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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32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0.18 06:00
조회
312
추천
6
글자
9쪽

상징

DUMMY

1.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가 있다."


아나이스의 대답이었다. 말 그대로 성전군에게는 황제가 있었다.


그 황제가 좀처럼 협조해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거야 부차적인 문제이고. 황제의 옥음을 위조하거나 황제의 인장을 사용한다는 선택지도 있다.


"황제 폐하를 이용하실 생각입니까!"


"저희는 황제 폐하를 보위하고 제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어떻게 저희가 폐하의 권위를 침탈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보수주의자들. 황제를 신처럼 떠받드는 극렬분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황제라는 신분이 가지는 권위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자리였고. 아나이스가 우리에게는 황제가 있다는 한 마디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진정들 하게. 나는 아직 황제 폐하를 음해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하고 있지 않으니.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저들에게는 아직 지도자가 없다는 소리네."


"지도자..하긴. 지방 영주들의 힘은 다들 고만고만할테고. 대영주들도 다른 대영주들을 견제하느라 바쁠테고. 역도들은 군사력이 없으니..."


그렇다. 무릇 양이 이끄는 사자무리보다는 사자가 이끄는 양떼가 훨씬 강력한 법. 아무리 수가 많다 해도 그 수를 통솔할 우두머리가 없다면. 혹은 있어도 조직을 휘어잡을 만한 능력과 카리스마가 없다면 많은 군사는 오히려 독이 될 뿐이다.


그에 반해 성전군은 아나이스라는 실질적 지도자도 있고. '황제'라는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정신적 지주가 있었다.


물론 그 정신적 지주 본인의 정신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점이 있었지만 일단 그것은 차치하고서 생각해본다면. 어느 쪽이 효율적으로 굴러갈지는 명백하다.


게다가 성전군은 제국의 도시란 도시는 모조리 장악한 상태다. 그말인즉슨 그동안 도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공헌하던 관료들을 병참장교들이나 행정력이 필요한 데에 적재적소로 투입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하지만 제국 해방군은 그런 관료들이 없었다. 기껏해봐야 양떼와 목동에게 세금을 떼어가던 징세 청부인과 행정관. 그리고 회계사가 전부일 것이다. 수백만명이 모이면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수백만명이 창칼을 든 군인일 경우에는 더 많은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해방군은 과연 그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있을까?


2.


없었다.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알고서 하는 말이냐!"


"하! 네놈이 어디서 굴러들어온 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나오겠다면야 나야 좋지!"


"이 자식이!"


해방군들이 모인 병영지에서는 거의 하루마다 싸움이 일어났다. 평상시 같았다면 선임 기수들이나 지체 높은 기사들. 그리고 그들의 상관이 분위기와 상황을 고려해 적당한 처벌을 내려 진정시켰겠지만. 병사들은 넘쳐나는데 지휘관들은 턱 없이 모자라 잘못을 저질러도 알지도 못하는 일이 반복되자 어느덧 병영은 큼지막한 우범지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고 왜 이러나들! 싸우지 말게! 다른 병사들 보기 부끄럽지 않나!"


"이 말라깽이가 뭐라는 거야! 모욕을 당했는데 참고 지나가는 건 부끄럽지 않다는 거냐!"


"헤! 뭐라 떠들어대는 지 모르겠구만. 그게 네 마을에서 쓰는 방언인가 보지? 역겨워서 못 들어주겠구만?"


"이 자식이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스릉!


그리고 그들을 제지하려하는 몇몇 관료들은 힘도 없고 돈도 없으니 병사들에게 치이기 일쑤였고. 드넓은 제국의 특성상 방언화도 심각해 병사들 사이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해방군의 높으신 분들도 이를 고려해 통역사를 고용하기는 했지만. 통역사들이 아무리 많아도 수백만에 이르는 병사들과의 분쟁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통역사들은 지휘관들끼리의 작전 논의를 통역해야 했기 때문이다.


"""죽여라! 죽여라!"""


"검을 들어라 좇만한 새끼야! 오늘 끝장을 보자!"


"들라면 못 들 줄 아나 이 자식이! 오늘 너와 나 둘 중 한명은 죽을 것이다!"


챙! 콰직!


"크어억!"


아나이스의 분석대로. 해방군은 연이은 패배와 내부적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서서히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정작 그 병사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군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3.


제국에서는 제국의 흥망을 놓고 성전군과 제국 해방군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었지만. 제국 밖의 다른 나라들은 참으로 오랜만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태평성대로구나! 나랏님께서는 유능하시고. 국모께서는 아름답고 현명하시며. 나라의 온 관리들이 제 녹을 받고 제 일을 하고 있으니. 이 동방에 이런 평화가 온 지 벌써 몇백년이 흘렀는가!"


"더 이상 동방은 미개의 상징이 아니다! 도시마다 우뚝 서 있는 마천루들의 집합과 학교들을 보아라! 이제 이 동방은 발전과 화합의 상징이 될 것이며. 그 역할은 당연히 우리 퓨레스트 연방이 도맡아야 할 것이다!"


우선 퓨레스트 연방. 이미 동방을 정복하고 남부의 해안선 절반을 꿀꺽 집어삼키고. 각지의 분리주의 움직임은 조기에 진압하고 각 주의 문화들을 융합하고 입맛에 맞게 두들긴 결과. 퓨레스트 연방은 마침내 동방에서 거의 존재치 않았던 태평성대를 이룩할 수 있었다.


5000만명의 국민들 모두 각자의 고민과 걱정은 있을 지언정 군주인 대총통. 즉 라이투스 폰 예거에게 대륙력 594년 6월 기준 84.25%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다.


물가는 안정되었고. 농민들에게는 충분한 토지가 돌아갔으며. 병사들에게는 풍부한 보상이 돌아갔다.


비록 병사들 중에는 은사금을 받을 팔이 없는 자들도 있었지만. 가족이 대신 받아주었으니 별 문제는 아니었다.


동방의 통일과 계속되는 승전이 이어지면서 퓨레스트의 민중들은 다들 크고 작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 이 동방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인한 국가의 일원이라는 자긍심이.


"퓨레스트 연방 시민들은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 이 동방의 역사 1000년간 크고 작은 분쟁이 멈추지 않았단 것은 그대들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이여! 우리는 단 한 사람의 영도 아래 일사불란히 전진하여 동방을 정복하고. 이내 남방의 드넓은 해안과 동해의 끝없이 펼처진 군도마저 손에 넣었다.


그것이 누구의 덕인가? 바로 대총통 폐하의 덕이다! 그 분이 없었더라면 우린 아직도 자그마한 왕국 속에 숨어 살며 서로를 향해 창칼을 들이댔을 것이다.


그러나 폐하께서 손수 동방에 재림하시어 성부의 가호를 받아 전진하시니 이 동방에는 그분을 적대하는 자들은 모두 패망하였나니. 이제 동방에 전쟁은 없으며. 이제 동방에 미개함이란 없다!


무엇이 동방인가! 우리가 동방이다! 퓨레스트 연방 만세! 라이투스 대총통 폐하 만만세!"


이런 낯간지러운 사설이 신문에 실릴 정도로 말이다.


국고에는 돈이 쌓이고. 농민들은 배불리 먹고. 부정부패는 엄중한 관리 아래 관리되는 사회야말로 태평성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4.


한편. 멀리 떨어진 웨슬턴 공화국에서는 하나의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아... 제국이 두쪽이 나면서 내전이 벌어진 것은 다들 알 거라 믿습니다."


"제국이 분열하는 것은 좋습니다. 마음 같아선 한 100조각으로 찢어지면 좋겠습니다만....."


하필이면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지금 웨슬턴 공화국에 와 있는 수천명의 퓨레스트 유학생들을 돌려보낼 방법이 소멸한 것이다.


물론 성전군은 도시만 점거하고 있으니 도시를 잘 피해가면 괜찮겠지만. 그랬다가는 보급품 문제나 무장강도를 만나 말 그대로 학살당할 수 있으니. 제국을 통해 연방으로 돌아가는 것은 일단 완전 중단.


"해로를 이용하려 해도 현재는 풍랑이 거세지는 계절입니다. 여름 바다가 위험한 것은 각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그렇지만. 이대로 유학생들을 다음 해까지 돌려보내지 않으면 당장 신입생들을 받을 수 없잖소. 막사에다가 그들을 우겨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른 지방의 대학들도 전부 포화상태니..."


"일단 여름이 지나기만 한다면 풍랑은 한결 나아질 겁니다. 그때쯤 배를 타고 보내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있는 유학생들만 5000명이 넘습니다. 그들이 탈 배를 구하는 것도 일일텐데..."


"어지간한 선단으로는 어림도 없겠군요. 아예 선박을 새로 건조해야 할 수준인데."


"굳이 한 번에 보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몇 차례에 나눠서 연방으로 돌려보냅시다. 저희 유학생들도 연방에 있을테니. 돌아올 때는 그들을 태워오면 되고 말입니다."


"그거 묘안이로군!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초셀 대통령은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을 대총통에게 전하기 위해 마수정을 이용해 대화했고. 이윽고 일주일 후인 대륙력 594년 7월 3일에 첫 선단이 출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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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밀약 19.11.05 285 3 9쪽
65 구국의 결단. +1 19.11.04 294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2 4 10쪽
63 구휼 +1 19.10.31 289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3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7 5 9쪽
» 상징 19.10.18 313 6 9쪽
53 후폭풍 19.10.17 325 5 10쪽
52 낙마 19.10.16 332 7 9쪽
51 학살 19.10.15 358 3 9쪽
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48 신부 교육 19.09.27 384 7 9쪽
47 음지에서 양지로 19.09.26 384 6 9쪽
46 동맹 19.09.25 384 7 9쪽
45 서부와 동부 19.09.24 402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0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1 5 9쪽
42 연맹 19.09.19 471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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