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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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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747

작성
15.09.2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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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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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찌르르, 한 아이가 딱따구리의 부리를 콱 잡았다. 그러자 딱따구리는 부리를 마구 떨어 탈출을 시도해 보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D급 개척자일지라도 개척자. 어느 정도 힘은 있는 아이다.

"예끼! 그놈도 가족이 있을 텐데 그렇게 잡아두면 되겠느냐."

아이는, 노인의 호통에 그만 깜짝 놀라며 손을 놓고 말았다. 퍼득 거리며 자유를 얻은 딱따구리는 하늘로 향해 날아가고, 아이는 멍하니 흩날리는 청색 깃털을 따라 올려다 봤다.

구름이 자유롭게 하늘을 거닌다. 아직도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구름을 만졌던, 그 강렬한 기억이 잇혀지지 않았다.

"평화로워요, 할아버지."

"그렇구나.."

새로운 세상, 묠드의 숲은 이제 잃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삶의 터전으로 자리잡혔다. 무사(無事)가 희사(喜事)랬다.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행복에 빠져들었다.

행복에 젖어들던 그들은 한 불청객에 의해 깨어졌다.

평화로운 숲과 인간 사이를 거무튀튀한 불청객 한 명이 포대를 질질 끌고 가로지른다. 뜯어지기 직전의 포대는 지면에 선을 긋고, 불청객을 맞이하는 이는 모두 그 선만을 부질없이 바라봤다. 행색이 이종족인 그는 개척자들로 부터 자연스레 공포감을 심어줬다. 그와 눈을 마주치기 어려워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음이 분명해도, 아무 의도 없이 움직인 강자에 휩쓸리는 약자가 있는 것처럼 불청객은 맞이하는 이의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누구세요?"

그에 한 소녀가 준비된 희극의 한 장면처럼 그를 맞이했다. 단조롭고 어색하며 마치 연기를 보는 기분이다.

'있는 것 같아.'

월묘는 묠드의 말해준 곳으로 최대한 기감을 펼쳤더니, 두 기척이 느껴졌다. 월묘에서 5km 쯤 떨어진 곳. 거대한 나무 뒤, 소년 둘이 머리를 빼꼼 내밀고 월묘를 지켜봤다.

턱, 섬천의 머리 위에 진이 턱 얹는다. 마치 두 개의 탑처럼 얼굴이 나란히 쌓였다. 섬천은 위를 올려보며 조용히 난리 쳤다.

"무겁습니다, 퍼런 돌 머리. 치우지 못 합니까!"

"에이, 상부상조라고 그러지 맙시다잉."

"잘리기 전에 목 빼는 게 좋을 텐데 말입니다.."

"엠병. 잘라보시던가잉... 아아악! 미친! 자, 잠깐! 하란다고 진짜 찌르는 미친놈이 어디있습니까잉!"

소년들은 잡담을 떨다가도, 월묘가 입을 떼기 시작하니 귀를 쫑끗 세우고 집중했다.

"나는 폭매를 이끄는 파블로드라 합니다."

"네."

털석. 다짜고짜 바닥에 머리를 박는 파블로드. 월묘는 알고 있었음에도 당황해했다.

"젠장. 더 박으란 말입니다. 팍팍, 머리에서 피가 나도록."

"... 그거 좀 위험한데잉?"

심장이 부르르 떨린 월묘는 손을 마구 내저었다.

"아, 무릎을 꿇으실.."

"죄송합니다. 무력을 함부로 남발하며 너.. 아니, 당신을 괴롭혀왔지만, 당신의 나이를 벗어난 행동을 보고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나이 차이만 백 년 단위다. 실질적인 시간으로는 삼백 년이 넘는 나이 차이. 그런 그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경어를 쓴다. 한 마디로 사력을 다한다는 뜻이었다.

이제 모든 것이 평화로워졌다. 월묘는 사과를 받아들일 것이고 자신의 방식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진은 그 상상만 해도 헤픈 미소가 지어졌다. 섬천은 그런 진을 보며 몰아붙였다.

"지금, 내 동생을 보고 무슨 더러운 미소를 짓는 겁니까."

"형도 지금은 웃고 있잖습니까잉."

그 쪽도 다르진 않다는 이야기다. 섬천도 흐뭇한 미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집착이 사람을 망친뎄나. 평소 섬천의 행동을 생각하면 많이도 망가졌다.

그러나 진과는 다르게 섬천이 웃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었다.

폭매가 상상 이상으로 강해졌지만, 운이 좋아 이기긴 했다. 이겨서 밑에 깔았단 사실 하나면, 앞으로 있을 일은 편해진다.

섬천은 진심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또 참아, 매력 있는 미소로 대변했다.

'생각했던 대로야. 월묘라면 이제..'

월묘가 말했다.

"어째서 사과하시는 거죠?"

"잘못됬단 걸 알았습니다."

월묘는 입술에 손을 얹고 고민한다. 긴 생머리를 손으로 구불구불 꼬아가며 몇 번이고 생각한다. 소녀의 곱고 아리따운 눈 속의 검은 구슬이 또륵 구른다. 모든 것은 윤리를 중심으로.

"대신, 사과받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가요."

파블로드는 침을 삼켰다.

"우리와 동행자가 되어 주세요."

"네?"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때가 좋지 않게 흙먼지를 동반한 누런 바람이 그들을 훑고 지나간다.

"이, 이! 제 뭐라고 하는 거야잉!"

진이 놀라 급격히 몸을 일으켰다. 퍽, 필연적으로 진의 머리가 솟구치며 섬천의 턱을 때렸다.

"선전포고입니까?"

진은 스산히 검을 빼 드는 섬천이 보이지도 않는지, 꽥꽥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잉. 미친, 형 동생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섬천은 짐승 보는 눈빛으로 진을 내려봤다.

"설마, 이제껏 월묘와 있었으면서 걔 성격 하나 파악 못 했습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 성격이 저걸 가만 놔두겠습니까? 파블로드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 텐데. 어떻게든 뜯어고쳐 갱생시키려고 하겠죠."

"성격이 논점이 아니잖아잉! 저걸 누구 감당 하냐고잉."

"아직 허락한다는 소리도 안 했습니다. 물론, 허락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누가 감당하다니? 당연히 제가 부려 먹을 겁니다만.."

노렸다. 이놈은 이제껏 이걸 노린 것이다. 진은 왜 섬천이 감성적으로 움직였나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소름끼친다. 진은 섬천의 머릿속을 한번 뜯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우리는 이제 미움받을 일도 없습니다. 묠드가 도와줘서."

섬천은 적어도 묠드가 월묘를 이끌고 모든 것을 까발릴 거란 것쯤은 예측하였다. 그런 식으로 알려지면, 이쪽은 더 좋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모습을 월묘에게 보인 셈이 되니까.

사람은 남이 숨기려고 한 걸 자의로 알아냈을 때 눈앞의 광경을 맹신하게 된다. 섬천은 그 점을 적절하게 이용한 것뿐이다.

파블로드는 3번 생각했다. 의외인 건, 결론이 상당히 빨리 도출됐다는 것이다.

"알겠.. 습니다."

진은 황당함에 그만 이 연속으로 섬천에게 어퍼컷을 머리로 넣는 기염을 토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블로드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후회할 틈도 없었다. 어찌 보자면 선택의 길 따윈 없었다. 거절하는 순간, 조직원들 모두가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섬천은 태연스럽게 사냥하고 돌아온 것처럼 돌아와 월묘에게 인사했다.

"설마 이상한 짓하고 온 건 아니겠지?"

"사냥했다니까. 으힛."

월묘는 마치 세상 모든 비밀을 안단 듯한 말투로 대했지만, 섬천은 그것마저 유흥거리였다. 아군을 속여야 적을 속일 수 있다고, 월묘는 소년의 완벽한 사기에 넘어간 것뿐이었다.

월묘는 착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호 오빠는?"

진과 섬천은 방금 전 공호와 있던 일을 떠올리고는, 소름 끼치게도 서로 같은 미소를 지었다.

"으히힛."

"뭐야, 그거. 무서워."

나머지는 할 말 많아 보이는 공호에게 맡기고, 섬천은 제 할 일을 찾아갔다.

애초에 두 가지를 노리고 한 미친짓이었다. 고생했으면, 대가를 받으려 드는 법. 섬천은 파블로드에게 준비했던 말을 꺼내었다.

"나쁘지 않을 조건일 겁니다."

섬천의 제안은 이랬다. 파블로드는 결국 범죄자이기 때문에 결국 좋지 않은 최후를 맞이하리라 본다. 파블로드의 종족은 수명이 길다고 한다. 게다가 A급 실력자라면... 파블로드는 적어도 500세까지는 살 수 있는 몸이다.

섬천은 그에게 조직의 개혁을 요구했다. 폭매의 세상에 잘 알려진 대외로 활동했던 놈들은 일단 안쪽에 정리하고, 용병대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말이 용병대지 실상은 섬천의 세력 부풀리기 계획.

나중에 닐에게 복수는 같이하자는 뉘앙스로. 물론 확정 짓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용병대를 차릴 수 없는 얼굴이다. 이미 사고를 쳐서 쫓기는 몸이다. 폭매에 몸담은 것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마저도 이번 전투 때문에 전부 알려졌을 거다."

"누가 당신보고 얼굴 팔라고 했습니까. 허수아비를 세워서 그 놈에게 시선을 몰아주기만 하면 될 것 아닙니까."

파블로드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이런다고 이득 되는게 뭐지... 꼬마."

"제가 개척자인 것 쯤은 눈치채지 않았습니까."

"월묘란 아이를 보고 알았다. 너는 A급 개척자는 될 것 같은데."

"개척자는 성장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 줄 이해했을 텐데, 아닙니까?"

"물론 대단하긴 하다만.. A급 하나 믿고 쉽사리.."

섬천의 실력이 대단했긴 했지만, 맹신하여 믿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이것은 파블로드가 개척자의 성장 속도를 체험하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였다.

'미안하지만, 형님 조금 팔아먹겠습니다.'

그에 섬천은 과장하는 어투로 말을 내뱉었다.

"S급, S급 입니다. 음의 마나를 다루던 우리 형님이 S급 개척자란 말입니다."

파블로드의 눈이 커졌다. S급 개척자. 그게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99명밖에 없다는 그 최상위 개척자들 말이야? 괴물들.."

적어도 그는 멍청하지는 않다. 정세를 읽어 누가 더 유리한지 쯤은 알고있다. 시간이 갈수록 레스토는 개척자를 이길 수 없다. 이번 개척자들은 수준부터 다르다.

지능도 높고, 육체 등급도 높다. 탄생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제국에게 타격을 준 것만 보면 답이 나온다.

"그러나 S급 개척자치고는 강하지 않았다."

"하아. 이 말까진 안 하려 했습니다. S급 개척자의 평균 레벨이 몇인지 아십니까?"

"레벨? 아, 너희의 강함을 말하는 건가. 성장한다는 그것. 모른다. 내가 평균 레벨까지 어떻게 알겠는가."

"삼백 입니다. 공호 형님의 레벨이 몇인 줄 아십니까? 아직 구십 정도 밖에 안됩니다."

개척자는 성장한다. 무척 빨리. 파블로드는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정도의 위력이 아직 4할도 성장하지 못한 거라 말인가?"

"글쎄요? 개척자는 어는 수준에서 확, 강해지는 걸고 알고 있습니다만."

추측을 뿐이다. 예전 개척시대의 개척자들이 그랬다고 한다. 어느 레벨을 넘으며 급격히 강해지는 시기가 있었다 한다.

파블로드는 여러 의문도 생겨났다.

"그런데 왜 이렇게 레벨이 동떨어졌지? 사냥에 뒤떨어 진 것 아닌가."

"그건 사정이 있었습니다. 1년 동안 활동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장 시기를 놓친 것이고."

섬천은 달콤하고 뾰족하게 파블로드를 끌어 들였다.

"우리 밑에 들어오십시오. 세상은 변화합니다. 당신과 거래하던 EG에게 당신은 이용만 할 뿐 다른 가치는 없는 장기말일 뿐입니다."

섬천의 눈빛이 파블로드를 찌른다. 모든 것이 섬천의 생각대로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차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안.

'이러나 저러나 폭매의 머리로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다.'

파블로드는 혀를 슬쩍 씹었다. 하나, 곧 포기하고 만다. 역시 죽기는 싫다. 어떤 게 됐든 일 초라도 더 살고 싶다. 그래야 복수의 가능성이 티끌만큼 이라도 늘어나니.

깔끔하게 정리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렸다. 더는 위에서 우뚝 서고 싶지도 앉았다. 복수만 가능하다면, 누군가를 섬겨도 상관따윈 없다. 오직 닐을 죽인 다음에, 그 다음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파블로드는 무릎을 꿇었다.

"나의 군주시여."

어색했다. 이게 레스토의 문화적 특성이라곤 하지만, 지구인이 본다면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마치 삼류드라마를 보는 듯한 분위기.

그러나 섬천은 뼛속부터 울리는 전율에 미소를 지었다. 이거다. 이런 것을 원했다. 모든 것을 밑에 깔아놓고 싶은 욕구. 태생부터 그러한 소년의 천성.

물론 그가 당장 저런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직 끈끈한 정이니 뭐니 그런 것도 없고, 생길 일도 없다.

단지..

'팔도 묶고, 다리도 묶고. 안되면 목줄도 채우지 뭐.. 그래도 안되면 줄을 2배로 늘리면 되고. 다른 생각은 싹수부터 밟도록. 오로지 우리를 위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해 놔야 해.'

휘리릭, 팍.

말이 끝나자마자 도끼가 섬천과 파블로드 사이에 날아와 박혔다. 진이 능청스럽게 다가왔다.

"내가 가지려고 했는데잉..."

이 알다가도 모를 소년들에게 모호한 표정을 짓는 파블로드. 그에게 격지부 넘어 미워할 수 없는 목소리가 때렸다.

"섬천 입니다."

아스페티아에서 본격적으로 만든 첫 세력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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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두루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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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월묘 +1 15.10.09 440 8 9쪽
92 월묘 15.10.08 406 7 15쪽
91 월묘 +3 15.10.07 368 7 12쪽
90 월묘 15.10.06 412 4 12쪽
89 월묘 +1 15.10.06 311 5 7쪽
88 월묘 +1 15.10.04 330 7 15쪽
87 월묘 15.10.03 308 7 12쪽
86 월묘 15.10.03 327 7 20쪽
85 월묘 15.10.03 263 5 12쪽
84 월묘 15.10.01 273 4 16쪽
83 월묘 15.09.28 382 8 11쪽
82 월묘 15.09.27 285 10 15쪽
81 월묘 +1 15.09.26 389 7 12쪽
» 월묘 15.09.25 355 8 13쪽
79 월묘 15.09.24 301 6 20쪽
78 월묘 15.09.22 261 7 12쪽
77 월묘 15.09.22 320 7 14쪽
76 월묘 +1 15.09.20 446 6 12쪽
75 월묘 15.09.20 328 7 13쪽
74 월묘 15.09.19 326 9 14쪽
73 월묘 15.09.17 304 8 11쪽
72 월묘 15.09.17 308 9 12쪽
71 월묘 15.09.15 283 10 11쪽
70 월묘 15.09.14 551 7 13쪽
69 월묘 15.09.13 414 10 17쪽
68 월묘 +1 15.09.12 345 7 10쪽
67 월묘 15.09.12 370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65 월묘 +2 15.07.29 457 10 12쪽
64 월묘 15.07.25 365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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