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정춘식 님의 서재입니다.

강제로 초월당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정춘식
작품등록일 :
2022.05.11 17:00
최근연재일 :
2022.12.01 19:45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99,431
추천수 :
3,081
글자수 :
301,965

작성
22.07.19 00:50
조회
768
추천
26
글자
10쪽

마무리 (2)

DUMMY

승호는 어떻게든 크로노스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짓기로 결심했다.


-


이야기가 끝나고, 승호가 떠날 준비를 재촉하는데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난 여기 남을 거야.”


“응?”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앞으로도 나랑 같이 움직일 생각은 아니지?”


“음, 그건 아니지.”


헤어짐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도 콜린과 같이 움직일 생각은 없다.


애초에 승호에게는 지금처럼 움직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카샤를 통해 관리자들에게 말을 전해놨듯이, 볼일 있는 놈들이 찾아오게 할 생각이지. 직접 찾아다니는 것은 더 이상 사절이다.


아발론을 나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 한동안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으리라.


한동안이라는 시간이 인간 기준일지 용의 기준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승호의 결심이자 계획이었다.


“그래서 남겠다고. 블랙풀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여기서 수호단 일이나 배우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예상외의 답변에 잠깐 생각에 잠겼던 승호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 아카샤에게 콜린에 대해 말해놓는다면 크게 걱정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 잘 지내라. 나중에 또 보자고.”


승호가 텔린에게 배운 것처럼 담백하게 작별을 건네려는데 콜린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꽈악.


“뭐야.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어?”


승호의 물음에 콜린은 은은한 표정을 짓더니 유혹하듯이 입을 뗐다.


“곤히 잠든 사람 깨워놓고는 이대로 가려고?”


뭐 어쩌라는건가 싶었던 승호는 한 박자 느리게 콜린의 의도를 파악했다.


“지금?”


“응. 지금.”


짧은 문답이 끝남과 동시에 콜린은 승호에게 달려들듯이 안긴 후, 입술을 포갰다.


-


승호가 콜린과 몸을 섞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추궁과혈과 격체전공으로 몸 상태를 좋게 만들어준 날 밤부터 콜린은 적극적으로 승호를 유혹했다.


처음에는 얘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그녀는 이십 대 초반의 혈기 왕성한 나이고, 그는 자의가 아니었어도 대략 450년이 넘게 못 해본 남자였다.


영화 제목조차 40년이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했는데, 승호는 그 열 배가 넘는 시간을 독수공방한 것이다.


서로 불이 붙는 데에는 금방일 수밖에 없었다.


-


승호가 고양이의 모습을 유지해야 했기에 지난 삼 주간 참았던 것에 대한 반동일까.


여태까지의 관계 중에서 가장 격렬했던 정사가 끝난 뒤, 콜린은 다시 곯아떨어졌고, 그 옆에서 등을 기대앉은 승호는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골몰했다.


‘좋았지. 좋았어. 분명 좋기는 한데... 그렇다고 얘랑 결혼?’


첫사랑과의 미래를 꿈꾸는 조금은 풋풋하고 조금은 지질한 그런 감성은 아니다.


애초에 진짜 첫 경험도 아니다. 용이 되고 나서로 한정한다면 첫 여인이 맞기는 하지만, 승호가 관리국으로 끌려가기 몇 년 전에는 제법 진지하게 교제하던 애인도 있었다.


그의 가정 환경과 경제적 사정으로 헤어졌지만 말이다.


승호가 갑자기 어이없는 생각을 한 이유는 예전에 텔린에게 들었던 조언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10년 가까이 살았으니, 자주 마주치는 이용객이나 직원들이 추파를 던지는 경우도 있었고, 이걸 좋다고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던 승호는 텔린에게 용들의 연애 사정을 물어봤다.


[오, 연애 상담이냐? 좋지! 근데 하룻밤 상대나, 육십 년 가까운 결혼 생활이나 어차피 찰나에 불과하니깐 맘껏 즐겨. 야, 난 결혼만 이천 번 정도 한 것 같다. 대충 만년에 한 번꼴로 가슴 뛸 일이 생기더라.]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시간 감각이 너무 다른 조언인지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시가 떠오른 것이다.


지구로 돌아와서 이 정도로 친숙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콜린이 처음이다 보니, 잡생각이 너무 많아진 듯했다.


‘결혼은 무슨!’


서로 편하고, 호감이 있는 것은 맞지만, 사랑이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관계다.


승호가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괜히 고개를 강하게 흔들고 있는데, 창밖으로 익숙한 형체가 보인다.


조금 뚱뚱한 고양이였다.


[와우]


녀석은 승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텔레파시로 감탄을 내뱉고는 앞발로 따봉을 건넸다.


-


“봤냐?”


[와우]


다시 한번 감탄이 돌아왔고.


피융!


승호는 기파로 화답했다.


그에게 노출 욕구는 전혀 없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살려주세요!]


중심태양의 권한을 고스란히 가져온 덕분일까. 아카샤는 이전에 상대했던 때와 달리 승호의 공격을 제법 잘 피해냈다.


“기껏 능력까지 줘가면서 살려놨더니, 그걸로 고작 관음질이나 하고 있어?!”


[말씀하신 것처럼 완전히 놔두려니깐, 딱히 할 일이 없었어요. 금방 떠난다시고는 아직 안 떠나셨길래 수다나 떨려고 온 거예요!]


“그럼 왔다고 기척이라도 내던가!”


[엄청 냈거든요?!]


“개소리!”


아카샤의 기척이 중심태양을 종속시키면서 옅어졌고, 그녀가 눈치 좀 채라고 낸 소리는 일에 집중한 승호에게 들리지 않아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중에 다시 오면 될 것을 굳이 훔쳐본 것은 사실이기에 승호는 따끔하게 혼을 내려 했지만, 소란스러움에 콜린이 다시 눈을 뜨면서 아카샤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아으, 잠 좀 자자. 아직 안 갔어? 설마 그렇게 해놓고 더 하고 싶은 건 아니지? 나는 됐어. 지친다고. 너 이제 그냥 가라.”


잡생각이긴 해도, 한순간 결혼까지 생각한 승호와 달리 콜린은 이미 정리를 끝냈나 보다.


말하는 게 제발 가라고 등을 떠미는 수준이었다.


“말을 해도 꼭... 됐고, 잠깐 정신 좀 차려봐. 아카샤 너도 안 때릴 테니 이리 오고.”


“아카샤? 어제 네가 말했던? 우와, 진짜 똑같이 생겼네.”


겨우 정신을 차린 콜린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겁에 질린 고양이를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고, 아카샤는 자신의 목숨줄이 콜린에게 달렸다는 것을 파악했는지, 바로 그녀에게 앵겨 붙었다.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낸 승호가 소란이 있기 전에 생각했던 대로 콜린을 아카샤에게 부탁했다.


“너 방금 할 일 없어서 왔다고 했지? 그러면 내 친구나 옆에서 좀 도와줘.”


동시에 승호는 콜린에게 들리지 않는 용언으로 협박을 곁들였다.


[나중에 확인하러 왔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알지?]


[옙! 제 목숨처럼 지킬게요!]


그렇게 마지막 할 일까지 마친 승호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가려고?”


“응. 더 있어봤자 할 것도 없고. 바로 가려고.”


정말로 마지막이란 것을 느꼈는지 콜린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근처에 오게 되면 또 같이 다니기로 한 약속 꼭 지켜야 해!”


“알았어.”


“나도 나중에 한번 한국으로 놀러 갈게.”


“그러던가. 간다. 나중에 또 보자.”


승호의 영국 여행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


계속 지저세계에 있어서였을까. 아발론에서 나온 승호는 날씨가 완전히 바뀐 것을 느꼈다.


2020년 6월. 어느새 여름이 다가와 있었다.


“어우, 뭐 이렇게 더워.”


저도 모르게 기록을 이용하려던 승호는 생각을 바꿨다.


영체를 무협에서 흔히 말하는 한서불침(寒暑不侵)의 상태로 바꾸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텔린과의 대화가 떠올라서였다.


[남들 더울 때 안 덥고, 추울 때 안 추우면 그게 사람이냐? 괴물이지.]


[더울 때는 시원한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땐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 게 행복이라던데요.]


[더우니까 시원함을 느끼는 거고, 추우니깐 따뜻함을 느끼는 거다. 무조건 편하려고 뭉개지 말고 그때그때의 감각을 느끼란 말이야. 계속 무감각하게 살다가 환원해도 나는 모른다?]


연애 상담 때와는 달리 노물 소리를 듣고 싶은 승호에게 꽤 유효한 조언이었다.


‘빨리 집에 가서 에어컨이나 켜자.’


갑작스러운 더위에 놀랐을 뿐. 영국의 여름은 습도가 낮은 편이기에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승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 뒤, 곧장 집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집에 도착했다.


하루 만에 달 다섯 개에 발자국을 남길 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지만, 승호는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 도착하고 보니, 끈적끈적하고 후덥지근한 기운이 그를 거세게 압박했기 때문이다.


‘진짜 6월 맞아? 에어컨! 에어컨!’


잠시 후 느낄 수 있는 쾌락에 확신이 없었다면, 아마 기록을 이용해서 진작에 한서불침이 되었을 것이다.


에어컨을 가동한 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차가운 공기가 집안을 가득 채운 그 순간 현관문의 벨 소리가 울렸다.


영국을 떠나기 전에 주문한 치킨과 맥주였다.


“드디어!”


승호는 치킨 상자를 들고서는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봤다면 누구나 꼴불견이라고 말할 테지만,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영국 밑에 있는 지저세계라서였을까.


아발론의 음식들은 승호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먹을만한 것은 특산품이라는 사과뿐.


두 달 가까이 영국 요리와 사과만 먹었으니, 눈앞에 한국식 치킨과 맥주가 있다면 안달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음!”


승호가 턱을 움직일 때마다 기쁨에 겨운 신음이 계속되었고, 잠시 후. 닭 다리를 크게 베어 문 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소감이 튀어나왔다.


“이게 섹스지.”


몇 시간 전에 치렀던 콜린과의 격렬한 기억은 승호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제로 초월당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6 협상 (2) +2 22.12.01 168 12 11쪽
65 협상 (1) +1 22.11.26 163 11 11쪽
64 친구 (2) +1 22.11.12 176 9 12쪽
63 친구 (1) +1 22.11.06 185 10 10쪽
62 허가 +1 22.10.30 262 12 9쪽
61 술래잡기 (3) +1 22.10.25 221 10 11쪽
60 술래잡기 (2) +1 22.10.16 282 19 10쪽
59 술래잡기 (1) +2 22.10.01 369 17 10쪽
58 기적 감정 +2 22.08.28 435 20 10쪽
57 기억 탐색 (2) +1 22.08.27 396 11 11쪽
56 기억 탐색 (1) +2 22.08.24 434 17 10쪽
55 뒷정리 +1 22.08.20 492 21 10쪽
54 크로노스 (3) +1 22.08.14 505 23 11쪽
53 크로노스 (2) +2 22.08.13 496 24 10쪽
52 크로노스 (1) +3 22.08.11 495 25 10쪽
51 요괴들의 사정 (2) 22.08.07 547 26 11쪽
50 요괴들의 사정 (1) +1 22.08.05 514 28 9쪽
49 게임 중독(2) +3 22.08.02 543 26 10쪽
48 게임 중독(1) +1 22.07.31 564 21 13쪽
47 악연 (3) +2 22.07.29 580 25 13쪽
46 악연 (2) +1 22.07.27 573 21 10쪽
45 악연(1) +3 22.07.25 626 26 11쪽
44 잼민이 +2 22.07.23 645 23 11쪽
43 나들이 +2 22.07.21 690 24 10쪽
» 마무리 (2) +2 22.07.19 769 26 10쪽
41 마무리 (1) +2 22.07.17 808 25 10쪽
40 세상의 끝 +3 22.07.10 907 32 12쪽
39 침식 (4) +2 22.07.09 871 26 10쪽
38 침식 (3) +3 22.07.08 886 20 9쪽
37 침식 (2) +3 22.07.07 956 3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