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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59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1.04 06:00
조회
294
추천
6
글자
9쪽

구국의 결단.

DUMMY

1.


저벅. 저벅.


언제부터일까. 레드 카펫이 깔려 있는 이 길을 걷는 것이 점점 지치기 시작했을 때는.


뚝. 뚝....


언제부터일까. 이 검에 피가 묻기 시작했을 때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아나이스는 결국 루돌프를 수호하는 것을 포기했고. 그가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다. 루돌프는 결코 무능하지 않았고. 오히려 유능한 황제였지만. 그렇기에 그는 죽어야만 했다.


꼭두각시조차 될 수 없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롭게 태어날 제국을 위해 죽어주는 것뿐이다.


콰앙!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자. 그곳에는 깜짝 놀란 얼굴의 루돌프 폰 발렌시아가 보였다. 아나이스는 그의 시선이 자신의 칼 끝에 닿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황제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몸은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들이닥쳐 황제의 가슴을 꿰뚫었다.


한 때 대륙을 호령했던 대국의 황제가 별 다른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절명하는 것을 본 근위대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해방감인가. 아니면 죄책감인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즉위식을 준비해라."


아나이스가 피가 묻지 않은 왕관을. 피가 묻은 손가락으로 집어들며 말했다. 아름다운 황금의 황관은 피가 묻었음에도 그 광채를 잃지 않고 있었다.


아나이스는 황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아직 황제가 아니었다. 황관은 다른 누군가가 씌워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황제를 죽이고 황관을 탈취했음에도. 관례는 지켜져야만 했다.


"성전군 내의 반동분자들은 모두 사라졌나?"


"모두 제거했습니다."


"그런가..."


근위대장이 대답하자 아나이스의 눈빛이 한층 더 사나워졌다. 아나이스를 막으려 한 이들은... 정의의 철퇴를 맞은 것이다. 실제론 아니었지만. 그냥 그런 것으로 하자.


아나이스는 아직도 피가 묻어있는 갑옷을 입고 자신을 바라보는 근위대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아직도 흉흉한 살기가 가득했지만. 아나이스는 그 살기가 자신을 향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근위대여. 충성스러운 제국의 방패들이여! 구국의 결단은 내려졌다! 이제 곧 제국은 새로이 태어나리라! 피로 벼려지고! 시련으로 담금질된... 강철의 제국이!"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아나이스는 눈을 감고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만세삼창 소리를 들었다. 그 무엇보다 짜릿한 감각. 이제부터 그가 느껴야만 하는 감각이었다.


2.


"폭군은 죽었다! 암군은 죽었다! 이제 우리 발렌시아 제국은 알렉시아 제국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성부시여. 우리의 황제를 가호하소서!"


선전꾼의 외침과 함께 한 때 1000년의 세월을 이끌었던 발렌시아 황실의 마지막 황제. 루돌프의 머리가 광장에 전시되었다. 한 때 제국의 신이었던 한 남자의 목은. 이제는 과거의 유산이 되어 그 머리만이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동안 황제가 숨겨놓은 물품들'이라는 명목으로. 엄청난 양의 식량들이 시민들에게 배급되자. 그동안 굶주림에 지쳐있던 민중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자랑이라고 여겼던 발렌시아 황실을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제국의 수도인 시그마스에서부터. 발렌시아 제국이 멸망했다는 소식이 퍼지기까지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성전군의 병사들은 애초에 반쯤은 아나이스의 사병이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고. 성전군 치하의 영토에 사는 신민들도 '밥만 잘 먹여준다면야...'라는 심정으로 반쯤은 알렉시아 제국에 동조하고 있었다.


해방군은 격노하며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렸고. 자신의 영지를 가꾸는데 전력을 기울이던 대영주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밭의 김을 매던 농부들을 다시 징집해 최전선에 군사를 배치했다.


농부과 농노들 역시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황제가 시해당했다는 사실을 알자 크게 분노하며 기꺼이 징병에 임하고 있었다.


웨슬턴 공화국은 성전군의 잔학무도한 행동에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웨슬턴 공화국이 지지하는 것은 오직 제국 해방군뿐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그 즉시 해방군 지원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퓨레스트 연방은 알렉시아 제국으로 개편된 제국에게 '구국의 결단을 내린 아나이스 폐하에게 찬사를 보낸다'라는 전문을 보내고는 웨슬턴 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성전군 지원을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동시에 제국 해방군은 지배 하에 있는 서부의 영토를 기반으로 자신들만의 정부인 프란시스 제국을 건국. 동부의 알렉시아 제국과 본격적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3.


"그래. 루돌프 황제가 죽었단 말이지.."


라이투스 대총통은 씁쓸한 목소리로 황제의 비보를 읊었다. 한 때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했던 황제였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릴 줄이야.


"참으로 허무하군. 안 그런가?"


"일국의 군주라면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최후입니다. 반역자이든. 자신의 백성이든. 아니면 스스로의 손에 죽든. 지배자에게 죽음은 항상 허무한 법이지요."


"그래. 그대의 말이 맞다. 한 때 이 샤르트 대륙의 초강대국이었던 제국이 이렇게 추락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세리카는 라이투스의 옆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18세가 된 세리카는 예전보다 더욱 성장해. 대총통도 수긍할 만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나이스 알렉스라는 자. 본 적이 있나?"


"있어요. 어렸을 때지만. 그때는 라인하르트의 교사였어요."


"라인하르트의?"


대총통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스스로 칭제할 정도로 막나가고 있는 자가 예전에는 라인하르트의 교사였다니 말이다.


"주로 병법을 가르친 것 같긴 한데.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가르쳤대요."


"라인하르트한테서 들은 건가?"


"네."


대답하는 세리카의 입술이 약간이지만 떨리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옛 기억이 떠오른 탓이다.


그것을 본 라이투스가 세리카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자. 세리카는 그제서야 안심된다는 듯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제국이 두 갈래로 쪼개지다니.. 1000년 역사상 단 한 차례도 분열되지 않았다는 것이 제국의 자랑거리였는데."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설령 국가의 멸망을 부른다고 해도. 변화를 무시한다면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겠지."


"퓨레스트 연방도 언젠가는 멸망할까요?"


"그렇겠지. 불멸의 국가란 존재하지 않아."


대총통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과 신념이 그의 대답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세리카의 마지막 질문. 퓨레스트 연방도 언젠가는 멸망할 것이야는 대답에도. 대총통은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아니다. 설령 내일. 아니면 일주일 후라고 해도. 오늘만큼은 멸망하지 않는다. 그런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은 세리카는 대총통을 침대로 끌어당겼다.


4.


어느새 시기는 다시 여름으로 돌아왔다. 찌는 듯한 더위와 창궐하는 모기 떼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계절이며. 자라나는 농작물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알렉시아 제국과 프란시스 제국은 암묵적으로 여름에는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해의 기근을 겪은 후. 한창 일손이 중요한 여름에 전투가 일어난다면 기다리는 것은 끔찍한 공멸 뿐이다.


물론 울퉁불퉁하게 그어진 국경에서는 양 세력의 병사들의 국지전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적으면 소대급. 많아봐야 대대급의 전투가 끝이었고. 사단이나 연대급의 참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두 제국에게는 더 큰 숙제가 있었다. 지난 해의 극심한 국력 소모와 기근으로 인해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날 듯한 민심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두 제국에는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자금줄은 말라붙었고. 그나마 있는 재정도 비대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접근한 공화국과 연방은 두 제국에 있어선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탄의 유혹과도 같았다.


공화국은 식량이나 철기등의 현물로. 연방은 닥치고 금괴러쉬로 두 제국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댓가도 필요 없다는 두 나라의 지원은 지원당하는 제국들의 관리들에게 의심을 사기 충분했으나. 지원을 거부할 수도 없는 터라 두 나라의 자원은 아무런 저항 없이 두 제국 깊숙한 곳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렉시아 제국과 프란시스 제국은 지원 물자를 서둘러 신민들에게 배분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민생과 치안은 크게 강화되어 두 제국들은 안도의 한 숨을 쉴 수 있었다.


물론. 공화국과 연방의 지도자들이 그 꼴을 보고 웃으며 서로 포도주 잔을 기울였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73 지나95
    작성일
    19.11.04 16:08
    No. 1

    쿠데타 없이 형이 황제가 되었으면 지금 제국은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대국이었을 텐데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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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압박 19.11.06 275 5 9쪽
66 밀약 19.11.05 286 3 9쪽
» 구국의 결단. +1 19.11.04 295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2 4 10쪽
63 구휼 +1 19.10.31 290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4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8 5 9쪽
54 상징 19.10.18 313 6 9쪽
53 후폭풍 19.10.17 325 5 10쪽
52 낙마 19.10.16 333 7 9쪽
51 학살 19.10.15 358 3 9쪽
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48 신부 교육 19.09.27 385 7 9쪽
47 음지에서 양지로 19.09.26 384 6 9쪽
46 동맹 19.09.25 384 7 9쪽
45 서부와 동부 19.09.24 403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1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2 5 9쪽
42 연맹 19.09.19 472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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