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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742
추천수 :
2,582
글자수 :
751,747

작성
15.07.25 22:23
조회
364
추천
6
글자
8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숨이 헐떡인다. 악몽을 꿨다. 월묘는 비명을 지르며 상체를 일으켰고 공포는 곧 꿈이었다는 안도감 속으로 스며든다.

'달이 거의 저물었어.'

달이 떠 있는 장소를 단번에 알아맞힌 월묘는 달의 방향으로 시간을 추측했다. 대략 4시 정도. 평소보다 이르다.

그렇다고 다시 잠들기에는 몸이 너무 개운하다.

그렇게 정신 놓고 멍하니 있을 때였다.

"뭐지?"

이상한 기운이 잡힌다. 몸이 그리 알려줬다.

기척이 순간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이, 누군가 빠르게 움직였다가 다시 느려진 듯했다. 육감이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를 경험할 때 대부분 이렇다.

사각.

나뭇잎 꺾이는 소리, 땅이 파이는 소리, 검이 휘둘러지는 소리.

월묘는 새파랗게 질려 뛰쳐나가려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몸이 먼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곧 행동을 멈췄다.

진의 목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만약, 일이 생기면 절대 나오지마라잉. 그렇게 되면 네가 인질이 되면서 더욱 복잡해 진다잉. 저번과 같은 도박은 매번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잉.'

옳은 말이다.

그래도 움직여야 했다. 뭔가는 해야 했으니까.

아이들을 조용히 깨웠다. 혹시 자다가 봉변이라도 당하면 대처가 늦어진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이들은 투정을 부리려 했지만, 월묘의 심각한 얼굴에 입이 딱 다물어졌다.

"자, 누나 말 잘 듣는 거야."

아스페티아에서 눈칫밥을 질리도록 먹어온 이 아이들은 슬프게도 비정상적으로 차분했다. 또래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몇 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다져진 비극. 아마 평생 이 아이들에게는 잠재된 역린이자, 생명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경험이 될 거다.

그래서 더욱 놓을 수 없는지도 몰랐다.

월묘는 조심히 막사의 뒷 편으로 아이들을 내보냈다. 겨울 앞의 늑대인양, 아이들은 저마다 눈에 나이에 맞지 않은 빛을 품었다.

"아아악!"

그러던 도중, 나지 말아야 할 비명이 울렸다.

그 비명에 월묘는 전신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카락이 한 가닥씩 전부 곤두서는 이 느낌.

'무시하자. 아무 일도 아닐 거야.'

살려야 한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 이 아이들에게 흩어짐은 곧 생존의 위험을 의미했다.

"누나..."

덩달아 뒷문으로 나온 아이가 중얼거렸다.

"빙고, 정말 걸려들었네?"

진이 붙잡혀 있다. 폭풍과 매가 조화된 문양이 있는 옷을 입은 아저씨들과, 어제 본 나쁜 아저씨들과 함께.

"....미안."

완전히 포박당했다. 압도적인 마나의 양과 응용으로 적을 압박했지만, 수에는 장사 없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전직 A급 용병에게 제압당해버렸다.

정말로 강했다. A급 용병.

모든 A급 용병이 이렇진 않을 거다. 용병에도 A급과 S급은 차이가 컸고, A급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니까.

"아, 저년이야?"

놈이 나를 응시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살을 꿰뚫는 살기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그동안 고생한 진에게 너무 미안했다.

가만있어도 알 수 있었다. 육감으로 느껴졌다. 진의 머리 위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 헐떡이는 숨. B급 개척자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선을 넘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겠지.

갈피를 못 잡겠다. 이렇게 부조리한 세상을, 과연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게 없어 처량하다.

재주 뿐이라곤 달의 방향을 정확히 맞추는 것뿐.

놈이 내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입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덩달아 코를 잡아 위로 제치자 어쩔 수 없이 약이 넘어갔다.

"네 말대로 쓸만하겠는데?"

"저런 년 하나 어떻게 한다 해도, 세상은 동요하지 않아."

힘껏 저항했다. 그러나 움직이려 했을 때는 눈이 반쯤 감길 때였다.

어제 진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병아리. 아직 차가운 눈도, 뜨거운 햇볕도 쬔 없는 경험 없는 병아리. 세상을 바꾼다며 삐약삐약 되지만, 손에 슬쩍 쥐기만 해도 죽어버리는 병아리.

단 하나의 윤리로 나는 외쳤다.

인간을 죽이면 안 된다.

정부에서는 법으로, 사회에서는 윤리로, 세상에서는 정의로.

개척자를 죽이면 안 된다.

그런 제재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 윤리도 '살아남기 위해' 라며 뭉개져 버렸다. 그런 '정의'도 살아남는 쪽이 '정의'라며 변질하었다.

언제부턴가. 서먹한 이곳은. 조금의 이득을 위해서 남을 해하는 것이 당연하게 변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착한 아이' 불렸다.

그러나 커가면서 나는 '모자란 아이'로 고쳐 불렸다.

행동은 같은데, 처음에 가르친 데로 기본 개념을 엄격히 지켰는데. 그렇게 착해져라, 정직해라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사실 세상은 다른 걸 가르치고 있었다.

윤리를 따졌기보다는 사실 해하는 게 무서웠기 때문 아니야? 용기가 부족했던 거 아니냐고.

용기? 사람을 멋대로 해하고 멀쩡할 수 있는 용기? 그런 것도 용기라고 할 수 있는 거였어?

어떤 개척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하나를 죽여서 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미안하지만 하나는 죽어줘야 한다. 아니, 죽을 수 밖에 없다.

또 누군가는 그랬다.

개척자가 되면서 우리는 저주받았어. 죽음의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된 후부터 삶의 의미는 곤두박질쳤단 말이야. 소중하지 않아. 그래서 누군가를 죽이는 게 더 쉬워졌잖아.

월묘는 이를 갈았다.

진이는 나 때문에 저렇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걸 감당하지 못했다.

"만약 세상의 윤리가 그때마다 바뀌는 이런 하찮은 것이라면, 인간이 편한 데로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이제껏 했던 것을 부정해야 하는가.

핏줄이 곤두선 동공 밖 흰자에 눈물이 차오른다. 시야가 어두컴컴한 한 나에게 아스페티아는 언제나 '밤'이었고, 그 밤을 죽이는 달은 내 가치관이었다.

"정말로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마 뒷 말을 내 뱉을 수 없다.

"아니, 적어도 내가 옳았다면.."

웅. 머리가 울린다. 목구멍이 점점 조여오며 막혀간다. 이윽고 마지막 목의 떨림이 어렵게 터져 나온다.

내가 고대했던, 그 세상을 믿는다.

"기적을 보여줘."


그때였다.

소녀의 머리 위에 거대한 '틈'이 생성된다.

보랏빛 물결이 요동치는 그 틈에서 소년 두 명이 내려온다.

싸아아.

소년은 마치 환상처럼 얼음과 함께 땅에 사뿐히 안착했다.

사방에 풍기는 몽환.

달과 바람이 두 소년을 지지했다. 소년의 머리칼이 산들바람에 슬쩍 들썩거린다.

여우 소년이 주위를 흩었다.

처참히 망가져버린 푸른머리 소년 한 명, 그리고 푸른머리 소년과 손을 맞잡은 내 동생.

그들을 잡고 있는 나쁜 일행들.

두 소년이 편안하게 월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월묘는 해방되었다.

섬천이 미간을 짚었다.

동생이 다쳐있다.

하아.

공호는 숨을 내뱉었다.

얼어붙은 공기가 땅에 우수수 떨어진다.

섬천이 월묘의 눈을 매만졌다.

월묘의 성격을 지독하게 잘 아는 소년은 말했다.

"원한다면 죽이진 않겠습니다. 딱, 세상이 너에게 한 만큼만 돌려주겠습니다."

여우의 얼음에 매의 바람이 인다고 생각한 순간.

모두 시력을 잃었다.

서걱.


작가의말

약속 지켰습니다. 쿨럭.
답답하지만, 솔직히 현실에 필요한 사람들이죠. 월묘같은 사람.
그것도 다 월묘의 모습을 이기주의적 사회가 다른 눈으로 보게 만든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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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월묘 15.09.12 369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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