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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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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747

작성
15.09.1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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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계속 그 일이 머릿속에서 피어난다.

비밀의 마나 페인을 뚫었을 때, 처음으로 본 녀석. 자칭 제어장치. 그때 환상속에서 본 셋째는 나를 원망했고 분명히, 목에는 손자국이 선명하게 도드라져있었다.

그 지옥을 넘어선 목소리가 떠오른다.

'잠깐. 아니, 착각하지 마. 생각이 아니야. 사실이야. 네가 날 죽였어. 나는 너 때문에 죽은 거지. 의심 따위 가지지 마. 현실이야.'

생각은 쇠사슬 아래 엉킨다. 해명하려 다른 곳으로 빠져들면, 새로운 쇠사슬이 끝도 없이 아래로 끌어내린다.

이 세계는 저주받았다. 적어도 공호에게는 비틀어진 세계다. 가족의 안위를 모두 확인하지 않고 보호하지 못 한다면, 이 세상은 영원히 녹슨 쇠사슬에 감겨있는 감옥일 뿐이다.

공호는 하늘을 올려봤다.

새장은 새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쇠로 만들어져 있다.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용도 만이 빛이 바래니까. 새 입장에서는 지옥일 나름이다. 내보내 달라 울지만, 그 울음소리 자체가 인간의 목적이니.

과대망상일지 몰라도 가끔은 이 빌어먹을 곳이 새장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풀어버려. 이제 쉬면 돼. 아무리 움직여도 네 죄는 변치 않아.'

셋째의 또 다른 환청이 들린다.

순간, 힘 조절이 되지 않아 공호가 밟은 바닥이 푹 꺼진다.

무시하자. 모든 것은 환상이었다.

확실한 건 셋째에게서 듣자. 그 아이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확고한 사고관이 있으니까.

마음을 달랬다.

차라리 단도를 긋고 싸우다가 베이는 게 낫지, 이런 생각은 공호를 너무나 괴롭혔다.

가족을 다 찾고 나서 그 뒤의 일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찾지도 못했으면서 흔들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다시 마음을 몰아세웠다. 마치 예측 불가한 바다 같았다. 해일이 몰려오고, 어떨 때는 비가 오고, 가끔은 평온해지고.

공호는 그저 방향없는 마음으로 간절히 원했다.


월묘에게 도착하자 공호는 괴상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미쳤습니까잉? 그렇지 않아도 죽을 뻔했는데, 그런 미친 짓을 하면 어떡합니까잉!"

"쓸데도 없는 거, 내가 정리해 주려고 그랬습니다. 없어지면 몸의 무게가 줄어들고, 더 빨라질 수 있는데 그냥 떼 버립시다."

"으아.. 뭐하는 거야?"

미쳐 날뛰는 두 소년 사이에서 월묘가 말리고 있다. 그래도 진심은 아니었나 본지, 힘없는 월묘가 말릴 수 있을 정도의 힘만 쓰고 있었다.

공호는 흠칫하고 놀랐다. 진과 섬천의 관계, 실로 애매한 관계다. 저런 식으로 서로에게 애증을 품지 아니하고는 버틸 수 없는 관계.

그러나 곧 공호는 안심했다. 걱정과는 달리 서로를 억누르고 '그 날'의 일은 꺼내지 않았다.

결국 상황은 평화롭게 가위바위보로 끝났다.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한 섬천은 마치 독재자의 표정으로 진을 굴렸다.

"뒤로 취침합니다. 앞으로, 뒤로, 앞으로."

"이제 그냥 넘어가면 덧나냐잉?"

"말끝에 형님 소리 붙입니다. 실시."

결국 이야기는 또 유치하게 번졌다.

"너 몇 살입니까?"

"열 여섯입니다잉."

"거짓말도 작작해야지, 개척자 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 몸을 하고 열여섯이라 합니까!"

"무슨 소리야잉, 벌써 3년이나 지났는 데잉."

"또 거짓말을!"

그러거나 말거나 공호는 월묘의 곁에 가서 앉았다.

역시 서먹해진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 괜히 말은 안 하고, 얼음 아래로 보이는 작아져 버린 땅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때만큼은 진과 섬천도 숙연히 단청을 피웠다.

정말 어렵게, 흑연호와 힘겨루기를 했을 때보다 더 힘들게 입을 뗀다.

"미안."

"뭐가?"

"목."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한다. 낯짝도 뜨겁고, 머리도 아프다. 여러 의미에서 괴로운 상황이었다.

붉은 달이 떠오른 직후, 나는 짓지 말아야 할 죄를 지었다. 용서하지 않는 데도 받아들일 거다. 그건 분명 내 잘못이었으니까.

용서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월묘의 반응, 그것 자체가 공호에겐 이정표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나락일 수도 있었다. 긴장은 시간을 따라 위로 흐르고.

호젓함을 깨고 나오는 월묘의 빛.

갑갑함이 몰려온다. 월묘의 속은 지금의 공호로서는 정말 조금도 내다볼 수 없다.

쌍방향으로 고민한다. 공호는 공호데로, 월묘는 월묘데로. 방향도 신념도 다르지만 원하는 대답은 비슷했다.

"나는 지금 오빠들을 만난 것이 미치도록 반가워. 눈물이 흐르는 눈이었으면, 고장 나버리지 않은 눈이었으면 조금이라도 울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뭔가 걸려.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겼어."

진의 흐릿한 각막이 어두운 밤을 뚫고 빛을 머금는다. 올 것이 왔다. 월묘의 피부가 긴장을 못이겨 쭈그러 든다.

휙, 월묘가 고개를 돌려 공호와 눈을 마주친다.

"사람을 죽여본 적 있어?"

공기조차 버거워할 침묵이 찍어누른다. 생각이 잡념을 물고 늘어진다. 이미 한번 파고 들어간 거머리처럼 모든 생각을 빨아 먹는다.

"어."

반 충동적 대답이 결과에 걸린다. 대롱대롱 매달린 정신이 낚싯바늘에 꽤 뚫린 물고기 아가미처럼 퍼득 거렸다. 여느 때 처럼 진은 푸른 머리를 어느새 질끈 묶어버린다. 분명 얼음 위에 서 있지만, 이상하리만큼 덥다.

그녀답지 않은 차가운 질문이 한 번 더 얼음을 녹인다.

"어째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지키기 위해서."

"지금은?"

"조금 달라.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역시 지키기 위해서."

진은 손톱으로 허벅지를 긁어 내렸다. 후끈한 느낌이 들며 붉게 오른 다섯 선이 생긴다. 지옥에 있었을 적, 한 끗 차이로 분쇄기에서 도망쳐나왔던 것보다 더 긴장감이 고조된다.

월묘는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의 비난을 했다.

"나쁘네, 공호."

그냥, 그러고 끝났다. 월묘의 표정은 막힌 기혈을 뚫은 것 마냥 시원스러웠다. 아니까 그런 거다. 회유해서 될 오빠들이 아닌 것을 아니까. 진이 공기 빠진 공처럼 축 늘어질 때었다.

공호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 나쁜 놈이어서. 또 미안. 약속 지키지 않아서. 그래서 더 미안. 가족이 전부 모일 때까진 계속 나빠질 거여서."

답은 한 번에 원하는 건 욕심, 천천히 월묘를 기다릴 것이다.

"그럼 가족을 다 찾는다면 달라질 거야?"

그때라면은.

"네가 원한다면..."

영혼 없는 말이다. 그러나 월묘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그 영혼까지 되돌려 놓는 것이 자기의 몫이라고.

"그럼.."

픽.

월묘가 쓰러졌다. 놈들이 먹였던 수면제의 효과를 이제껏 억눌렀다. 공호에게 저 한마디 전하기 위해.

공호는 월묘의 머리를 들어 무릎에 올렸다.

날이 밝아간다.


#


목적지 없이 떠 다니길 한 시간.

그동안 일행은 말이 어느 정도 트일 정도가 됐다.

월묘는 하늘에 떠 있는 게 무섭다는 아이들을 달랬고, 월묘의 부탁으로 공호는 차갑지 않은 얼음으로 장난감을 만들어줬다.

월묘의 사정을 들은 공호는 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고맙다."

"뭐, 친구니까잉."

"친구? 웃기지 마십시오! 저놈은 이상한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 구렁이일 뿐입니다!"

"월묘야 네가 고생이 많습니다잉. 저런 망나니 오빠를 두고잉."

"죽고 싶습니까?"

진과 섬천은 어딘가 잘 맞았다. 월묘와 진이 잘 맞았고, 또 월묘와 섬천이 잘 맞았던 것에는 무언가가 있는지도 몰랐다.

섬천은 진의 반 묶은 뒷머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런데 아까 3년이 지났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월묘는 무슨 황당한 소리 하냐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우리가 아스페티아에 오고 나서 1년이 흐른 걸 말한 거잖아. 지구의 시간으로는 3년이 흐른 거고."

섬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말?"

"어."

"이야, 그러면 오빠들이 벌써 열여덟, 열일곱이야?"

폴시아와 아스페티아와의 시간차가 이렇게 클 줄이야. 섬천이 털털한 웃음을 터트리다가 마침내는 고개를 축 내렸다.

"무슨 일 있어?"

비밀로 묻혀 갈까. 하지만 그건 왠지 안 될거 같아. 이제와서 거짓말까지 또 해버리면 정말 나쁜놈이 될 것만 같았다.

섬천은 그동안 있던 일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지금 오빠들이 나보다 나이가 어리단 거야? 폴시아란 곳에 갖다 와서?"

정말 살다 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나이 어린 오빠라니. 나이 어린 오빠라니!

"그, 그렇단 소리입니다... 누나."

흣.

섬천의 장난스러운 뒷말에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이거, 정말 그런대로 서로의 호칭이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웃음이 진정되고, 섬천은 슬쩍 진지하게 말했다.

"이제 궁금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뭐가잉?"

"공호형하고 내 육체등급 말입니다."

진은 비아냥 거렸다.

"거, 공호형은 모르겠지만, 형은 보나 마나 B급 육체에 어디 조합각성이나 운 좋게 걸려서 했겠지요잉."

그래도 섬천에게 형이란 호칭을 써주긴 한다.

"A급."

"어?"

"A급 입니다. A급."

순간 멍해진 진은 머리를 한 번 털어버리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럼 나보다 약할 리가 없을 텐데잉?"

믿기 힘들단 표정으로 진은 말했다.

"말했잖습니까. 폴시아에 있었다고. 때문에 레벨이 좀 떨어질 뿐 입니다."

"레벨이 뭔데잉?"

"육십."

흑연호를 잡으며 부가 세포 포인트가 들어왔다. 그 덕에 순식간에 육십 레벨이 될 수 있었다.

"흠.. 그래도 뭔가 부족한 느낌인데잉?"

하지만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을 놓치고 있었다.

진의 천재적인 마나 친화력과 응용력은 과히 압도적으로 높다. 진이 마나를 사용한다면 웬만한 A급 개척자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 A급 개척자가 마나를 사용해도 말이다.

그만큼 진의 마나에 대한 능력은 천재적이다.

반면 섬천은 조합각성자다. 풍의 마나를 사용하게 된 대신, 일반 마나를 사용하여 육체능력을 올릴 수 없게 됐다. 게다가 폴시아를 다녀오며 나타난 격차 덕분에 상당히 레벨이 떨어진다.

"잠깐 실례해도 됩니까잉?"

진이 쿠나이를 들었다.

섬천은 대답 대신 검을 들었다.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만 시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위험하지만, 아차 할 땐 공호가 나설 것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이다.

검과 쿠나이가 교차한다. 그러나 속도는 쿠나이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진이 마나를 쓰면서 그 차이는 맹렬히 벌어진다.

그에 지지 않으려고 섬천은 풍의 마나를 응용했다. 순간, 진의 허리로 날카로운 바람이 몰아친다. 그러나 진은 막지 않았다. 그대로 쿠나이를 밀었다.

휙.

돌을 두부처럼 베는 바람에도, 진의 허리는 멀쩡했다. B급 개척자가 180 레벨을 지니면서 생긴 방어력. 만만할 리가 없다.

상황판단이 끝난 섬천은 혀를 차며 풍의 마나를 검에 둘렀다. 풍향과 섬천의 힘의 방향이 교묘하게 맞아들어가며 쿠나이를 흘린다.

그러며 섬천은 뒤로 물러섰다.

"A급이라도 레벨이 부족하면 어쩔 수 없나 보네잉."

진은 가볍게 웃었다.

섬천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지금까지는 장난이었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지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따라잡아 줄 테니."

살벌했다. 섬천은 원래 이런 아이다. 카리스마로 공기를 끌어내릴 줄 아는 소년.

그러며 섬천은 슬며시 오른손에 풍의 마나를 주입했다. 반짝, 색을 잃었던 반지가 제 색을 찾는다.

달아오른 진이 쿠나이를 돌렸다. 은근히 대결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월묘의 오빠들에게 인정받을 기회이기도 하고. 그리고... 옛일에 대해 해명받고 싶기도 했다.

이번에는 공호에게 물었다.

"실례좀하겠.."

그 순간.

팍팟.

처음부터 그랬던 것 처럼, 사라졌던 진이 땅에 머리를 박은 채로 나타난다.

등 뒤에 공호가 진의 두 손목을 얼리며 앉아있다.

섬천이 허망한 웃음을 흘렸다. 섬천의 예상대로, 적당히 선을 긋는 공호였다.


작가의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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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월묘 +1 15.10.06 311 5 7쪽
88 월묘 +1 15.10.04 330 7 15쪽
87 월묘 15.10.03 309 7 12쪽
86 월묘 15.10.03 328 7 20쪽
85 월묘 15.10.03 263 5 12쪽
84 월묘 15.10.01 273 4 16쪽
83 월묘 15.09.28 382 8 11쪽
82 월묘 15.09.27 285 10 15쪽
81 월묘 +1 15.09.26 389 7 12쪽
80 월묘 15.09.25 355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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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월묘 15.09.22 321 7 14쪽
76 월묘 +1 15.09.20 446 6 12쪽
75 월묘 15.09.20 328 7 13쪽
74 월묘 15.09.19 327 9 14쪽
73 월묘 15.09.17 304 8 11쪽
72 월묘 15.09.17 309 9 12쪽
71 월묘 15.09.15 283 10 11쪽
70 월묘 15.09.14 551 7 13쪽
69 월묘 15.09.13 414 10 17쪽
68 월묘 +1 15.09.12 346 7 10쪽
67 월묘 15.09.12 370 9 13쪽
» 월묘 15.09.12 280 7 12쪽
65 월묘 +2 15.07.29 457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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