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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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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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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51,747

작성
15.09.28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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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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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1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5년 전.


어린 공호와 섬천, 그리고 월묘와 진이 작은 돗자리에 누웠다. 진의 부모님을 따라온 여행의 마지막 날. 그 아이들의 방학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진의 어머니는 준비했던 간식을 꺼내며 말했다.

"자, 여기가 이 주위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야. 봐봐, 나무도 그 무엇도 안보이고 하늘만 보이잖아."

월묘와 공호는 갸우뚱거렸다.

"달은요?"

"물론 있지. 잠깐 빼먹었나 봐. 보름달이네."

진이 물었다.

"별은요잉?"

"당연히 있지. 별도 깜박했네."

마지막으로 섬천이 물었다.

"구름과 바람은요?"

"있지.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야."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특히 공호네 집안 아이들은 하늘에 닿을 지경이다. 그러나 진의 부모님은 그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불쌍한 녀석들. 친척하나 잘 못 둬서...'

섬천은 작은 팔을 붕붕 휘두르며 진에게 다가갔다.

"이게 원심력이란 거야. 보통 물체의 운동량은 질량*속도라고 하지만, 지구에서는 공기저항을 넣어야 되고.. 내 팔을 대충 1kg로, 속도는 1초에 내 팔이 한 바퀴를 돈다고 가정했을 때.. 관성과 회전력에 의한 것까지 감안하면.."

섬천은 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 다며 친절히 설명했다. 적어도 물리학 석사가 할 법한 계산을 머리로 해 대며 다가가니, 평범한 진은...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해줘잉!"

검은 머리를 찰랑이는 진이 쏘아붙였다.

"아. 내 계산은 완벽한 줄 알았는데..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게 부족하네."

"아니야. 내가 못 알아듣는 거야. 그냥 천천히 물어볼게. 관성이 뭐야?"

"아, 이건 이런 건데.."

새삼스럽단 듯 섬천이 진의 어깨를 쳤다. 상당히 친숙한 둘의 분위기. 달빛 아래 진과 섬천의 그림자가 부딪힌다.

이미 적응해서 신경도 쓰지 않는 관중들. 소란스런 두 아이를 무시하고 월묘가 공호에게 물었다.

"드디어 내일 수와 웅이가 퇴원하는 날이네. 그런데 오빠는 왜 다시 숲에 안가?"

"무슨 숲?"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숲에 틀어박혀 살았잖아. 그 숲이 사라졌다 해도, 숲이라면 다 좋은 거 아니었어?"

공호의 코로 무당벌레 하나가 날아들어 온다. 공호는 월묘를 쳐다보며 단지 기운 없어 보이는 얼굴을 했다.

"모르겠어. 다른 숲은... 숲 같지가 않아. 다른 숲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더군다나 그 스님이 오고 간 뒤로는 더욱더 숲이 멀게 느껴졌어. 아, 그렇다고 싫어하는 건 아닌데..."

"뭐야, 그거. 왜 그렇게 복잡해."

신선한 풀 내음이 바람을 타고 올라온다. 귀뚜라미는 슬프게 노래하고, 공호의 코에 앉아있던 무당벌레는 날아가 달빛 중에 묻혀버린다. ,

그러던 도중, 분위기를 탄 월묘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실수로 내 뱉었다.

"우리는 언제쯤 집에서 아침, 점심, 저녁 다 먹을 수 있는 거야?"

섬천이 시시한 표정을 해 보았다.

"내 계산대로라면 적어도 10년은 걸려. 공호형이 어른이 되어 돈 번다는 최소한의 나이로 잡고."

그 모습을 보면 공호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속에서 무거웠던 게 마중물 같은 월묘의 말에 대응한다. 어리지만, 무겁다. 달리고 있지만, 느리다. 그것은 가난한 집단에 속한 것에 대가였다.

"아니야, 빨리. 최대한 빨리해 줄게. 백 밤만 자면... 아니, 천 밤만 자면. 아니야 그건 너무 늦어.. "

"음... 그런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

공호는 벌떡 일어섰다. 달과 공호가 겹쳐진다.

"이, 이런 달과 가까운 곳에다 집을 지어줄게. 그리고 고기를 배터지게 먹게 해 줄게.."

"무리 안 해도 돼. 너무 무리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겨. 엄마가 그랬는데, 마음이 너무 성급해지면 나쁜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있데. 그런데 나쁜 짓은 하면 안 되잖아."

"그런 짓은 안 해.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면 돼 잖아. 못 믿겠으면 내가 약속할게."

월묘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귀여운 듯 웃음을 짓는 진의 어머니.

"내일 학교 가야지. 집에 가자."


#


"개학... 드디어 개학!"

"개학.. 좋다."

공호남매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자, 진은 흐린 눈으로 빈정거렸다. 가족인 세 학생이 모두 개학을 좋아할 확률은 얼마나될까.

"학생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데잉?"

진이 뭐라고 하든 말든, 공호남매는 개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정확히는 개학 한 뒤의 학교급식.

'드디어 밥값을 아낄 수 있겠네.'

공호는 안도했다. 밑창 찢어지도록 빈곤했으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며 국가의 지원이 있어 교육비는 무료다. 즉, 학교급식은 무료였다. 이게 얼마나 다행인지, 겪어본 이 아니면 모를 거다. 가난은 어린 아이의 생각를 주눅이 들게 할 만큼 거대한 벽과 같았으니.

그렇게 기분 좋게 학교를 끝내고 당차게 걸어 나왔다. 여전히 투박한 운동장, 북적이는 아이들. 크게 소리를 지른다 한들 이 난잡함을 어떻게 하진 못할 거다.

앞으로 350보 정도, 정문 앞에는 마침 진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를 끌고 마중 나왔다.

"가자."

학교와 공호의 집까지의 거리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할 거리였으나, 언제부턴가 진의 부모님이 항상 수고하셨다. 이쯤 되면 은인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렇기에 항상 조용히 감사해 하고 있다.

차 안은 포근했다. 이젠 익숙해진 시트다. 일행이 많았지만, 불만보다는 행복에 가까웠다. 매번 그 먼 거리를 걸었갔던 것에 비하면, 부대끼며 웃어가며 갈 수 있단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다.

행복은 그렇게 지속될 줄만 알았다.

순조롭던 길이 복잡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 뭐야?"

자동차들은 뒤엉켜 갈피를 못 잡고, 사람들은 하늘을 본다.

휘이잉.

기류가 다르다. 시원하게 느껴지던 바람이 미약한 피 비린내를 포함하며 무겁게 분다. 난잡하기 그지없는 휴지들이 이리저리 풀리며 바람에 휩쓸린다. 눈치 빠른 공호와 섬천은 뭔가 일어났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틱, 공호가 안전밸트를 풀며 울린 소리가 정적 속에서 선명하게 울린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침을 삼킨다. 빠르게 주위를 둘렀다. 섬뜩함이 몸을 잡아먹는다.

공호의 집은 아주 싸다. 집도 작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그 주위의 땅값이 모두 폭락한 상태다.

'이 주위에 정신병원이 있어.'

백색병동, 거대한 정신병원. 미쳐버린 정신병자를 감금하고 관리한다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도는 정신병원이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꼭 정신병원 때문이라고는 말 못하지만, 그렇기에 이 주위에는 이상한 사건들이 많다. 이유 없이 동물의 목이 길에 나돌아다니든가 하는.. 끔찍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과민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감은 도망치라고 아까부터 계속 비명을 지른다.

그때, 인류에게. 악마이자, 신이자, 장난이자, 운명인.

그것의 목소리가 내렸다.


-반갑다.


공호와 인류에게 처음 다가온 쿤의 목소리. 공호는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저 하늘 높은 곳, 아니 전 지구적 어딘가에서 이상음파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인사는 했으니, 바로 가자고. 1시간 후에 달이 파괴되고 새로운 달이 뜰 거야. 너희가 할 일은 간단해. 지금부터 광기를 1시간 동안 맛보기로 보여줄 거야. 잘 적응해서, 잘 살아남아 봐.


재앙치고 갑작스럽지 않은 건 없었다. 그러나 이건 장난스럽기까지 했다.

이상하다. 몸이 제어가 안 되고, 피가 끓어 올랐다. 마구 시야가 붉어지고 진정이 되지 않아 공호는 머리를 마구 힘들었다. 그건 주위 사람 모두 마찬가지.

으득.

공호는 이를 갈았다. 차마 이 유혹에 넘어가면 큰 일이 날 것 같아서였다. 입술을 깨물고 몸을 진정시켰다.

"야!"

공호가 소리를 귀에 대고 확 지르자 월묘와 섬천, 그리고 진도 정신을 되찾았다. 공호는 발로 힘껏 앞좌석을 찼다. 한번 슬쩍 덜컹, 흔들린 진의 어머니의 눈빛이 돌아온다. 진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탈탈 털어 저 멀리 날아가던 정신을 붙잡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어렵지만 넘길 수 있는 유혹이었다.

비정상적으로 침착한 공호가 말했다.

"차 뒤로 빼요. 어서!"

뭔가 아닌 느낌을 받은 진의 아버지 강환은 차를 돌렸다. 부아앙! 액셀을 밟으며 울리는 가속음이 심장을 강하게 짓밟았다.

쾅!

뒤에서 들려온 폭발음과 함께 떠밀려온 풍압에 차가 덜컹거린다. 월묘가 뒤의 상황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병원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달리고 있어요!"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정신 병자?"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나 봐!"

순식간에 80km로 치달은 속도로 만난 커브길, 몸이 한 쪽으로 급격히 쏠렸다.

쾅!

"젠장!"

갑자기 튀어나온 정신병자 하나를 쳤다. 그러나 주위에 있던 정신병자들이 눈을 붉게 뜨고 다가왔다. 손에는 피 묻은 면도칼을 들고서.

우욱.

월묘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속에 있던 음식을 게워냈다. 다른 이들도 모두 토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토할 때다 아니었다.

사람을 쳤다는 망설임일까. 강환이 망설이기에 공호는 소리쳤다.

"죽어요. 죽을 것 같아요! 밟아요! 빨리! 이대로 있으면 다 죽어!"

상황이 어떤지 몰랐다. 다만, 가벼운 일이 아니란 것은 느꼈다. 자동차 엔진의 소음을 뚫고 심장소리가 차 안을 울린다.

쾅쾅! 몇 명을 더 쳤으나 속도는 줄이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죽음이 다가온단 걸 직감했다. 멈출 수는 없었으나, 차로 사람을 살해하고 있다는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정신력이 강하지만, 아직 어린 공호다. 팔이 뜯어지며 유리에 철썩 붙고는 붉은 선을 남기며 쭈욱 떨어진다. 머리에 피가 쏠릴 정도로 비명을 쏟고는 정신을 잃을 뻔했다. 쾅! 강렬한 폭발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차가 다시 한 번 덜컹거린다.

이곳의 지리를 모두 꿰고 있는 공호와 섬천이 소리쳤다.

"100m 가서 좌회전, 그리고 500m 가다가 좌회전하면 구멍 뚫린 집의 텃밭이 나와요."

"텃밭을 가로질러서 우회전, 그리고 쭉 직진해요. 그러다 보면 진짜 옥수수밭이 나와요. 거길 다시 가로지르고 나서 계속 직진해요."

그대로 가면, 공호네 집이 나온다. 어머니가 집에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끼이익, 급회전하며 빙글 도는 자동차. 벽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는 집의 텃밭을 통과한다. 쾅. 정신병자 하나가 그 집에서 튀어나온다.

"아!"

짧은 비명을 지르는 월묘.

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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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월묘 +1 15.09.26 38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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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월묘 15.09.24 300 6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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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월묘 15.09.22 320 7 14쪽
76 월묘 +1 15.09.20 445 6 12쪽
75 월묘 15.09.20 327 7 13쪽
74 월묘 15.09.19 326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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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월묘 15.09.17 30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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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월묘 15.09.12 369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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