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21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0.30 06:00
조회
287
추천
3
글자
9쪽

대리전

DUMMY

1.


제국의 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대도시에서 나오는 세금과. 나머지 국토에서 나오는 막대한 양의 지대와 곡물이다.


하지만. 내전이 진행 중인 지금. 도시는 세금은 커녕 배급제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궁핍해져 있었고. 자라고 있던 곡식들은 전부 불타거나 메말라버렸다.


지대를 걷은 관리도. 농사를 지을 농노들도 없으니. 제국의 식량 생산량이 곤두박질 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렇게 가을이 다가오자 제국의 신민들은 점점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신민들의 불안은 기어이 적중하고야 말았다. 수확철이 되어도 걷히는 곡물들이 터무니 없이 적은 것이다.


비도 오지 않고. 메뚜기 떼가 창궐하여 그나마 익어가고 있던 곡식들을 먹어치우니. 풍요로워야 할 가을의 농사는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다. 밀을 비롯한 주식 작물들은 완전히 파탄이 났고. 보리나 콩 같은 부식용 작물들 마저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곡물값이 금값을 추월하기 시작하자.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제국의 정세는 다시 한 번 요동치기 시작했다. 먼저 마을에 돌아다니던 개와 고양이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들판에 뛰어다니던 토끼들은 어마어마한 번식력에도 불구하고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산에서 자생하고 있던 나물들과 버섯들은 독이 있던 없던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모조리 농민들이 긁어갔으며. 영주들은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비축미를 풀기 시작했다.


즉. 제국이 세력을 불문하고 심각한 기근에 빠진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비단 제국의 위기만이 아니었다. 식량자급률이 낮은. 다시 말해 제국의 싼 곡물들을 수입해 연명하던 소국들은 당장 내일 먹을 빵도 마련하지 못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퓨레스트 연방이나 웨슬턴 공화국 같이 어느정도 체급이 되는 국가들은 자국민이 경작하는 농산품으로 내수 경제가 돌아갈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어느정도 버틸 수는 있었으나. 그 외의 국가들은 얼마 못가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해야 했다.


2.


"그래서. 우리 연방에게서 식량을 수입하고 싶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아시다시피. 저희 노르디안 왕국은 소국이옵니다. 그동안 제국의 은혜를 입어 연명하고 있었으나......"


"됐고. 가격이 너무 싼 것 같은데."


"그..그건...저희 왕국의 사정이 어려운지라."


"그건 그쪽 사정 아닌가. 우리 연방도 버틸 수는 있는 수준이지. 결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야. 게다가 지금 서부의 난민들 때문에 그나마 있는 식량들도 깨지고 있단 말일세."


"그...금화같은 현금 지불은 어렵지만.. 철광석이나 귀금속의 원석같은 현물은 저희가 지불할 수 있..."


"우리 연방에는 철과 귀금속 광산이 없나? 검소함을 미덕으로 삼는 연방에게 사치를 강요하기라도 할 셈인가?"


"그..그건 아닙니다!"


'아니라면 이만 나가보게. 나는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니."


대총통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노르디안 왕국의 사절을 내쫓았다. 사정이 딱하기야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자신의 나라를 챙기는 것이 군주된 자의 도리 아닌가.


"그나저나 우리 연방의 식량 자급률이 이렇게나 낮았을 줄이야. 겨우 반타작밖에 안 되잖나."


"원래는 더 높았는데.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농민들의 수가 줄고. 그나마 있는 젊은이들도 복구 사업과 군대 때문에 농업 생산량이 감소했습니다."


부관은 보고서를 팔락거리며 대답했다. 출범한지 10년도 되지 않은 연방이 대규모의 전쟁을 두 차례나 겪었으니 농업 생산량이 높을리가 없다.


그리고 부관의 그런 대답은 지금까지 전쟁에만 신경을 쏟았던 대총통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기도 했다.


"...내 탓이로군."


대총통은 머리를 짚었다. 그동안 전쟁에만 몰두하느라 국가의 대들보이자 주춧돌이라 할 수 있는 농업에 소홀했다는 점이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일국의 군주라는 자가 자기 나라 곳간 사정도 모르고 있었다니. 이는 명백한 실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 연방에 있는 곡식들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


"전 국민 5000만명을 기준으로 추산했을 때. 현재 소비하는 대로 계산해본다면 약 1년 2개월 정도를 버틸 수 있습니다."


"1년은 넘는다는 거군. 어떻게든 이번 겨울은 넘길 수 있겠어."


"중앙 곡식 창고에 있는 것들을 풀면 3년까지도 버틸 수 있습니다만..."


"그건 비상미네. 제국 같이 우리도 흉년이 들지 않는 이상 그걸 풀 수는 없어."


"그건 그렇지요."


어느 국가건 최소한 재앙에 대비해 식량을 비축해 놓는다는 개념은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 비축의 양과 질이 차이가 날 뿐이다.


그리고 지금 퓨레스트 연방의 비상미는 한 두 체급 아래인 웨슬턴 공화국과 엇비슷한 상황. 오랜 전쟁과 그에 따른 농업부문의 쇠퇴로 인한 현상이었다.


"제국 해방군과 성전군은 어떻게 하고 있나?"


"식량을 비싼 값에 사들이고 있습니다. 지금 제국에서는 밀가루 한 포대에 무려 금화 100장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금화 100장이라니. 터무니없는 값이군."


연방 기준으로 밀가루 한 포대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은화 두 장. 평균값으로는 은화 1장에서 동화 8장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풍년이 드면 동화 3장을 가지고도 한 포대를 살 수 있을 정도.


은화 10장이 모여 금화 1장이 되니. 대충 연방에서 밀가루 1000 포대를 살 수 있는 돈으로 한 포대밖에 못 사는 셈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볼 수 있었다.


금화 100장이면 어지간한 저택을 장만할 수 있을 수준의 거금이니. 지금 제국의 민중들의 상황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 않아도 성전군이 저희 연방에게서 식량을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아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 허가하마. 성전군에게는 곡식을 팔아야지."


"예...예?!"


부관은 깜짝 놀랐다. 아까 전 노르디안 왕국과는 전혀 다른 태도이지 않은가. 게다가 성전군에게는 팔아야 한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이렇게 식량 값이 폭등하면. 양 세력은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휴전이나. 그게 아니더라도 싸움을 멈출 수밖에 없지. 하지만 우리가 뒷배. 즉 식량을 공급해준다면. 제국 놈들은 신이 나서 계속해서 싸울거야."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제국 해방군은 어떻게 합니까? 일방적으로 밀릴 텐데.. 그렇게 되면..오히려 내전이 일찍 끝나지 않겠습니까?"


"걱정 말게. 해방군에게는 공화국이 있지 않나."


"아!"


부관은 탄성을 내질렀다. 타국의 내전을 이용해 자국이 발전할 시간을 벌다니. 새삼 어째서 대총통이 철혈군주라 불리는 지 알 수 있었다.


3.


"저...정말 이 리스트에 있는 것들을 지원해주시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웨슬턴 공화국은 '제국 유일 정통정부'의 우방 아닙니까. 대통령 각하께서 제국의 여인과 연을 맺으셨으니. 이 정도야 당연한 것이지요."


공화국의 대사는 '제국 유일 정통정부'라는 낯간지러운 명칭을 쓰며 해방군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대총통의 말대로 서방의 웨슬턴 공화국은 나라 사정이 빠듯함에도 불구하고 제국 해방군에 대한 지원을 의회에서 결의했다.


분명. 제국에서 나오는 막대한 곡물들이 없다면 어려워지기야 하겠지만. 이미 손에 넣은 동쪽의 50만 제곱 킬로미터나 되는 영토에서 밀과 보리를 기른다면 그깟 식량이야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밀과 보리를 기를 시간을 벌어줄 것은 그들의 눈 앞에 있는 해방군들이었으니. 어째서 지원을 하냐는 물음보다는 어째서 이것밖에 지원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더 현명할 것이다.


"어서 빨리 성전군이란 어처구니 없는 역도들을 몰아내고 시그마스에서 개선식을 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공화국 정부는 해방군 여러분들의 승리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위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미 연방과는 사전에 합의를 거친 후. 동쪽은 연방이. 서쪽은 공화국이 맡으며 제국이 오래동안 전란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려는 수작이다.


그래야만 한창 발전해야만 하는 두 국가가 안정적으로 궤도에 오를 시간을 벌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할양받은 국토에 사람들을 부어넣고. 각종 기반 시설들을 건설하고. 사회 인프라를 개발하는 일은 결코 단시간 내에 끝낼 수 없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 제국은 공화국의 호의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귀국과의 관계가 계속 우호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될 것임을 약조합니다."


"하하. 이웃 나라끼리 돕고 살아야지 않겠습니까."


'자존심만 센 제국 촌놈들 같으니. 끝까지 '은혜'라고는 안 하는 군'


'이 식량만 받을 수 있다면 해방군은 이번 년도 싸울 수 있다... 그때까지만 비위를 맞추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각자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제국과 공화국은 다시 한 번 손을 잡았다.


4.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국왕 폐하 만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0 맞불 19.11.11 270 5 9쪽
69 증오심 19.11.08 282 3 9쪽
68 힘의 차이 19.11.07 265 5 9쪽
67 압박 19.11.06 274 5 9쪽
66 밀약 19.11.05 285 3 9쪽
65 구국의 결단. +1 19.11.04 294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1 4 10쪽
63 구휼 +1 19.10.31 289 4 9쪽
»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3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7 5 9쪽
54 상징 19.10.18 312 6 9쪽
53 후폭풍 19.10.17 325 5 10쪽
52 낙마 19.10.16 332 7 9쪽
51 학살 19.10.15 357 3 9쪽
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48 신부 교육 19.09.27 384 7 9쪽
47 음지에서 양지로 19.09.26 383 6 9쪽
46 동맹 19.09.25 384 7 9쪽
45 서부와 동부 19.09.24 402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0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1 5 9쪽
42 연맹 19.09.19 471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