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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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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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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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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협상 (2)

DUMMY

[끄아악!]


-


야훼가 갑작스러운 고통에 정신줄을 놔버린 것도 잠시.


단순한 고통만이 아닌 진짜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바로 냉정을 되찾고 도주를 시도했다.


휙!


먼저 경유지나 다름없는 박신혁의 꿈.


하지만 이미 한반도 전체를 정보 흡수 범위 안에 넣은 승호에게는 무의미한 행위다.


그가 순식간에 야훼의 뒤를 잡았다.


“자꾸 사람 귀찮게 할래?”


[큭!]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지만, 추적 자체는 야훼도 이미 예상했다.


휙!


야훼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주할 낌새를 보이자 승호는 박신혁의 꿈까지 통째로 짓뭉갰다.


다행히 꿈이 완전히 뭉개지는 것보다 야훼가 미리 근처에 준비해놓은 신도의 육체에 깃드는 것이 조금 더 빨랐고, 오랜만에 육체를 입은 그는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


야훼는 몇 번이나 꿈과 신도들의 육체를 오가며 계속 남쪽으로 도주했다.


승호의 추적 속도가 현저히 줄어든 덕이었다.


[분명 꿈과 정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있건만...]


다만 어디로 얼마만큼 도주해도 승호는 어떻게든 야훼를 찾아냈다.


이참에 끝장을 보겠다 맘먹은 승호가 감각의 범위를 아예 지구를 넘어 방벽까지 넓혔기 때문이다.


원천석의 꿈에서 박신혁의 꿈으로 쫓아갔던 빠른 속도만큼은 아니어도 매번 추적에 드는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넘쳐나는 정보의 흐름 속에서 다른 것들은 차단하고 원하는 것만 찾아내는 일은 아직 미숙한 승호에게 피곤한 일이지만, 말 그대로 피곤할 뿐. 못 할 일은 아니다.


게다가 추적당하는 야훼의 입장에서는 숨 좀 돌릴라치면 들이닥치는 모양새라 더 피 말리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목숨을 내줄 수는 없는 노릇.


“야 피곤하니까 그만 끝내자. 언제까지 도망칠 거야?”


[필요하다면 영원히.]


-


벌써 지구 한 바퀴는 충분히 넘는 거리를 이동했지만, 야훼는 여전히 남쪽을 향해 도주 중이다.


승호도 처음에는 남극에 뭐라도 숨겨놨나 싶었지만, 들어오는 정보에 딱히 특별한 건 없다.


게다가 꿈과 현실이 혼재된 도주 경로 때문에 그만큼을 이동했어도 극에 닿을 일은 없어 보인다.


‘잠깐, 이것 봐라?’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의미한 승호야 상대가 한쪽 방향으로 쭈욱 도주 중인 것을 알수있지만, 경계와 현실 그 어딘가에 있는 꿈속에서 나침반의 원리가 제대로 작용할 리 없다.


사방(四方)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질 않으니 야훼가 방향을 잡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녀석은 일관되게 남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


[혹시 포기한건가?]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것인가 싶어 마음을 놓으려던 야훼는 묵직한 진동을 느꼈다.








여태껏 남쪽으로 도망친 것이 무색하게도 지금 울려 퍼지는 진동은 그가 북극에 신성으로 펼쳐놓은 결계를 통해 전해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야훼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기 때문이다.


[그래. 상위존재라면 당연히 눈치챘겠지.]


-


북극에서 야훼를 기다리던 승호는 녀석이 눈앞에 나타나자마자 감탄했다는 듯 말을 붙였다.


“얌마 이런 곳까지 만들었으면서 저번에는 뭐 그리 놀란 척을 했어?”


현재 그들이 존재하는 곳은 현실의 북극과 정신세계의 북쪽이 혼재된 공간.


현실에서야 자연밖에 없는 극지방에 불과했지만, 방향이 무의미한 꿈의 특정 부분에 이토록 확고히 북쪽이라는 개념을 새겨놨을 줄이야.


승호조차 당장은 만들어내지 못할 그런 공간이기에 감탄은 자연스러웠다.


[이곳을 만드는 데에 만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넌 손쉽게 내 육체를 구현해냈지. 놀랄만하지 않나?]


“아니 그렇게 쉬운 건 아니었는데.”


승호는 아직 변신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예전에 키우던 뚱뚱한 고양이 외에는 다른 형태를 구현하지 못한다.


그가 야훼의 육체를 한순간에 구현한 것은 그럴만한 환경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경계지만 경계가 아닌 꿈이기에 기로 간섭할 수 있는 한계점이 대폭 높아진 데다 대상이 확고한 육체를 지니지 않은 정신체였으니 오히려 현실보다 편했다.


“게다가 여기를 만든 방법은 내가 네 몸을 만든 것과는 조금 다르잖아.”


-


야훼가 꿈속에 북쪽을 만든 방법은 승호와 같으면서도 달랐다.


승호가 필요에 의해서 상대를 붙잡거나 걷어차기 위해 순간적으로 형태를 구현해냈다면 이 공간은 야훼뿐만이 아닌 북쪽이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사념이 조금씩 담겨있었다.


혼자서 무리라면 다른 이의 힘을 빌리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야훼 혼자 북극의 존재와 북극성의 개념에 힘입어 조금씩 다듬는 공간에 불과했지만, 그가 신성을 수습하고부터는 신도들이 지닌 생각을 하나로 모아 존재를 정립한 것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형태 구현(具現)이 아닌 존재 부여(附與)다.


다만 그렇게 만들어졌기에 승호의 형태 구현보다 존재가 확고하면서도 동시에 불안정했다.


그렇게 역설적인 것 또한 꿈의 특성이기에 현실과 경계가 어우러진 이곳은 특별했다.


-


“계속 남쪽으로 도망친 것도 인상적이었어. 덕분에 여길 눈치챌 수 있었지만.”


야훼가 방향이라는 개념이 무의미한 꿈에서 남쪽으로 도망친 방법은 간단하다.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북쪽이 있으니 그 반대로 향하기만 하면 그곳이 남쪽인 셈이다.


말장난 같지만 정신세계에서의 존재를 따지기에는 꽤 깔끔한 방법이다.


“제법 소중한 공간인가 보네 그렇게 무작정 반대로 도망친 걸 보면.”


[아니. 그대로 도주에 성공하는 게 가장 좋은 경우였지만 널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음?”


[우리가 너 같은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나?]


분명 야훼는 만 년 전부터 이곳을 만들었다고 했다.


누가 말했는지는 몰라도 준비된 마법사의 던전에 들어가는 가는 것은 자살행위라 했던가.


그렇게 본다면 이곳 북쪽은 야훼가 만년 간 상위존재들에 대한 대비책을 쌓아 놓은 마법사의 던전이나 마찬가지인 공간이다.


“아니 씨발 그런 거였으면 진작에 이리로 올것이지 왜 도망갔던 건데?!”


어지간하면 육두문자를 사용하지 않는 승호였지만, 야훼를 붙잡기 위해 감각을 방벽까지 넓히고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녀석의 존재감만 골라내야 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곧바로 쌍시옷이 튀어나온다.


[아무리 준비가 되어있다고 해도 그 준비를 발동시키기 위한 시간은 필요하니까. 그리고 넌 그 시간을 충분히 줬다.]


-


시간을 충분히 줬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야훼는 김승호라는 개별 존재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있던 것이지 언제 다시 침입할지 모를 상위존재들에 대해서는 꾸준히 대비해왔다.


그르르르르


가장 먼저 야훼와 처음 마주했던 순간 같이 있었던 개가 어느새 그르렁대며 나타나서는 승호의 목줄기를 물어뜯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 녀석도 이 공간과 마찬가지다. 최초로 인간과 공생을 선택한 늑대 종. 그 녀석들의 사념을 기준삼아 인간들의 개라는 개념을 부여했지. 그중에는 당연히 사냥개도 있다.]


그리고 야훼가 준비한 것은 개만이 아니었다.


개와 검. 창과 돌팔매. 불과 홍수


온갖 것들이 꿈속에서 존재를 가진 채 승호를 덮쳤고, 잠깐 사이에 개념 그 자체들이 승호의 영체를 갈가리 찢어댔다.


그 개념들을 보조하기 위한 온갖 주문들은 덤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공격이 승호에게 유효했다.


‘크윽! 얘 진짜 준비 많이 해놨네.’


오히려 필멸자였다면 끔찍한 악몽을 꾼 것이라 생각하고 꿈에서 깨어나 멀쩡한 자기 육체를 마주했겠지만, 승호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의미한 용이다.


그 모든 재해가 휩쓸고 간 승호의 몸은 실제로도 너덜너덜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본 야훼는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상위존재라고 방심했나? 아무리 사자라도 벌레의 독침에 쏘이면 목숨을 잃는 법이다!]


“어... 음... 수복(修復)”


-


짐승의 이빨과 날붙이, 돌멩이나 화살 같은 투사체, 불의 뜨거움과 압도적인 질량을 지닌 물의 압력, 추가로 그에 휩쓸려 발생하는 질식까지.


분명 위협적인 개념들이지만, 그것들에 의한 결과는 자상, 타박상, 관통상, 화상, 압사, 질식사에 불과하다.


개념 그 자체로 상위 존재에게 유효한 공격을 하겠다는 야훼의 발상은 꽤 괜찮은 답이고, 이전에 만났던 초월자들이라면 몇몇에게는 정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방법이지만, 상대가 나빴다.


승호는 강기로 쳐맞아도 버티면 버텨지는 데다, 우주공간의 압력과 냉기, 항성의 초고열까지 이미 비두스에서 몇 번이고 경험했다.


게다가 텔린에게 맡겨지고 처음 배운 게 바로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이다.


“음 시도는 좋았다고 해야 하나?”


야훼의 공격들은 제법 따끔했지만, 그렇다고 존재 유지에 신경 쓰고 있는 용을 흐트러트릴 정도는 아니었고, 승호의 영체는 그가 말한 수복이라는 단어 한마디에 바로 원상 복구됐다.


사실 굳이 단어를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숨 쉬듯 되돌릴 수 있었지만, 야훼가 너무 의기양양해 있는지라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


그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본 야훼는 다시 한번 승호를 공격하기 위해 온갖 개념들을 다시 내보냈고, 승호는 친구들의 꿈을 짓뭉갠 것처럼 한순간에 그 모든 개념들을 짓눌렀다.


야훼의 집념과 인간들의 사념이 합쳐진 개념들인지라 친구들의 꿈처럼 곧장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기세를 잃기에는 충분했고, 야훼는 전의를 상실했다.


[이것들로도 안 되는 건가...]


그렇게 실의에 빠져 마지막 수단을 써야 하나 고민에 빠진 야훼에게 갑자기 승호가 뜬금없는 요구를 해왔다.


“야. 방금 그 개 있잖아. 그거 하나만 빼서 다시 공격할 수 있어?”


-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요구지만 마지막 수단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라도 시간은 필요했으니 야훼는 곧바로 헐떡이는 개를 다독였다.


[끼잉]


[부탁한다. 시간을 벌어다오.]


한순간 주변의 모든 기(氣)에 압박당한 탓에 기세를 잃기는 했지만, 말그대로 한순간이었기에 개는 금방 투지를 되찾고는 다시 승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승호의 손에 못 보던 물건이 쥐여 있다.


그건 야구방망이였다.


곧이어 상쾌한 바람 소리와 호쾌한 타격음, 구슬픈 개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붕!


빠악!


[깨갱!]


“좋았어!”


-


승호가 야훼에게 갑자기 이상한 요청을 한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예전 텔린에게 손가락을 튕겨 처음으로 죽음을 강제했을 때처럼 뭔가 머릿속을 간질였기 때문이다.


그 간질임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맡긴 결과가 그의 손에 쥐어진 방망이다.


마치 손에서 나무 방망이가 돋아났다고 해야 할까.


방망이와 육체를 따로 구분하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세 번째 팔이 생긴 느낌인데, 딱히 이질감이 들지는 않는다.


“오늘부터 이게 내 주무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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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술래잡기 (2) +1 22.10.16 282 1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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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56 기억 탐색 (1) +2 22.08.24 434 17 10쪽
55 뒷정리 +1 22.08.20 492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5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51 요괴들의 사정 (2) 22.08.07 546 26 11쪽
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3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3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4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6 2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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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42 마무리 (2) +2 22.07.19 768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7 2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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