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38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0.31 06:00
조회
289
추천
4
글자
9쪽

구휼

DUMMY

1.


"끔찍하군."


프리츠 특무참위의 한 마디였다.


지금 프리츠는 대총통의 명으로 제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디아만트에서 제국에서 일어난 대기근에 대한 정보를 모으라는 특명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디아만트는 시그마스같은 정치의 중심지도. 문화예술의 도시인 이리탈리같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수운이 발달해 있어 항상 교역량이 폭주하는 것이 일상이던 도시였다.


굳이 과거형을 쓴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식량 자급률이 10%만 되어도 높다고 말할 수 있는 도시가 기근을 맞았으니. 도시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넘어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분위기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여기는 프리츠. 그쪽은 어떻지?"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나? 방금 전에 다 큰 어른 세명이 어린애가 가지고 가던 토끼를 두들겨 패고 빼앗아가더군."


"아직 두들겨 팰 힘은 남아있는 모양이군."


프리츠 이외에도 특무대의 인원들은 도시 각지를 돌아다니며 도시의 상태를 확인했다. 디아만트의 시민들은 숨길 생각도 않고 대놓고 퓨레스트의 국장과 제복을 입고 도시를 들쑤시고 다니는 특무대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으나. 그들에게는 그것보다 더 급한 관심사가 있었다.


"배급차들은? 호위대는 도착했나?"


"그래. 지금 도시 중앙으로 이동하는 중이래."


"아무리 대총통 폐하의 명이라지만...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군. 우리 먹을 식량도 빠듯한데 제국 촌놈들에게 식량을 나눠줘야 한다니.."


프리츠는 '쯧'하고 혀를 찼다. 연방 토박이인 그는 어릴 때부터 칼렌 왕국에 시도 때도 없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제국을 좋아하지 않았고. 현재 총통비인 세리카에 대해서도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극렬 극우주의자였다.


"뭐. 깊게 생각해보자면. 사람이란 무릇 자신은 굶주리는데 이웃은 배부르게 있는 상황을 참지 못하는 생물이니까 말이야."


"10을 가지고 있다가 전부 빼앗기느니. 5를 주고 5를 갖는 게 더 나은 거 아니겠어?"


"그것도 그렇군. 아무튼 이 도시에 사는 놈들도 참 운이 좋군. 연방에 가장 가깝다는 점 하나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 도시에만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데 한 가정에 밀가루 10포대에 염장고기 100kg에 소금 10kg. 그리고 장작 1톤이라니. 이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다 들고 갈 수도 없을 것 같은데?"


"한 가정이잖아. 겨울을 나려면 이 정도 물자는 지원해야지. 게다가 그 중 절반은 도시의 돈 좀 굴린다는 녀석과 영주에게 돌아갈테니까 말이야."


애초에 이번 임무의 목적은 과시였다. 20만명의 사람들에게 이 정도로 지원을 하고도 연방은 꿈쩍하지 않는다는 체제의 선전.


그것을 위해서 무려 8두 마차를 수천개를 끌고 왔다. 프리츠는 그저 대총통 폐하의 작전이 잘 먹혀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2.


"저 마차들은 뭐지?"


"엄청나게 크다. 게다가... 언제까지 들어오는 거야?"


"저 사람들은 뭐지? 군인인가? 희한하게 생겼네.."


디아만트의 시민들은 끝도 없이 들어오는 8두 마차들의 행렬을 넋이 나간 듯 보고 있었다. 제국의 황실 문양이 아닌. 연방의 총통부 문양인 콘도르가 그려진 검은색의 마차들은 지평선 너머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어? 마차가 열렸어!"


누군가가 위의 말을 하자. 시민들은 굶주림에 지쳐있음에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마차들의 행렬을 바라보았다.


마차들은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 마차 위에 올라와 있던 호위병들이 마차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뭔가를 내리고 있는데..."


퓨레스트어로 바첸멜(밀가루)라고 쓰여져 있는 흰색 포대들이 내려올 때만 해도 시민들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바라만 보았다. 그러나 이내 훈제 처리가 된 염장고기들이 철봉에 줄줄이 꿰뚫린 채로 내려오기 시작하자 시민들은 이내 일말의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저거... 혹시 밀가루야?"


"그런 것 같은데...설마. 저 마차들에 전부 밀가루하고 고기들이 실려있는 거야?"


시민들은 점점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하였으나. 정작 마차에 붙어있는 호위병들과 짐꾼들은 심드렁하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마차를 보호하고 짐을 내리는 것이지 저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민들이 고대하던 그 무언가가 시작된 것은. 오전 내내 도시를 살펴본 특무대가 도착하고 나서였다. 프리츠를 비롯한 특무대는 계속해서 짐을 옮기라고 명령한 다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너. 가장. 맞나?"


"예? 뭐라굽쇼?"


"가족. 가장. 맞나?"


"예...제가 가장이긴 한데."


"따라와라."


어눌한 제국어로 말한 후. 특무대원들은 가장이라고 말한 사내 하나의 손목을 잡고 마차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퓨레스트어로 짤막한 대화를 나눈 뒤. 사내에게 다시 어눌한 제국어로 말했다.


"집. 돌아가. 짐. 들. 사람들. 수레.데려와."


사내는 특무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얼핏 눈치챘기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집에서 굶주림을 참고 있던 가족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가족?"


"예. 제 가족들입니다. 그러니까..."


사내는 특무대원의 얼굴이 아닌 그의 뒤에 있는 보급품들을 쳐다보았다. 막내로 보이는 작은 아이가 끌고 있는 수레는 당장이라도 기울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묻어나왔기에. 특무대원은 마지막 질문을 사내에게 하였다.


"이름. 말해."


"...조르셀! 조르셀입니다."


"......끝났다. 기다려라."


마지막까지 어눌한 제국어로 서류 작성을 끝마친 특무대원은 짐꾼에게 말해 밀가루 10포대. 염장고기 100kg. 소금 10kg. 장작 1톤을 차례차례 내려놓았다.


"가져가라."


특무대원은 여전히 무심하게 말했지만. 보급품을 받은 가족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신줏단지를 모시듯이 소중하게 보급품을 수레에 싣고는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조르셀 일가는 행여 누군가에게 뺏길까 두려워 마치 전광석화같이 집으로 돌아갔다. 특무대원은 내심 어떻게 저렇게 달릴 수 있을까 궁금해했으나. 그것보다는 본격적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시민들을 통제해야 했다.


3.


"크읍..! 크윽..!"


조르셀은 염장고기를 우적거리면서 우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기근이 시작되고 난지 어언 1달. 그동안 먹은 거라고는 감자 몇 알. 마른 생선 한 토막. 그리고 기껏해야 말라빠진 순무 몇 조각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짭짤한 고기가 입을 뒹구니. 새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는 감회가 새록새록 몰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런 것들을 나눠준 걸 보면 착한 사람들 같아요. 그쵸?"


조르셀의 큰 아들 또한 갓 만든 빵을 우적거리면서 손가락으로 장작이 수북히 쌓여있는 수레를 가르켰다. 저 정도면 겨울을 충분히 날 수 있는 양이다.


"보세요 여보. 소금까지 줬어요. 그것도 이렇게나 많이!"


조르셀의 아내는 큰 통에 담긴 소금을 손에 담아 보여주며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소금은 부르는 것이 값일진대. 이렇게나 퍼준 것을 보면 정말로 큰 은혜를 입은 것이다.


"정말로 큰 은혜를 입었구나! 나랏님께서도 구제 못하시는 게 기근인데.. 이렇게 큰 구휼을 베풀어주다니..."


어느새 염장고기 하나를 꿀꺽 삼킨 조르셀은 위의 말을 하며 흘러나오는 눈물을 애써 닦아냈다. 일단 굶주림이 해소되자 그저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그동안 가장으로서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감과 가족을 지탱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마침내 조르셀의 어깨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제 살 수 있구나... 살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며 조르셀은 남은 식량들은 집 한 구석 구석에 잘 배분해놓았다. 하늘이 내려준 식량이다. 쥐가 파먹기라도 하면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


4.


"빌어먹을. 허리가 휠 것 같구만."


"세상에. 그 많았던 게 겨우 6시간만에 사라지다니."


"마지막에는 밀고 들어오려는 시민들 막느라 총까지 쏴야 했었죠?"


"야. 그래도 20만명 중에서 한 명도 안 죽은 게 어디야."


"그 덕에 우리가 죽을 것 같다고!"


특무대는 앓는 소리를 내며 마차들을 바라보았다. 안쪽에 꽉꽉 채워져 있었던 보급품들은 마치 게 눈 감추듯 사라졌고. 어느새 흘린 낱알을 줏어먹느라 정신이 팔린 작은 쥐들만이 찍찍거리며 남아있었다.


"모두 마차에 타라!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그 무거운 것들을 전부 털어냈으니 이제는 더 빨리 가겠지?"


"당연히 그래야지."


특무대는 힘든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들의 행렬에 몸을 실었다. 의도야 어찌되었건 그들은 디아만트의 20만 시민들을 구원했고. 20만명의 뇌리에 연방의 콘도르를 심는 것에 성공했다.


"어이 프리츠. 기분은 어때?"


"나쁘지 않군."


"치. 딱딱한 녀석 같으니."


프리츠 특무참위 역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리 그가 제국을 싫어한다고 해도. 군인으로서 사람들을 돕는 임무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국왕 폐하 만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0 맞불 19.11.11 270 5 9쪽
69 증오심 19.11.08 282 3 9쪽
68 힘의 차이 19.11.07 265 5 9쪽
67 압박 19.11.06 275 5 9쪽
66 밀약 19.11.05 285 3 9쪽
65 구국의 결단. +1 19.11.04 294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2 4 10쪽
» 구휼 +1 19.10.31 290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4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7 5 9쪽
54 상징 19.10.18 313 6 9쪽
53 후폭풍 19.10.17 325 5 10쪽
52 낙마 19.10.16 332 7 9쪽
51 학살 19.10.15 358 3 9쪽
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48 신부 교육 19.09.27 385 7 9쪽
47 음지에서 양지로 19.09.26 384 6 9쪽
46 동맹 19.09.25 384 7 9쪽
45 서부와 동부 19.09.24 402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0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1 5 9쪽
42 연맹 19.09.19 471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