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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60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0.22 06:00
조회
307
추천
4
글자
10쪽

여름의 태양

DUMMY

1.


"어떻게 이럴수가 있소! 병력들을 철수시키겠다니! 당장 어제 전투가 벌어졌는데. 당신은 영지로 도망가겠다는 거요?"


"말 조심하시오 병무관. 나는 영주된 자로서 영민을 굶기지 않을 의무가 있소이다. 그리고 지금 영지에는 농민이 필요하오. 지금 밭을 갈고 잡초를 뽑지 않으면 겨울은 어떻게 나란 말이오? 당신네들이 곡식을 지원해주기라도 할 거요?"


"곡식을 지원해 줄 수는 없소! 당신도 알다시피 지금 해방군은 보급이 모자라 교회에다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실정인데..."


"그러니 돌아가겠다는 거요. 우리 영지의 사람들이 3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벌써 죽은 농노만 1000명이 넘소. 영지의 가신들과 식솔까지 농사일을 거들어야 할 판이란 말이오. 우리가 싸우지 않은 것도 아니니. 이만 돌아가리다."


말을 탄 채로 대답하던 영주는 그대로 말 머리를 돌려 돌아갔다. 그를 따르던 기수와 군대를 데리고서 말이다.


비단 저 영주만이 아니었다. 여름철의 태양빛이 내려쬐기 시작하면서. 농사를 걱정하는 영주들은 예의 영주처럼 영지로 돌아가거나. 적어도 젊은 농노들을 영지로 복귀시키고 있었다.


당장 병력이 줄어드니 병사들을 통솔하는 병무관과 고위 지휘관들은 미칠 지경이었지만. 영주들에게는 영민들을 보호한다는 확고한 명분이 있었다.


"나도 이번 주까지만 종군하고 다음 주부터 철군하겠소. 미안하구려."


"아닙니다... 영민을 굶길수야 없지요.."


그나마 대영주들은 원체 사람이 많아 어느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만. 대영주들은 애초에 만 단위로 병력을 끌고 왔기에 뒤가 걱정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병력이 쪼그라드는 것을 막자니. 영주들이 반발해 자칫하면 내분이 일어날테고.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작 본진인 영지가 망해버려서야 성전군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무력을 동원해 병력의 철수를 막아보았자. 정작 무력을 동원할 헌병들도 농노 출신이라 머릿속에 농사를 망치면 안 된다는 관념이 뿌리박혀 있어 역효과가 날 게 뻔한 상황이었고. 600만에 이르는 병력을 먹일 군량을 구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성전군의 전력은 140만으로 쪼그라들게 되었다.


2.


"예상대로군."


"하지만 아직도 저쪽은 수적으로 우위입니다. 저희 전력은 약 80만. 아직도 저희보다 60만이나 더 많은데. 과연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전쟁에서 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수가 전부는 아니라네."


"전부가 아니라 하시면...?"


부관은 이해하지 못 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부관을 보고 아나이스는 태연하게 웃어보였다.


제국 내전이 일어나기 전. 제국의 2인자라고 불렸던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미소이자. 동시에 특권이었다.


"저들은 지금까지 수적 우위를 상대로 우리를 상대해 왔네. 그렇다면 그 우위가 사라진다면 어떻겠나?"


"예? 하지만 저들은 아직..."


"흐흐흐... 600만이 교대로 돌아가는 것과. 140만이 교대로 돌아가는 것은 다르지."


"그렇긴 합니다만.."


"가용할 수 있는 대포들을 싸그리 긁어 모으게. 그리고 마법사들도 말이야."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아나이스는 다시 한 번 웃기 시작했다. 여름의 태양. 농작물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축복이자. 농부들에게는 가을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기적.


하지만..... 망가지고. 물로 가득찬 병영에서도 과연 축복과 기적일 수 있을까?


3.


"포격이다아아아!!!!!!"


비명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끝나기도 전. 제국 해방군의 병영은 맹렬한 포격을 받기 시작했다. 사방에서는 시체 구덩이가 생겨나고. 말들은 밧줄이 끊긴 채 마구잡이로 달리기 시작했다.


"엄폐하라!"


윗웃도 어색하게 차려입은 채 급하게 뛰어나온 지휘관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사방이 터져나가는 와중에 안전지대란 없었다.


성전군은 집요하게도 한 번 쏜 곳에도 두 세번 더 포격을 가해서 구덩이 속에 숨어 있던 부상자와 생존자들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진지를 포기한다! 반복한다! 병영을 포기한다! 전원 후퇴하라!"


"병무관님! 후퇴로에 성전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뭐야?"


막사가 날아가고 사지가 찢기는 와중에. 성전군은 태연자약하게 병영을 포위했다. 완전히 고립되어버린 제국 해방군의 병영은 이미 병영(였던 곳)이 된지 오래였고. 남은 병사들도 공포에 떨며 기도를 올리고 있거나 이미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부상자들이었다.


"병무관님! 틀렸습니다! 퇴로가 없습니다!"


"....제길!"


병무관은 이를 악물며 그나마 깨끗하게 남아있는 막사의 천을 뜯어 꺾인 창대에 묶은 다음 아직 남아있는 폐허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걸었다.


새하얀 깃발. 전통적인 항복의 표시였다.


4.


"그대의 공이 크다. 세바스티안 경. 그대가 척후와 감시병들을 미리 제압해두지 않았다면 이 병영을 정공법으로 쳐야만 했겠지."


"아닙니다 아나이스 각하. 각하께서 대포들을 모아주시지 못했다면. 적의 진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겸손을 행하는 것은 좋으나. 오늘은 기쁜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네. 포도주를 들게나. 오늘만큼은 취해도 내가 용서하리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세바스티안이라 불린 사내가 잔을 받아 시원하게 들이키자. 기다리고 있던 다른 귀족들도 와인을 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


본래 아나이스는 전쟁터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는 금지했지만. 방금 전의 일전으로 무려 10만명의 제국 해방군을 싹 쓸어버린 공로는 금주령을 일시적으로 철회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그나저나 해방군 녀석들도 결국에는 물량이 전부였군요. 진지 하나에 10만명을 넣어두다니..."


"근처는 농경지니 말입니다. 그곳만큼 지휘부 설치에 적합한 곳도 없었고... 호민군이라는 대의가 있으니 최대한 병사들을 압축하는 수밖에 없었겠죠."


"흥. 그러면서도 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떠벌리다니. 오만한 적만큼 우스운 것은 없습니다."


성전군의 귀족들은 대개 대부분이 평민이나 농노 출신으로 이루어진 해방군을 곱게 보지 않았다. 그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전쟁은 순전히 상비군과 귀족 지휘관으로 이루어진 제한전이어야 했다.


농민을 징병하면 곧 영주가 자신의 힘으로 영민들을 지킬 수 없음을 입증하는 셈이니. 명예와 자존심이 곧 목숨과도 같은 귀족들은 자신이 파산해서라도 상비군과 용병들을 고용해서 싸우지. 절대로 영민들을 전쟁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 해방군이 급격한 개방개혁을 실시하면서 국민개병제의 사상이 일부분이나마 영주들에게 전수되었고. 그에 감명받은 해방군파 영주들은 영민들을 무장시키고 어설프게나마 교육시켜 전쟁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정통적인 귀족의 입장에서 보기에. 그것은 곧 자신의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영주는 자신의 영지와 영민을 지켜야지. 영민을 전쟁터에 내모는 영주는 지배자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성전군파 귀족들의 생각이었지만. 영주들이 자신의 군대를 다시 영지로 돌려보낸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하지 않았다. 농민이 죽을 곳은 자신의 침실이어야지. 치열한 전쟁터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시시한 문제가 아니었다.


5.


"그래서. 그대들은 우리 연방에게 돈을 빌리고 싶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대총통 폐하. 저희 발렌시아 제국 '정통'정부는. 퓨레스트 연방에게 차관을 빌리고 싶습니다."


유독 '정통'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는 성전군의 대사는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었다. 마치 '당연히 빌려줘야 할 걸?'이라는 듯한 포스를 숨길 기색도 없이 뿜어내는 것 같았다.


물론 일국의 대사가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애초에 제국의 보수층이 집결한 성전군의 대사니 당연한 거겠지만. 일국의 원수인 라이투스 폰 예거에게까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래... 차관의 규모는?"


"저희 발렌시아 금화로 약 5000만닢입니다."


"5000만닢이라..."


많은 돈이다. 정말로. 연방의 1년 예산이 연방 금화로 약 8000만닢에 다다른다고 생각하면. 차관의 규모는 1년 예산의 과반수를 그대로 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저쪽도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그 거액의 돈을 빌려주는 댓가가 무엇인지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댓가로 우리 연방에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지?"


대총통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금? 은? 아니면 제국만이 가지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기술?


하지만 대사에게서 나온 대답은. 그 천하의 대총통조차 전혀 예상할 수 없던 것이었다.


"폐하께서는 영토를 넓히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들었습니다."


대사는 그 말을 하고는 빙긋 웃었다. 어딘가 불안해보이는. 그런 웃음이었다.


"제국의 동방 영토 80만 제곱 킬로미터를 드리겠습니다. 차관을 제공해주시는 즉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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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구국의 결단. +1 19.11.04 295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2 4 10쪽
63 구휼 +1 19.10.31 290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4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 여름의 태양 19.10.22 308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8 5 9쪽
54 상징 19.10.18 313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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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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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서부와 동부 19.09.24 403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1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2 5 9쪽
42 연맹 19.09.19 472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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