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국왕 폐하 만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19.08.15 12:20
최근연재일 :
2020.01.06 06:00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48,057
추천수 :
569
글자수 :
386,170

작성
19.11.05 06:00
조회
285
추천
3
글자
9쪽

밀약

DUMMY

1.


"이렇게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군요 폐하."


"제가 할 말입니다 각하. 아 참. 이번 재선 축하드립니다."


"어이쿠. 벌써 알고 계셨습니까?"


연방과 공화국.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로 알지도 못했던 나라들의 지도자들은 한 허름한 오두막 집에 앉아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한적한 오두막 근처에 양국의 정보대원들과 근위대가 경비를 서고 있지 않았더라면.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우들이 회포를 푸는 장면과도 같았다.


"결국엔 제국이 쪼개지고 말았군요. 꽤 오래 버틸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로군요"


"그만큼 돈을 쏟아부었는데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마음 같아선 한 열 조각으로 쪼개버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저들도 그리 생각이 없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흐하핫... 그나저나 이제 슬슬 발을 뺄 때도 되지 않을런지요. 저들도 정보전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꼬리가 잡힐테고...."


"들어가는 자원도 만만치 않으니 말입니다. 이번 농사는 풍년이었으면 좋겠군요. 누렇게 익은 밀밭처럼 안심되는 건 없으니까요"


"동감합니다. 이번에도 흉년이 들면 정말로 금주령을 내려야 하니 말입니다."


잠시 농담같은 말들을 주고받던 양국의 정상들은 눈빛을 바꾸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두 강대국이 두 약소국을 어떻게 유린할지 토의하는 것이 오늘 그들이 모인 이유였다.


"그래서... 저희 웨슬턴 공화국은 프란시스 제국을. 그 쪽 퓨레스트 연방은 알렉시아 제국을 맡는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무얼. 프란시스 제국의 권역 내에서라면 그쪽이 무엇을 하든 저희 연방은 신경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알렉시아 제국은 저희 연방의 권역입니다. 만약 알렉시아 제국으로 귀국이 촉수를 뻗는다면. 저희 연방은 어떤 수를 써서든 그 촉수를 배제할 것입니다."


"저희도 물론 알렉시아 제국에 대한 귀국의 종주권을 인정합니다. 다만. 그 인정이라는 것도 연방이 프란시스 제국에 대한 일체의 간섭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만."


"이미 결정난 것 같군요. 서로 제국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갑시다."


내부에 잠입해 있는 스파이를 배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밀약을 맺은 두 사람은 마침내 합의를 마치고 일어섰다. 천장에 달려있는 작은 등불이 깜빡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라이투스 대총통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하자. 초셀 대통령 역시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받았다.


한 때 세계를 호령했던 발렌시아 제국이 들었다면 천인공노할 일이었으나. 이미 발렌시아 제국은 멸망한지 오래였다.


2.


프란시스 제국과 알렉시아 제국의 경계. 즉 국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북부부터 중부까지 이어져 있는 에랄 산맥과. 중부에서 발원해 남부까지 흘러가는 파메존 강이다.


에랄 산맥은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험준한 지형과 몬스터들이 우글거려 군대가 이동하기에는 최악의 장소였고. 산맥이라는 특성상 겨울에는 사실상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와 반대로 파메존 강은 낮은 유속과 풍부한 어자원으로 유명한 강으로. 발렌시아 중부의 젖줄이라고도 불리는 강이었다.


파메존 강에서 나는 물고기들은 주변 어민들의 주된 식량 자원이자 거래 자원. 매달 들리는 대상단에 훈제한 청어같은 어패류를 팔면 꽤나 돈이 짭짤하게 떨어진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제국의 동부와 서부를 잇는 교두보로. 양국의 주민들은 국경수비대의 따가운 눈총을 애써 무시해가며 강에 그물을 던지고 다리를 놓아 서로 왕래하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양국의 사이가 나쁘다고는 해도. 갈라선지 1년도 되지 않은 사이. 다리만 건너면 오빠가 살고 강만 건너면 삼촌이 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국경수비대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눈빛은 살벌하였지만 서로를 해할 생각은 없는 기묘한 대치가 수개월 째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파메존 강이 시끄러워진 것은. 프란시스 제국이 뜬금없이 알렉시아 제국에 사는 어부들을 '국경'을 넘었다며 나포하면서부터였다.


이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기근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한 프란시스 제국에서는 수확 때까지 어떻게든 먹을 수 있는 식량 자원을 입수해야 했고. 그 중 가장 얻기 쉬운 것이 어패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시스의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자기 나라의 어부들이 이웃나라의 군인들에게 붙잡히고 기껏 잡은 물고기들도 전부 압수당한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두 나라의 외교관들은 몇 번이나 다리를 오가며 서로의 사정을 설명해보았지만. 결국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일은 없었다. 알렉시아 제국도 이번 수확 때까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은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쪽이 하는 것을 이쪽이 그대로 따라할 수는 없는 법. 결국 두 정부는 고육지책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뚝딱! 뚝딱!


군복을 입은 장정들이 쪽배 하나에 의지해 강의 정 중앙에 굵고 긴 쇠막대를 박아넣는 것은 일견 우스워보였으나. 지금 쇠막대의 위치는 강의 정 중앙. 이런 쇠막대가 세로로 길게 박아지면. 앞으로 그것이 강의 국경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 쪽에서는 열심히 물고기를 잡고. 중앙에서는 열심히 쇠막대를 박는 작업은 무려 한 달이나 지속되었다.


3.


"저 놈들 잡아라! 놓치지 마!"


-삐이이익!-


"힘내! 얼마 안 남았어!"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호각소리가 잔잔히 불어오던 바람을 갈랐다. 알렉시아 제국과 퓨레스트 연방의 국경 사이에서는 한 가족과 군복을 입은 장정들이 치열한 추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두 무리간의 거리는 멀었지만. 한 쪽은 영양실조에다가 손과 가슴팍에 아이를 붙들고 있었고. 한 쪽은 영양공급도 잘 되고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도망치는 가족이 앞을 보자. 저 앞에 어렴풋이 풀이 자라지 않는. 바닥에 돌이 심어져 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국경. 제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조금만 더!"


그 모습을 본 가장이 입에서 끓어오르는 하얀 거품을 뱉어내며 말했다.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뛰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처절함을 넘어 처연함까지 느껴졌다. 그의 뒤쳐진 손에는 빼빼마른 아내가 마찬가지로 뼈만 남은 듯한 아들을 데리고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본래 이 가족은 제국에 속해있는 농노들로. 제국에 기근이 들이닥쳐 먹을 것이 없어지자. 이렇게 잡혀 모진 고문을 받을 것을 무릅쓰고 연방을 향한 탈주를 개시한 것이다.


비단 이 가족 뿐만이 아니라. 연방과 국경을 맞댄 영지들에서는 하루에도 몇 가구씩 탈주자가 나오고 있었다. 이제 곧 수확철이 된다지만. 자신들에게 대체 얼마나 많은 밀가루가 떨어질지는 뻔했기 때문이다.


참혹한 내전으로 인해 국가 기반시설은 물론 식량 운송망도 완전히 박살난 현 제국에서 아무런 경제력도 없는 농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죽어라 뛰는 것이었다.


적어도 연방에서는 묽은 수프라도 먹을 수 있다. 허름하긴 해도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으며. 운이 좋다면 글이나 공부를 배울 수도 있다. 그런 일말의 희망이 농노 가족의 근육을 지탱하고 있었다.


털썩!


"다 왔어! 다 왔다고!"


성부가 도운 것인지. 다행히도 이 가족은 무사히 전원 연방의 영토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본 제국 쪽의 군인들은 '까드득!' 소리를 내며 신경질적으로 다시 돌아섰다.


사실. 아직 국경수비대도 없는 이런 허허벌판에서라면 무력을 써서라도 그들을 잡아끌면 될 일이지만. 자칫 잘못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낭패를 당하는 것은 알렉시아 제국의 정부. 그렇기에 군인들은 일단 국경을 넘어가기만 하면 손을 대지 않았다.


"하아....하아...."


중년의 남자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바닥에 드러누웠다. 손 끝에 느껴지는 흙의 감촉이 이렇게 부드러웠던가. 그의 귀에는 바람소리와 함께 희미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왔다.


퓨레스트 연방의 국경수비대가 도착한 것이다.


4.


"이번 달에만 벌써 몇 명이지?"


"약 20명입니다."


"곤란하군. 이들을 거리로 내몰 수도 없는 노릇인데..."


웨슬턴 공화국의 동부 주재 재무관은 곤란한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요새 들어 제국에서 넘어오는 농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동부에는 그렇게 많은 수의 농노들을 수용할 시설이 없다는 점이었다. 적당히 땅을 쥐여주고 소작을 시키려고 해도. 절대다수의 탈주자들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에 빠져 있어 쟁기를 드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뭔가 교육을 받았거나 한 것도 아니라. 동부의 재무관돠 행정관들은 이 도망 농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해야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국왕 폐하 만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0 맞불 19.11.11 270 5 9쪽
69 증오심 19.11.08 282 3 9쪽
68 힘의 차이 19.11.07 266 5 9쪽
67 압박 19.11.06 275 5 9쪽
» 밀약 19.11.05 286 3 9쪽
65 구국의 결단. +1 19.11.04 294 6 9쪽
64 신성모독 19.11.01 292 4 10쪽
63 구휼 +1 19.10.31 290 4 9쪽
62 대리전 19.10.30 288 3 9쪽
61 충성의 댓가 19.10.29 335 3 9쪽
60 대탈출 19.10.28 304 3 10쪽
59 천년의 역사. 19.10.25 309 3 9쪽
58 그들의 땅. 19.10.24 294 4 10쪽
57 흥망성쇠 19.10.23 294 3 9쪽
56 여름의 태양 19.10.22 307 4 10쪽
55 거세지는 전화 19.10.21 308 5 9쪽
54 상징 19.10.18 313 6 9쪽
53 후폭풍 19.10.17 325 5 10쪽
52 낙마 19.10.16 333 7 9쪽
51 학살 19.10.15 358 3 9쪽
50 승리 아니면 죽음을. 19.10.14 359 5 9쪽
49 또 한번의 결혼 19.09.30 378 5 9쪽
48 신부 교육 19.09.27 385 7 9쪽
47 음지에서 양지로 19.09.26 384 6 9쪽
46 동맹 19.09.25 384 7 9쪽
45 서부와 동부 19.09.24 402 4 9쪽
44 톨레랑스 19.09.23 431 4 9쪽
43 공식적 화답 19.09.20 452 5 9쪽
42 연맹 19.09.19 472 6 10쪽
41 신경전. 19.09.18 482 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