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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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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46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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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5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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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2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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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광폭화한 파블로드는 심리전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가장 단순한 만큼, 힘을 아끼지 않아 무서운 상태.

놈이 도끼를 내려찍었다.

파앙, 섬광 같은 속도로 공호의 손이 그의 안면을 타격한다. 퍽, 파블로드도 공호의 얼굴에 주먹으로 강타당한다.

몸이 무겁다. 대부분 회복은 되었건만, 큰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내장이 배에서 출렁인다. 다른 의미로 세상이 느려지며, 머리가 띵하고 속에서는 피가 울컥울컥 올라왔다.

예상외로 섬천이 빨리 끝냈기에 아직 움직이기엔 무리가 있었다. 온몸을 쥐어 짜내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

파블로드는 강하다. 조금 약해졌다 하더라도 공호가 이길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상대다. 섬천의 비정상적인 힘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묻혔을 정도로 월묘에게 파블로드는 훌륭한 '악역'이었다.

"제발..."

월묘는 코가 빨개져 이 싸움을 본다. 어디까지나 악역인 파블로드. 그리고 언제까지나 선역이라 믿는 가족.

퍼억! 퍽.

공호의 배에 파블로드가 주먹을 깊숙이 찔러 넣는다. 공호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면 진이 달려들어 놈의 머리를 쳤다. 파블로드의 괴력에 진은 명치를 팔꿈치로 가격당하며 나뒹굴고, 다시 공호가 단도를 역수로 쥐고 달려들었다.

퍽!

처절하리만큼의 싸움.

"아, 아아..."

안타깝고 그저 불쌍하게만 보이는 이 상황. 치고박고 해야만, 결국 여기까지 와야만 풀린다. 답은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도 오빠들이 힘이 있었으니 가능성이나 있는 일이었다. 만약 '힘'이란 만사형통의 법칙과 '전투'와 '투쟁'이란 과정이 없었더라면, 월묘는 지금쯤 폭매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

폭력이란 해결방법이 나쁜 거란 것은 뼈에 박은 것만큼 잘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용서하고 베풀고 친절하며 궁극적으로 '착한아이'어야 했다.

이젠 머릿속의 윤리와 각종 사고법칙이 저 전투에 이끌리며 뒤죽박죽 뒤섞여 버렸다. 아무것도 있는 괴물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잡종일 수도 있었다.

빌고 또 빌어 자신을 부정한 세상에게 기적을 요구했다. 착한 아이가 받아야 할 칭찬을 요구했다. 아니, 착한 아이라서 피해받지 말아야 할 권리를 요구했다.

그 요구에 운명은 오빠들을 보냈다.

그들은 비틀어졌고, 일직선적인 사고풀이 방식을 보였다. 기억 속의 오빠가 아닌 어딘가 복잡해진 체 다가왔다. 진도 낯설었다. 언제나 내가 바르다고 하던 진이, 오빠들을 만나며 정말 다른 사람 같은 모습을 보였다. 단지 듬직했을 뿐인 진이, 슬피 고집 피우는 소년으로 보였다.

닫힌 문인 줄 알았던 오빠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보였다. 몸뚱어리로 그들을 끝까지 제압만 하며 고통받았다. 분명히, 오빠들에겐 그건 멍청한 짓이었을 것이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혐오했을 터이다. 그 어리석은 짓에 진도 동참하였고.

그런 그들이 어째서 저렇게 스스로 멍청이가 된 건가. 결국, 나 하나를 위해서 스스로를 멍청이로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문은 닫혀버린 게 아니라, 한쪽이 뜯어진 것 같았다. 오빠들은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진은... 모르겠다. 어떤 감정인지 몰랐으나 가족에게 향하는 감정은 아니었다. 조금 더 부끄러워 지는.. 말하려면 짠 소금을 먹은 것처럼 입이 오므려지는, 그런 느낌이 드는 소년이었다.

하나, 그도 나를 위해 저 전장에 뛰어들었고, 고통받은 것만은 확실했다.

"또 내 고집을 내세우기엔... 그건 너무 아플 뿐이잖아..."

퍼억! 퍽.

진의 발목이 완전히 비틀렸다. 그럼에도 진은 이를 악물고 파블로드에게 박치기를 하였다. 퍽, 머리에서 온 충격에 주춤한 파블로드. 주륵, 진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 마지막 힘을 쥐어짠 진은 기절해갔다.

"난 분명... 끝까지 했다.. 잉. 형."

"... 애썻다."

공호는 파블로드가 움찔거린 틈을 놓치지 않았다. 놈이 얼떨결에 격지부를 옆으로 그었다. 공호는 격지부 면을 손으로 짚으며 공중에서 옆차기를 날렸다.

"크아아!"

놈이 나자빠지며 괴성을 질렀다.

공호는 물 흐르듯 놈의 중심에서 놈의 왼팔을 짚었다. 그리고 다시 원을 그리며 오른팔을 짚었다.

쩌저저적.

녀석의 팔이 급속도로 얼어가며 움직임이 봉인 당한다. 손에 직접 닿음으로써 확실히 대상을 빙결한다. 원거리에서 얼리는 것보다 효과적이며 연산이 쉬운 이 방법.

음의 마나가 풍의 마나만큼은 아니어도 응용하기 위해선 연산은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어느 정도를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필수다.

모양을 잡는 것도, 공중에서 움직이는 것도 결국 연산이다.

공호의 경우에는 직접 맞닿아서 얼리는 정도는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연산을 하기에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지장이 없었다.

'도끼가 수상했다.'

처음 섬천이와 격돌했을 때보다, 도끼가 번쩍 빛났을 때 더 강한 파괴력을 선보였다. 그런 다음부터 파블로드는 도끼에게 영혼을 팔린 듯 정신을 놔 버렸다.

팍.

공호는 놈의 급소를 차 간단히 기절시켰다. 그럼에도 도끼만은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그걸 간과할 공호가 아니다.

우드득.

공호는 눈 깜짝하지 않고 놈의 손을 꺾어 억지로 도끼를 빼냈다.

푸슈슈.

괴이하다. 놈의 몸에서 연기가 올라오며 몸이 본래로 되돌아온다. 반면, 이 도끼는 활활 타오르던 장렬함을 잃고 그저 장식이 화려한 붉은 도끼로 되돌아갔다. 공호는 도끼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기 위해 손에 들었다.

'아무 이상 없다?'

음의 마나를 주입했음에도 변화는 없었다. 일단 음의 마나에 반응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한 번 만져보겠습니다잉!"

빨리도 일어난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진이 소리쳤다.

공호는 레스토들을 열심히 묶고 있는 진에게 도끼를 던졌다.

탁.

진이 마나를 이용해 근력을 끌어올려 가볍게 받았다. 제 몸과 비등 될 크기의 도끼다. 그런 걸 넙죽 잘 받기도 한다.

우웅.

그러나 공호가 놀란 부분은 달랐다. 급격히 반응하는 도끼. 진의 일반 마나를 만나며 붉게 타올랐다.

"이앗! 이거 뭡니까잉."

진이 마나를 갈무리하자 타오르던 도끼의 불꽃은 점차 줄어들었다. 공호는 납득 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끼를 다시 되받았다.

"일단은.. 정리부터 하지."

넓게 날아가 퍼질러진 레스토들. 이 전부를 끌어와 묶어두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니라.


묠드는 월묘에게 티슈를 내밀었다.

"나.. 참. 살다 살다 진짜 달이 눈물이 흘리는 건 또 처음 보는 군."

소녀는 울었다. 아이들이 지켜보든, 차가운 바람이 불든 그저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다. 눈물이 멈출 줄 모르고 흐르고 또 흘러내려 소매가 다 젖어듦에도 옥구슬 같은 눈물은 또륵 흘러내렸다.

이상하고 신기하다.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기뻐서 우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중구난방 이유 없이 눈물만 흐른다는 사실이 신비하기만 하였다.

허름한 옷. 여러 찢어진 이 옷. 아스페티아에 처음 올 때부터 지니고 있던 옷이었다. 그 3년 간의 고생과 노력을 보여주는 이 옷이다.

월묘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3년 전, 바다 모래사장에서 떠밀려 왔던 천조각. 마치 공호의 옷 같아서 지니고 있던 이 옷을 월묘는 꼭 손에 쥐었다.

"아저씨."

묠드는 석연치 않게 대꾸했다.

"나도 오빠라 불러라."

"대화를 한 번 해보는 게 낫겠죠?"

월묘의 긴 생머리가 곱고 흰 피부를 타고 늘여진다. 눈물자극이 늘어진 볼이 붉게 닳아 올라있다. 끝없이 깊고 그렇기에 아무것도 없는 월묘의 검은 동공.

묠드는 귀찮은 듯 말했다.

"그러던가."

묠드는 진심을 다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알면 됐다."


"드디어 다 잡았다아아잉!"

모든 지부를 돌아다니며 놈들을 한 장소에 몰아뒀다. 놈들을 한 장소에 모아 놓으니, 놈들이 얼마나 거대한 조직인지 실감했다.

섬천과 공호는 적어도 A급 실력자와 B급 실력자는 모두 전투 도중 얼굴을 외워뒀다. 적당히 통제하기 위해서 등급을 따라 놈들을 분류했다.

"A급이 87명, B급이 329명이라.. 미친 거 아닙니까잉?"

여기에 S급이 하나라도 껴 있었다면, 웬만한 왕국에 선전포고를해도 괜찮을 전력이다. 변방의 왕국 같은 경우는 충분히 갈아버릴 수 있을 전력이었다. 그러니 레스토들이 벌벌 떨지. 문제는 S급의 존재 여부는 정말 크다는 것이지만.

"이거 깨어나면 난리 치는 거 아닙니까잉?"

묶었다고는 했지만, 공호의 얼음을 이용했기 때문에 사실상 탈출은 불가능했다. 파블로드정도면 모르겠지만, 어중간한 A급 실력자가 작정하고 부수려고 해도 3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모든 일을 2시간 안에 끝낸 공호일행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공호는 인벤토리에서 괴상한 몬스터를 꺼내, 뿔을 갈아 쓰러진 레스토들에게 뿌렸다. 물론 파블로드는 제외하고. 녀석에게는 협상할 것이 있다.

'드켈'이란 몬스터는 뿔로 상대를 찔러 잠재우고 먹어치워 버리는 무서운 녀석이다. 운이 안 좋다면 A급 실력자도 골로 가는 때가 있다.

그렇지만 드켈의 뿔을 갈면 효과가 뛰어난 수면제가 되기 때문에 뒷면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선호하는 상품이었다.

잡아둔 레스토가 많기에 많은 양이 필요했지만, 인벤토리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드켈을 보며 진은 안심했다. "아.. 끝났습니까?"

"어."

마침 놈들을 모으던 도중 섬천이 깨어났다. 적잖은 두통이 있는지 조금 앓았지만 다른 큰일은 없었다.

진이 괜히 섬천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형이 무슨 영웅이라도 됩니까잉? 힘을 숨기다니잉. 그러지 말고 우리 솔직하게 말해봅시다잉. 무슨 짓을 해서 그렇게 세졌습니까잉?"

섬천은 콧방귀를 끼고 진의 목덜미를 눌렀다.

"네가 앞으로 영원히 월묘와 절교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실 섬천도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정확한 것은 앞으로 한달 동안 배 속에 있는 '열 한 번째 바람'이 도움 줄 리는 없으며, 은치와 동화한 것은 정말로 방법을 모르겠다. 앞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아까와 같은 초인적인 힘은 마치 꿈처럼 남아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얻었단 감정보단, 되찾았단 느낌이 더 들었던 괴상한 경험이다. 물론 지금이야 원래대로 돌아와 약해졌지만.

"까아악! 비밀! 비밀!"

마침 은치까지 나서 진의 머리를 마구 쪼았다.

"아악! 치사하다잉!"

개척자 최고의 마나 천재라는 수식어가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한가롭게 시간이 흘렀다. 시간을 흘려보냈다기 보단, 파블로드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녀석은 공호가 최대한 빙결시키고도 모자라, 팔과 다리를 부러뜨려 움직임을 완전봉쇄 했다.

"으..."

놈이 신음을 흘리며 의식을 되찾았다. 그 앞에 보란 듯이 공호가 목에 단도를 들이밀고 있었다.

"어디 보자... 사지는 모두 부려뜨렸고, 몸도 동결시켜버렸군. 솜씨가 좋아, 꼬마. 몇 번 이쪽 물을 먹어본 솜씨야. 경험이 없기는 커녕 지독한 걸 여러 번 격어본 놈들이었어."

더러운 업계에 종사하는 만큼 파블로드는 끝까지 자존심을 지켰다.

공호는 대꾸하지 않고 물었다.

"이름."

그는 목숨을 버릴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파블로드."

완전히 깨진 이상, 파블로드는 모든 질문에 즉답하였다. 어찌 됐던 가장 중요한건 명줄이었으니.

모든 것이 망가져 버린 그가 헛웃음을 흘렀다.

"허, 허허... 이런 꼬마 들에게까지 밀리는군. 격지부를 가지고 있어도, 재능 앞에는 한없이 무딘 날이란 말인가. 결국 닐에게 밀리더니... 이제는 다 자라지도 않은 인간에게 밀린단 말인가.."

공호는 순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놈의 목을 강하게 잡았다. 졸도할 뻔한 파블로드가 몸을 꿈틀거렸다.

"닐. 그놈과 무슨 관계야."

"컥! 놓고.. 손 좀 놓고."

"무슨 관계냐고!"

"케.. 에엑. 워, 원수다. 그 놈에게는 꼭 갚아줄 것이.. 커억!"

"원수?"

공호는 손에 힘을 풀었다. 감정이 격해지며 조금 삐져나온 손톱이, 놈의 목을 꿰었나 본지 놈의 점성 있는 피가 묻어나왔다.

"1년 전, 놈이 S급 용병시험을 막 통과하고 용병패를 발급받으러 프리아로 가던 때였다. 어느 미치광이 특수 용병이 프리아를 박살 내기 전이기 때문에 그곳은 한창 번성할 때였지. 나도 그때까지만 해도 별 탈 없는 일반 A급 용병이었다."

파블로드는 공호를 보며 말하니, 마치 벽에게 혼자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 내일 죽는다 해도, 지금 당장 죽는 것은 사양이니까.

"프리아로 가던 도중 닐은 한 마을에 들려, 조용히 그 마을의 생명체를 모두 멸(滅)해버렸다. 인간의 제국에서 의뢰를 찔러 준 거야. 역모를 꿈꾸는 자가 그 마을에 있다고. 뭐, 닐도 대단하지. 그런 귀찮은 일까지 했으니까. 엉덩이 무거운 S급은 제국이 울고불고 사정해도 웬만하면 안 나서거든. 아, 있긴 있었다. 내가 살던 옆집 아저씨 잭. 아내를 잃고는 술만 먹으면 말할 제국을 멸망시키겠다고 매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 문제는 그 아저씨도 A급 은퇴용병이기에 쉬이 넘기긴 어려운 거야."

1년 전, 뭔가 많이 겹친다. 공호가 A급 용병시험을 볼 때도 그렇고, 닐이 프리아로 가던 것도 그렇다.

"결국 사고 하나가 터졌지. 제국 소속 몬스터 토벌대가 마을에 들러 물자를 지원받을 때, 마침 술을 먹은 아저씨와 마주쳤다더군. 시비가 붙었고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다 죽여버렸지. 참, 지금 생각해도 정신 나간 양반이더군. A급 은퇴 용병이면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한데, 아무리 아내 때문이라지만 그 촌구석에서 징징짜다가 사고나 치니 말이야. 조용히, 조용히 제국은 닐에게 의뢰를 찔렀지."

늙은 레스토의 푸념거리를 들어줄 상황은 아니다. 공호는 빨리 마치란 식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파블로드는 한이 있는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쿠드보어 고기를 등에 싸매고 마을에 왔을 때는,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졌더군. 마을만 한 거대 구덩이 하나만 지독하게 파여 있었지. 운석이라도 맞은 것처럼. 살면서 처음으로 피눈물이란 걸 흘려봤다."

"..."

"나이 사십이 막 된 어린놈이, 재능 하나만으로 S급이 되어서 책임감 없이 이것저것 건들고 다니잖아. 누구는 백 이십이 되도록 A급에서 놀고 있는데. 그 정도 구덩이를 만들 수 있는 생물은 별로 없지. 주위에 S급을 중심으로 미친 듯이 조사해서 알아낸 게 닐이었던 거야. 천재 용병 닐. 나도 미쳤지. 바로 달려나가서 검을 냅다 꼽으려 했어. 프리아 용병 시험소에서 나오던 놈을. 기회다 싶었지. 하늘이 도왔나 그때 놈의 상태는 최악이었으니까. 마나 페인에 얼음이 틀어 박힌 것 같더군. 그래도 역시 S급은 달랐어. 그런 최악의 상태에서도 나를 이겼어. 아니, 결국에는 밟혔어."

인연이란, 우습다. 적어도 지금은 그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래도 꽤 몸을 망가뜨렸지. 나중가서 그놈 소식을 들어보니, 그 사건 때문에 용병 시험소에 있던 S급 개척자 하나를 놓쳤다더군. 처참히 패배한 후, 머리가 허해지면서 삼일은 무기력증에 시달렸어. 그러던 나를 복수귀 만들어 줄 녀석이 나타났지."

파블로드는 뚜렷하면서도 기묘한, 마치 도박장 앞에 선 인간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격지부. 네가 나에게 빼앗은 그 도끼.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그 구덩이 앞에서 펑펑 울었어. 울다 지치면 뭔가를 먹고, 싸고, 구역질하는 그런 내가 혐오스럽게 보였다니까. 그런데 그 구덩이에서 먹고 자고 싸고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어. 단 한 곳만 마나가 집중된 땅이 있는 거야. 위치상으로는 그 아저씨의 집 지하 쯤이었지. 뭔가 홀렸나, 홀린 듯 땅을 팟어. 그러더니 이 도끼가 떡하니 묻혀있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인 줄 알아?"

흥분한 파블로드의 코에서 붉은 김이 푸슉 뿜어져 나온다.

"닐이 마을을 습격했던 소리는 이 도끼 때문이란 거지. 이거 때문에 우리 마을 사람을 몰살해버리고 가 버린 거라고! 결국엔 이 도끼를 왜 못 찾았는 지는 몰랐지만, 제국과 놈은 이 도끼를 노렸던 거다. 이 격지부를! 이 격지부를 얻은 뒤로 내 일상이 달라졌어. 은밀하게 복수하기 위해서 용병생활접고 도끼를 다루는 법을 익혔지. 일부러 전쟁 통에도 나가 보고, 그러다 마주친 폭매라는 집단에 들거가 보고.. 그러다 보니 여기 이러고 있더라. 제기랄."

시간 낭비를 혐오해도, 가족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신기하게 끊지 못하는 공호였다. 공호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저장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 제가 하겠습니다."

그러던 도중 섬천이 나섰다. 파블로드의 상태를 봐서 섬천이를 어떻게 하진 못할 것 같다. 게다가 싸움에 진 개는 꼬리를 내리기 마련. 그 원인이 얼굴을 들이미니 대화는 더 순조로웠다.

짝.

섬천의 손이 놈의 볼을 때렸다. 힘이 남아있지 않은 녀석은 반응도 없었다.

"어제 오전 5시에 당신이 헤이콘에서 무슨짓을 했는 지 아십니까."

파블로드는 입술에 혀를 올렸다. 의외로 달짝지근한 맛기 느슨하게 다가왔다.

"모른다. 나는 굵직한 사건만 보고받는다."

짝.

섬천이 파블로드의 뺨을 강하게 쳤다.

이제 와서 '선'을 내세워서 다른 척 행동하진 않는다. 나도 공호 형도 분명히 잘못됐으니까. 그러나 녀석도 결코 '선'을 내세워 보호받을 수는 없다. 세상은 잘못 앞에서 이유 따위는 보지 않는다.

"몰라."

한동안 육편음이 고요한 공간을 찢는다.

"그때 뭘 했습니까."

쿨럭.

놈이 피를 쏟아 뱉었다. 걸레 짝처럼 헐렁해진 놈의 얼굴 가죽이 순리대로 움직인다. 꼬리 없는 핏줄기가 놈의 이마를 타고 입술까지 미끄러진다.

"몰라, 이 새끼야."

"내 동생한테 무슨 짓 했는지 말해 보라고, 이 양아치 새끼야!"

공호는 손을 들었다.

말려야 하나. 이제 와서? 녀석은 노했다. 이제 와서 섬천이의 두 눈과 귀를 가린다고 이 잔혹함이 바뀔까. 아니다. 이건 비용 이었다. '착한아이'가 아닌 '아이'가 지불해야 할 배상금. 결국 이것도 자기합리화가 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어른'이 아니다. 공호는 조용히 손을 내렸다.

버럭 소리를 지른 녀석은 말할 힘도 없나 본지, 고개를 떨구었다. 섬천은 그런 놈의 멱살을 잡아 꽉 당겼다.

놈과 섬천의 눈이 닿으며 강렬한 기운을 풍겼다.

"이제부터 머리를 땅에 처박고 다니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가서 상처받은 내 동생에게 빌고, 빌고, 또 비십시오."

놈이 비아냥거렸다.

"역시 어린애였군. 고작 시답잖은 사과 때문에 그런 도박 같은 짓을 하려 드니."

"남 말 할 처지는 아닙니다."

"나는 가족이 죽었다. 그래서 움직인 거다."

"시답잖은 사과 때문에 명줄 끊기는 게 더 멍청한 놈입니다. 혼자가 가서 은밀히 사과하고 오십시오."

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칠 방법도 없다. 만약 사과하러 간다 치고 도망간다면, 그땐 조직의 모든 이가 위험해진다.

"니들이 깡패든, 양아치든, 피해자든, 뭐든. 그 도끼 되돌려 받고 살고 싶으면 시키는 데로 움직이란 말입니다."

세상 모두 원인을 따라 움직인다. 불합리한 세상이, 불합리한 원인을 만들어낸다. 배고픈 자들을 만들며 서로를 먹게끔 하고, 믿는 자가 있으면 배신하는 자를 만들어 끌어내린다. 베푸는 자는 이용하려 하는 자 앞에 퇴색되고, 피를 흘리는 자는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 아첨한다.

이 아이들은, 적어도 이 아이들의 눈에는 누가 씌웠는지 모를, 벗기 어려운 색안경이 씌어 있었다.


작가의말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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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월묘 15.09.28 382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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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월묘 15.09.12 369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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