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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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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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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747

작성
15.09.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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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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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3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상태가.. 상태가 어째서 저런 거죠?"

묠드는 짧게 혀를 차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숲의 반요정 주제에 담배라니, 아쉽게도 월묘는 그런 아쉽잖은 것에 신경 쓸 정신은 없었다.

"환각 종류의 마법에 걸린 것 같다. 의식 속 직접적인 아픔을 꺼내서 혼돈에 빠뜨리는 건데 용케도 잘 움직이고 있어. 정신력 하나는 상상을 초월했다, 초월했어."

묠드는 재떨이에 담배를 탁탁 털고 다시 입에 물었다. 담배 연기가 공간의 틈을 타고 넘어와 코를 자극한다. 갑자기 기분이 풀리는 것이, 담배라기보단 마약에 가까워 보였다.

묠드는 슬쩍 이마를 누볐다.

"저건 성가실 텐데.."

마법사의 환각 마법이 없어도 십중팔구 죽으리라 생각한 묠드다. 잔혹하지만 이 아직 여린 요정의 각을 잡기에는 그걸로 충분하다 느꼈다.

'그리고...'

한 번 저렇게 죽여둬야 '영웅들의 위대한 계획'에 차질이 없다. 감정적인 요소는 세상에 통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각골 시키는 게 편하다.

'정해진 것 외에 도와줄 필요는 없다.'

방관자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역활이 끝난다. 용병왕의 충동적인 행동 또한 계획에 들어가 있던 것이다. 그래서 은치를 이용해 그를 구름속에 푹 재워놓은 것이고.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다만, 흑미호는 아니다. 정말 큰 변수가 이거다. 그 저주받은 여우는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이맘때쯤 공호는 그저 삼미호 였어야 했다. '여우구슬'을 품은 평범하지 않은 삼미호긴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은 괴이하게 변했다. 여우구슬을 품은 흑미호? 욕지거리 나오는 조합이다. 만약 육미호가 이 상황을 대면한다면 뭐라고 할까.

흑미호가 됐다면 반은 미쳤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냥 된 것도 아니다. 몸 대부분의 마나 페인이 뚫려있다. 그리고 묠드도 몰랐던 비밀의 마나 페인까지도.

'여기서 저런 마법으로 정신적 타격을 계속 가한다면...'

신중해야 한다.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영혼까지 완전히 물들여져서 계획이 파탄 날지도 모른다. 지금의 공호는 니트로글리세린이다.

묠드는 뭔가 결심한 듯 월묘를 불렀다.

"아이야."

"네."

"만약 네 오라비의 상황을 나아질 수 있게 한다면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느냐."

말투가 오락가락 한 묠드다. 이런 식으로 말하니 마치 신화 속 근엄한 영웅 같다.

월묘가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마구 끄덕인다.

"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충동적인 대답이었다. 말을 끝낸 뒤에야 월묘는 뭔가 찝찝한 얼굴을 해 보였다.

"살생이라도?"

가족을 구하는 대신 누군가를 죽인다. 가장 어려운 문제가 월묘에게 닥쳐온다.

"이대로 가면 다 죽을 거다. 네 친구, 두 오라비."

아니.. 라고 대답했겠지. 며칠 전만 했어도. 그러나 월묘에게 근래 닥친 일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하여도 결론은 살생은 안 된다 였지만.

"장담하도록 하지. 녀석를 죽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일 거야. 그리나 죄책감 따위는 남지도 않을 거야. 오히려 오라비를 구했다는 후련함을 얻게 될 거야."

월묘는 질문하려다 말았다. 이제 입만 아프다.

"그럼 제가 죽일지 안 죽일지 보고서 선택이 가능하다는 건가요?"

"그렇지."

어렵다. 옛날에 질문받았던 '강에 빠지면 누구부터 구할 거냐'라는 문제만큼 월묘에게 난해했다. 월묘는 그 문제를 처음 받았을 때 약 나흘 동안이나 고민했다.

그래도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

"누군가를 죽이는 건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볼게요. 누군지는. 제가 죽여도 후회가 남지 않는 생물이 뭔지."

묠드는 희미하게 웃었다.

우웅.

적당한 빛이 묠드의 손에서 피어난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생물처럼 빛은 점점 더 밝아져 갔다.

묠드가 빛이 충만한 손가락을 탁 퉁겼다. 털썩, 월묘의 몸이 바닥에 힘없이 쓰러진다.

묠드는 활을 뽀득 닦으며 말했다.

"들어간 이상 죽이지 않으면 나오지 못할 테지만.."

월묘가 사라지자, 묠드는 물끄러미 쓰러진 섬천에 집중했다. 이상한 기류가 기감에 잡혔기 때문이다.

그러자 희미하게 빛나게 있는 섬천의 반지가 보였다.

"고놈, 제대로 열 받았군."

묠드는 한숨을 쉬었다.

"하필 개념도 없는 놈이 되어서, 뭔 관찰을 하라는 건지... 지 멋대로 가서 지 멋대로 화내는 꼴 하고는 쯧쯧."

묠드는 통쾌한 감정을 숨기며 괜히 섬천을 나무랐다. 나이가 몇 만년 단위로 먹었으니, 주책없게 보이면 안돼니까.

"인명재천이니, 판단은 반지의 것이지만 나는 왜 코가 꿰이는 건지.."

이 급박한 상황에도, 묠드는 노인복지에 관심이 없는 영웅들을 한탄하기만 하였다.


#


공호는 숨을 끊어 들이켰다.

"죽이라니까. 죽여! 제발 죽여 좀!"

환상이 지겹도록 유혹한다. 인내는 쓰다지만 그 열매는 달댔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인내에게 열매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풀어버리고, 죽이라니까. 그리고 여기를 빠져나가. 섬천 오빠를 또 죽일 거야? 여전히 감정에 휘둘려서 섬천 오빠를 죽이려고 그러는 거야?"

월묘.. 아니, 환상의 말이 맞다. 죽을지도 모른다. 섬천이가 나 때문에 또 한 번 더 죽을지도 모른다.

월묘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로 어쩔 수 없다. 섬천에게 비난받을 지도 모른다. 어째서 죽였냐고. 하지만 받아들이겠다. 조금 만 더 강했더라면..

언제나 부족한 건 힘이다. 그리고 힘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고통이었다.

공호는 살의를 풀었다.

파앙.

다가오던 레스토가 주춤한다. 기세가 달라진다. 이제까지는 죽지 않는다고 안심하고 달려들었지만, 지금은 숨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목이 날아갈 분위기다.

"그래, 이제 죽여! 이제 죽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나는 이해할게. 그러고 나서 나에게 힘이 돼 준다면, 나의 장애물을 모두 그렇게 처리하기만 한다면.. 용서할 거야. 그 때의 그 일 용서받을 수 있어! 죽이면 돼! 뭐든 힘으로 용서받을 수 있어!"

환상이 부르짖었다.

공호는 단도를 손에 꽉 쥐었다. 살기가 눈위에 드러난다. 공간을 살기로 가득 메어 공호만의 것으로 만든다.

세상이 느려진다.

공호는 사뿐히 걸어,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의 목에 단도를 대었다. 차가운 호흡이 한번 흩뿌려진다.

긋는다면 이제 끝.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어지고 마구잡이로 죽일 것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는 스스로 고삐를 멜 수 없는 것 처럼, 절제란 것이 찢겨 사라진다.

'멍청하다. 내가 와 놓고는 결국 제어하지 못해 저리르는 군.'

공호가 단도를 지그시 누를 때였다. 모든게 끝날 것 같은 때였다.

"잠깐! 아냐. 죽이지 마아아!"

또 다른 환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 환상은 조금 달랐다.

빛이 난다.

그저 환하디환한 빛이 난다.

어둡고 깊은 호수를 밝혀주기라도 하겠단 듯 밝은 빛이 월묘에게 풍겨 나왔다. 공호는 왠지 모르게 기뻤다. 저런 목소리로, 저런 말투로 죽이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게 이렇게 기쁠 줄은 몰랐다. 중재해 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지 몰랐다.

퍽.

단도를 빼고 놈의 뒷목을 손으로 쳐 기절시켰다.

"...너 였네. 이렇게 오빠를 다그친 녀석이."

환상이.. 아니, 월묘가 환상에게 다가간다. 환상은 월묘의 빛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괴성을 질렀다.

"아아악! 뭐해. 어서 죽여. 그대로 다시 그어버리라고! 그래야 용서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평생 내 목을 조른 걸 원망할 거야아아!"

월묘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눈을 한 체 환상에게 다가갔다.

"나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아. 그리고 살생을 바라지도 않고."

공호는 느꼈다. 월묘다. 이게 진짜 월묘다.

환상이 공호에게 다가왔다. 월묘를 쏙 빼닮은 녀석은 공호의 목을 잡았다.

"이.. 이렇게 조였다고? 죽을 것만 같이 무서웠어. 용서받을 수 있을 거 같아?"

월묘가 고개를 끄덕인다.

"용서받을 수 있어."

"아니야! 죽이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어."

환상은 넘어졌다. 마치 맹수라도 본 듯 앉은 체로 몸을 움직이기 위해 꿈틀거렸다.

월묘는 차가운 눈을 내렸다. 이어 알 수 없이 뜨거운 뭔가가 뚝뚝 월묘의 눈에서 떨어져 내렸다.

"아, 가시구나... 피지도 않은 검은 장미에게 가시가 달렸구나."

환상이 방방곡곡 날뛰며 비명을 질렀다.

"뭐가! 뭐를 이해하는 척 하는 거야? 그거 참 역겨워."

"죽이는 게 무서워서, 그러나 그리하면 용서받을 거라 생각하다니.. 너도 참 불쌍하네"

"하나도 불쌍하지 않아! 이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어. 먹지 않으면 먹는 이기주의에 찌들어 가고 있는 세상이었다고!"

환상이 주춤한다.

공호는 순간 흐릿해진 환상을 두 눈에 담았다.

"뭘 봐! 어서 죽여! 하나라도 죽이란 말이야!"

누굴까. 어디서 온 녀석이 저렇게 울부짖을까. 공호는 저렇게 울부짖는 월묘가 남이 아닌 것 같았다.

"뭘 안다고 네가.. 어?"

싸아아.

환상의 몸이 한 줌의 빛의 알갱이로 변해간다. 발끝에서부터 천천히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인격은 피어나고 박혀있던 흐지부지한 자아는 비워간다.

환상이 애원했다.

"나를 죽이지 마. 월묘를 죽이지 말라고! 대신 저 녀석을 죽여. 아무나 잡고 죽이면 나를 살려 줄 수 있어!"

공호의 손 속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부드러웠다.

"죽이는 게 아냐. 편히 쉬게 해 주는 거야. 이제 죽이지 않아도 돼. 걱정 없이 쉬어도 돼."

"아..."

공호는 그 말에 가슴이 찌릿함을 느꼈다. 단지 헛것들의 이야기일 뿐일진대, 심장이 휩슬려 버린다. 해일에 쉽슬린 바다의 지배자 상어가, 육지의 따스한 햇볕을 맞이하며 허무맹랑하게 말라죽는다.

"죽이지.. 마."

환상은 빛으로 변한다. 고통에서 탄생한 환상이 빛으로 사라져 간다.

마법이 풀렸다. 마법사는 깨져버린 정신계 마법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맞이한다. 그 마법사의 추악한 감정 중 하나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공호가 깨버린 그 감정이.


-'칭호:악몽을 깨는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월묘는 이끌었다.


-'칭호:악몽에게 손 내미는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월묘가 정신이 들자마자 알림을 보며 후련한 표정을 지었다.

공호는 볼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손을 대었다. 그러자 차갑게 식어버린 검은 액체가 묻어나왔다.

'뭐지?'

갑자기 왜 이런지 모르겠다. 소멸한 것은 환상일 뿐인데 왜 이쪽에서 속이 시원한지..

당장이라도 쓰러질 몸이다. 체력은 더 이상 나를 돕지 못하고 움직일 때마다 괴롭히기만 한다.

놈들의 우두머리가 외쳤다.

"조금만 더 밀어붙여라! 적당히 때가 되면 밀어버릴 테니까."

괴로운 그런 환상이 아니다. 정말 부드러운, 그런 환상을 본 기분이다. 그 빛이 나던 월묘는 뭐였을까. 마치 보듬어주기라도 하듯 순식간에 왔다가 갑자기 사라진 토끼.

'나중에. 지금은 정신 팔 때가 아니다.'

공호는 적을 제압하는 데만 집중했다. 여기는 현실.

커다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곧 죽을 거라는 확신이 선다. 이제는 제대로 도망이나 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속이 시원할까.

놈들을 죽이지 않을 때마다 손해라는 기분이 속에서 솟구쳐 올라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은 오히려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죽이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편한 것인지 몰랐다.

움직임을 변화시킨다.

죽이는 것에만 최적화된 몸이, 제압만 하는 방면의 몸을 얻는다.

힘의 효율을 바꾼다. 필요한 곳에, 딱 필요한 만큼만. 에너지가 효율적으로 소모된다.

움직임이 부드럽다. 자연스레 파고 들어가서 가벼운 손동작으로 관절을 꺾어버린다.

물처럼 힘을 흘리고, 해일처럼 몰아붙인다.

공호는 대략 남은 놈들의 수를 세려 보았다. 그리하여도 땅을 메우는 엄청난 수의 레스토들. 체력이 남아있을 때 한 놈이라도 더 잠재워야한다. 공호는 남은 수를 모두 꺼내보았다.


-칭호, 바람을 밟는 자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민첩이 10분 간 30% 상승합니다.


빨라지나, 몸은 아직 부드럽다. 30%의 효과는 엄청났다.

공호가 발을 조금 비튼 것처럼 보였을 때.

슈욱.

B급 실력자 50명의 팔이 비틀어지며 제압당한다. 더 압도적인 힘은, 놈들의 마음을 제압했다.

반대로 상황의 변화는 급조된 마음을 가라앉힌다. 공호는 환상이 사라진 이후, 강박감 같은 뭔가가 불사 질러졌다. 몸도 마음도, 훨훨 나는 기분이다.

휘둘러지는 몽둥이의 밑면을 눈으로 감상한다. 그리고 놈과 나의 빗면에서 놈을 친다. 움직임이 시원하다.

차가운 탄산음료라도 마신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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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월묘 +3 15.10.07 368 7 12쪽
90 월묘 15.10.06 412 4 12쪽
89 월묘 +1 15.10.06 311 5 7쪽
88 월묘 +1 15.10.04 330 7 15쪽
87 월묘 15.10.03 308 7 12쪽
86 월묘 15.10.03 327 7 20쪽
85 월묘 15.10.03 263 5 12쪽
84 월묘 15.10.01 273 4 16쪽
83 월묘 15.09.28 382 8 11쪽
82 월묘 15.09.27 284 10 15쪽
81 월묘 +1 15.09.26 389 7 12쪽
80 월묘 15.09.25 354 8 13쪽
79 월묘 15.09.24 301 6 20쪽
78 월묘 15.09.22 260 7 12쪽
77 월묘 15.09.22 320 7 14쪽
76 월묘 +1 15.09.20 446 6 12쪽
» 월묘 15.09.20 328 7 13쪽
74 월묘 15.09.19 326 9 14쪽
73 월묘 15.09.17 304 8 11쪽
72 월묘 15.09.17 308 9 12쪽
71 월묘 15.09.15 283 10 11쪽
70 월묘 15.09.14 551 7 13쪽
69 월묘 15.09.13 414 10 17쪽
68 월묘 +1 15.09.12 345 7 10쪽
67 월묘 15.09.12 369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65 월묘 +2 15.07.29 457 10 12쪽
64 월묘 15.07.25 365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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