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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18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0.24 06:00
조회
293
추천
4
글자
10쪽

그들의 땅.

DUMMY

1.


"뭐! 동방국토를 외국에 팔아넘겨!"


해방군의 지도자라고 볼 수 있는 신진 관리파의 거두. 에이젤 프란시스가 격노하며 책상을 내려쳤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흑단나무로 만들어진 책상에 쩍쩍 금이 갈 정도였다.


"그게 정말 사실이냐? 성전군 놈들이 연방에 동방국토를 판 것이?"


"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제국 서부 표준시로 오늘 새벽에 퓨레스트 연방 정부가 동방국토에 대한 매입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빌어먹을 자식들... 감히 황제 폐하의 인장을 능멸하다니..."


아이젤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당연하지만 나라의 국토를 매각하는 중대사는 아무리 아나이스라 해도 결코 황제의 재가 없이는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 보란듯이 나라의 영토가 생판 남에게 홀랑 넘어가 버렸으니. 황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결정을 내릴리 없었고. 그 배후에는 당연히 아나이스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황제 폐하를 끌어내린 것도 모자라 공문서 위조.. 옥새 남용... 저잣거리에 육시형을 해 내보내도 시원찮을 자식이...."


"각하. 듣는 귀가 많습니다."


"흠흠. 미안하군. 감정이 격해져서 그만."


아이젤은 부하의 충고에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대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제국 유일 정통정부는 오로지 자신들뿐이다.


그런데 퓨레스트 연방은 보란듯이 성전군에게 돈을 주고 영토를 구매했다. 이는 곧 성전군의 정부를 제국의 정부로 인정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성전군에게 5000만닢의 금화를 주었으니. 성전군이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군량. 화약. 무기. 군인들의 월급들을 전부 주고도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남을까?


"그나저나 연방 그 자식들은 전쟁만 몇 년을 했는데 왜 그리 돈이 많은 거야?"


아이젤의 의문을 품을 즈음. 연방의 차관은 막 테른 영지에 도착한 참이었다.


2.


"이곳이 테른 영지로군."


차관이 처음으로 본 테른의 모습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치고는 규모가 큰 편이었고. 고층 건물들이 흔하게 보이기는 했으나. 연방과 제국의 소도시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른 시골 마을.


"밀을 기르고 있군?"


"농부에게 물어보니. 작년에는 흉작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번 년도는 풍작이 아닐까요?"


"그렇겠지. 밀밭의 윤기를 좀 보게. 푸른 밀밭은 참 아름답지."


차관의 말에 부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밀밭의 안에서는 아이들이 손으로 밀의 이삭들을 훑으며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근데 지금은 40대 중반이 되었으니..."


차관은 한적한 테른 영지의 모습을 보고 문득 과거를 회상하려다 그만두었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일이 끝나고 해도 결코 늦지 않았다.


"영지성까지는 얼마나 걸리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앞으로 3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흠. 제국어를 안다고 했지?"


"예. 제 아버지가 귀족의 재무관으로 일하다가 이주한 분이십니다."


"그럼 제국어는 유창하겠군."


"그렇습니다."


부관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표정을 보니 차관의 얼굴도 덩달아 밝아졌다.


애초에 그들이 테른 영지를 포함해 동방국토에 남아있는 약 78개의 영지들을 순회하면서 영주들에게 제안할 것은 그들이 결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


그동안 지배해왔던 토지의 지배권을 인정해주고. 세금도 기존과 같이 유지하며. 영주들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새로운 주군에 대한 충성이라는 제안을 대체 어떤 영주가 거절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도착한 테른 영지성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중세식 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마차를 마구간에 넣어놓은 차관 일행은 영지 총관의 인사를 받으며 내성으로 입장했다.


"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총관의 나이는 중년 즈음 되는 것 같았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굳은살과 푹 패여있는 눈가가 그가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외교관으로서 이런 인물을 많이 접해본 차관은 총관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내성에 있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왔는가?"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 차관의 앞에 힘 없이 앉아있는 사내에게서 나온 목소리였다. 헝클어진 머리와 마치 병자를 방불케 하는 얼굴의 혈색은. 그가 입고 있는 의복이 아니었다면 영주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영주님."


차관은 우선 앉기 전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영주는 자신의 영지에서는 왕이나 마찬가지. 아무리 대국의 차관이라 해도 예의를 갖추지 않을 수는 없다.


"퓨레스트 연방 외교부차관.....맞나?"


영주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미리 총관에게 언질을 받은 듯 했다.


"맞습니다. 제가 연방을 대표해서 이 테른 영지에 온 것은. 영주님의 영지와 영주님의 가문의 안전을 보장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보장....보장한다고.."


영주가 침음성을 내었다. 안전을 보장받는다니. 영주로서는 치욕적인 단어였다. 영주의 반응을 본 차관은 헛기침을 하면서 종이로 만들어진 문서를 영주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이 저희의 주군. 라이투스 폰 예거 대총통 폐하가 영주님에게 원하시는 조건입니다. 문서에 적힌 조건을 지키겠다고 서명하신다면. 저희 퓨레스트 연방은 영주님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


영주는 말 없이 문서를 읽고 있었다. 차관은 영주의 혈색이 점점 좋아지고. 문서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마침내 문서를 끝까지 읽은 영주는 테이블에 문서를 내려놓으며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차관에게 말했다.


"나...나는.. 황제 폐하의 종이다. 다른 주군.. 다른 나라의 군주를 섬긴다는 게 가능할 것이라 보나?"


영주는 차관의 눈을 바라보았다. 차관의 눈에서는 굳건한 믿음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영주는 차관의 눈에 비친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조각나버린 충성심과 절망감이 담겨 있는 눈이었다.


"영주님."


차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영주를 설득하려는. 연장자로서의 조언이다.


"제국의 황제는 이미 영주님을 버렸습니다. 이제 인정하시지요. 제국은 영주님의 명예를 지켜주는 것을 포기했고. 영주님이 평생 바쳐온 충성을 얄량한 금화로 때우려 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사실입니다."


"아니야! 황제 폐하께서.... 그분께서 날 버리실리 없다..! 성전군... 그래! 아나이스 그 놈이 황제 폐하의 심금을 어지럽히고. 제국의 기치를 저버린 탓이야!"


영주는 벌떡 일어나서 바락바락 외쳤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는 인정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외치고 있는 것 같은데. 만약 인정해버린다면 이 육신 안에 남는 것이라고는 어제 마신 포도주밖에 남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관은 아무 말 않고 발악하는 영주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외교관 일을 하면서 저렇게 발악하는 자들을 참 많이도 봐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무너진 자의 눈빛. 모든 것에 배신당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을 말이다.


"나는..... 나는...!"


영주는 결국 제 풀에 지쳐 다시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의 눈에는 이제 절망감마저 남지 않아보였다.


"괜찮으십니까?"


"...한심한가? 이런 내가 영주라서?"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든 극한 상황에 몰리면 한심해지기 마련이니까요. 다만..."


"다만?"


"그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따르는 자와 이끄는 자의 차이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


순간 영주의 비어버린 눈에서 잠깐이지만 광채가 일었다. 찰나의 광채였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영주님께서 몸을 추스른 다음 얘기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하루 뒤에 보도록 하죠."


"음."


영주는 대답을 하고는 비틀거리면서 응접실을 나갔다. 그러자 하인들이 마치 번개처럼 달려와 영주를 부축했다.


'씨앗도. 거름도. 물도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스스로 거목이 될 의지가 있느냐 뿐."


차관은 비틀거리면서도 그의 손에 꽉 붙들려 있는 문서를 보았다. 아무래도. 이번 씨앗은 좋은 나무가 될 것 같았다.


3.


제 1항. 퓨레스트 연방은 테른 영지와 영주의 권위를 존중하며. 영지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단. 영주는 더 이상 입법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모든 행정과 사법처리는 퓨레스트 연방법에 의해 이행된다.


제 2항. 테른 영주는 퓨레스트 연방 대총통에게 충성을 바치며. 1년에 1달씩 의무적으로 군대에 머무르며 의무를 다한다.


제 3항. 퓨레스트 연방은 영지의 발전을 위해 각종 편의시설과 기반시설. 교육시설을 영주의 허가 아래 영지에 설치한다.


제 4항. 영주는 대총통의 허가 없이 군을 운용할 수 없으나. 탈영. 도적 떼. 몬스터 범람 같은 사항에는 예외를 적용하여 군을 운용할 권한을 가진다.


제 5항. 테른 영주는 테른, 사이에린, 페힐룬. 게르톨트, 발렌 영지를 총괄하는 테르시오 주의 대영주로 봉하며. 테른을 주도로 정하고. 각 4개의 영지에 부임할 영주를 정할 권리가 있다.


위의 항목들이 바로 문서에 적힌 내용이었다. 제국에서는 양피지에 적었겠지만. 연방의 문서여서인지 종이에 적혀져 있는 글귀들.


"...황제 폐하... 루돌프 폰 발렌시아... 당신은 더 이상 내 주군이 아니다."


밤이 깊도록 고민하고 있던 영주가 황제의 이름을 부르며 펜촉에 잉크를 묻힌 것은 이제 동방국토에 펼쳐진 거대한 혼란의 서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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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신성모독 19.11.01 291 4 10쪽
63 구휼 +1 19.10.31 289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7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3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7 5 9쪽
54 상징 19.10.18 312 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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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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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서부와 동부 19.09.24 402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0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1 5 9쪽
42 연맹 19.09.19 471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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