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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99,736
추천수 :
2,582
글자수 :
751,747

작성
15.09.20 23:57
조회
445
추천
6
글자
12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분명 차디찬 땅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을 터이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기어가던 벌레를 보며 눈이 감겼다. 볼에 느껴지던 따스한 땅의 감촉까지 기억한다.

마지막에 봤던 월묘까지도..

섬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욕지거리부터 나올 것 같았다. 멍청한 제안을 하고, 민폐가 된 자신에게 분노했다.

구름으로 가득한 공간. 마치 은치를 처음 만났던 그 장소와 비슷하다.

섬천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넓게 펼쳐진 구름은 한없는 포근감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보인다. 그러나 섬천의 분노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까아악!"

귀를 찢는 날카로운 동물 울음소리에 섬천이 고개를 돌렸다.

"까아악! 천! 천!"

어깨에 어디선가 날아온 은치가 앉아있다. 섬천은 화를 억누르고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여기 왜 있습니까?"

"천.. 아파?"

섬천은 은치를 마구 쓰다듬었다. 은빛털이 손을 거쳐 갈 때마다 반짝인다. 은치는 목을 갸우뚱하며 부르르 떨었다. 기분 좋은 모양이다.

"네, 도와줘야 하는데 또 이런 이상한 곳에 와서 곤란합니다."

어쩌면 이미 상황은 끝났을지도 몰랐다. 모두 죽었을지도. 아니, 그래도 죽지는 않았나 보다. 부활이 아닌 자각몽 같은 여기에 의식을 차린 걸 보면.

"내가 도와줄게... 까아악! 그러면 이길 수 있어."

"말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섬천은 손에 있는 반지에 눈이 갔다.

'고장 났나?'

반지에는 은은한 빛이 새 나오고 있다. 섬천은 뭔가 불안감을 느꼈다. 언제나 반지에게 느껴지던 괴리감. 마음을 읽은 것일까, 반지의 변화는 심각해져 갔다.

파아아!

막대한 바람이 반지에서 뿜어져 나온다. 섬천은 갑작스런 바람에 손을 앞으로 쭉 뺏다. 섬천의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고운 이마가 드러난다.

"까악! 시원해!"

은치의 털도 물결치며 휘날린다.

바람은 거 세 저만 갔다. 섬천은 왼손으로 눈을 가렸다. 강력한 바람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사방으로 바람을 뿜어대기에 어딘가로 날아가지 않는 게 다행이다.

"까아악!"

어깨에 앉은 은치의 발톱이 섬천의 어깨를 파고든다. 레벨은 낮지만 A급 개척자인 만큼 어느 정도 방어력이 있기에, 웬만한 근력으로는 섬천의 어깨에 칼을 찔러넣기도 힘들다. 이건 그만큼 은치의 힘이 증가했다는 증거이니라.

언제 한번 은치가 앉을 수 있도록 견장를 구해야겠다. 어차피 이 정도 힘이면 금방 부서질 것 같지만.

'점점 더 심해진다.'

바람이 정말 심하다고 생각했다. 어지간한 태풍에 뛰어들어도 이렇게 풍압이 강하진 않을 거다. 이 반지, 정말 괴물 반지이긴 한가 보다.

콰아아아!

"은치야, 내 뒤로 빨리 물러나 십시오."

슬슬 겁이 났다. 여기서 계속 심해지면 사지가 뜯겨나갈 위험도 있다. 은치는 바람막이가 된 섬천의 뒤에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그렇게 강해져만 가던 바람이었다.

파앗.

이제는 빛까지 동반한다. 순간, 마치 반지가 바람으로 변해 섬천의 손에서 흘러나왔다.

바람이 된 반지는 휘몰아치며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바람으로 사람이 만들어 짐과 동시에 강력한 바람은 멎어갔다.

바람의 휘몰아침이 끝나자 은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바람놀이! 바람놀이!"

누구는 식겁하고 죽을 각오를 했지만, 녀석은 놀잇거리밖에 되지 않았나 보다.

가끔 보면 황당하지만 귀여운 구석도 보였다. 고기라도 꺼내서 주고 싶지만, 이상하게 여기는 인벤토리가 작동하지 않았다.

장난은 거기까지 하고, 섬천은 눈앞에 인간에게 집중했다. 이 반지가 친 사고가 한두 개가 아니므로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저 최악의 상황만은 생각해두고 행동할 뿐이다.

"누구십니까."

생긴 건 섬천만큼이나 날카롭게 생긴 놈이다. 소년이라기보단, 청년에 가까운 모습이다. 키는 섬천보다 머리 하나는 더 얹어놓은 만큼 더 컸다.

"인간."

첫 대답부터 딱 끊어 말한다. 섬천은 한쪽 입고리를 올렸다. 하나에서 열이 묻어나온다고, 예사롭지 않은 녀석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반지. 반지 속에 살아있는 열 한번 째 바람."

여전히 딱딱하다. 목소리마저 이렇게 끊어서 말하기 위해 개조된 듯 굵직하다. 그렇지 않아도 단단히 꼬여 있었던 섬천은 눈살을 찡그렸다.

"시험, 조건충족."

섬천은 딱딱 끊어서 말하는 이 답답한 인간에게 대화하기를 포기했다. 마치 기계인 듯 말을 걸지 않아도 할 말은 다 했다.

"상상하라. 휘날려라. 복제하라."

순간, 그의 목소리가 변한다. 사람을 억누르는 힘이 있는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은 카리스마가 묻어나 있다.

섬천은 흠칫 놀라며 그를 노려봤다. 그가 손을 들었다.

휘잉.

작은 바람이 그의 손에 감긴다. 바람은 마치 장갑이라도 되는 긋 그의 손 주위만 둘렀다.

바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수시로 변하는 바람의 모양을 상상하며 손에 고착시켜야 하는 기술.

섬천은 경계하며 검을 들었다.

"따라 해라."

섬천을 꾸짖듯 기계적인 목소리가 다시 뭔가를 요구한다.

"따라 하지 못하면 여기를 빠져나갈 수 없다."

그놈의 공간 협박. 은치 때도 그랬다. 공간을 위주로 한 협박을 아스페티아에서는 즐기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열이 올라온 섬천이다. 이따위 장단 맞추기는 금방하고 떠나버리고 싶었다. 여기서 지체해서는 안 될 몸이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한다.

섬천은 즉시 움직였다.

"됐습니까."

시험이고 뭐고 화가 머리 끗까지 올라 눈 앞이 벌겋게 보이는 섬천이다. 말에 분노가 베인 체 그를 따라했다.

휘이잉.

섬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에 바람을 휘감았다.

"통과."

휘우우웅.

바람이 불어 인간의 전신을 휘감는다. 그에 그치지 않고, 바람은 마치 층을 나뉘듯 계층을 정해 부위마다 다른 방향으로 맴돌았다. 허리의 풍향은 왼쪽이지만, 가슴의 풍향은 오른쪽인 식이었다. 마치 강력한 바람의 갑옷을 입은 것 같았다.

특수 마나는 상상력과 좋은 머리의 연산능력을 요구한다.

좋은 머리가 없어도, 특수 마나를 몸에 쌓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응용을 하려면 좋은 머리가 필요하다. 적어도 방금 그가 보여준 것처럼 하려면 이 분야 천재 정도의 연산능력이 필요하다.

휘이잉.

"됐습니다."

자기 몸에 씌우고도 남아 은치에게 까지 바람의 옷을 입혔다. 심지어 그러고 나서 이중으로 바람을 덧씌어 입기도 한다.

미친듯한 연산력과 상상력.

"통과."

그러나 그는 무덤덤했다. 마치 기계처럼 알려주기만 할 뿐이었다.

"다음.."

그렇게 섬천은 녀석의 행동을 무작정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가면 갈 수록 풍의 마나 응용은 극악할 만큼 어려웠으나 섬천은 이를 악물고 따라 했다.

"다음.."

섬천은 검과 풍의 마나를 이용해 '바람 가르기'를 시전할 수 있다. 섬천이 시전한 바람 가르기는 마하 3 이상의 속도로 일직선으로 나아가 목표를 벤다. 때에따라 방향전환을 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우선 주변 공기의 대류현상을 머릿속에서 연산해 둬야 한다.

목표까지 바람이 아무런 영향 없이 일직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적절한 때와 공간을 찾아야 했으니까.

대류의 영향을 적은 곳을 찾아 바람 가르기를 시전하더라도,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영향이 있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바람을 다잡아주는 연산을 거친다.

마지막으로 바람의 방향전환을 시전하면, 상상과 계산은 더욱 복잡해진다.

조금의 움직임에도 상상하며 풍의 마나를 덧씌어야 하는 게 바람이다.

섬천의 바람 가르기는 마하 3의 속도로 움직인다. 매 초마다 수백 번의 상상을 하고, 연산해야 하는 속도.

풍의 마나를 가진 이가 하늘을 날면 대접을 받고, 현란하게 사용한다 같으면 바로 천재로 인식되는 게 그냥 있는게 아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현대인들은 대류를 예측해 기후변화를 알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돌린다. 그 복잡한 연산은 슈퍼컴퓨터라도 뚝딱 나오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체된다.

유체 방정식으로 공기의 움직임을 연산하는 것은 여러 방정식중 최고난도에 속한다. 풍의 마나가 있는 이상, 연산에 필요한 조건을 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연산을, 섬천은 단순 머리만으로 해치워 버린다. 상식을 뛰어 넘어버린 재능. 지구에선 본격적으로 개화하기도 전에 죽어버렸던 이 재능. 이 소름 끼치는 재능이 아스페티아에 피어났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렵지 않았다.

그의 모든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분노로 머리가 가득차 있어도 지장이 없었다.

휘이잉.

작은 태풍 다섯 개가 섬천의 발밑에서 피어난다. 그 태풍은 순식간에 바람의 옷이 되어 섬천을 감싸 올렸다. 그러나 바람의 세기는 바뀌지 않는다.

섬천이 그 몇 번을 움직임에도, 바람이 마치 몸에 완벽히 입혀진 것처럼 아무런 이상이 없다.

"다음은 뭡니까?"

"끝. 시험은 끝."

그는 섬천에게 뭔가를 건넸다.

"열한 번째 바람. 주인에게 전달 완료. "

놈이 건넨 것은 작은 바람이었다. 섬천이었기에 느낄 수 있는 작은 바람. 고요함이 깃든 것 같은 그런 바람이었다.

휘이잉.

"아!"

그 바람이 마치 먹이를 본 늑대인 양 섬천의 배로 돌진했다. 섬천은 놀라며 막으려 했지만, 바람은 배에 통과하듯 들어가 풍의 마나 가운데 자리 잡았다.

특수한 상황에도 아무런 시스템의 알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풍의 마나 전달 완료. 천천히 본래 마나와 동화됨. 억지로 사용 가능. 그러나 억지로 사용하면 한 달 동안 본래 마나로 동화정지."

딱딱하지만 섬천은 대충은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 배 속에 있는 거는 지금 내 거고... 본래 풍의 마나와 동화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잠깐 억지로 힘을 끌어다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한 달 동안 본래 마나와 동화가 멈춘다는 겁니까?"

그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몸을 움직여 은치의 머리에 손은 얹었다.

"일시적, 동화(同化) 개방."

파아아앗.

은치의 은빛 털이 찰랑이며 몽환적인 빛을 뿌린다. 은치는 부르르 떤다.

"천! 나도 도와줄게, 잠시동안 이지만 도와줄 수 있어!"

은치는 찬란한 빛 그 자체로 변화한다. 바람과 구름을 꽤뚫는 그 빛은 섬천의 심장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휘이잉.

소년의 몸이 떠오르며 머리칼이 가볍게 춤을 춘다. 마치 심장이 떠오르듯 가슴을 쑥 내민 채로 소년은 떠오른다.

공중에서 빛이 반겨준다.

빛은 꿰뚫고, 소년의 심장은 반응한다. 심장 소리가 구름을 뒤흔든다. 마치 바람이 세상의 태동처럼 박동한다. 압축했다가 방출하기를 반복한다.

소년은 어머니의 뱃속의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다.

파아앗!

"계승완료."

인간의 몸은 다시 반지로 되돌아갔다.

소년의 의식은 깨어난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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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월묘 15.10.03 308 7 12쪽
86 월묘 15.10.03 327 7 20쪽
85 월묘 15.10.03 262 5 12쪽
84 월묘 15.10.01 272 4 16쪽
83 월묘 15.09.28 382 8 11쪽
82 월묘 15.09.27 284 10 15쪽
81 월묘 +1 15.09.26 389 7 12쪽
80 월묘 15.09.25 354 8 13쪽
79 월묘 15.09.24 300 6 20쪽
78 월묘 15.09.22 260 7 12쪽
77 월묘 15.09.22 320 7 14쪽
» 월묘 +1 15.09.20 446 6 12쪽
75 월묘 15.09.20 327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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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월묘 15.09.17 30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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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월묘 +1 15.09.12 345 7 10쪽
67 월묘 15.09.12 369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65 월묘 +2 15.07.29 456 10 12쪽
64 월묘 15.07.25 364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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