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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49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0.16 06:00
조회
332
추천
7
글자
9쪽

낙마

DUMMY

1.


'뭐지? 뭐가 일어난 거지?"


신병은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정신을 차리려 해도. 낙마한 충격과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분명....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왠 끝에 철봉이 달린 나무 작대기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린 것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희미한 의식을 붙잡으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마법이라도 썼는지 흰 안개가 매캐한 냄새를 내며 떠오르고 있었고. 사방에서는 굉음과도 같은 폭음이 들려왔다.


"히이이이힝!"


"으아악!"


팍!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잔뜩 흥분한 말이 신병에게 달려오자 신병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몸을 옆으로 굴렸다. 그 덕에 말이 치이는 것은 면할 수 있었지만. 때 마침 옆에 생긴 구덩이로 몸이 떨어지는 것은 면할 수 없었다.


찰팍!


"으으으윽!"


세 바퀴 반을 굴러 떨어진 구덩이에서는 왠 액체가 고여 있었다. 신병은 그새 비가 온 것인가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인간의 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악!"


신병이 기겁하며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핏물의 위에 반쯤 잠겨 있는 시체들을 손으로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신병이 손으로 시체를 끌어내리자. 신병은 그 시체가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수 있었다.


그 시체가 인간이라는 증거는 그것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내장들과. 아직은 붙어있는 턱의 몇 개 남지 않은 이빨들밖에는 없었지만.


"엄마...! 엄마..!"


신병은 공포에 질려 복부의 고통조차 잊은 채 맹렬하게 구덩이의 안을 탈출했다. 몇 번이고 미끌어져도. 미끌어질때마다 귓가에 들려오는 '철퍽'하는 소리가 그의 손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렇게 그는 간신히 구덩이 위로 올라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구덩이 안이 안전하다 싶을 정도로 전장은 어지러이 육편들이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타타탕!


"크억..."


"아악!"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적진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면 전장에는 더 짙게 연기가 드리우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서 아군들이 비명을 지르며 죽는다는 것이었다.


대포는 커녕 화약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아오던 제국의 병사들은. 그동안 살아왔던 지식을 통해 필사적으로 적의 존재를 규명하고자 하였고. 곧 나온 결론은 둘 중 하나였다.


마법. 아니면 악마.


2.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적에게 마법사가 있다면 왜 보고가 들어오지 않은 게야!"


"아..아닙니다! 분명 적에게 마법사는 없었습니다! 분명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그럼 저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뭐란 말이냐! 악마냐! 악마의 소행이라고 말하고 싶은거냐!"


지휘관들도 당황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병사들보다 어느 면에서는 더 심각할 정도로 말이다.


평생 드넓다는 표현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넓은 제국에서 병기라고는 오로지 냉병기밖에 몰랐던 지휘관들은 난생 처음보는 열병기에 당하자 패닉에 빠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퓨레스트 연방이나 웨슬턴 공화국과의 국경에서 부임했더라면 어느정도 대처는 가능했겠지만. 그들은 순수하게 제국 내에서만 나고 자란 나쁜 의미로의 제국 토박이었고. 그들의 머릿속은 하얀 백지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길! 후퇴하라! 병력을 후퇴시켜!"


"무리입니다! 이미 최전선의 대열은 붕괴했습니다! 이 상태로 후퇴해봤자 희생자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럼 어쩌자는 말인가? 이대로라면 전선의 병사들을 전부 잃고 말아! 후퇴의 종을 쳐라! 이건 명령이다!"


뎅-! 뎅-!


제국 해방군의 본부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종이 두 번 울렸다. 후퇴를 알리는 신호였다. 본래라면 지휘관의 인도 아래 질서정연하게 후퇴해야 했지만. 이미 이성도 냉정도 지휘관도 잃은 전선의 병사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후퇴 신호다! 이제 살 수 있어!"


"도망쳐! 적들이 악마를 불러냈다고!"


병사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후퇴의 종을 울린 것이 그들의 명줄을 끊어버린 셈이 되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전부 죽여라! 감히 신성한 제국의 은혜를 저버린 놈들이다!"


성전군의 기병대가 전장에 투입되면서.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병사들에게 유탄의 비를 내리고. 그럼에도 살아남은 자들은 세이버와 카빈을 통해 2만명의 병사들은 소수의 생존자만을 남기고 완전히 멸살되었다.


3.


"이건 전투가 아니야... 그저 학살이다!"


성전군의 야전 지휘관은 짧고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며 경악했다. 지휘관도 결국에는 제국민. 열병기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산업화된 군대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알지 못 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지금껏 제국이 최강이라고 마치 성부를 받들듯 믿어왔는데... 야만인들..아니. 외국인들은 저런 무기들로 무장하고 전쟁을 한단 말인가? 저런 마법사도 흉내내지 못할 도구들로?


그에 반해 우리 제국은? 무기라고는 그저 창과 검을 꼬나쥐고 들이받으며. 화살을 몸으로 받아낼 뿐만이 아닌가! 경이롭구나! 아니. 그 이상으로 두려워! 이 전쟁이 끝나면 필시 제국은 바뀌게 될 것이다!


설령 아나이스 각하나 황제 폐하시라도 그런 변화를 막지는 못하시겠지!'


야전 지휘관의 독백은 정확했다. 제국은 낙후되었으며. 시대에 뒤쳐졌으며.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썩어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이 내전. 이 전쟁은 제국의 그런 썩어문드러진 고름을 뿌리부터 잘라내기 위한 일종의 작업이었다. 적어도. 눈 앞의 광경을 본 이상 더 이상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걷지 않으면. 달리지 않으면. 날지 않으면 이제 제국의 미래는 1000년동안 자신들이 무시해왔던 야만인들의 손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었다.


"....우욱! 우우웁!"


지휘관의 곁에서 참관하던 귀족은 난생 처음보는 전장의 참혹함을 버티지 못하고 위액을 푸른 대지 위에 흩뿌렸다.


지휘관도 내심 구토감이 치밀어올랐지만.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전장을 기록한 마수정을 들고. 성전군의 총수인 아나이스 알렉스에게 보고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아직까지 바닥에서 속을 게워내고 있는 귀족을 제쳐두고 지휘관은 막사로 달려갔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이길 수 있다! 우린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어!'


4.


"제국 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아나이스 각하 만세!"


전투에서 승리한 성전군은 근처의 도시로 들어가 술집의 술이란 술과 여자란 여자들은 모조리 독식하며 승전을 축하했다.


"거들먹거리는 기사! 잘난체 하는 마법사들 다 좇까라 그래! 우리한테는 총이 있다고!"


"""옳소!"""


"내가 탁! 하고 쏘니까 방금 전까지 죽일듯이 달려들던 기사가 억! 하고 죽는데. 이게 얼마나 통쾌한지 몰라!"


"말 잘한다!"


"부어라! 마셔라!"


병사들은 제각기 무훈을 자랑하며 술을 퍼마시거나. 평소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던 고급진 고기 요리들을 만끽하거나. 아니면 잠시 가정을 잊고 육욕에 파묻히기도 하였다.


지휘관들은 이러한 행위가 군기를 흐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짓고 밭을 갈던 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는 이러한 행위가 잘 먹혀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같이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몰래 숨어 이득을 챙기고 있는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군대를 따라다니는 종군상인이나 소규모 보부상들이었다.


병사들 개개인의 자금은 별 볼일 없었지만. 군대라는 틀 안에 있다면 자금은 뭉텅이째로 굴러들어온다. 전쟁이 시작되면 물자는 말라붙고. 상한 피클이라도 사기 위해 금화자루를 가져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그런 금화자루를 노리고 군대에 물품을 납품하는 종군상인들은 손수 군인들에게 칠면조와 맥주를 내어주며 은근슬쩍 전장의 정보를 캐물었고. 이렇게 손에 얻은 정보는 각 상인들간의 교차검증을 거쳐 소규모 보부상들에게 전달되었다.


보부상들은 은화 몇개를 받고 정보를 제국 전역에 있는 각 정보 길드에 정보를 가져다주고. 정부 길드는 각자 형성된 정보망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제국 전역으로 퍼트린다.


그 과정에서 정보는 부풀려지고. 사실 관계는 왜곡된다. 사람들은 소문과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정보 길드에 거금을 쏟아붇고. 정보 길드는 그 자본을 토대로 종군상인들에게 각종 지원과 다음 전투가 있을 곳을 알려준다.


흔히 '죽음의 상인'이라 불리는 무기상들도 정보 길드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종군상인들에게 물품을 납품하며. 그렇게 해서 전쟁경제는 돌아간다.


"여기 닭 세 마리 더 가져와!"


"여기는 맥주 한 잔 더!"


하지만 병사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말이다.


작가의말

참고로 제국의 면적은 대략 중국과 미국을 합한 정도입니다. 마법이 없다면 아마 유지되지 못했겠죠. 뭐 마법이 있어도 잘 유지되지는 않지만..


이 세계의 문명 수준은 한 18세기 초반 정도입니다. 본격적으로 증기기관이라던가 산업혁명이라던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리고 제국은 아직도 자기 혼자서 13세기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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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압박 19.11.06 275 5 9쪽
66 밀약 19.11.05 285 3 9쪽
65 구국의 결단. +1 19.11.04 294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2 4 10쪽
63 구휼 +1 19.10.31 290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4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7 5 9쪽
54 상징 19.10.18 313 6 9쪽
53 후폭풍 19.10.17 325 5 10쪽
» 낙마 19.10.16 333 7 9쪽
51 학살 19.10.15 358 3 9쪽
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48 신부 교육 19.09.27 385 7 9쪽
47 음지에서 양지로 19.09.26 384 6 9쪽
46 동맹 19.09.25 384 7 9쪽
45 서부와 동부 19.09.24 402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1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2 5 9쪽
42 연맹 19.09.19 471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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