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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813
추천수 :
2,582
글자수 :
751,747

작성
15.09.17 06:43
조회
308
추천
9
글자
12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참새가 지저귄다. 묠드는 새의 머리를 보듬어 준다. 그런 묠드를 월묘는 맑은 눈으로 한끝 의심없이 순수하게 지켜본다.

"멍청한 토끼."

이름을 부르지 않고 토끼라 부른다. 월묘는 미묘한 느낌과 함께 일부러 얼굴을 찡그렸다. 보기 좋은 소녀의 고운 이마가 찡그려지자, 묠드는 손수 월묘의 머리를 만졌다.

"허허. 너는 축복받았어."

아리송하다. 월묘는 '무슨 소리냐' 라는 의사를 단순 눈빛만으로 드러낸다.

소녀는 때 묻지 않았다. 아니, 멍청하다. 인과율에 속하는, 윤리라는 개념 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건 예측하지 못한다.

"네 오라비가 정말 사냥 간 것 같아?"

공호는 경고했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월묘는 아직 이쪽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선을 그어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세상은 잘 돌아갈까? 하물며 지고한 존재인 반요정에게 선을 긋는다고 넘어가지 못할까.

심장으로 쏘아진 화살을 잡으려면, 그리고 내가 화살보다 속도가 느리다면 화살을 잡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운이 따라 화살이 바람에 껶이던가, 적중되어 심장을 내준다든가, 손을 희생하고 화살을 얻던가.

"사냥 간 거 아니에요?"

"네 오라비의 성격이 어떤 것 같나."

"음... 차갑고, 냉혈 적이고, 숫자에 근거 된 답을 찾으려 들어요."

공호와 섬천의 성격만큼은 부인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많이 봤고 느꼈던 성격이니까.

"그런데 가끔 정도 있다고요. 예측하지는 못 하지만.."

묠드는 스푼으로 나무탁자를 탁탁 친다. 쓰디쓴 녹색 원액이 물결 지며 방울방울 떨어져 나간다.

아무 말 없이 녹색 원액이 들어있는 차를 내민다. 진득한 녹색 액체에 기포가 끊이질 않고 부풀어 올랐다가 기분 나쁘게 터져나간다.

"사양할게요."

"요즘 얘들은 이런 거 싫어하는가 보군."

요즘이 아니라 대를 거쳐 쭉 올라가도 저런 걸 넙죽 받아먹을 선조는 없다.

"나이가 몇이랬지?"

"열 여섯이요."

"너 말고, 오라비들."

"열넷, 열다섯?"

말하자니 어색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폴시아가 그리 만들었는데.

"너희 개척자가 성숙해진다고 판단하는 나이가 몇이지?"

"우리는 스물이요. 나라마다 다를 수도 있어서 딱 몇이라고는 정하지 못하겠어요."

"스물, 스물이라.."

아스페티아에서는 열다섯만 넘기면 성인으로 인정한다. 그때부터는 공식적으로 용병으로 이름도 내밀 수 있고, 반귀족은 작위를 얻어 귀족이 될 수도 있다.

"음.. 그래. 네 오라비의 나이를 레스토 식으로 쳐서 열 살 정도로 정하고.."

흥미롭단 듯 월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 살이면.. 막 사춘기의 초중반일 때지. 이것저것 해보고 싶고, 쓸데없는 호승심이 몸에 넘쳐 난다거나 날카롭거나 이성적인 판단이 부족하다거나. 여러모로 아직 손길이 필요한 나이야."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았을 듯한 인물이 말하니 은연중에 막대한 설득력이 흘러나온다. 노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뻔하지만 그만 듣기에는 궁금해지는 그런 느낌.

"섬천이란 아이가 말해줬다. 개척자가 되기 전에 지옥을 봤다지. 생물 내면의 생존 욕구와 잠들어있는 정신적인 병이 추악함으로 긇어 부스럼 생기는 그런 세계."

묠드는 찻잔 속에 손을 넣었다. 끈적한 녹색 액체가 손을 따라 늘어난다. 묠드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올리고는, 탁자에 척 보기에도 화려한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성숙하다 생각하겠지. 지옥을 거쳐온 자기들은 사춘기의 남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나 걔들도 그리 다르지 않아.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믿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은 속으로 자꾸 갈구하게 돼. 나는 남들이 보이기에 뭔가를 충족시켜야 한다. 나의 가까운 사람은 특별한 나에 의해 지켜져야 한다, 등 실질적인 효율과는 떨어진 판단을 하지."

문양은 문양을 잇는 이음줄이 되며 동시에 선을 끊는 마침표가 된다. 마법은 마나를 유동하여 환상을 만든다. 환상은 사람들의 기대가 되며 그것은 기적처럼 보이게 된다.

"딱 공호만 짚고 넘어가더라도, 그 강박관념이 '가족을 찾아서 지켜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잘 포장되어 있다."

묠드가 수십 번 눈치를 줘서 그 재서야 월묘는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그래서 뭐를 말하고 싶은 거예요."

이럴 때는 말투만 빼고 섬천이를 닮았다.

"그래서 순수해. 날카롭고 지적이고 날고 기고 다 할 줄 알지만, 본 질적으로 들어가면 남들과 딱히 다를 건 없어. 그저 공호는 고통에 순응하지 않으며 이용하고 있고, 섬천은 남들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은 미친 꿈을 가지고 있지. 공통점이라면 이 둘의 우선순위는 가족이고, 자멸하는 길이 아니라면 가족의 부탁은 얼마든지 이뤄주려 한다는 거야."

남들보다 돌려서 말하는 걸 알아듣기 어려워하는 월묘다. 이 소녀에게는 직접적인 게 좋다. 그러나 기본적인 틀을 잡아놓고, 이상한 낌새로 먹이를 준 다음에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묠드는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는 인간처럼 무의미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던 사이에 네가 누군가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럼 이제 생각을 그만두게 돼. 최우선순위를 건들만큼 그 둘은 지금 보복하러 갔겠지. 권선징악이라는 걸 내세워서."

그러던 도중에도 묠드의 마법진은 더욱 세세하고 복잡하게 들어갔다.

"그럼 오빠들이 지금 싸우러 갔단 거예요?"

"어. 아주 뒤집어 놓고 오겠지."

월묘의 눈빛이 흐려지려 한다. 묠드는 그 순간을 잡아낸다.

"네가 생각하는 건 걱정 하지 마. 절대 누군가를 죽이지 않을 테니까. 녀석들은 은연중에 상을 원하고 있어. 예를 들면 너의 사소한 반응 같은 거 말이지. 너는 원했어. 그리고 녀석들은 당연히 보았어. 너는 보이는 무엇이든 죽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거 말이야. 그렇지?"

"다치겠죠?"

"많이. 거하게 다치고 올 거야."

묠드가 품속에서 뭔가 꺼낸다. 섬천의 머리카락이 그의 손에서 흩뿌려진다.

우웅.

떨어진 섬천의 머리카락은 마법진과 반응해 연소한다. 조건이 충족하며 마나가 유동한다. 환상은 현신한다.

지이잉.

포탈이 열린다. 공호와 섬천, 그리고 진이 보이는 장소까지 공간과 공간이 엉겨 붙는다.

묠드는 냉정하게 움직였다.

"가봐. 가서 보고 오는 거야. 네 눈에 보이는 것들에 간섭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그리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얼마나 아픈 일인지."

그리고 네가 얼마나 멍청한지.

"가야 해."

묠드의 말이 끝나기 전에 월묘는 망설임 없이 포탈에 뛰어들었다.

"헛. 이건 예상 못 했군."

묠드는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 박았다. 저 녀석은 어지간히도 속 썩이게 생겼다고.


#


을씨년스러운 한 길가 모퉁이에 갈빛 수사관이 벽에 등을 맞대고 마나 수신기에 중얼거렸다.

"겐다 구역입니다. 현재 폭매와 접전을 벌이던 정체불명의 소년들과 폭매의 정예집단과 매치를 이뤘습니다. 약 1헤르 정도의 거리에서 관찰하고 있습니다."

덥수룩한 털로 뒤덮인 요괴 수사관의 말에 마나 수신기에서는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조용히 관찰해. 더 들키지 말고. 이번 사건을 제대로 잘 처리만 하면 너는 승계하는 거야.


"예."

그가 슬며시 배에 손을 넣자 담배 한 개비가 딸려 나았다. 그는 대기에 너풀거리는 연기를 연신 뿜었다.

"캥거루 한 번 출세 좀 해보려니... 별 미친 것들이.."

배에 있는 주머니를 새끼 보호에 쓰지 않고 영 엉뚱한데 쓰고 있다. 본디 생물이란 크게 쓰지 않는 부위는 퇴화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캥거루 요괴들의 주머니는 전혀 퇴화 하지 않았다. 아마 저런 데라도 쓰기 때문이리라.

이번 일에 요괴 제국 소속 경관이 연관 됐다. '크레티스' 라고 불리는 제국 치한 유지대에서 이렇게 시끄러운 일에 끼어들지 않을 리가 없다.

신고만 수백 건이 들어왔다. 폭매와 소년 3명이 전투를 벌인다고.

누가 믿겠는가. 소년 3명에서 제국에서도 한 번에 쉽게 건들지 못하는 조직과 싸운다는 게.

제국 사정도 참 복잡하다. 놈들이 EG와 왕래하기 때문에, 무력으로 충분히 소탕할 수 있음에도 하지 못 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전쟁이 터질까 봐. 개척자 놈들은 어떻게 하면 전쟁을 할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놈들은 전쟁해서 생기는 영구적인 타격이 없다. 육체는 부활하며 언제든지 강해진다.

사실 제국 입장에서도 개척자를 빨리 말살해버리고 통제하는 게 당연하지만, 알 수 없는 윗선의 이유로 전쟁을 보류하고 있다. 다른 지대의 몇몇 제국에서는 아직 응답도 해주지 않고...

본래 레스토의 구역에 넘어와 눈에 띄게 난리 치는 개척자는 최우선으로 척살하는게 원칙이다. 그러나 상황이 애매했다. 그 눈에 뛰게 난리치는 놈들의 방식이 참 기묘하다.

남의 땅에 와서 골칫거리를 직접 털어주고 있다. 더하여 놈들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폭매는 제국의 골칫거리 중 하나여서 제국이 직접 나서기에는 참 애매한 위치에 있던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명분도 없는 놈이 와서 탈탈 털어주시겠다, 제국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어부지리를 노려 볼만도 하다.

그런데도 윗선에서는 바로 행동보다는 대기와 기록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 싸움을 말린다는 명분으로 개척자와 폭매를 모두 처리하면 얼마나 좋은가.

"하여튼 늙은 분들이 옥좌에 않아서 탁상공론이나 하고 있으니 언제나 죽는 건 우리 아랫놈들이지."

그렇게 투덜대며 수사기록을 작성할 때였다.

우웅.

일순간 머리 위에서 포탈이 열리더니, 한 소녀가 쿵 떨어져 내렸다.

"으앗!"

소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섰다. 그런데 밑에 누군가 깔린 것 아니겠는가.

"아, 죄송합니다."

수사관은 코트를 탁탁 털며 일어섰다.

"뭐, 뭐야.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야"

공간이동마법이 아무나 가능한 줄 아나. 분명 방금 그건 공간을 일그려 뜨려 이어버린 공간이동마법이었다. 최소 메간트급에서 최상급에 달아야만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상위마법이다.

그때였다.

한 화살이 날아와 그의 수사기록을 꿰뚫고 지나간다. 수사가 기록된 메모장은 허망하게 타들어 갔다.

그와 동시에 수면마법과 기억상실마법이 동시에 걸린다.

캥거루 요괴는 탁 쓰러져 잠이 들었다.

여전히 공간은 연결되어 있다. 묠드가 공간의 틈을 통해 쏜 화살과 마법이었다. 묠드는 정말 중대한 일이 아닌 이상, 숲을 나오지 않는다. 숲에서 태어난 반요정의 법칙이다.

반요정은 강에서 태어났으면 그 강을 떠나지 않고, 산에서 태어났으면 그 산을 떠나지 않는 법이다.

묠드가 숲을 나왔던 적은 한 번있으나, 5000년 전 개척전쟁 당시 숲이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살생하진 않았다. 진짜에게 미움받아 어디 쓸데는 없으니까."

"진짜라니요?"

"여튼 그런 게 있다."

월묘는 말을 놓고 감각을 넓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시릴듯한 한기.

"이게 뭐야..."

거대한 빙검이 꽂혀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그 빙검은 주변을 초토화 시켜놨다.

"안 녹아?"

저 정도 지각변동이라면, 얼음은 깨지거나 녹아야 정상이다.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전환되며 나오는 화력은 무시 못 하니까.

그런데 저 큰 검들은...

"오히려 녹지 않고 주변 공기를 얼리고 있지. 네 오라비의 작품이다."

월묘는 기감을 최대한 넓혔다.

"하나가.. 더 있어?"

"눈이 안 보이니 원. 12개다."

월묘의 뺨을 타고 땀이 흐른다.

"말했잖아. 치열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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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월묘 15.10.03 309 7 12쪽
86 월묘 15.10.03 328 7 20쪽
85 월묘 15.10.03 263 5 12쪽
84 월묘 15.10.01 273 4 16쪽
83 월묘 15.09.28 382 8 11쪽
82 월묘 15.09.27 285 10 15쪽
81 월묘 +1 15.09.26 389 7 12쪽
80 월묘 15.09.25 355 8 13쪽
79 월묘 15.09.24 301 6 20쪽
78 월묘 15.09.22 261 7 12쪽
77 월묘 15.09.22 321 7 14쪽
76 월묘 +1 15.09.20 446 6 12쪽
75 월묘 15.09.20 328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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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묘 15.09.17 309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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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월묘 +1 15.09.12 345 7 10쪽
67 월묘 15.09.12 370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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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월묘 15.07.25 365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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