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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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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51,747

작성
15.09.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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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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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3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진의 목 뒤를 식은땀이 타고 내린다.

푸른 빛을 느꼈다 생각한 순간, 나는 바닥을 향해 짓이겨지고 있었다. 팔의 힘을 바닥으로 유도해 자연스레 꽂는다. 유도에서 쓰는 동작과 비슷하지만, 유도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바닥에 내려꽂히는 순간, 팔을 이용해 목을 졸라 2차 제압하고 두 손까지 제압한 다음 등 뒤의 우위를 점한다. 마치 살인만을 위해 탄생한 기술.

어디선가 본 적 있었다. 지옥에 있었을 적, 살아남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서 퍼졌던 살인기술. 붉은 달이 뜨고, 5개월이 지난 후부터 퍼진 기술이다.

정신이 맹맹할 때, 섬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S급 개척자. 지옥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 경험자(Undergoer).

'소년 경험자가 있단 소리는 처음 들어봤어.'

월묘는 경악하다 못해 얼음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섬천이 A급 개척자인 것만 해도 심장이 찌릿하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S급 개척자? 정상에 선 99명의 황제?

진은 옷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99명의 경험자 중에서 소년 개척자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 했습니다잉."

"99명? 나를 포함해서 경험자는 100명이야."

낌새가 좋지 않다. 이것 또한 폴시아와 영향이 있으리라고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랭킹 정보에는 분명 S급이 99명밖에 없었습니다잉."

S급은 기본적으로 최상위권을 전부 차지한다. A급으로서는 S급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뇌리에 박힌 현실이다. 분명 진이 확인해본 결과 S급이 차지하는 순위는 99위까지다. 즉, S급은 99명이 있다고 본 것이다.

진뿐만 아니라 대부분 개척자는 그리 생각한다.

"랭킹 정보를 보세요잉."


-현재 육체랭킹.

1위:프레셔 레벨:423 각성자 신체등급:S

2위:카즈키 린 레벨:310 각성자 신체등급:S

3위:바흐지니 레벨:308 각성자 신체등급:S

4위:쟝 센 레벨:301 각성자 신체등급:S

5위:아이링 레벨:300 각성자 신체등급:S

....

412432531위:공호 레벨:90 조합 각성자 신체등급:S


답이 나왔다. 어째서 99명이라고 생각한 건지. 공호는 폴시아를 다녀오며 현저하게 랭킹이 떨어졌다. 사람들의 눈에 뛸 수가 없던 것이다.

"레벨이 90이야. 그래서 눈에 띄지 않았어."

진은 그제야 아 하며 손뼉으로 이마를 탁 쳤다.

"원래 경험자는 100명이야. 모든 경험자는 그걸 알고 있을 텐데.."

공호는 몰랐으나 그 말에 담긴 뜻은 가혹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러나 꼭 말해야 하는 게 있다. 지금 이 논란의 정점에 서 있을 S급 개척자에게는 더욱더.

진이 푸른 눈을 빛낸다. 흥미를 먼저 담고 나머지는 고난을 표하는 홍채에 반달 모양 반사광이 둥굴게 구른다.

"그동안 있던 큰 일을 간략하게 말하겠습니다잉."

공호는 두 가지 단어를 예측한다. 전쟁, 그리고 패배.

"전쟁이 있었습니다잉. 개척자와 레스토 간의 아주 큰 전쟁이. 그리고.."

"더 말할게 어디있어. 처참히 졌지. 아무리 S급 개척자가 뛰어나도 아직 SS급 용병에게 학살당했어."

월묘가 끼어들었다.

"게다가 개척자는 이 넓은 아스페티아에 흩뿌려졌어. 한곳에 모여봤자 그리 많지 않아. 그 중에도 나 같은 녀석이나, 겁 많은 녀석은 대다수가 빠졌어. 아직 D급 개척자는 전투로서 이용가치가 없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그리고 지금은 아직 혼란스러운 때야. 아무리 수장의 지휘가 뛰어나더라도 작전대로 될 리가 없지."

전쟁과 패배, 어느 정도 예측범위에 들어와 있다. 당연하다. 이미 전에 요괴의 제국과 전쟁을 벌인 말에서 가시가 돋아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월묘는 전쟁을 혐오한다. 누군가 죽고 죽이는 게 전쟁이다. 전시상황에는 최소한의 윤리도 부서져 버린다.

"개척자가 된 이후로 전쟁에 남녀의 개념도 없어져 버렸어. 무력은 성별을 떠나 등급에 따라 갈리게 됐기 때문이야. 이해하지 못해. 왜 전쟁을 일으킨 건지. EG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EG?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설명 좀 해줘."

"어스 글로리(Earth Glory)의 앞 철자를 응용한 약식 명칭이야. EG. 현 개척자들의 정부가 되어 버릴 정도로 개척자들을 주무르고 있어. 이미 독재정부 그 이상이야."

"최고 통치자는?"

이 부분은 진이 흥분하며 대답하기에 나섰다.

"원래는 S급 개척자 9명에서 통치하고 있었다잉.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나타난 한 S급 개척자에게 정권을 빼았겼다잉. 그들 말로는 양도라고 하지만,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다잉. 무력적인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잉."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9명의 S급 개척자가 한 명의 S급 개척자에게 정권을 빼앗겨? 물론 공용통치인 만큼 서로 견제하고 있었다고 가정해도, 갑자기 나타나는 S급 개척자에게 빼앗길 만큼 경험자는 멍청하지 않다.

"이해 가지 않을 겁니다잉. 하지만 그 개척자의 이름을 듣는다면 조금 달라 집니다잉."

진이 쓸데없이 흥분했다. 하지만 섬천은 딴지 걸지 않았다. 왜인지 정권이야기가 나온 후부터 장난아니게 이야기에 집중하는 섬천이다.

"프레셔. 개척자 레벨 제 1위에 있는 프레셔."

아, 그놈.

공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셔. 본 적 있다.'

지옥에서 4년 하고도 조금 넘던 날, 공호는 모종의 이유로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동했다. 그때 만난 적 있다.

'그라면..'

특이했다. 그는 뭔가 그 지옥 속에서 유유히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과학자, 라고 했나.'

공호는 짧은 회상을 끝냈다. 섬천은 그 틈을 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확실히, 그는 압도적인 레벨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와 2위의 레벨 차이는 무려 100이 넘어갑니다."

"어, 그렇습니다잉. 그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각성을 했다고 들었습니다잉."

"능력이 뭐야."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모릅니다."

"뭐, 인마?"

섬천은 박차고 일어났다. 실컷 긴장시켜 놓고는 헛바람 삼키게 한다.

"경험자에게는 모두 특성이 있습니다잉. 그 특성을 따라 이름을 부르는 대신 일종의 존칭으로 부르죠잉. 코드네임 현자, 산타클로스, 사이코패스.. 등등.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잉."

공호는 고개를 돌려 섬천을 봤다.

이상하도록 집중한다. 평소의 섬천이 아닌 것만 같이. 생각해보면 녀석은 이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폴시아에서 권력다툼을 이야기할 때도 집요할 정도로 집중했다.

그리고 프레셔는..

반물질, 엔티메타(antimatter).

"엔티메타.."

공호는 변해버린 세계에 침묵을 고한다. 많이 늦어졌다.

얼마나 변한 걸까. 이세계. 달리기도 전에 판이 바뀌었다. 아스페티아에서 1년. 지구의 시간으론 3년. 3년이나 가족을 찾는 걸 미뤘단 말이다. 그리고.. 개척자에게 3년은 현저한 차이를 벌일 뿐이다.

S급. 하늘을 꿰는 자들. 왕의 길을 막을 수 있는 벽 따위는 없다. 막히면 뚫고, 그것도 안되면 돌아가니까.

세상이 불확실하단 건, 누구나 알 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단 한 가지만은 확신했다.

나는 약하다.


#


토끼의 귀는 민감해서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귀에 큰 변화가 생긴다면 토끼는 죽는다. 귀가 제압당하면 토끼는 괴로워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게 달토끼라고 다를까.

"그럼 이제 내가 보호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직도 그 생각, 처음부터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 짊어진 '귀'는 장점이며 명백한 약점이다.

솔직히 저 짐을 받는 것은 사치다. 고생하며 기다릴 나머지 가족들을 유린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공호는 뒤를 지긋이 바라본다. 얼음 장난감을 갖고 마냥 즐기는 아이들이 눈이 빛난다. 눈치다. 검은 소년이 모든 것을 결정하리라는 눈치.

"미안하지만.."

그러나 매정하다. 교감하려던 눈빛이, 단방향 애원으로 뒤바뀐다. 거짓말처럼 그 순간에 월묘가 치고 들어온다.

"공호 오빠는 못된 놈이야. 사람을 죽였어."

식은 피를 찔러 자극한 즉, 뜨거워지진 않는다. 이미 죽어버린 피니까. 월묘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화학적인 반응처럼 끓어오르게 한다.

"아마 싫어할 거야.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거야. 그런데 그건 아니야. 나는 멀어지기 싫어. 설령 오빠들이 이유 없는 충동 살인이였다 해도 나는 오빠 편이었을 거야. 나는 위대한 성인이 아냐. 눈앞에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서. 단순 감정에 휩사여서 그 사람들을 도왔을 뿐이야. 그리 대단한 일이라곤 생각하진 않아. 자기만의 사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두 도왔을 거야. 하지만 이제야 알았어.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어."

섬천과 진이 슬며시 들썩거렸다.

"장난 같은 이 세상에 떨어졌어. 숫자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 이 세상에. 웃기지도 않는 숫자들이 우리를 조롱해. 살아남야지, 라는 생각이 숫자들 때문에 욕심으로 바뀌어버려. 몰라! 나는 그 이전의, 그 지옥이란 걸 하루도 경험해 본 적 없어! 그냥 첫째 날 죽었고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몰라. 그래서 오빠를 이해할 수 없는지도 몰라. 철없어 보일지도 몰라. 그냥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감정을 이입하고 무작정 돕고 봤으니까. 스스로 짐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멍청해보이는지, 그것 역시 몰라."

공호는 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입술을 질끈 물어 넘긴다.

"그러니까 나를 도와줘.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가족은 달라.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 노력할 수는 있어. 그러니, 그러니 도와줘. 힘이 있으면 지금 나를 도와줘. 사람들을 버리고 싶지 않아. 숫자놀이에 흔들리고 싶지 않아. 그러니.. 도와줘."

몇 번을 말하려고 노력했을까. 말하는 내내 더듬었다. 그러나 그게 곧 진실이란 사실을 보충한다. 월묘는 완성된 무언가가 아니니까.

"그 짓에 대한 이득이 뭐야?"

간단한 물음이었다. 동시에, 월묘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나. 나 자신. 존재의 이유."

공호는 정말 드물게 볼 수 있는 표정을 지었다. 확답을 내리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얼굴. 조각보다 매끄럽던 피부에 주름이 진다.

"남은 가족에겐 이기적이야."

"그 만큼 내가 더 움직일게."

그때 생각했다. 어른들이 술을 먹는 이유가 있구나. 머리가 아파져 온다. 단순 육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문제.

공호는 인벤토리에서 지도를 꺼낸다.

쿠구구궁.

얼음덩어리가 선로를 바꾼다. 퍼지던 구름이 얼음을 다시 맞이하며, 미끄러운 기름처럼 층을 나뉘며 갈라진다.

동시에 태양이 떠오른다. 무지개를 물에 타 스푼으로 휙휙 휘젓는다면 이럴까. 노을이 구름과 섞이고 공호의 얼음이 통과하며 이상을 일으킨다.

감정표현에 막힘이 없는 월묘는 몸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구름이 빛나.."

섬천이 들어 누웠다. 공호는 그 잠깐이라도 사냥하기 위해 빠져나갔다. 조금도 쉬지 않으려는 공호를 보며 월묘는 안쓰러움을 표했다.

섬천이 능청스레 외쳤다.

"앞으로 장시간 운행이 예정되오니, 여객님들께서는 마음 편히 놀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아이들이 구름 앞에 몰려들었다. 아스페티아의 구름은 어느정도 잡을 수 있다.

조심스레 손을 내뻗어 구름을 떼었다. 한 아이가 구름을 후 불자, 여러 빛을 뿌리며 사라져 간다. 황혼. 그 옛 상상속의 무엇.

"와아.."

아이들은 이 아름다움에 순수히 감탄했다. 버려질 두려움을 모두 잊으며 이 상황을 황홀히 여겼다.

진은 생각했다.

만약, 이리 혼란스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정말로 우리가 영원한 생을 가졌다면.

'여기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을 거야.'

진은 군것질거리를 우르르 꺼냈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이리저리 터진다.

그런 진과 섬천을 한 구름이 갈라놓는다. 구름의 벽이 섬천을 홀로 있게 만들었다.

섬천은 조심히 검을 꽉 쥐고, 또 다른 구름이 있는 하늘을 올려봤다.

'얼마나 강해졌을까. 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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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월묘 15.10.06 412 4 12쪽
89 월묘 +1 15.10.06 311 5 7쪽
88 월묘 +1 15.10.04 330 7 15쪽
87 월묘 15.10.03 308 7 12쪽
86 월묘 15.10.03 327 7 20쪽
85 월묘 15.10.03 263 5 12쪽
84 월묘 15.10.01 273 4 16쪽
83 월묘 15.09.28 382 8 11쪽
82 월묘 15.09.27 284 10 15쪽
81 월묘 +1 15.09.26 389 7 12쪽
80 월묘 15.09.25 354 8 13쪽
79 월묘 15.09.24 301 6 20쪽
78 월묘 15.09.22 261 7 12쪽
77 월묘 15.09.22 320 7 14쪽
76 월묘 +1 15.09.20 446 6 12쪽
75 월묘 15.09.20 328 7 13쪽
74 월묘 15.09.19 326 9 14쪽
73 월묘 15.09.17 304 8 11쪽
72 월묘 15.09.17 308 9 12쪽
71 월묘 15.09.15 283 10 11쪽
70 월묘 15.09.14 551 7 13쪽
69 월묘 15.09.13 414 10 17쪽
68 월묘 +1 15.09.12 345 7 10쪽
» 월묘 15.09.12 370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65 월묘 +2 15.07.29 457 10 12쪽
64 월묘 15.07.25 365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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