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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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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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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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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03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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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축제 같은 어제를 이만 물에 흘려보내고, 월묘는 오랜만에 편안한 꿈에 빠졌다. 등을 기댈 수 있다는 건 초콜릿처럼 달콤하다. 등 뒤에 걱정이 몰려와도, 필사적으로 달리지 않아도 된다. 가끔 넘어져도, 굴러서라도 나아갈 수 있다. 힘들면 걸어도 된다. 3년간의 끝없는 마라톤 속의 쉼은 꿀물처럼 달콤했다.

'벌써 아침이네.'

이만 달은 태양에게 잡혀 버리고 술래가 되어 물러났다. 청아한 아침이 몰려온 것이다.

쉼은 끝났으니 일을 해야 할 때. 흐물흐물해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면 그땐 정말 끝이다. 할 땐 죽어라 한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슬슬 고리를 걸어 볼까.'

공호와 섬천은 미뤄뒀던 일을 처리하기 위해 폭매의 모든 인원을 한 자리에 질질 끌어모았다. 아직 파블로드에게 상황을 듣지 못한 그들은 아우성치며 눈을 부랴렸다.

"이! 놔. 놔라!"

"파블로드님은 어쨌냐!"

정말, 한 명도 죽지 않고 전부 살아있다. 팔 하나둘 보이지 않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리 불쌍해 보이진 않았다. 시끄럽던 폭매 중에서 조용한 건 오직 A급 실력자들 뿐이었다. 아파본 놈이 겁낼 수 있다던가.

'편하게 됐어.'

섬천을 경험했기에,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공호보다 무서운 것이 섬천이다.

좌중을 길게 살폈다. 섬천은 이 상황을 눈에 담으며 간단히 감상을 요약해 봤다.

'개판이군.'

소년의 가시 돋은 뾰족한 관찰력이 그들의 특성 하나하나를 살핀다. 아주 짧은 시간에 적의 최대의 정보를 파악하는 사냥꾼의 눈. 이리저리 난잡하게 뒤섞인 상성들이 폭매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이런 놈들을 바로 잡는 방법은 간단했다.

'두드리면 되지. 풀어질 때까지 두드리고, 그리고 또 두드리고.. 결국은 두드리는 거야.'

월묘가 신신당부했으나, 죽이지만 않으면 된됐다. 죽이지만 않으면. 그 뒤로는 엿장수 맘이란 거다.

"오신다!"

"주군! 빨리 저희를 풀어 주십시오!"

시장통처럼 소란스런 도중 거대한 몸집의 파블로드가 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짧지만 강렬하게 의사를 표했다.

그 어린 소년에게 파블로드는 무릎을 꿇었다. 소년은 파블로드의 어깨에 있는 독수리 모양을 힘으로 뜯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흡,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틈이고 치고 들어오는 바람처럼, 파블로드는 그 두터운 입술로 그들의 정신을 치고 들어왔다.

"주인."

혼과 몸이 떼어질 때 나오는 비명은 어떨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경악은 장기까지 솟아낼 지경이다. 딜레마가 가득 찬 그들을 따라, 은치도 뭐가 좋은지 연신 울음을 내뱉었다.

소리가 진정되지 않자 공호가 손을 썼다. 그들의 목에 걸려 있는 얼음의 고리가 조여오기 시작했다.

"아, 먼저 말하자면 당신들 목에 걸려있는 그거 말입니다... 네. 짐작하다시피, 안에서 가시가 나옵니다. 허튼짓하면 시원하게 목에 구멍을 뻥 뚫어주는 거죠. 부술 수 있으면 부숴 보시면 됩니다. 안에 압축공기가 있어서, 빵 하고 얼음조각이 사방으로 박혀들 겁니다. A급 정도 되면 나올 수 있겠으나.. 뭐, 굳이 나오실 분은 나와만 보십시오."

딸꾹.

신나게 떠들던 레스토 하나가 황급히 말을 뚝 끊었다. 그럼에도 차단하지 못하여 나오는 딸꾹질 소리.

조용했다. 이제 와서 죽기 위해 나설 놈은 없었다.

인력상실을 줄이기 위해 보수 작업을 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조금의 물도 세지 않게 틈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콰드득, 가시가 돋아난 얼음. 레스토 하나가 폭포처럼 피를 왕창 쏟고 쓰러졌다.

일벌백계, 하나의 본보기로 좌중을 찍어 누른다. 섬천과 파블로드가 눈이 마주쳤다. 파블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 놈은 제국 측 밀정 중 하나다.'

위에서 말한 데로 인력 낭비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처리해야 할 밀정을 미리 살인멸구했을 뿐이다.

'월묘에게는 자살이었다고 하지. 뭐.'

그렇게 섬천의 다짐은 5분도 안 돼 깨졌다.

밑밥을 깔고, 강하게 나간다. 후를 위해 처음부터 탄탄하게 다져 놓을 뿐. 섬천은 싸한 눈으로 좌중을 내려보았다.

"당신들이 생각하기에는 당신들은 정상입니까?"

녀석들은 기분 더럽게 웃었다. 겨우 소년이, 그것도 한참 어린 아들뻘 되는 놈이 잘났다고 이를 까대고 있으니. 그것도 훈계 말투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껏 비웃으며 정당하기라도 하단 듯 말했다.

"당연히 정상은 아니지. 으흐흐."

"그럼, 정상으로 돌아올 마음은 있습니까?"

"아가야. 이 젖 같은 아가야. 젖이나 더 처먹고 와라. 힘이 있다고 모든 게 쥐락펴락 되겠냐.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적어도 우리 중에 마음대로 정상이고 아니고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이는 없었어, 등신아."

섬천의 눈썹이 흥미롭단 듯 물결친다.

"좋습니다. 일단 인정합니다. 적어도 여기에선 그쪽 어른과 이쪽 아이들이 다를 게 크게 없는 걸 말입니다. 단순히 말해서, 아주 쓰레기입니다. 쓰레기. 왜냐고요? 혹시 여기 중에서 피 안 묻힌 사람 있습니까? 여기 중에서 어쩔 수 없이 레스토 안 죽여본 이 있습니까? 없지 않습니까. 제 뭣대로 죽이고, 제 뭣대로 가지고. 이미 정신적으로도 걸레 짝 아닙니까?"

목소리. 선천적으로 하늘이 내려주는 위에 있을 자의 목소리. 좌중을 움직이는 명하는 자의 목소리. 공호도 없고, 월묘도 없고, 묠드도 없는 그것을 섬천이 그 목소리를 갖고 있다. 말하는 자가 어리지만,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는 그 목소리가 그들에게 울렸다.

"설득하려는 것 같았었는데? 니들과 우리가 같다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것 아닌가?"

"제가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뒤집어 버립시다. 우리는 인정사정없고 하나만 아는 잔인한 놈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바꾸렵니다. 내 몸이 어리든 당신들 몸이 그렇게 성장을 했든, 하는 짓은 별 다를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차피 그 짓 할 거면 더 크게 하자 그 말입니다. 좀 더 의미있게 말입니다."

"말이면 못 하는 게 없겠네. 네가 힘이 있어 그러는데, 우리 무서워. 네가 조금이라도 약했더라면 우리는 네 눈을 파고, 내장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을 놈들이야. 이제껏 우리가 강하니까 우리가 마음대로 했다. 죽이든 살리든 갖고 놀든. 네가 힘이 있어 이빨좀 딱딱거린다고 쉬이 변할 놈들이 아니란 거야."

섬천은 조롱하듯이 냉소를 잔잔히 얼굴에 띄어 올렸다. 가끔 생각하지만, 이 몸이 여기서 멈춘다는 것은 정말 슬픈일 같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보인다는 것은.

"힘, 힘, 힘. 자꾸 저에게 힘이 있다고 강조하지 않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당신네 말처럼 이 난장판에서 돼지같이 꿀꿀대며 힘이 있는 놈만 목을 들이밀어 먹이를 먹는 것이라면, 어리든 늙든 힘이 있는 우리에게 돼지같이 도축 당해도 크게 할 말은 없지 않습니까? 또 그렇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당신들의 목이 날아가는 것은 확정된 것 아닙니까? 더 힘 있는 돼지들이 당신의 앞뒤로 있지 않습니까."

한 녀석이 내장부터 올라오는 땅땅한 웃음을 터트렸다. 호탕해서 호걸 하기 까지 한 그 웃음.

"이렇게 투쟁하는 돼지들을 본 적 있는가? 죽음은 각오했다. 들어올 때부터 더 강해지기 위해 투쟁했지. 그래서 아직까지 살아있고 아직 노닐 수 있는 거다. 투혼이다! 우리는 투혼을 불태워 미친 제국과 개척자들. 그들로부터 투쟁하고 쟁취하고 여기까지 올라왔다. 보라. 아무도 못 건들었지 아니한가. 단지 네가 힘이 더 있었던 것뿐. 죽고 죽였던 투쟁에서 너희가 만용으로 우리를 살렸던 것뿐이다. 살았으면 더 넓은 밥그릇을 갖기 위해 투쟁한다. 그게 어찌 잘못된 것인가?"

어이가 나갈 지경이었다.

'나도 핑계지만...'

저쪽은 오만이다. 아니, 지랄병이다. 말만은 세상을 개혁하는 선구자다. 그런데 실상은 그냥 양아치 아닌가. 그것도 생양아치. 저건 그냥 개 짖는 소리다.

잘 벼른 검이 섬천의 입을 통해 번뜩인다.

"투혼? 투쟁? 그럼 묻겠습니다. 뭐가 변했습니까?"

"변하다니?"

"당신들이 그렇게 싸워 당신들 자체에 뭐가 변했냔 말입니다. 죽이면 영웅입니까? 강하면 신입니까? 그렇게 강해서 당신들이 뭉쳐 왕국하나 상대할 수 있습니까? S급 용병 하나 상대할 수 있습니까? 아니, 당장 저 파블로드 혼자서 신발 거꾸로 신으면 막을 수 있습니까? 다 죽을 거 아닙니까."

"...."

"당신네 말로, 죽어라고 얻기 위해 투쟁했는데. 왜 아무것도 안 남았습니까?"

강렬한 호소력으로 모든 이의 마음을 돌리는 영화 같은 일은 당연히 불가했다. 그러나. 조금의 의심, 의혹, 호기심이라도 때려 박기만 하면 된다. 일단 때려 박으면, 다음은 꾸준히 두드려 주기만 하면 된다. 조각이란 건 그렇게 하는 거다. 대못을 어떻게든 박기만 한다면, 다음은 계속 두드려서 결국에는 깎아낸다.

"그들이 있습니다. 저희의 양옆에, 그리고 당신들의 뒤에 그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찬밥 더운밥 가릴 때 그들은 당신들의 심장을 어떻게 도려낼지 가리고 있습니다. 그들 심장을 내주면, 우리는 갈려져 그들의 비료가 됩니다. 남는 거? 약탈 몇 번 하고 몬스터 새끼처럼 살았다는 증거? 그걸 말하는 겁니까? 제발 똥 같은 소리 좀 마십시오!"

섬천은 바람을 가른다. 무서운 속도로 바람 가르기가 큰 바위에 부딪힌다. 서걱, 그대로 쓸려 내리는 바위. 그 바위에서 도망가려던 폭매의 레스토 몇이 놀라 뛰쳐나왔다.

"약속합니다. 폭매를 지금의 몇 배로 부풀려 드리겠습니다."

섬천의 반협박 속마음이 말에 묻혀 전파한다. 듣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이야기.

좌중이, 군중이 흔들렸다. 저마다 눈빛에 욕심과 야망을 품었다.

섬천이 씨익 웃으며 손을 슬며시 비볐다. 끝났다. 쟤가 저러면 십중팔구 결과는 결정돼 있다고 보면 된다.

"자, 그럼 정신머리부터 고쳐 보겠습니다."

기, 승, 전, 칼부림. 결국 결론은 이거다.

진이 섬천의 옆에 귀신같이 나타난다. 그 둘은 각자 눈을 빛내며 한 명의 레스토를 향해 다가갔다. 서로 같은 생각을 갖고서.

'일단 조져놓고 봐야지.'

섬천과 진은 방향을 틀며 서로의 무기를 맞대었다.

차앙.

오늘은 검과 쿠나이가 사이가 좋다.


폭매를 걸레 짝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섬천을 뒤로, 공호는 따로 할 일을 위해 움직였다.

손을 물에 적시지 않고서는 손을 닦을 수 없다. 뱀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이 뱀굴을 파고들어가야 하는 법. 처음 올 때부터 기정사실이었던 일이다.

'뱀도 뱀 나름이다. 크기로 치면 아나콘다. EG는 그런 뱀이지.'

놈들의 가장 큰 소굴이 EG. 개척자가 억 단위로 모였다니 희망을 볼 수 있다. 개척자의 수가 대략 100억. 1억 이라 하더라도 1%라는 확률이 생긴다. 작아 보일 것이다. 예전에 봤었다면. 그러나 이 넓은 땅덩어리에 혀를 내둘려보지 않는다면 저 확률이 크다는 사실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가 언제나 둥근 틀에 박힌 하늘을 보며 그 크기를 가늠해보려는 것과 같다. 지구와 아스페티아를 같이 대열 한다면, 지구가 1000개 쯤 모여야 점이라도 보일락 말락 한 지경이다.

확률 1%. 과연 작을까?

공호는 파블로드를 불러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시작은 EG와의 내통이나 관계를 정리하며 하나하나 끊어버리는 절차를 밟았다. 그 과정에서 공호는 파블로드가 정말로 진심이란 느꼈다. 누군가의 사연을 다른 이가 알기는 무리. 뒤통수만 맞지 않도록 적당히 밟아놓기만 하면 된다.

"저 안에 속한 제국 측이나 EG 측 밀정 처리는?"

제국 측이나 EG 측이나 가장 성가신 밀정은 레스토가 아닌 개척자다. 개척자는 아무리 죽여도 결국 되살아난다. 은밀히 움직여야 할 이 단체을 알아차린 이상, 살인멸구가 답이다. 레스토는 그게 가능하나 개척자는 불가능하다.

직접 대면하니 진정 바퀴벌레가 따로 없다. 제국의 심정에 슬쩍 손을 얻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건..'

방법과 생각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을 해야 살아남고, 좋은 판단이 좋은 생사 줄이 되는 곳에서 5년간 생존했다.

공호는 지평선 너머를 향해 물끄러미 노려봤다. 섬천이 분주한다.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믿는 수밖에 없고, 믿음을 안 줄 수도 없었다. 가끔은 공호도 놀랄 정도로 머리를 굴리는 섬천이다. 녀석이 어디까지나 지옥의 1년째에 죽은 것도 순전히 운이 나빴기 때문이다.

'적어도 경영은 맡기자. 녀석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정치, 경영. 경제. 섬천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들에 눈이 빛났던 섬천이다. 뭔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그냥 좋아한 것 같으니. 공호가 숲을 좋아했던 것 만큼 말이다.

"교란이나 테러 말고 EG가 너희에게 내린 다른 명은 없었어?"

"없었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완전 버려지는 장기말 같군."

"조용히 움직이자. 조용히. 이제 폭매라는 조직은 어디에도 없는 거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놈을 내세우고 우리는 그림자처럼 뒤에서 움직이면 돼. 그렇게 하다 보면 각자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을 거야."

공호는 저 멀리, EG가 있는 땅을 감정없이 노려봤다.


월묘는 바위에 등을 대고 누워 머릿속에 떠오르는 스텟창의 정보를 음미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여러 방법으로 스텟창은 나타난다. 월력. 이 신기하고도 복잡한 것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마나 친화력과 마나 제어력이 사라지며 얻은 부가 스텟이 괜히 정신을 어지럽힌다.


-육체등급:C 레벨:58 육체랭킹:1065425253위

이름:월묘 칭호:달의 요정


힘:85 민첩:140 순발력:75 체력:85 육감:75

월력:30

부여가능 스텟 포인트:147


-달의 요정: 일정 시간 월력을 2배 상승시킨다. 달이 떠올랐을 때에만 효과를 발동시킬 수 있다.


월력. 축복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능력. 월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능력이다. 토끼와 당근의 만남이랄까.

월묘는 결심했다.

'빨리 가족을 찾아서 이 살육을 정지시킬 거야.'

공호와 섬천의 잘못을 막을 수는 없다. 그 현실을 이번 사건을 경험하며 깨달았다. 사람은 달빛이 될 수 없다고. 모든 것을 비춰줄 수 없다고. 그렇다면 내세울 수 있는 대책이란 이거 하나밖에 없다. 공호와 섬천의 잘못을 도와서라도 이 혼란을 빨리 끝내는 것이 답이다. 자물쇠를 풀 열쇠는 가족이다.

쓰린 다짐이었다.

그렇게 월묘가 피를 머금고 도우리라 마음먹었을 때.

'이 능력을 얻었어.'

누군가를 돕기에 최적화된 힘. 어쩌면 개척자 최초일지도 모르는 이 능력.

"월력에 모든 스텟포인트 투여."

단 30의 월력 만으로 공호에게 큰 힘을 부여했다. 여기서 더 커진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먹었기에 행동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호가족 특유의 행동 추진력. 그거 하나만큼은 공호와 쏙 닮은 월묘다.


'이것저것 할 게 많아지네..'

월묘는 묠드에게 아이들과 노인들을 잠시 부탁했다. 섬천이 폭매를 잘 굴리기만 하면, 아이들이 지낼 보금자리를 마련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때 동안만 데리고 있으면 된다.

묠드는 처음엔 툴툴대는가 싶더니, 노인이 말 상대해주고 아이가 재롱을 부리니 헤벌레 넘어갔다. 신화적 존재고 뭣이고, 외로움 앞에는 장사 없다며 꽥꽥 소리를 질러대더니만,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와 엉겨붙으면 아웃. 그러다 귀엽고 재롱많은 (여자)아이라도 붙는 때엔 삼진아웃이다.

월묘는 벌써 아이들의 노예가 된 묠드에게 애도를 표했다. 얘들 머리 좋다. 눈칫밥만 삼 년인데. 이로써 공호와 섬천을 따라갈 모든 준비는 끝마쳤다.

콧평수에 힘을 넣고 이제 기다리기만 하였다.


월묘는 공호를 불렀다.

소녀는 있는 힘을 다해 공호의 말에 먼저 선수를 쳤다.

"할말있어!"

입만 뻥긋하다 마는 공호. 고요하고 깊은 강처럼 공호는 숨을 내리셨다.

"나도 가족 찾으러 따라갈래."

진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하품할 시간동안 고민했다. 아, 음, 이건, 음..그러니까.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공호는 단칼에 잘랐다.

"안 돼. 피 봐."

방해, 보호, 안전 등 여러 뜻이 함축된 말이다. 월묘는 속을 비틀어 짜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소리를 내질렀다는 표현이 더 알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방해 안해! 어차피 나 몰래 할 거 다 할 거 아냐. 가족을 찾을 때까지 도와주려 그래. 능력이 생겼잖아. 축복. 더 쉬워질 거야. 안 그래?"

월묘는 일단 움직이고 봤다. 공호가 말로 해서 될 인간이었으면, 진작에 공호는 월묘 덕에 머리깍고 모든 금욕을 금하는 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월묘의 요구를 짜깁기해서 맞춰보면 그런 삶이 가장 가까울 테니. 돌 하나 함부로 옮기지 않고, 개미 하나 함부로 죽이지 않는 그런 삶.

월묘의 오른손이 달빛으로 은은히 발광한다. 월력이 상승하며 나름 눈요기가 생겼다. 월묘는 그 손으로 공호의 이마를 짚었다.


-소박한 달의 축복이 깃듭니다.


-달의 축복이 지속되는 10분간, 모든 능력이 50% 상승합니다.


-달과 밤에게 영혼을 팔아치운 자. 흑미호에게 달의 축복이 내려집니다. 10분간 모든 능력이 추가로 50% 더 상승합니다.


정중히 거부하려던 공호는 할 말을 잃었다. 신체능력이 2배나 상승한 셈이다. 제 2의 문을 뚫었을 때 느꼈던 그 쾌감 비스무리한 것이 느껴졌다. 거기서 끝이면 말을 안 한다.


-제 2문이 슬쩍 반응합니다. 제 2문을 더 쉽게 개방 할 수 있습니다. 음의 마나가 부족합니다. 제 2문이 개방되지 않습니다.


저번에도 봤던 알람이다. 그러나 조금 다르다. 이번에는 월묘의 월력이 늘어나며 제 2문에 조금이라도 반응을 한 것이다.

공호는 여타 다른 여우요괴와 걷는 길이 다르다. 마나 페인을 뚫으며 강해진 공호가, 꼬리를 늘이는 방법은 마나 페인을 뚫는 수밖에 없다. 보통은 음의 마나가 특정치에 달하면 자동으로 꼬리가 늘어나지만, 공호는 늘어난 음의 마나를 이용해 친히 마나 페인을 뚫어 주셔야 한다. 수동적이라 할까. 특히나 공호는 비밀의 마나페인에 도전해야 한다. 고되고 고통스럽다. 실패하면 죽음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언제 성공할지도 몰라, 최대한 음의 마나를 많이 성장시킨 다음에 도전해야 한다.

그런 공호에게 길을 보여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나 사미호가 될 길을.

'나는 이정표를 찾았었다.'

그리고 지금 확실히 찾았다. 월묘가 명확한 이정표가 되어 이끌어내고 있었다.

"피를 봐도 괜찮아?"

"응."

"잔인해도?"

"...응."

아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다. 공호는 무겁게 승낙했다.

"언제든지 빠져도 돼."

지킨다. 월묘가 보여준 힘이라면, 공호가 미쳐서 무리하지 않는 이상 충분히 지킨다. 흑미호와 연계되어 발동하는 효과는 가히 파괴적이다.

그렇게 공호의 사고도 슬쩍 변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막아주기엔 아스페티아는 너무 변칙적이다. 적어도, 가족을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지킬 능력은 되야 해.'

그런 공호의 눈을 게슴츠레 올려보는 월묘. 검고도 너무 검어서 빛을 빨아들이는 공호의 눈을 망가진 눈으로 올려 보며 실실 웃는다.

'와아. 효과 좋네. 설명에는 밤에 더 효과적이라던데.. 나중에는 칭호도 한 번 같이 써봐야 겠어.'

이것으로 월묘도 준비 완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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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묘 15.10.03 328 7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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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월묘 15.09.20 328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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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월묘 15.09.13 414 1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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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월묘 15.09.12 370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65 월묘 +2 15.07.29 457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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