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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51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09.19 06:00
조회
471
추천
6
글자
10쪽

연맹

DUMMY

1.


연방 남부. 로렌시아 주 세크라멘토 영지.


그곳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14살의 소년이 있었다. 또래보다 덩치가 컸고. 유난히 머리가 좋았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방에게 잃은 소년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 소년은 누구보다 연방을 증오했다. 매일 아침 일터로 갈 때 보는. '로렌시아 주 세크라멘토 영지 메르헨 현'이라고 연방어와 그 밑에 조그맣게 로렌어로 쓰여져 있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그런 소년의 분노와 증오에 기름과 부채질을 더한 것은 로렌시아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비겁한 연방'이 '고결한 동맹'을 정복했다며 연일 떠들어대었고. 소년은 언젠가 자신이 연방을 무너트릴 선봉이 되기를 기대하며 자라났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연방의 법대로 소년이 어른이 되었을 때. 소년은 운이 좋게도 성인식의 추첨에서 1등상을 뽑아 연방의 국토를 순회하는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처음 배낭에 짐을 우겨넣을 때만 해도. 그의 눈에는 맹렬한 적대심이 가득 차 있었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폭압적이고. 억압적이고. 비열한 연방의 땅을 밟아주겠다는 의지가 그의 몸에 가득 차 올랐을 즈음. 그의 발은 난생 처음으로 로렌시아의 땅을 떠났다.


타박! 타박! 타박!


성큼 성큼 걸어갔던 그의 걸음은. 마침내 연방의 수도인 퓨렌에 이르러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퓨렌에 당도한 그의 눈동자에선 더 이상의 분노와 증오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박탈감과 허탈함만이 그의 눈을 메우고 있었다.


"이 곳이... 퓨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늘 끝까지 솟을 듯한 마천루와. 도시의 정 중앙에 놓여 있는 웅장함을 넘어 장엄함이 느껴지는 총통부. 그리고 거리를 메운 수많은 인파들과 그를 통제하는 경찰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광경은 전혀 폭압적이지 않았고. 억압적이지 않았고. 비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로웠고. 개방적이었으며. 정당했다.


꽈악...!


그의 손이 꽉 쥐어졌다. 이제 그의 분노는 다름 아닌 자신의 고향을 향하고 있었다. 평생동안 가져왔던 복수심이 그저 허망하다는 것이 느껴지자. 그 허무함을 메운 것은 또 다른 복수심이었다.


"아니야... 아직은 일러. 아직 수도만 보았을 뿐이다. 그래.. 차분하게. 이 나라를 둘러보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는 다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발을 내딛을 때마다. '한번만 더'라고 내뱉을 때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밤에도 환하게 빛나는 도시와. 상수도가 흐르는 시골의 마을들. 그리고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푸른 밀밭이었다.


"이제야 알겠다.. 우리가 전쟁에서 진 이유를.. 연방은 나쁘지 않았어.. 그들은 승자의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다.. 만약 저들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는 마천루가 가득한 진보의 도시로. 역병과 몬스터가 창궐하는 마을들은 깨끗하고 푸르른 시골로 변하는 광경이 그의 뇌리 속에서 지나갔다.


2.


592년 7월 25일은 연방의 역사에 또 한 번 한 획을 그은 날짜였다. 교육부가 신설되고. 그 아래 초등교육실. 중등교육실. 고등교육실이 배치되었다.


전국에 초등학교가 설립되고. 여자든 남자든 최소한 사칙연산과 퓨레스트어를 배울 수 있게 하겠다는 총통부의 굳건한 의지였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의 보편화는. 간신히 생명줄을 잡고 있는 남부의 주전론자들에게 있어서 날카로운 가위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무지한 남부인들은 지식인들의 선동에 의해 무조건적으로 연방을 적대해왔지만. 복지 제도가 개편되고. 퓨레스트의 자본들이 남부로 흘러들어오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각종 신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점점 민심은 퓨레스트로 향했다.


그래도 그동안은 오히려 그것이 퓨레스트에 의존하게 만들어 민중을 통제하려는 수작질이라고 반박할 수 있었지만. 보란듯이 남부에만 무려 700개가 넘는 초등학교를 건립하겠다는 8월 4일의 총통부 발표를 기점으로. 남부의 독립 주전론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와 동시에. 여행이든 유학이든 발전된 북중부의 모습을 보고 돌아온 남부인들은 하나같이 연방의 강대함을 칭송하며 하루빨리 남부도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들이여 깨어나십시오! 동맹의 멸망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북쪽을 보십시오! 건물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있으며. 물은 깨끗하고. 사람들은 모두 글자를 깨우쳤습니다. 이 남부도 그리해야 합니다!"


"이 남부의 지식인들은 전부 십자가에 매달아야 한다! 그동안 어린 자들에게 가르친 것이 글자와 경험이 아니라 분노와 증오였으니. 그들의 잃어버린 시간은 대체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가? 연방이 되자는 말은 필요 없다! 이 곳이 곧 연방이다!"


그동안 세상물정 모르고 연방을 마냥 '북적' '가족을 죽인 적들'로 생각하던 남부의 민초들은 이러한 변화에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계층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글자와 산수를 배울 수 있다는 총통부의 대대적인 선전은 북중부뿐만 아니라 남부에서도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같은 천것들은 그저 평생동안 농삿일만 짓다 죽으면 천수를 누린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고작 하루만에 그런 생각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무너진 것이다.


한 번 파도를 가로막던 방파제가 산산히 무너지자. 격변과 혁명의 파도는 마치 해일처럼 남부를 향해 짓쳐들었다.


3.


"뭐..뭐야! 당신들은 누구요!"


"뭐라는 거야! 여기는 케드인이야! 여기서 수업하고 싶으면 케드인 말을 쓰란 말이야!"


"연방의 앞잡이가! 어디 매타작을 당하고도 교편에 설 수 있을지 볼까!"


남부에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퓨레스트어를 가르치고. 장차 퓨레스트 연방의 충실한 국민으로 양성하겠다는 총통부의 야심찬 발표는 필연적으로 반발을 가져왔다.


가장 먼저 가부장제에 익숙한 가장들은 여자들이 어째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몇몇 과격한 성격을 지닌 자들은 딸들 앞으로 날아온 입학 고지서를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가뜩이나 노동력이 부족한 남부에서 밭일을 하려면 고양이 손까지 빌려야 하는 처지였기에. 남자아이들도 밭에 붙들려 김을 매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몇몇 개방적이고. 똑똑한 가장들은 자신이 쪽잠을 자며 일해서라도. 빚을 내서라도 학교에 자식들을 보내고 있었다. 배운 지식은 어디 가지 않는다. 적어도 제대로 배웠다면 말이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부모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연방에 대해 배울수록. 동맹에 대해 배울수록. 연방이 발전할 동안 구 3국은 대체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방에서는 매일매일 공장에서 머스킷들이 찍혀 나오고 있는데. 동맹에서는 대장간 하나에서 일주일 걸려 칼 한자루 나오는 게 전부이니. 학생들은 자신들의 고향이 너무나도 창피하게만 느껴졌다.


교과서에 수록된 연방의 도시들을 찍은 컬러 삽화들을 돌 때마다 강에서는 썩은 내가 나고 몬스터들은 허구한 날 들이닥치는 동맹의 땅은 하루라도 빨리 개화되어야 할 땅이었고. 연방의 북중부는 남부가 따라야 할 모범과도 같이 인식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생각하는 제법 머리가 굵은 자들의 뒤에는 어김없이 연방의 지원이 뒤따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미 동맹은 멸망한지 오래였고. 연방은 남부의 정당한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본격적인 물살을 타기 시작한 교육의 시작은 서서히 남부를 동맹으로서 정체화시켰던 것들을 조금씩 빼앗아가고 있었다.


4.


"토벌금이 필요하다고?"


"네. 재무관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요즘 몬스터들이 한창 산란기인 거. 그것때문에 고블린부터 시작해서 오우거까지 번식장하고 먹을 것을 찾아 마을들을 해집어 놓고 있습니다. 사병들을 보내봤지만 수가 너무 많아서 중과부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재무관은 자신의 앞에서 연신 굽신거리며 토벌금을 지원해달라 애걸하는 한 영지의 회계사를 보았다.


"자네도 알겠지만. 토벌금을 지원하려면 일단 감사관이 끊어주는 서류가 있어야 해. 그것은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여기 이미 준비했습니다."


"이미 준비했다고?"


재무관은 회계사가 건넨 감사서류를 읽어보았다. 고블린과 오크의 대대적인 습격. 서류는 꽤나 꼼꼼하게 적혀져 있었고.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사병들의 피해와 무장 상태는 어떠한지같이 사소한 것들도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 30도 각도로 기울여 쓴 감사관의 글은 재무관의 눈길을 끌었다.


-영지의 상황을 보았을 때. 사병과 현지 용병만으로는 토벌이 어려울 것이라 사료됨. 게다가 주위 영지에서도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기에. 최대한 높은 토벌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망함-


감사관이 이 정도로 쓸 정도라면. 영지의 사정은 불 보듯 뻔할 것이라 생각한 재무관은 서류 한 장을 꺼내 자신의 친필 사인을 적고는 회계사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네. 건투를 비네."


"감사합니다 재무관님! 정말 감사합니다!"


회계사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재무실을 나갔다. 재무관은 잠시 쓴웃음을 짓고는 다른 서류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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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맞불 19.11.11 270 5 9쪽
69 증오심 19.11.08 282 3 9쪽
68 힘의 차이 19.11.07 265 5 9쪽
67 압박 19.11.06 275 5 9쪽
66 밀약 19.11.05 285 3 9쪽
65 구국의 결단. +1 19.11.04 294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2 4 10쪽
63 구휼 +1 19.10.31 290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4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7 5 9쪽
54 상징 19.10.18 313 6 9쪽
53 후폭풍 19.10.17 325 5 10쪽
52 낙마 19.10.16 333 7 9쪽
51 학살 19.10.15 358 3 9쪽
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48 신부 교육 19.09.27 385 7 9쪽
47 음지에서 양지로 19.09.26 384 6 9쪽
46 동맹 19.09.25 384 7 9쪽
45 서부와 동부 19.09.24 402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1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2 5 9쪽
» 연맹 19.09.19 472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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