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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글자 님의 서재입니다.

여우와 두루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틀린글자
작품등록일 :
2015.03.14 00:15
최근연재일 :
2016.02.2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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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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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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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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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2쪽

월묘

영혼을 갈아넣었습니다.




DUMMY

1시간 하고도 15분 전.

묠드의 숲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공호는 진과 섬천에게 말없이 집중했다

가치관, 혹은 행동양식. 뒤틀려 버린 그것들이 언젠가부터 필요 이상의 말을 막아버렸다. 흐르는 물 사이를 돌로 막을 수는 있지만, 돌은 물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섬천과 진 사이엔 투명하지 않은 유리 벽이 가로막고 있다. 서로 아무리 욕하고 칭찬하고 타일러도 결국에는 아무것도 다가가지 않는다. '그날'이 소년들을 이렇게 만들었고, 공호를 방관자로 내던져 버렸다.

공호는 티격태격하며 난장판을 벌이는 진과 섬천사이를 쉽게 껴들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월묘라는 고리로 그들은 잠시 다시 묶을 수 있었다.

"쿠나이로 대가리에 꽃꽂이 해줄까잉, 앙?"

"네 항문을 통과하는 검을 구경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파블로드도 못 잡는 녀석이."

"너도 정상적인 방법인 아니었잖아잉?"

그는 강했다. 지독할 정도로. 파블로드는 마음만 먹는다면 폭매의 모든 A급 실력자를 몰살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였다. 그 정도의 사내였다.

잠시 말이 줄어든 이때다. 공호는 말보다는 녀석들의 어깨를 잡았다.

"응?"

이상하다. 분명 평범하게 어깨를 잡았는데.

"으아앗!"

"무슨 일입니까? 몬스터라도 나타났습니까?"

공호는 몰랐으나 그는 평소에 얼굴근육을 잘 쓰지 않는다. 말할 때나, 분노할 때. 그 두 가지를 제외하곤 마치 안면근육에 장애라도 생긴 양 척척했다.

'왜 그러지?'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머릿속의 환상이 사라진 후부터, 공호의 감정표현의 범위가 조금 늘었다. 환상이 뭐인지는 몰랐으나, 공호도 인지할 수 없는 고리 같은 압박감이 찢겨 사라졌다. 공호는 지금 무섭도록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5년 전 달이 떠오르기 전날."

"아, 그거."

공호는 우선 어렵게 진에게 사과부터 했다. 공호가 언급한 날 다음이 진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붉은 달이 떠오르기 전에 죽은 인물은 부활하지 않고, 그게 이 세상의 법칙이다.

세상에서 조심히 해야 할 이야기 중 하나가 남의 가족 이야기다. 더군다나 좋지 않은 기억을 듬뿍 들고 있는 소년들이 그걸 소홀이 할 리가 없다.

잠시 어두웠던 진은 되려 밝게 표정을 폈다. 괜히 이야기에 초를 치고 싶진 않았다.

공호는 진을 의식하게 슬쩍 말을 꺼냈다.

"...그거 지키려 하는데 뭐를 준비해야 하지?"

두 소년은 한 번에 이해했다. 공호가 왜 그러는지. 사람을 기뻐해 해 주는 일에 공호는 능숙하지 않다. 섬천은 그 점을 몇 번이고 경험해 봤지 않았던가.

마치 섬천은 여래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만 소년이지, 질문의 내용은 거의 사춘기 소녀의 수줍은 고민 수준이다. 이런 쪽은 또 섬천 아니겠는가. 능구렁이 같은 섬천을 순간 때리고 싶은 진이었다.

"그냥 간단히 월묘가 달고 다니는 얘들과 노인들까지 싹다그리 배불리 먹이면 됩니다. 여기서 주의 할 점은 월묘는 훔치거나 강탈한 것 따위는 절대로 사절 할 거란 말입니다. 돈으로 사세요. 재료를 사서 준비한 다음, 자연스럽게 월묘의 대답을 들으면 됩니다."

진이 섬천을 노려봤다.

"어이, 뭔가 뉘앙스가 약간 이상한데잉? 누구 연애시키냐잉?"

공호는 진지하게 다음을 물었다.

"내가 직접 장을 보란 거야?"

"허헛! 그런 겁니다."

섬천은 공호의 어깨를 두어 번 탁탁 쳤다. 이 부분에서 공호는 묘하게 실리아가 떠올랐다. 중점은 일단 그게 아니니, 넘어가고. 어찌 됐든 공호의 표정은 미지근하게 풀렸다.

파앙!

그리고 터지는 충격파. 음속을 아득히 넘어선 속력으로 장을 보러 가는 공호를 보며 두 소년은 서로를 마주 봤다.

"고생하겠지잉?"

"그럴 것 같습니다. 평생 장이란 걸 본적이 없을 텐데. 그리고 그 성격에 장을 본다 생각하면.."

"구경가고 싶은데잉."

두 소년은 평소와는 다르게 서로 배시시 웃었다. 그래, 하는 짓이 남달라서 그렇지 이쪽도 일단 소년이다. 장난기가 발동하는 나이.

"우리는 먼저 가서 할 게 많지 않습니까. 파블로드 그놈이 엇나갈 경우도 생각해야 하고."

두 소년은 입맛을 다시며 좋은 서커스를 놓쳤단 듯 아쉬워했다.


공호는 최대한 빠르게 달려 레스토들의 장터에 들렀다. 폴시아에 가기 전에는 마을이란 마을을 보이는 족족 파괴했기 때문에, 레스토들의 사회에는 오래간만이다.

사람들은 1년 전 그 사건의 범인을 '얼음의 연쇄 살인마' 라고 칭하며 두려워했다. 후에 개척자의 짓이라고 닐에 의해 밝혀졌지만, 용병왕의 은밀한 지시에 얼굴은 알려지지 않았다.

"자, 자. 오늘만 볼 수 있는 하칠림. 하칠림의 숲에서 용병님들이 어렵게 구해오신 귀중한 보물입니다. 이놈을 얻으려고, B급 용병 두 분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셨답니다. 더 말할 게 뭐 있겠습니까? 먹으면 마나 증진 효과까지 있으니, 아, 젠장. 일단 먹어봐. 그럼 알아."

"하칠림? 그 못생긴 코끼리 등판 떼기에서 나는 거? 저런 더러운 거 말고, 이쪽을 봐봐. 밍카리온의 피! 그것도 어제 잡은 거! 이거 한방이면 마나가 아주 직빵이야."

"누가 천박하게 피를 마셔! 빈댕고릴라의 뼈! 이놈을 푹 고아 국물을 우려내면 그게 바로 마나 영약이지 뭐야!"

레스토가 마나를 모으는 방법은 여러 가지만 있지만, 보통 2가지로 나뉜다. 직접 자연에서 마나를 끌어당기거나, 아니면 몬스터를 섭취하고 몬스터에 깃들어있던 마나를 몸에 쌓던가.

말로만 듣는다면, 몬스터를 먹는 것이 효과적으로 보이나 사실 직접 자연에서 끌어모으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무슨 몬스터를 먹든 그 몬스터가 갖고 있던 마나의 티끌만큼도 흡수하기 힘든 게 정설이다. 0.1%라도 흡수하면 그나마 운이 좋은 거다. 너무 조금씩 들어와서, 정말 마나를 많이 가진 강한 몬스터가 아니라면 눈에 띄는 효과를 보기 힘들다.

자연에서 마나를 잘 끌어모으는 영재나 수재 들이야말로, B급 실력자의 자질을 보이는 영재들. 천재 정도의 소리를 들어야 장래에 A급 실력자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더군다나 S급의 자질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강한 몬스터의 사채는 비싸다. 아스페티아의 경제가 괜히 용병이란 이름의 떠돌이 사냥꾼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물론 개척자는 논외다. 개척자는 몬스터를 먹어도 마나가 몸에 쌓이지 않는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강해지기에 별 상관은 없다.

공호는 그렇기에 무조건 먹음직스런 몬스터를 중심으로 장을 봤다. 본래라면 마을을 불태워버리고 약탈했을 테지만, 지금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월묘와 관련된 일에 그런 짓을 하는 건 찜찜했다.

'돈은.. 넘쳐나는군.'

폴시아에서 이황자의 창고를 시원하게 탈탈 털었을 때를 기억하는가.

따지자면 폴시아의 보물을 약 반 정도 떼어먹은 공호다. 인벤토리에는 금과 보석이 넘쳐났다. 결론부터 따지자면, 이것도 월묘에게 쓸 만큼 깨끗한 돈은 아니단 소리다.

'그래도 계산은 철저히.'

이 돈이 어디서 낫건, 돈이 넘쳐난다고 낭비해 손해 보는 건 미친 짓이다. 물자는 언제든지 부족해질 수도 있는 법. 따질 건 따져가며 살아야 사람이 나른해지지 않는다.

"......"

공호는 사고 싶은 물건 앞에 적나라하게 섰다. 막상 말을 하려니 단어선택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저기요, 살 거면 사고사지 않을 거면 비켜주실래요?"

개 요괴, 더 듣기 좋게 말하면 강아지 요괴 소녀가 공호를 나무랐다. 장사의 생명은 자리다. 그런데 이 인간이 멀뚱멀뚱 서서 있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

"저기요? 저기.. 말 좀 해봐요! 부탁할게요. 일단 아무 말이나 해봐요. 네? 아 진짜, 말 좀 하라고!"

"...."

소녀는 들고 있던 돌멩이를 꽉 쥐자, 뿌드득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상큼하고 연약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힘은 좀 있나 보다. 하긴, 요괴 자체가 기본적인 신체능력은 우수하지 않은가.

"야 임마! 말하라고!"

"....얼마."

소녀는 이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4V 2G 입니다."

"....."

"워워, 진정해 내 손."

소녀는 공호에게 롱 어퍼컷을 먹이려다 손을 잡고 진정했다. 그동안 쌓아뒀던 이미지가 망가지면 장사 접어야 한다. 곱상한 외모와 성격을 보고 물건을 사주는 정신 팔린 아저씨들이 한 둘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진상 손님은 직접 쓰러뜨리는 실력의 소유자인 소녀다. 이래 봬도 소녀는 D급 실력자다.

손님이 왕이다. 소녀는 그렇게 철저한 영업 신념을 되뇌며 기다렸다. 공호가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아닌 것은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녀는 몸을 쭈그린 채로 소년을 올려다보며 기다렸다.

"..이거 전부 다는 얼마."

"앗싸! 말한다!"

말을 듣는다는 게 이렇게 기쁜 건 처음 알았다. 설마 그걸 초 진상 손님에게 배울 줄이야.

일단 1차적인 반응은 끝났고, 소녀는 2차적인 반응의 단계로 들어갔다.

"다요? 전부다?"

"..빨리."

일반 레스토와 사소한 경제생활로 대화하는 것에 인색해진 공호다. 말이 조금 느리게 튀어나오며, 문장 단위가 아닌 단답식이었다. 어찌 보면 일종의 언어장애 일지도 몰랐다. 꼭 필요할 때 아니면 말이 잘 안 나온다.

"아, 네. 전부 다 하면.. 세상에, 6R 56V 32G 나 하는데.."

개념상, 2G는 지구에서 껌값 정도라 보면 된다. 그에 반해 1V면 성인남성 혼자 하루 동안 실컷 먹을 만큼의 값싼 고기를 잔뜩 살 수 있다. 1G와 1V는 백배 차이며, 1V와 1R의 관계도 위와 대등하니...녀석이 부른 값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고기를 전부 다 달라는 공호.

월묘에게 잘 대해주기 위해서는 우선 월묘 밑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잘 대해주는 게 순서라고, 섬천이에게 들었다. 놈이 놈인 만큼 섬천의 말은 대부분 들이 맞는다.

"...."

불린 가격만큼 돈을 넘기고는 다음 가계를 향해 걸었다. 함부로 인벤토리를 쓰지 못해 고기를 들고 다녔어야 했는데, 고기를 싸맨 보따리가 공호 보다 대여섯 배는 커 보였다.

"또 오세요!"

소녀는 생각했다. 역시 미모는 타고나야 한다고. 공호가 그렇고 그런 이유로 이 가계를 골랐으리라고 생각했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바보는 아닌 것 같던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공호를 직접 볼 때는 아무런 매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매력만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달고 다니는 것 같았다. 충분히 놀랄만한, 아니 그냥 타의 추종을 불허한 완벽한 외모의 소년이었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그를 처음 볼 때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가 없어지고 나서야 뭔가 공호가 의식이 갔다. 참, 대하기 어려운 기운을 풍기는 소년이다.

'아무렴 어때. 내 물건을 사가는 손님은 무조건 좋은 거지.'

갑자기 들어온 수많은 돈들을 지켜보며 소녀는 침을 질질 흘렸다.

"이게 다 얼마냐. 이참에 가계를 뜯어고치고.. 으흐흐. 어디 보자, 5R 56V 32G.... 자, 잠깐. 진정해. 다시 세 보는 거야. 5R 56V 32G..."

빈다. 1R이 빈다. 뭔가 잘못됐다.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입으로 튀어나왔다. 소녀의 날아가던 눈썹이 와장창 무너졌다.

"니, 니미럴!"

이미 주위를 둘렀을 땐, 소년은 없었다.

"야 이, 사기꾼아!"


그리고 공호는 한참을 가서야 1R를 덜 줬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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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월묘 15.10.03 308 7 12쪽
86 월묘 15.10.03 327 7 20쪽
85 월묘 15.10.03 262 5 12쪽
84 월묘 15.10.01 272 4 16쪽
83 월묘 15.09.28 381 8 11쪽
82 월묘 15.09.27 284 10 15쪽
» 월묘 +1 15.09.26 389 7 12쪽
80 월묘 15.09.25 354 8 13쪽
79 월묘 15.09.24 300 6 20쪽
78 월묘 15.09.22 260 7 12쪽
77 월묘 15.09.22 320 7 14쪽
76 월묘 +1 15.09.20 445 6 12쪽
75 월묘 15.09.20 327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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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월묘 15.09.17 308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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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월묘 15.09.13 413 10 17쪽
68 월묘 +1 15.09.12 345 7 10쪽
67 월묘 15.09.12 369 9 13쪽
66 월묘 15.09.12 279 7 12쪽
65 월묘 +2 15.07.29 456 10 12쪽
64 월묘 15.07.25 364 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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