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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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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51,747

작성
15.09.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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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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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월묘의 신경은 이미 한곳으로 쏠려 있었다.

촤악!

공호의 등에서 피가 솟는다. 그러나 공호는 공격한 녀석을 죽이지 않았다. 그저 제압만 했다.

묠드는 쓴웃음을 짓고 속삭였다. 뭐라 했는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월묘가 그들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느낄 정도의 육감은 충분했다. 속도가 너무 빠르긴 했지만, 무슨 짓을 하는지 짐작은 간다.

"어째서! 어째서 저기에!"

"난 분명 말했다. 놈들은 달려갈 거라고. 막대한 객기를 부리며 무리를 할 거라고. 그리고 저게 네가 원한 일이라고."

"저희가 숲에 오며 이 이야기는 끝났어요. 저렇게 쳐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었다고요!"

묠드는 이 멍청하며, 순수한 이 이기적인 세계에서 생겨날 수 없는 변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찌 이렇게 이용당하기 좋은 녀석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긴. 그래서 요정이지. 수미일관한 녀석.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아야지.'

묠드는 공간의 틈 건너편에 있는 월묘을 그저 지긋이 지켜봤다.

"좋다. 그럼 만약 네 오라비가 저놈들을 가만 놔뒀다고 치자."

"네."

"그럼 다시 찾아오면 어떡하게? 더 많은 패거리를 이끌고."

"어떻게든.. 대화로.."

차마 대화로 하자는 말은 언급하지 못했다. 이제껏 대화로 평화롭게 끝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정도 개념은 월묘에게도 있었다.

"오빠들은 강하잖아요. 협상하면.."

"강하면 밟아야지. 더 강해지지 못하게."

"어째서요?"

하아. 묠드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부여잡는다. 그러니까, 레스토고 요정이고 '융통성'이 중요한 법이다. 이런 경우 설명하는 자, 받아들이는 자 둘다 피곤해지지 않는가.

묠드는 조용히 녹빛 안광을 띄운다.

그 순간에도 공호와 섬천, 그리고 진은 죽어 나간다. 살이 파이고 피가 솟는다. 그럼에도 야차같이 달려나가 적을 제압만 한다.

"네가 원했잖아. 그래서 안 죽이고 있고. 당연하잖아. 죽이지 않으며 평화롭게 해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건 평화를 바라는 쪽에서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야. 오라비와 네 친구는 그 비용을 너를 위해 지불하고 있는 거고."

어디까지나 평면적으로 봤을 때뿐이다. 현실을 벋어나, 나중 일을 생각하면 제한은 더 많아진다.

"그리고 저 녀석들을 살려준다면 뭘 했을까. 회개하고 성당에 틀어박혀 질질 짤까? 아니야. 대다수는 복수한답시고 칼을 갈겠지. 그러며 또 많은 사람이 '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당해야 해."

눈에 보이는 희생과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지금 당장 저놈들로부터 당하고 있는 약자를 구하고, 그에 더해 저놈들을 혼만 내고 목숨은 살려줬다 치자. 분명 그건 1차적으로는 이득이다. 약자와 그를 핍박했던 자. 모두의 생명을 구한 것이니까.

"하지만 회개하지 않은 놈은 또 어딘가 가서 약탈하겠지. 누군가는 죽고, 강간당하고, 핍박당하고. 그러나 이건 전부 네 눈에 띄지 않아. 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당하는 것이지."


그렇다면 그들은 전부 네가 죽인 거야.


"결론적으로 원인제공은 너거든. 괜히 화만 돋구었으니까. 그걸 잘 알아. 네 오라비는 그걸 잘 알지만, 뭘 해야 네가 반겨줄지 알기 때문에 그리 행동하는 거야."

언젠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가깝게 다가온다는 건 어떨까. 괴롭고 아니면 그 현실에서 도주하려 한다. 아니면 그 현실을 너무 잘 받아들이던가. 또 아니면 그 현실을 자신의 방법으로 뜯어고치려는 족속도 있다.

이건 월묘가 원했던 평화가 다른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거다. 마음에 있었지만, 방법이 다르다.

피를 쏟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공호일행. 그럼에도 무리하며 적을 제압한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그만해도 되잖아요."

외부로부터 알람이 울린다. 명령을 지시하는 건 나의 뇌 인데, 내 몸을 움직이는 건 밖에서 울리는 경고음뿐이다.

그만해도 된다. 뭐 때문에 그리 무리하는 건지, 내가 무슨 짓을 했기에 그리 무리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것을 외면했다. 이제껏 내가 한 행동은 그것들이다.

"안 돼.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어."

차가운 묠드의 말이 월묘를 후벼놓는다. 월묘는 눈물을 흘리며 묠드를 잡고 흔들었다.

"말려줘요.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하라고 말려줘요!"

묠드는 강하다 했다. 강하면 해결이 있을 거다.. 분명히.

"난 나서지 않는다. 네가 뿌린 씨는 네가 거둬라."

무감정한 말투로 내뱉는 묠드의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불균형한 마음이 비틀어진다.

"당신 같은 강자가 나서서 한 번만 손을 휘저어 주면 모든 일이 평화롭게 끝날 거라고요! 그런데, 왜?"

"그럴 거면 세상은 벌써 평화로워졌겠지. 어딘가에서 내려보고 있을 신에 의해 말이다. 그런데 아쉬울 거다. 그 신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게, 개척자를 여기로 보냈으니 말이다. 네 녀석들, 개척자는 지옥을 보았다며? 이쪽은 개척자 자체가 우리에겐 지옥이거든."

월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저쪽으로 당장에라도 달려가야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공호일행의 수고는 분쇄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어디까지나 이건 아직 월묘는 몰라야 할 일이고, 모든 게 끝난 다음에 평화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묠드는 차를 들이켜며 월묘를 쓰다듬듯 말했다.

"네가 있던 고향에서 역사란 게 있었을 것이며, 되풀이해온 실수란 게 있을 거다. 분명 옳다고 생각한 일이, 단 가지의 길에서 막혔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이죠?"

월묘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는 막혀오던 숨통을 트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이 길이 옳다고. 방식의 차이 뿐이라고. 세상 사람들 모두 결국 '이기적'만 남는 것에 기뻐하지는 않을 거라고.

"너와 같은 생각을 한 생물은 있다. 역사상 일찍 죽었던 대부분 멍청이들이 대부분 그랬지. 그러니 멍청하게 혼자 끙끙 앓아서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 말고 원한다면 찾아봐. 네 생각에 대해 미친 듯이 알아봐. 그러고 나서 효율적으로 실행해봐라. 그래도 안된다면 다시 움직여. 될 때까지 움직여. 그게 역사상 일찍 죽었던 멍청이들의 행동이었다."

세상이 등 돌렸을 때, 혼자서 뭔가를 바꾸려 드는. 그런 놈들이 명이 짧지. 그런데 너는...

"저는 D급 인걸요.."

"허. 이보게 토끼양. 무한하잖아. 무한한 생명이 그것에 대한 존중감을 앗아갔다면, 그 대신 너는 네가 행동할 무한한 시간을 얻었잖아. 무한하다는 걸 제멋대로 해석해서 가치를 떨어뜨리지 말란 소리야. 약간 이상하잖아. 그토록 생물이 바라던 무한함을 얻었는데, 그것을 얻지 못한 자 앞에서 징징대니 말이다."

"그렇지만 또 많은 사람이 과오로 다칠 수 있어요."

"그게 두려운 건가? 이제 와서? 고개를 들어. 네 오라비가 뭐 때문에 저렇게 무리한다고 생각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헛된 희망이라도 네게 심어주기 위해서다. 비록 가까지만, 저것들을 네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 회개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고. 네 마음의 끄트머리라도 건들기 위해 저렇게 발악한다. 저 생지랄은 너를 조금 지탱해 주기 위해서 하는 짓이라고. 마지막이다. 고개를 들어. 끝까지 물고 늘어져. 네 오라비처럼 정말로 지쳐 쓰러질 때까지 붙잡아 봐. 너는 눈으로 확인도 못 했고, 직접 잡지도 않았어. 고작 듣는 것으로 너를 바로 마음을 바꿨다. 배짱도 근성도 없다. 그리고 포기하면 이제 완전히 선을 긋는 거지."

겨우 16살 소녀에게 가혹한 걸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 오빠들은 이 방면에서는 나이를 뛰어넘었다. 아파봤으니까 아는 거고, 비슷하게나마 겪어봤으니까 이해할 수 있는지 몰랐다.

"이제 모른다. 네 마음대로 해. 여기까지 대려다준 것만 해도 이미 무리한 것이니까."

월묘는 살면서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가치관을 넘어선 나 자신의 존재 이유가 위협받았고, 수정해야 할 거라는 생각마저 했으니까.

'다가가서 직접 도움이 될 수는 없었어.'

그러나 포기한다면 정말 끝나는 것이다. 뱀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듯 같은 생각이 무한히 반복된다.

언제나 나는 모든 불합리를 노력부족으로 자책했다. 스스로를 조이고, 스스로를 욕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공간과 공간을 걸쳐 대화하고 있는 묠드와 나 사이만큼 거리가 있어 보였다. 목소리는 들리나,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월묘는 세상에 처음으로 욕을 해 본다.

"빌어먹을 세계."

슬며시 목을 움직여, 고장 나버린 눈으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노려보려 한다. 아무런 힘도 없는 눈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지조가 없는 눈은 아니다.

천천히, 세상을 망가진 두 눈에 담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든다.

'계속 다치고 있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지만, 지독하게 물고 늘어져. 어째서. 과연 이길 수나 있을까?'

그리고 월묘가 고개를 드는 순간.

전투가 끝났다. 그 많은 수를 결국 제압했다. 공호가 지쳐 쓰러지는 게 느껴진다. 섬천이와 진도 등을 맡대고 쓰러졌다.

소년들은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다시 일어서, 온 레스토를 한곳에 묶고 제압한 뒤에야 온전히 쓰러졌다.

"...이겼어?"

아슬아슬했다. 정말 조금만 더 전투를 벌였다간 몸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 의식이 아직 이어져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겼어!"

월묘는 땅을 차고 일어나 기뻐했다. 더 이상 다치지 않아서, 그 사실이 감사했다.

끈질기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이겼다. 나에게 알 수 없는 기운이 생겨난다. 나에게 자신감이란 게 다시 충만하다. 알고 있었지만, 되찾지 못했던 그것이 차오른다.

묠드는 그저 차를 홀쩍이며 입고리를 올린다.

"이제 안 다쳐도.."

좋아서, 기뻐 미칠 것만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묠드는 혀를 차고 미간을 거칠게 구부렸다.

새로운 세력이 공호일행을 둘러쌌다. 아까와는 한층 더 상승한 전력이 소년들을 감싼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간다.

쿵, 하고 월묘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이 상황을 편애했던 나를 짓밟아버리듯 거대한 벽이 나타난다. 내 손으로는 도저히 끼어들 수도 없는 거대한 벽.

마음만 갇아서는 제발 도망쳐라고 외치고 싶은 벽. 그러나 그건 멍청한 짓이란 걸 이제 월묘도 깨달은 그 벽. 다가가서 인질이 돼 봤자 희생만 늘어날 뿐이라는 현실을 알려주는 그 벽.

팍!

그리고 섬천이 쓰러지며 위기가 도래했다.


작가의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내일이면 이 긴 설규파트도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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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월묘 +1 15.09.20 446 6 12쪽
75 월묘 15.09.20 327 7 13쪽
74 월묘 15.09.19 326 9 14쪽
» 월묘 15.09.17 304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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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월묘 15.09.12 2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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