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뽑은 관료들의 질은 안 봐도 예상할 수 있는 문제. 백이면 백 금을 보고 눈이 돌아가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관료 한명이 금괴 하나. 짐꾼이 금괴 하나.. 이런 식으로 아주 조금씩 떼어갔겠지만 운송에만 든 인원이 수만명을 넘는다. 지금 국고에 들어온 금괴는 아무리 잘 쳐줘도 7000톤에 불과하다. 3000톤의 금이 말 그대로 실종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행정대신이 불려온 이유이기도 했다.


"어째서 알아채지 못했지?"


"그게.. 그런 문제를 감사하고 보고하는 부서의 관료들도 뇌물을 받은 모양이라..."


"그걸 해결하는 게 네놈이 해야 하는 일 아닌가!"


결국 황제의 분노는 터지고야 말았다. 눈의 실핏줄에 터져 붉게 충혈된 눈이 행정대신을 타오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비리! 부패! 부정! 그런 것을 감시하고. 척결하는 게 네놈이 해야 하는 일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네놈은 그저 관료들이 뇌물을 받아먹었다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지 않나!"


행정대신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권위와 권한으로 따지자면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막상 권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하지만 황제는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 두 대신을 향해 무차별적인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1만톤이다! 1만톤! 그게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 발렌시아 제국이 1000년 동안 채굴한 금의 양이 20만톤이었다! 20분의 1이라는 말이다! 너희 둘의 목숨값보다 훨씬 값진 것이란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금은 귀금속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주요한 수단이며. 훌륭한 연금술의 재료이자. 마법의 촉매이기도 하다. 그런 귀하디 귀한 금을 몇천 톤이나 날려먹고도 국고가 텅텅 비었다니. 말이 되는 일인가.


"무능한 것들! 지금까지 대체 뭘 배워왔던 것이야! 행정대신은 행정을 못하고. 재정대신은 국고가 비는 것도 모르고 있는데...!"


"폐하! 죽여주시옵소서!"


"죽여주시옵소서!"


결국 두 대신이 할 수 있는 말은 죽여달라는 말뿐이었다. 물론 실제로 죽이지는 않겠지만. 두 대신의 파직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3.


"축하드립니다 대총통비 폐하. 회임하셨습니다."


총통부 직속 의사의 진찰 결과였다. 회임. 임신. 어염집에서도 축하받을 일이 한 나라의 국모에게 일어났으니. 앞으로 일어날 일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


세리카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배의 안쪽에. 아직은 미약하기 그지 없는 작은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신과 사랑하는 남자의 씨를 이어받은 생명이.


"폐하. 저는 가서 대총통께 소식을 알려드리고 오겠습니다."


시녀 중 하나가 대총통에게 소식을 알리려 하자. 세리카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녀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병실의 문을 조용하게 닫고 나갔다.


그렇게 의사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식상한 말을 남기고 나가자. 이윽고 병실에는 세리카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났을까. 문이 열리더니. 라이투스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웃음을 억지로 참으려 하는 듯한 그 표정. 그것을 본 세리카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이리로 오라고 손짓했다.


"세리카.. 그대..그대가...회...회임...했다 들었는데."


말을 더듬는 라이투스. 아마 자신이 들은 것 중에는 처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세리카는 아직도 입을 뻐끔거리는 대총통의 손을 끌어 자신의 배에 올려놓았다.


"여기 안에 아이가 있어요."


"...."


"우리의 아이에요."


대총통의 눈가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손도. 장갑을 끼고 있음에도 배의 진동이 여실히 전해져왔다.


"기분이 묘하군... 평생동안 생명을 앗아오기만 했는데.. 이렇게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평생동안. 라이투스 폰 예거란 남자는 검에 기대어 살았다. 제국에서 외국인 귀족으로 살아남았을 때도. 칼렌 왕국의 왕이었을 때도. 퓨레스트 연방의 대총통인 지금도. 그는 검에 기대어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그는 검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그가 기대야 할 생명이 아내의 뱃 속에서 자라나고 있지 않은가.


"세리카....고맙구나."


"별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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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증오심 19.11.08 282 3 9쪽
68 힘의 차이 19.11.07 265 5 9쪽
» 압박 19.11.06 275 5 9쪽
66 밀약 19.11.05 285 3 9쪽
65 구국의 결단. +1 19.11.04 294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1 4 10쪽
63 구휼 +1 19.10.31 289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3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7 5 9쪽
54 상징 19.10.18 312 6 9쪽
53 후폭풍 19.10.17 325 5 10쪽
52 낙마 19.10.16 332 7 9쪽
51 학살 19.10.15 357 3 9쪽
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48 신부 교육 19.09.27 384 7 9쪽
47 음지에서 양지로 19.09.26 383 6 9쪽
46 동맹 19.09.25 384 7 9쪽
45 서부와 동부 19.09.24 402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0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1 5 9쪽
42 연맹 19.09.19 471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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