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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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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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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5.07.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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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이 놈들.. 폭매 입니다."

섬천은 월묘를 잡았다.

한 번 엮인 가족으로 엮인 놈들과 또다시 가족으로 엮였다. 우연인지 뭔지, 확실한 것은 운도 없는 녀석들이란 것이다.

순식간에 시력을 잃은 놈들은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 한 놈만이 고개를 들고 으르렁거렸다.

전직 A급 용병, 폭매의 제 5대장.

그 빠른 얼음을 손으로 퉁겨 내 버린 그는 쇠사슬을 손에 나부끼고 공격태세를 갖췄다.

공호는 월묘를 돌아봤다.

여전히 한결같은 월묘였지만, 유독 월묘의 목이 신경 쓰인다.

공호의 눈에만 보이는 월묘의 목의 붉은 손자국 환상. 목을 졸랐었다. 5년 전에. 얼마나 쓰릴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았을까.

정작 자신을 상처는 돌아보지도 않은 체, 공호는 이제껏 걱정했다.

그러나 방식이 바뀌었다. 흑미호가 되며 모든 게 차가운 돌덩이가 되었다. 단순 이분법 사고방식이 머리를 지배했다. 상처가 될 만한 건 모두 죽여버린다. 그게 지금 방식이다.

구태여 공호가 말하지 않아도 섬천이 움직였다.

"자, 오빠들 왔으니 라면 끓이러 가야지 않겠습니까?"

어느샌가 월묘의 손에는 섬천과 진이 꽉 잡혀 있었다.

쩌저저적.

거대한 얼음의 땅이, 모든 막사를 들어 올린다. 섬천은 월묘와 진과 함께 날아올라 떠오른 막사 위에 착지했다.

"어, 어디 가는 거야?"

"그냥, 조용한 데로 갑니다."

분노가 보인다. 발버둥치는 시린 분노가. 늘 그랬다. 공호는 정말 무서운 것은 가족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지금, 공호가 있는 저 장소는 마치 격리된 하나의 공간같았다. 소리없는 침묵의 분노가 공기의 대류현상까지 만들어낸다.

폭매와 공호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리. 그렇게 어두운 구름에 삼켜질 때 쯤.

공호는 검은 장갑을 꼈다.

철그럭.

쇠사슬을 손에 돌돌 감은 남자는 물었다.

"폭매의 무서움을.."

지잉.

공중이 빙결된다. 수천 개의 빙검(氷劍)이 공호를 선회하며 나타난다.

공호가 걸었다.

푸욱.

한걸음에 한 놈씩, 얼음의 검이 내려쳐 심장을 관통한다. 눈먼 이들은 관통된 심장에 비명을 멎고 숙연히 고개를 떨군다.

살기가 공간을 찍어누른다. 눈빛에 담긴 싸늘한 의도가 심장을 멎게 한다.

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즉, 그들의 죽음은 더욱 빨리 다가온다. 심장을 앗아가는 사신의 걸음걸이에 쇠사슬을 쥔 사내가 신음을 흘렸다.

저런 어린 여우요괴에게 겁을 먹은 자신이 어째서인지 너무 자연스러웠다. 저런 살기와 눈빛을 과연 누가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푸욱.

전장은 검으로 가득 차고, 부러지지 않은 검들은 오로지 심장만을 꿰뚫는다. 한 놈이라도 놓지지 않기 위해. 심장에 파고든 검은 영혼까지 얼려 버릴 듯 검의 냉기는 뜨거운 피까지 얼려버린다.

철컥.

마침내 동공에 맺힌 상이 보일 때까지 가까이 다가선다.

쓰윽.

마침 시간이 다 된 공호의 문양이 피부를 불사르며 나타난다. 개척자를 상장하는 문양. 공호의 문양, 구름에 꼬리를 숨긴 여우 문양이 드러난다.

"개, 개척자?"

미동 없는 공호의 눈빛이 공포를 찌른다. 입술과 같이 부드럽고 약한 공포란 것은 자극만 하면 반응이 온다.

"등급이 뭐지?"

사내는 물었다. 강한 개척자에게 육체 등급이란 자부심과 같은 것이니까. 그러나 그 자부심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빈틈을 만들게 되리라.

'미친.'

반응이 없다.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녀석은 단도를 들어 올렸다.

'막을 수 있다.'

저 녀석은 여우 요괴고 이쪽은 이종족. 그것도 팔이 8개나 달린 전투에 특화된 이종족이다. 마나를 끌어 올린다. 여덟 개의 팔이 쇠사슬 속에서 춤을 춘다.

촤르르륵.

일직선으로 쇠사슬이 뻗어 나간다. 심장으로 시작한 자 심장으로 벌하리. 정확히 공호의 심장을 겨눈다.

쇠사슬과 가슴이 맞닿는다 생각한 순간.

'어?'

쇠사슬은 허공을 꿴다. 좌측에서 나타난 공호가 움직인다.

팔목, 명치, 허벅지, 두 번째 갈비뼈, 아킬레스건.

푸른 빛이 난다 생각한 순간, 푸욱 파고 들어가며 얼어간다.

"S급.."

"뭐?"

월묘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던 놈이다.

검은 살기가 눈빛에서 피어난다. 눈에 보인데도 이상하리 없는 살기.

"S급 고통."

투둑. 투두두둑.

한 번 본 고통의 원인은 잊을 수 없다.

그렇기에 닐은 정말 가르쳐선 안 될걸 가르쳐버렸다.

"마나 페인..."

녀석은 5초면 기절한다. 마나 페인을 뚫리면 모두 그리하니까. 기절하지 못한 공호는 특이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5초면 기절해 버린다.

그러나 5초면 맞보리라. S급 고통이 뭔지.

놈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대로 땅에 쓰러진다.

고통에 움직이지도 못하겠지.

역시나 비명조차 들리지 않는다. 조용한 고통을 맛보고 있음이라.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고통을.

"일, 이, 삼..."

천천히 초를 새 나갔다. 시계가 없어도 경험자는 초 단위의 시간은 정확히 잴 수 있으니까.

"사..."

놈이 조용히 눈물만 흘린다.

"오."

콰직.

놈의 몸속에 있던 공호의 얼음이, 몸집을 부풀린다. 투박함 없이 놈은 얼었다.

그리고 얼음은 깨졌다.

콰르르.

피가 얽혀있는 검은 장갑을 벗는다. 이것으로 피 냄새가 손에 베기는 일은 방지한다.

공호는 이 처참한 광경에 고요히 서 있었다.

다시 가서 월묘를 볼 용기가, 어째서인지 멈짓한다. 이렇게 일직선으로 누구나 죽여버리는 나에게 과연 뭐라고 할까.

쾅.

공호는 오른발로 땅을 한번 찻다.

쿠릉!

막강한 힘과 속도는 커다란 운동을 하고, 그 운동량이 지진을 만든다. 땅이 갈라지고, 물이 넘친다.

"어째서."

이정표가 필요했다. 그래서 월묘에게 왔다. 월묘는 지금의 나에게 넘칠 정도로 훌륭한 이정표니까.

"망설일까."

뒤를 돌아 걸었다.

시산을 넘고, 혈해를 건너올 때쯤.

쩌저저적.

거대한 얼음의 파도가 시체를 쓸었다. 파도는 시체들을 싣고 바다로 향한다.

시체의 땅이 감쪽같이 평범한 땅으로 위장한다.

피까지 얼어버려 혈흔 하나 없는 땅으로.


#


휘잉.

공중부항 하는 커다란 얼음 위에서 월묘는 멍하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이 먹칠해버린 시야는 세상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하늘을 떠다닌다는 느낌이 몸으로 전해져 왔다.

상당이 높았다. 그러나 춥지는 않았다. 아스페티아를 이해하는 것은 아직 어려우니 그려러니 했다.

신비로운 바람이 부드럽게 월묘를 매만졌다.

그 높던 구름이 발 아래에 있다.

구름을 꿰뚫지 못한 햇빛이 반사되며 살갗을 찌른다.

월묘는 어째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이유를 묻기보다, 막연히 내가 지금 볼 수 없는 세상을 물었다.

"구름이 보여?"

"응, 아주 몽실몽실한 구름입니다."

"태양은?"

"강대합니다."

월묘의 얼굴에 작은 그늘이 드리웠다. 섬천의 말투가 바뀌었다. 좀 더 건조하게 말라버렸다. 어렸을 때의 그 오빠 같은 느낌이 사라졌다.

기적적인 만남인데, 왜 이리 서먹할까. 섬천과 월묘라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월묘와 섬천은 본디 아주 친했다. 극과 극인 성격이 기묘하게 조화를 이뤄낸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 변했다.

"많이 변했습니까? 나."

"응."

너무 많이.

"월묘야, 라고 부르지 않아서 섭섭했습니까?"

월묘의 정곡을 찌른다. 가장 간단하면서 애매했던 감정이, 섬천이 말하며 부끄러우리 많은 확실해진다. 마음을 읽힌 것이다. 그러나 모를 거다. 나이로만 따지면 섬천이 더 어려졌단 사실을.

월묘는 열여섯, 섬천은 열넷.

공호와 섬천이 폴시아에 다녀오면서 난 3년이란 시간 격차가 상황을 기묘하게 만들었다. 나이로만 따지만 월묘가 공호보다 더 윗선이다.

섬천은 씨익 웃었다.

"괜찮지 않습니까? 이것도."

뭐가 괜찮다는 건지 모른다. 오랜만에 만난 오빠가 하는 말이었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8살 때 붉은 달이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지옥을 경험한 것도 아니고, 철이 들 만큼 나이가 든 것도 아니다. 그러고 나서 개척자가 됐을 때는 여덟 살이 아닌, 5년이 지난 열셋의 정신 연령이 깃든 체로 깨어났다.

그래서 월묘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족애가 부족했다.

심하고 거칠게까지 가족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포기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다.

섬천은 쓰러진 진을 보며 살벌하게 웃었다.

분위기를 바꿔볼까. 아니, 이제야 좀 물어볼까.

아까부터 묻고 싶어 입이 근질 거리던 게 있었다.

"원한다면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걸 노리고 물었다.

"월묘야?"

월묘의 어깨가 잠시 들썩거린다.

"어, 어, 왜?"

섬천은 슬쩍 기절한 진을 발로 꾹꾹 밟으며 말했다.

"아까 이 오라버님을 반겨주는 것보다, 이 녀석을 먼저 챙기던데..."

억지 미소 뒤에는 살기가 피어오른다. 공호 못지않은 살기가.

"이 새.. 아니, 어릴 적 친구가 어째서 먼저인지 말해주시겠습니까?"

"아, 맞다. 진! 얘 많이 다쳤어. 일단 얘부터 치료하고 나서 말해줄게."

월묘는 허둥지둥해 댔지만 어느새 섬천의 손에 들려있던 묠드의 포션을 뺏었다.

"이거 내가 좀 쓸게!"

"진과 사이가 많이 더 돈독해 진 것 같던데.. 친구 맞습니까?"

순간 대답하지 못한 월묘를 몰아세우듯 섬천이 더 집요하게 캐물었다.

종을 떠나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런 친구 맞습니까? 아무런 문제 없이 눈처럼 하얀, 그런 순백의 사이 맞는 겁니까?"

코에서 불이라도 나올 기세다. 월묘는 눈을 두 번 깜박거리고는 말했다.

"그냥 친구? 아주 친한 친구인데? 같이 얘들 돌보며 며칠 지내기도 했는데? 그러다 잠들면 나를 방까지 옮겨놓는 좋은 친구야."

퍼엉.

한곗값 초과. 섬천의 뇌가 다시 행동 값을 연산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다시 퍼엉. 폭죽처럼 머릿속이 터져나갔다.

"그러니까, 잠들면 한 방에 옮겨놓기도 했다?"

섬천의 속 모르는 월묘는 밝게 대답했다.

"응! 그러다 걔도 잠들어서 같이 자기도 했는데?"

섬천이 아주 밝게 웃었다.

월묘는 갑자기 섬뜩함을 느꼈다. 이 오빠는 웃을 때 가장 무섭다.

그렇게 활짝 웃고는 진을 어디론가 끌고 가려 한다.

"어디가? 남자끼리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치료부터 해야 해."

"딱 한 대만. 응?"

장난스런 섬천에 월묘는 진지하게 대했다.

"부탁인데, 깨어나걸랑 해. 지금 치료 안 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여전히 사람이 죽고 사는 데만 관심이 있는 월묘다.

"아, 사실 나도 아까 너 구하다 다쳤는데. 그 포션 내가 쓰겠습니다."

"진짜? 미안해. 그래도 일단 위급한 녀석부터 살릴게. "

파득, 기혈이 뒤틀리는 소리가 섬천의 머리통을 타고 울린다.

손수 진의 몸 구석구석 포션을 바르려는 월묘의 손을 섬천이 잡았다.

"아하하. 제가 발라 드리겠습니다. 소중한 친구 아니겠습니까. 소중한 친구. 친구, 친구. 개 같은.."

"응, 뭐라고?"

"소중한 친구지. 소중한!"

찰싹!

섬천은 손에 포션을 묻히고는 진을 내리 쳤다.

쾅, 그 여파로 진의 누워있는 땅이 갈라진다.

"너무 세게 하는 거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걱정한다. 섬천은 준비된 멘트와 표정으로 넘어갔다.

"아, 이게.. 그 아스페티아에도 시바 신을 믿는 지역이 있습니다. 특히 파란 시바라는 게 있습니다. 파란 시바. 앙? 파란 시바 말입니다. 그 신의 은총이 담긴 파린 시바 치료법인데, 충격을 줘서 세포를 깨우는 겁니다. 이런, 파란 시바."

물론 거짓말이다.

퍽퍽.

소리가 살벌하다. 그래도 치료를 돕는다니 월묘는 그냥 넘어갔다.

고기 다지는 소리 속에 한참을 지나 월묘는 다시 물었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치료되는 거야?"

섬천은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이 정도 속도면 빠른 겁니다. 암, 그럼. 원래는 3시간 정도 걸릴 테지만, 지금은 30분 정도로 충분하겠습니다."

원래는 5분이면 충분하다.

월묘는 왜인지 치료 도중 섬천이 이상한 말을 하는 걸 들었지만.

"이야, 가랑이 사이가 많이 다쳤습니다? 집중 치료해야 되겠는데? 어이구, 실수."

파바바바박!

뭔가 터지는 소리도 들었지만.

"어이구, 또 실수."

섬천을 믿고 진이 빨리 치료되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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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월묘 15.10.06 412 4 12쪽
89 월묘 +1 15.10.06 311 5 7쪽
88 월묘 +1 15.10.04 330 7 15쪽
87 월묘 15.10.03 308 7 12쪽
86 월묘 15.10.03 327 7 20쪽
85 월묘 15.10.03 262 5 12쪽
84 월묘 15.10.01 273 4 16쪽
83 월묘 15.09.28 382 8 11쪽
82 월묘 15.09.27 284 10 15쪽
81 월묘 +1 15.09.26 389 7 12쪽
80 월묘 15.09.25 354 8 13쪽
79 월묘 15.09.24 301 6 20쪽
78 월묘 15.09.22 260 7 12쪽
77 월묘 15.09.22 320 7 14쪽
76 월묘 +1 15.09.20 446 6 12쪽
75 월묘 15.09.20 327 7 13쪽
74 월묘 15.09.19 326 9 14쪽
73 월묘 15.09.17 304 8 11쪽
72 월묘 15.09.17 308 9 12쪽
71 월묘 15.09.15 283 10 11쪽
70 월묘 15.09.14 551 7 13쪽
69 월묘 15.09.13 413 10 17쪽
68 월묘 +1 15.09.12 345 7 10쪽
67 월묘 15.09.12 369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 월묘 +2 15.07.29 457 10 12쪽
64 월묘 15.07.25 365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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